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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평(詩評)과 시론(詩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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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6
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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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詩評)과 시론(詩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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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린(在隣)한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단에서는 시부문이 가장 장족으로 발전되어 있는 반대로 우리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단에서는 시부(詩部)가 가장 빈약하고 활발치 못하였다. 질량이 모두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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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프로시인에서 가장 많은 시편을 제작하였고, 또 프로시인으로서 부르 시단에까지 많은 총애를 받던 박팔양(朴八陽)씨의 시를 보면 우리는 도저히 프로시라고 명칭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의 시는 몰락하는 상공 소부르조아를 표상하는‘근대주의’로 빌딩, 타이피스트, 모던 걸, 도회의 풍경같은 것을 아무 조건없이 찬미하고 노래하였다. 그것은 공작(工作) ‘도회정조’, ‘새로운 도시’, ‘여인’등을 보면 모두 그러한 것을 알 것이다. 그 가운데는 프롤레타리아의 부르조아 계급에 대한 ××××는 그림자도 없고, 금씩 요리의‘약임’처럼 들어있는 불평, 동정의 문구는 부르대중 시인들의 반동시에도 넉넉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는 프로시로는 말할 여지도 없거니와 소위 인도주의의 시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정도(程度)가 없었다. 우리는 이러한 시는 어디까지든지 배척하여야 하며, 또 이 동지가 하루바삐 반성하여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시의 길로 전환하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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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담에 작년 이래로 우리 시단에서 가장 많은 평가를 받고, 가장 많은 영향을 대중에게 준 임화(林和)씨의 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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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작 「네거리의 순이(順伊)」,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같은 것은 많은 문학청년을 감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높게 평가할 수 없으며, 또 하여서는 안된다. 함은 거번(去番)에 여러 동지들이 누론(屢論)한 바 있어 또 갱론(更論)하지 않거니와, 또 군은 어느 동지의 말과 같이 우리 시단에서 공적도 많은 그만큼 언짢은 영향도 많이 주었다. 그것은 임(林)동지의 그러한 시가 발표된 이후로 그와 같은 감상주의적 경향을 띤 시들을 가끔 가끔 최근까지도 다른 동지들의 시 가운데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김창술(金昌述)씨의 「오월의 훈기」(《조선지광》제87호) 적구(赤駒)씨의 「묵도」(《대중공론》제5호) 김병호(金炳昊)씨의 「유복아에게」(상동)같은 시들을 보면 감상주의적 내용, 산만의 형식이 모두 얼마나 임(林)동지의 「네거리의 순이(順伊)」,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등의 그것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林)동지의 시는 최근에 와서 벌써 그 경향이 차차 프롤레타리아 사실주의적으로 전환되어 옴은 우리들이 같이 기뻐할 일이다. 그것은 동지가 시에 대한 비평을 보도 강작(强作)으로 전환한 것보다 동지의 그동안 훨씬 더 고양된 의식, 훨씬 더 많은 경험을 배운 ××생활이 그러한 시를 쓰지 않고는 안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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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 최근의 작 김병호씨의 「초춘잡영(初春雜咏)」과 손재봉(孫在奉)씨의 「전신주 뒤에서」가 있다. 그러나 2편이 모두 ‘가난’과 ‘노동’에 대한 로맨틱한 동정을 노래한 것에 지나지 못하였다. ××적 시, 아지 프로의 시는 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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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낭만적 동정주의’경향은 예술운동 극초기의 문예 작품에서 흔히 잘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초기 소설 작품 가운데도 이러한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거진 그 형적(形跡)이 없어 가는데 시에서만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은 시부문이 다른 부문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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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과거의 우리 동지들의 시 가운데 나타난 결점, 청산해야할 언짢은 경향만을 지적함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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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괄적으로 보아 과거의 우리 시들은 거진 다 소위 ‘시를 위한 시’ ─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의미와는 좀 다르지마는 ─ 이었고 진정한 아지 프로를 위한 시는 보기 어려웠다(전연 없었던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서 우리들의 시는 다른 새 길로 방향을 전환하여 비약적 발전을 하지 않으면 미기(未幾)에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갈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길로 가야할까. 다음과 같이 우리는 전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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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것은 결코 부르 시평가(詩評家) 김억(金億)씨의 말과 같이 “현실세계의 모든 고뇌에 부딪친 사람에게 다시없을 자모(慈母)같은 위적을 주어 고단한 맘을 미화시켜주는”것도 아니고, 또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쓰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시는 결코 음률의 조화미를 위한, 본능생활의 향락을 위한 시가 아니다. 우리의 시는 다른 모든 ××시대의 ××예술과 같이 ××대중에게 ××주의를 아지 프로하는 외에 아무 의의와 역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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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 한 소절의 노래를 쓰더라도 우리는 언제든 아지 프로의 효과를 위해 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령 부르 시평가 김억씨의 든 예를 들어 굴러다니는 한 개의 돌멩이를 노래하더라도 결코 그이의 말과 같이 “시인 그 자신의 성격(또는 개성)을 통하여 그 돌멩이가 어떠한 미를 가졌는가, 그것 하나만을 읊으면 그만이외다.”가 아니고 그것을 관련삼아 아지 프로의 효과 나도록 노래할 것이다. ─ 물론 굴러가는 돌멩이 한 개를 가지고 아지 프로의 효과 나도록 쓴다는 것은 가설에 불과하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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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우리들의 예술과 같이 물론 우리들의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참담한 비인간적 ×××생활 또 그로 인하여 석탄의 연기가 더 서서히 혹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증오 ××감정이 필연적으로 그러한 노래를 안부르면 안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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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벌써 모든 것은 주체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우리는 또 예술이 얼마만한 하향운동을 할 수 있는 줄을 아는 우리는 그것을 다만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노래하는 노래, 우리의 감정을 노래로 만든 노래만으로 그치게 하지 않고, 그 서서히 혹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을 정리하여 일반대중의 가슴에 흡입 전달하여 ××××의 마음을 격동시켜 ××의 길로 끌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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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루나차르스끼가“만일 ××주의자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제현상의 사이에 연계된 객관적 결정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다 하면, 그는 ××주의자로서 망(亡)한 자이다. 그러나 진실한 완성될 맑스주의자로 불리는 우리는 다시 그 환경에 대한 일정한 작용을 요구한다.”는 말도 역시 그러한 의미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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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의 노래도 적든 크든 훌륭한 ××의 ××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를 뉘든지 묵은 조화미, 소부르조아적 기교, 즉 루나차르스끼도 말한 ‘모든 예술적 조건성과 세련성’으로 결약(缺弱)하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 그를 제작하고 사용할 자격이 없는 병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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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시는 결코 프롤레타리아가 그들의 ×××생활을 감상적으로 노래하여 자위 자안(自安)하는 위안용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 시들을 보면 거진 다 그러한 시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형상화한 삐라와 리포트로 훌륭한 ××의 ××토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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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는 우리의 과거의 시들은 너무도 구체성없는 추상적 시뿐이었다. 말하자면 막연한 ××, 막연한 규호(叫號), 막연한 명일의 동경이었다. 이것을 일본동지들의 말을 빌리면 지나치게 일반 감정만을 노래했던 것이라 하였고, 또 어떤 동지들은 “일과 결합치 않는 머리로 지은 시”라고 또 어떤 동지는 “막연한 감정 ─ 단순한 심리상 충동”이라고 하였지마는 모두 이어동의(異語同義)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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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년에 어떤 동지는 “서사시의 길로”하고 부르짖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인 듯 하다. 또 그러한 결점이 가장 적고, 서사적 내용을 많이 가진 임화의 시를 높게 평가한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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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그 동지의 말과 같이 반드시 서사(敍事)로서야 즉 “그 소재가 사실적 소설적”이어야 추상적 아닌 구체성 가진 시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사실은 소설적으로 또 서사적으로 순서있게 서술치 않더라도, 그 사실이 추상적이 아니고 구체적 사실인 이상 그것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감정 ─ 비록 폭발적이라도 ─ 을 표현하는 시는 얼마든지 추상적 아닌 구체성 가진 시로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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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같은 서사에도 어떠한 서사인가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서사 그것이 같은 프롤레타리아의 일이라도 그것이 읽는 대중에게 도연(徒然)히 센티멘탈한 헐가(歇價)의 동정심만 일으키게 하는 것도 있고, 그 반대로 읽는 대중에게 강렬한 ××심과 용감한 ××심을 고취해주는 것도 있다. 또 같은 ××심과 ××심을 아지 프로할만한 서사라도 그 표현방식의 여하에 의하여 효과를 좌우하는 것이다. 즉 섬약한 억양(抑揚)과 소구(疎舊)한 인텔리겐차의 용어는 비록 어떠한 ××적 서사적 내용을 가졌더라도 그것의 효과를 얼마든지 감쇄(減殺)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 시들 중에 그러한 시를 얼마든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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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또 시의 형식에 대해서 논급하지 않으면 않게 된다. 원래 시란 것은 과거 시대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예술의 형식보다 가장 더 대중과 격리된 소위 고답적 예술형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갈수록 대중과 거리(距離) 인연이 멀게 발전이 되어 전연히 예술가들의 전용 노래만이 되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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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들이 그들의 모든 예술형식을 섭취 계승하여 ××의 무기로 쓰려할 때에 시란 형식을 왜 쓰게 되었느냐. 말할 것도 없이 시란 건 가장 단촉(短促)하고 간약(簡約)한 말 가운데 가장 강렬한 감정을 담어 그것을 다른 대중에게 전달, 흡입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은 그것이 재래와 같은 인텔리겐차와 예술가만의 전용물에서 해방되어 일반대중이 노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문학지식의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저열한 조선대중에게는 이때까지의 우리가 제가한 시보다 훨씬 더 대중화시키기 전에는 당분간은 아지 프로의 역할을 이행하기 불능(不能)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문학지식 수준이 반드시 의식수준과 정비례하는 것도 아닌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대중화를 부르짖는다고 우리의 이 예술을 ××운동에 그다지 많은 역할을 하지 못한 순(純)문맹 혹은 반(半)문맹을 전(全) 수준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루나차르스끼가 “우리는 문화적 의미로는 극히 낮은 농민 혹은 노동자까지의 광범한 대중의 수준을 쫓아 우리의 문학을 평균해 버려서는 안된다. 이것은 가장 큰 과오이다”라고 하는 말도 이러한 의미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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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어떤 동지처럼 우리들의 노래를 「아리랑」같은 재래의 민요 곡조로 지으면 되는 줄로 알아서는 안된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러한 민요는 봉건사회 부르 사회의 영락 퇴폐한 자의 입에서 나온 것인 만큼, 그 안에 포재(包在)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그 형식 ─ 곡조도 애수적이고 퇴폐적이어서 읽고 듣는 자로 하여금 신경이 무의식적으로 마비 위축케 한다. 따라서 우리 프롤레타리아예술에서는 도저히 용납치 못할 형식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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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술의 대중화와 비속화를 엄밀히 구별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의 대중화를 노력하는 동시에 비속화를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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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조》(제4호, 193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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