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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문단 합평회 ◈
◇ 조선문단 합평회 (제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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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3~8
현진건
1
『조선문단』 합평회 [제1회]
 
2
- 2월 창작소설 총평
 
 
3
평자(가나다순)
4
金基鎭[김기진](八峯山人[팔봉산인]) 金 億[김억](岸曙[안서])
5
李光洙[이광수](春園[춘원]) 朴鍾和[박종화](月灘[월탄])
6
廉尙燮[염상섭](想涉[상섭]) 羅 彬[나빈](稻香[도향])
7
梁建植[양건식](白華[백화]) 玄鎭健[현진건](憑虛[빙허])
8
方仁根[방인근](春海[춘해]) 崔鶴松[최학송](曙海[서해])
 

 
9
잘못된 것은 잘 받아쓰지 못한 필자의 허물이오니 책망의 방망이는 필자에게 내려 주옵소서.
10
필자 최 학 송
 

 
11
인근 : 이제부터 시작하지요, 필기는 최학송 군의 수고를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12
나빈 : 말은 천천히 해요. 받아쓰기 좋게…….
 
13
인근 : 그리고 평하는 이는 우리끼리 의견 충돌이 되더라도 이 자리에서 시비할 것 없고 작품에 대해서만 말합시다.
 
14
일동 : 그러는 것이 좋지요.
 
15
인근 : 그런데 합평하는 것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한 사람이 평하는 것보담 낳을는지, 못할는지요?
 
16
김억 : 그것은 나종을 볼 것이고…… 그러나 어느 점으로는 좋을 줄 압니다.
 
17
인근 : 합평에는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중인(衆人)의 평이니까 원만하게 되고 재미스러울 줄 압니다.
 
18
상섭 : 반드시 이 합평에서 무엇이 나올 것 같아요. 무슨 큰 자격(刺激)을 줄줄로 믿습니다.
 
19
인근 : 피차에 원망이나 없을는지요?
 
20
건식 : 거북한 노릇이야! 하하.
 
21
종화 : 물론, 누구나 장점 단점이 있는 것이니까요.
 
22
나빈 : 나는 아모 상관없을 줄 압니다. 평에 대하여 원망이라는 것은 피차 감정상 문제이지만 그것도 말로 한다고 더할 것 없잖습니까. 말로하나 붓으로 쓰나 마찬가지니까요.
 
23
인근 : 합평이라는 것은 조선에서 처음인데 대개 어떠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
 
24
진건 : 두 가지가 있겠지요, 죽 돌아가며 차례로 한 사람이 평을 다하여 가는 것과 짤막짤막하게 여러 번 회화체로 하는 것과…….
 
25
건식 : 회화체로 하지요.
 
26
기진 : 좀 어려울걸요.
 
27
학송 : 어렵기는 어렵겠지만 회화체로 하지요.
 
28
나빈 : 좀 재미있는 말도 섞어 가면서…….
 
29
인근 : 여기 있는 이의 작품은 어찌할까요? (상글상글 웃었다. 방안의 공기는 점점 긴장하여 간다.)
 
30
김억 : 물론 작자는 그 때마다 빠지는 것이 좋겠지요.
 
31
건식 : 대개 작자는 말 안 하는 것이 좋겠지요.
 
32
종화 : 작자한테 동기를 물어도 좋겠습니다.
 
33
김억 : 나는 빼요. 소설에는……(하면서 싱글싱글 웃고 꽁무니를 뺀다.)
 
34
인근 : 김억 군은 시평을 맡았으니 빠져도 좋소.(아주 판사가 선고나 나리는 듯이)
 
35
건식 : 나는 보지 못하였으니 어쩌나? 보려고 하다가 바빠서 그만……(키 커단 양반이 머리를 긁으면서) 작자들에 대해서 안됐는걸!
 
36
상섭 : 계속 소설들은 다음으로 밀지요?
 
37
인근 : 그러면 『개벽』 2월호에 실린 회월 씨의 「정순이의 설움」부터 평합시다.
 
38
나빈 : 나는 못 보았습니다. 작자에게 대하여 퍽 미안합니다.
 
39
건식 : 나도 못 보았습니다.
 
40
진건 :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면서 보기는 보았는데, 무어라 할지 생각 안나, 가만 있자, 여기 써 넣었으니(호주머니에서 뒤심난하게 적은 원고지를 끄집어내어 펴든다.)
 
41
종화 : 나도 썼는데(수첩을 끄집어 낸다.)
 
42
상섭 : (뚱하고 앉았었던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양반이) 그 방망이 빌려들주구려!
 
43
일동 : 하하하!
 
44
진건 :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적기는 내가 적었는데 알 수 없는걸! 허허. 이렇게 꼭 지목하거나 차례로 하지 말고 누구나 생각나는 대로 먼저 말하는 것이 어떨까?
 
45
나빈 : 일전에 월탄(종화)군의 집에를 갔더니 회월(영희)군의 작품(『개벽』 2월호, 「정순의 설움」)은 그 전것보담 휠씬 낫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나은지 그것은 월탄 군에게 들었으면……(웃음 머금은 구슬같은 눈으로 월탄을 건너다 본다.)
 
46
(월탄이 입 열기 전에)
 
47
기진 : 그 사람(회월)의 작품은 여럿을 보았는데 아직 습작을 면치 못한 듯해요. 그러나 작품에 나타나는 작자의 양심은 좋아요.
 
48
인근 : 근래, 회월 군의 작품에는 프로의 기분이 좀 흘러요.
 
49
학송 : 그런데 독자에게 절실한 느낌을 못 주는 것이 섭섭히 생각납디다.
 
50
종화 : 그런데 회월 군의 소설은 4,5편 보았는데 어떤 데 돗비한 점이 많으나 기교가 좀 세련이 덜 되었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이번 소설(『정순이의 설움』)은 아주 세련된 것으로 믿습니다. 기교라거나 묘사가 이전에는 보지 못하는 점이 많아요. 딴 사람이 쓴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또 들어 말하면 정순이라는 주인공에 대한 작자의 태도라거나 그외 모든 것이 그야말로 훌륭한 완성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흠점을 들 것 같으면 작자가 소설에 대하여 과장하는 폐단이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외다. 이제는 다른 분이 말씀하시오.
 
51
상섭 : 나는 못 보았습니다. 『개벽』에 소설이 안 난 줄 알았소(이때에 방안이 터지도록 일동이 웃었다.) 작자에게 대해서 어느 지경 미안한 일이외다.
 
52
진건 : 작자(회월)가 한 에피소드라고 고도와르한 것인데, 정순에 대한 작자의 태도에는 두 분(기진, 종화) 말씀에 동감을 가집니다. 그런데 월탄(종화)군 말에 작자의 병이라고 할 과장이 있다고 하였으나 나는 거기 반대합니다. 이런 작품을 성공시키려면 그것을 고조할 필요가 있어요. 의사를 보고 반하는 심리는 그럴듯하고 병원에 찾아가는 심리도 역시 묘해요. 그런데 내 생각 같아서는 의사가 입을 벌리게 하고 목 아픈 데를 묻는 데를 좀더 무엇을 넣었으면 하는 느낌이 납니다. 물론 전작보담 낫다고 하지만 전작에 대한다는 것이 너무도 모호한 듯합니다. 좀 자세치 못해요……(사이)……행랑년이라는 것도 이상스러워요.
 
53
인근 : 글쎄. 행랑에 계집애가 혼자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54
진건 : 그것도 그렇고 말하자면 작자가 너무도 결론을 급히 한 것 같습니다.
 
55
학송 : 주인공 정순의 반역이 아모 것도 모르는 하류계급의 사람으로서도 한 인류의 막지 못할 생의 충동으로 일어나는 본능적인 맹렬한 반역이 되었다면 참 좋았겠는데 그만 어떤 유식자의 이해타산에 가까운 흐리머리 한 반역이 된 듯해서 인상이 깊지 못하지 않은가 합니다.
 
56
종화 : 그런데 진건 군 말을 들은즉 과장한 것이 없다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 과장이라고 하는 것은 정순이란 계집애가 병원에까지 가는 것은 묘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과장인 줄로 생각합니다. 18,9세 먹은 계집애가 자기 상전이라는 서방밖에는 이성이라는 것을 통히 접촉할 수 없었는데 그렇게 의사를 한 번 본 후에 바루 곧 그렇게 병원으로 갔을는지? 그것이 과장이 아닌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까 말 계속이지만 그 정순이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대하고 나종에 그 손을 목에 댔던가?(고개를 기웃드름한다.)
 
57
진건 : (손으로 가리키면서) 아니 입에다 대었어요.
 
58
종화 : 응 참, 입에 손을 댄 거기에 역시 빙허(진건) 군의 말같이 어떤 묘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한 장면이 너무 서투르고 억지로 끌어들인 그런 생각이 나는 게 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끝을 급하게 막았다는 것은 그처럼 생각할 수 없어요.
 
59
진건 : 그런데 대개 이런 소설은 작자가 무엇을 쓰려고 하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싶어요. 그 행랑 계집애로 있어서 의사의 흰 손이 몸에 닿고 하는 데로부터 끝이 왜 급히 되었느냐 하면, 다른 게 아니라 끝에 가서 행랑년이 주안점이 되었는데 애가 끊는 듯한 절통한 설움에 가슴을 치고 이를 갈도록 묘사치 못하고 말 한 마디로 막은 것이 힘없이 보여서 결점 같아요 그러구 프로 계급을 그린다는 데는 할 말이 많으나 그것은 후일로 밀지요.
 
60
종화 : 작자가 급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소위 프로의 기분이랄까, 제4계급의 문학이라 할까, 그 기분이 행랑년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작자는 벌써 행랑년이란 말이 나오기 이전에 그 정순이란 계집애가 병으로 자리에서 홀로 신음할 때 벌써 독자에게 하층계급에 있어서 학대받는 그 여자의 설움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분이 농후하게 열렬하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한 침통의 빛이 드러나지 못하였으니까 그것은 급속히 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작자의 창작적 수완에 밀 것이지요.
 
61
나빈 : 그만하고 다른 것으로 옮기지?
 
62
인근 : 왜 김기진 씨는 말씀이 없어요?
 
63
기진 : 별로 할 말이 없으니까요.
 
64
인근 : 이번에는 김낭운 씨의 「영원한 가책」(『생장』, 2월호)을 말씀하시지요.
 
65
종화 : 도향(나빈)은 어떻게 생각하나?
 
66
나빈 : 무엇 말인가?
 
67
종화 : 날 보고 도로 묻나?
 
68
진건 : 어쨌든 약은 사람(나빈)이야! 하하하.
 
69
나빈 : 『생강』 1월호에 난 것은(낭운의) 무엇이더라?
 
70
인근 : 「귀향」이지.
 
71
나빈 : 그(낭운)의 작품으로는 「귀향」을 처음 보았는데 거기 비하면 「영원의 가책」은 퍽 나은 듯해요. 그런데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말하면 위선 시골 가정 학생으로 그때까지 아내가 없는 것이 의문이 됩니다. 그리고 엄격한 가정이라고 하면서 엄격한 가정 묘사가 없어요.
 
72
인근 : 오히려 반대가 되었어요. 기생이 그렇게 자유로 그 집에 기거한 것을 보면 어디 엄격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73
나빈 : 글쎄 말이야. 나는 시골 풍습은 잘 모르나 그와 같은 엄한 가정에서 기생을 안방에 두는 것이 퍽 의심 나!
 
74
진건 : 이 사람(나빈)이 내 할 말을 다 빼앗아 하네! 하하하.
 
75
상섭 : 역시 그러이. 하하하.
 
76
종화 : 나도 그런걸 ── 일동. 대소(大笑),
 
77
나빈 : 설령 갖다 놓았다 하더라도 그런 엄한 가정에서 기생과 자유교제를 허하겠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란 말야. 그리고 이것이( 「영원의 가책」) 1인칭 소설이니 저쪽의 심리묘사가 어렵겠지마는 그 상대자 되는 기생의 심리라든지 거기 나타나는 태도가 퍽 불분명하게 생각납니다.
 
78
종화 : 낭운이 석송(石松)인가?
 
79
나빈 : 아니야, 낭운은 낭운이야. 하하.
 
80
종화 : 나는 낭운을 석송으로 알았네!
 
81
학송 : 그러나 전편을 통하여 알 수 없는 매력이 읽는 사람에게 염증을 주지 않아요. 그리고 달아래 시냇가에서 기생이 신세 자탄하는 데는 무상한 인간의 애처로운 일면을 몸소 느끼는 것 같습디다.
 
82
상섭 : 그래요. 어느 정도까지 독자를 끌어요. 이 소설(「영원의 가책」) 주체가 기생과 엄격한 가정이라는 데 있는데 출발점부터 엄격치 못한 가정인 것은 도향 군 말에 찬동이요 그러나 다 읽은 뒤에 머리 속에 남은 무엇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요구라 할는지 가정을 한껏 엄격하게 만들어 놓고 그 기생을 올데 갈데 없게 아주 돈소꼬에 빠지게 하고 침통한 눈물로써 그렸으면 더 열렬하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거든 가정을 자유스럽게 심하게 말하면 난륜적(亂倫的) 즉 주인공이 데카단적으로 활동하였더면 좋았겠는데, 두 가지가 반중전중하게 5분씩 섞였으니 인상이 엷어져요. 전체로 보아서 유망하다는 것은 범람(氾濫)한 말이나 여하한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는 작이어요. 끄트머리에 처음 편지에는 주인공의 말같이 열이 없다는 것은 작자가 그렇게 보이기 위하여 썼다고도 할 수 있으나 유서에 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작자의 수완이나 역량이 나타나지 못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만큼 인도적인 주인공이 기생의 전정(前程)을 위하여 돈 2백원까지 싸 놓았다는 생각이 주밀한 주인공인 기생이 이마에 키스하는 것까지 모르도록 잤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최후의 고통의 빛이 보여야 할 텐데 그것이 없으니 무력해요.
 
83
나빈 : 이름이(「영원의 가책」) 재미 적어요. 내용의 불충실을 미리 말하는 듯해서…….
 
84
인근 : 전편을 통하여 재미는 있으나 그만치 여유 많은 재료를 그만 평범하게 만들었습니다.
 
85
상섭 : 어느 귀퉁이 빈 데만 없었더면 썩 훌륭하였을 건데…….
 
86
기진 : 그것도 배경을 잘 만들어 놓고 활동시켰더면 썩 좋았을 것인데, 그만 평범해졌어요. 자기(주인공)는 학생이다. 그런데 가정은 엄격하며 또 저는 기생이다, 아직 사랑할 수 없다 하는 감정과 의지의 싸움의 끼렌마가 없어요.
 
87
─────(사이)─────
 
88
인근 : 또 (사면을 돌아본다. 조그마한 눈에서는 웃음이 솔솔 새어 나린다.)
 
89
기진 : 주인공은 그 기생의 죽은 것은 내가 죽였구나 하면서도 고통의 빛을 볼 수 없어요.
 
90
종화 : 혈서 써 놓고 죽는 데가 너무 경한 듯해요.
 
91
진건 : 성격 설명이 없어서 연극 같애!
 
92
기진 : 「귀향」도 스지가 분명치 못합디다.
 
93
인근 : 『생장』에 「순(醇)의 생활」(방한민 작)은 어때요? 보아도 모르겠어요.
 
94
일동 : 그것은 초기(抄記)니까 평할 수 없어요.
 
95
나빈 : 그 다음 「내방자」는?
 
96
인근 : 그것은 소설이라고 할까?
 
97
나빈 : 그래두 소설이야! (가만 눈을 깜빡깜빡)
 
98
종화 : 이제는 『조선 문단』으로 옮기지?
 
99
나빈 : 이제 상섭 군 차례(「전화」)가 왔구나! 하하하.
 
100
인근 : 이제는 그럼 상섭 군의 「전화」?
 
101
상섭 : 에그 욕들이나 톡톡히 하시우! 나는 모르겠수! (풍부한 얼굴이 붉그레하여 호기롭게 껄걸 웃었다.)
 
102
인근 : 「전화」는 이름부터 호기심을 끌어요.
 
103
나빈 : 단편으로는 아주 좋아요.
 
104
기진 : 「전화」가 좋아요. 아마 『조선 문단』 2월호에 실린 소설 중으로서는 제일 무게 있는 작품이야! 하하.
 
105
일동 : 그래, 하하.
 
106
상섭 : 나는 빙허 군의 독설이 나올까 봐 겁나네. 하하하.
 
107
인근 : 나는 여러 군데 짜릿짜릿한 묘사에 반했습니다.
 
108
나빈 : 장가 가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상상력이 굉장해. (상섭은 나이 30이 되도록 총각이다.)
 
109
기진 : 주인 아씨 댕기 땋는 데도 그럴듯해! (이때 춘원이 들어왔다.)
 
110
나빈 : 하지만 술이 취했다고 ‘채홍’이 소리가 나올까? 그렇게 그런 마누라 앞에서…….
 
111
종화 : 정 심하면 나오기도 할 터이지!
 
112
인근 : 상섭 자신 같으면 안 나오겠지만 ── 주사야 나왔을는지 모르지? 하하하.
 
113
나빈 : 사실 신년에 나온 작품 중에는 「전화」가 우리 문단에 제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4
진건 : 내가 연설할게. 상섭 군의 회화 쓰는 것은 일품이요, 암시도 묘해요. 예를 들면 채홍이가 전날밤에 김 주사하고 같이 잔 것이 뺨이 붉고 눈이 쾡한 것으로 암시한 것은 썩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섭의 작은 처음은 혼돈하다가 차츰 실 풀리듯이 나가는 것은 기교나 묘사에 익숙한 것이겠고 작중에 나오는 인물들이 늘 무슨 일을 낼듯 낼듯 하여 어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독자가 그 맛에 끌리는가 합니다. 한데 이 작에서 표현시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사내 속 못 차리는 것을 나타낸다면 좀 부족하고 주인 아씨도 여염집 부녀답지 않게 사내말 대답이 여간 아니던걸. 그러니 주인 아씨와 기생, 그 두 사이에 사내가 쪼들려서 아주 못견디게 되든가? 또는 사내가 어떻게 주인 아씨를 휘두르던가 했으면 흥미가 더 깊을 것 같습니다.
 
115
종화 : 빙허 군은 작자가 무엇을 썼을까 하나 나는 그것을(「전화」) 무게 없는 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전화 그것에 지나지 못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묘사, 기교는 빈틈이 없이 잘 되었으나 끝에 묘사가 있어야 할 텐데 너무 급속히 맺은 것 같습니다.
 
116
상섭 : 허허, 내가 어디 변명을 해 볼까? 아니 변명보담도 계획을 말하지요. 그것이(「전화」) 처음 마음먹었던 것과는 뒤틀렸어요. 처음 개벽사의 부탁을 받고 지긋지긋 밀리다가 그때야 쓴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통화료에 졸려서 쩔쩔 매는 것을 그리려고, 소위 현대 사회에 나서서 행세한다는 사람의 내막을 그리려고 한 것이, 그러면 시일도 걸리고 장편이 되겠기에 그렇게 뒤틀렸습니다.
 
117
나빈 : 춘원은 왜 말이 없습니까?
 
118
광수 : 나는 오늘 듣기만 하겠습니다. 하하.
 
119
건식 : 전편(「전화」)을 보면 내용이 우스워요.
 
120
일동 : 하하하.
 
121
종화 : 그래, 전화라는 것이!
 
122
나빈 : 그것이 동경인지도 모르지? 하하.
 
123
일동 : 하하하.
 
124
종화 : 그건 그만하고 넘어갑시다.
 
125
인근 : 빙허(진건)군의 「B사감과 러브레터」
 
126
나빈 : 그것 꽤 음침하던데! 빙허의 작품은 얼핏 보면 ‘체호프’의 단편 같애. 『개벽』 정월호의 「불」로 말할지라도 체호프 작에 어떤 계집애가 종일 괴롭게 일하다가 나중 어린애를 죽이는 데가 있는데 「불」도 그렇게 체호프의 냄새가 나면서도 체호프는 아니에요. 모파상에는 비길 수 없으나 어떤 독특한 기분이 있습니다. 그러구 「B사감과 러브 레터」도 처음부터 자자구구가 호기심을 일으켜서 맨 나종에 무슨 말이 나오나 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끄는 것이 돗비나 도꼬로라고 할지? 그런데 얼른 말하면 그것이 활동사진을 보는 것 같애요 그러한 재미가 있습니다.
 
127
종화 : 빙허 군의 작은 언제든지 기교나 묘사로는 우리 문단에서는 제일 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B사감과 러브 레터」) 첫머리 B여사의 용모를 그린 것이 그럴 듯이 사람을 살살 간질러 가지고 넘어가는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독자는 속아 넘어갑니다. 나도 깜빡 속았어요. B사감이 방안에서 혼자 지껄인 데서 속았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성 (男聲)을 낸다면 좀 다를 텐테 그렇지 않은 데서 나는 속았소.
 
128
인근 : 그거야 여자도 남성을 낼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문체든지 모든 것이 꽁꽁 뭉쳐져서 빙허의 몸뚱이같이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129
학송 : 나는 쓰노라고 눈코를 못 뜨겠으나 참견하고 싶어서 어디 견디겠습니까? 어찌했든 그것이 「B사감과 러브 레터」여간한 희늬꾸가 아니어요.
 
130
기진 : 전편을 통해서 요만큼 얌전한 것이 드물어요.
 
131
건식 : 흥미는 있는데 끝에 러브 레터가 너저분히 널린 광경이 과장 같기도 해서.
 
132
기진 : 작자는 학생에게 엄하게 하는 사감의 속을 붙잡히게 한 것이겠지요.
 
133
상섭 : 40이상된 여자의 변태심리는 잘 모르니 거기까지는 알 수 없고 또 그것은 여자의 체질 여하의 문제겠으나 마치 고르키 작에서 본 것 같은 즉 밀매음녀가 곁의 방에 있는 대학생에게 편지 부탁을 하는 것 같애. 어찌 보면 좀 부자연스럽고 과장 같기도 합니다. (우렁찬 소리가 몹시 빠르다.)
 
134
기진 : 그런데 빙허 군의 작은 상섭 군과 같은 경향이 있어.
 
135
나빈 : 그래서는 상섭이가 빙허를 배우는 게지. 하하.
 
136
상섭 : 『개벽』 정월호에 실린 「불」이 낫지?
 
137
기진 : 아마 낫지요.
 
138
나빈 : (책장을 번지면서) 그건 그만하고 넘지!
 
139
인근 : 이번에는 박월탄 군의 「시인」(『조선문단』 2월호).
 
140
나빈 : 나는 발설이나 할 테야. 「시인」보고 생각나는 것은 허무사상입니다. 그리고 외람한 말이나 월탄의 작은 묘사에 감심(感心)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명식이 되어서 좀 재미가 적어요.
 
141
인근 : 가정생활이 글 쓰는 사람에게 방해 놓는 그 언저리는 선명합니다. 그러나 전체로 보아 씨의 다른 작품보담은 떨어질는지 모르지요.
 
142
나빈 : 「시인」으로서는 꼭 느낄 만한 것이야. 그런데 표현이 좀 엷어요.
 
143
상섭 : 이 작(「시인」)에 중요한 것은 끝인데, 그 귀착점이 자기 생활의 모순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후추나 고춧가루 같이 따끔한 맛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부족해요.
 
144
나빈 : 그래, 좀 꼭 찌르는 맛이 적어!
 
145
진건 : 허허, 이거 고춧가루가 없어서 야단 났군!
 
146
일동 : 하하하.
 
147
인근 : 그것은(「시인」) 제가 원고 재촉을 부리나케 하는 바람에 급히 쓰시느라고 원만치 못하게 된 것이겠지요.
 
148
나빈 : 언제나 말하는 바지만 월탄 군은 한문투를 너무 써!
 
149
상섭 : 그런데 이것은 딴 말이지만(두툼한 안경을 번득거리면서) 작품에 경어(京語)를 씁니까? 어떤 작품에는 지방어가 많아서 이해키가 어려워요
 
150
인근 : 대화에는 지방어를 써도 관계치 않겠지마는 설명에는 경어를 써야겠지요.
 
151
상섭 : 글쎄 반드시 표준어를 써야겠지요.
 
152
인근 : 흥(상글상글).
 
153
상섭 : 내가 그것을 묻는 것은 어떻게 먼저 언어의 통일부터 힘쓰는 것이 좋을 듯해요.
 
154
나빈 : 잡담 제하고 어서 평이나 끝내지? 「시인」도 마저 할래요? 누구든지.
 
155
진건 : 눈 오는 밤에 눈이 덮이게 되면 시인 아니라 누구든지 은은한 감상을 품을 것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것은 평범할수록 묘사가 곤란해요. 부부 싸움 같은 것도 그래요.
 
156
나빈 : 부부 싸움은 상섭(「전화」)이가 잘 그렸어! 하하.
 
157
상섭 : 흐흐흐 나는 B사감이 되나! (아직 총각이니까)
 
158
나빈 : 한 40 되면 하하하.
 
159
진건 : 또 다른 것을 보지?
 
160
상섭 : 이(『조선문단』)을 뒤지면서) 최서해가 누군가?
 
161
학송 : 그것은 저올시다.
 
162
상섭 : 그래서는 실례가 막심이로군! 그런데 두 가지 이름을 쓰십니다.
 
163
인근 : 그러면 「살인」은 계속 중이니 다음 합평에 밀고 학송 군의 「십삼원」(『조선문단』, 2월호)을 평합시다.
 
164
상섭 : 썩 좋게 보았습니다. 뒤에 나오는 꿈 이야기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이 좋아요, 이것은(「십삼원」) 아주 평범한 사건인데 K에게 가서 주저거린 데라거나 끝을 꿈으로 마친 데가 아주 그럴 듯해요.
 
165
종화 : 묘사라거나 꿈 이야기는 상섭 군의 말같이 색채가 좋습니다.
 
166
진건 : 조선 속어에 꿈에 불을 보면 재수가 좋다니 그렇게도 좋아 하하하. 그런데 꿈밖에는 별로 감심(感心)이 나지 않아요. K가 그렇게 관후(寬厚)한 사람이 되지 말고 좀 인색하고 무인정한 사람이었더면 자식에게 돈 보내라는 편지라고 없던 어머니를 위하여 허리를 굽히는데 자식 된 성의가 농후하였을 것인데 그것이 없는 것이 섭섭해요.
 
167
상섭 : 임영빈 군의 「난륜」도 좋아요. 그 행문(行文)이 아주 유창하던데요.
 
168
종화 : 그런데 한문을 너무 쓴 것이 덜 좋아요.
 
169
나빈 : 제2회(「난륜」)를 보았는데, 3회는 어떨는지? 1회에 끊었더면 더 좋았을 것 같애요.
 
170
종화 : 그래, 2월호에 난 것은 군것같이 생각나요.
 
171
기진 : 나는 「난륜」이 제1회(『조선문단』 1월호)에 끝난 줄 알고 『개벽』에 평을 썼지요.
 
172
인근 : 그것은 편집하는 제가 잘못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끝이 기니 나종을 보아야 진가를 알겠지요.
 
173
나빈 : 차라리 제1회 단편으로 떨어졌더면 더 힘이 있을 것 같습니다.
 
174
인근 : 당선 소설 「부친」(『조선문단』 2월호, 정인철 작)은 어때요?
 
175
진건 : 모를 말이 퍽 많어!
 
176
인근 : 황해도 사투리도 많고……
 
177
상섭 : 두어 페이지 보았는데 부친의 성격은 나타난 듯싶어.
 
178
진건 : 글쎄, 그런데 행문이 서투르고 통일이 없어서 퍽 모호합니다.
 
179
기진 : 작자는 무슨 암시를 보이려고 하나 나타나지 못하고 말았어요.
 
180
인근 : 진종혁 군의 희곡 「구가정의 끝날」(『조선문단』 2월호)은 어때요?
 
181
일동 : 글쎄, 우리가 희곡을 알아야지.
 
182
건식 : 나는 보기는 보았는데 감심할 수 없어요. 그러구 한자의 오서가 퍽 많아요. 차라리 순국문으로 썼더라면 읽기나 편할 것을……. 하하하.
 
183
학송 : 이제는 끝났지요?
 
184
나빈 : 최 군이 퍽 쓰기 바쁜 게로군! 하하하.
 
185
인근 : 그런데 이 합평을 일후(日後)도 하는 것이 좋을까요?(방안을 돌아보면서)
 
186
기진 : 조선에서는 첫 일이니까 『조선문단』의 특색으로 그냥 두는 것이 좋지요.
 
187
상섭 : 퍽 좋게 생각합니다.
 
188
인근 : 그런데 일후에는 창작만 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 문단에 대한 의견 같은 것도 합시다.
 
189
김억 : 그것두 좋아요.
 
190
인근 : 그런데 박영희, 늘봄 두 분이 종내 오지 않는걸! 어찌하면 못 올 듯하다고도 했지만(상글상글하던 낯에 정숙한 빛이 돈다.)
 
191
일동 : 글쎄, 어찌된 셈이야?
 
192
나빈 : 영희 군은 갑자기 볼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기는 했으나. 서창에 비치는 석조(夕照)는 어느 새 사라지고 방안에는 황혼 빛이 기어든다.
 
 
193
(『조선문단』, 1925. 3.)
【원문】조선문단 합평회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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