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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온사상(四溫肆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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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2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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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온사상(四溫肆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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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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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들 안 그러랴만 오는 시절에의 원망(願望)이 이렇듯 간절한 때는 없었다. 그것은 굳이 겨울보다 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겨울은 겨울로서 즐기는 법도 있으련만 ─ 너무도 초라한 오늘에 싫증이 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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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이날이 얼른 가고 새봄이 왔으면 하고 원하면서 나날의 괘력(掛曆)을 한 장 한 장 뜯어 버리기란 휴지통에 들어가는 그 한 장의 일력(日歷)에 보람없는 하루를 영영 묻어 버리는 것 같아서 유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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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장미포기의 푸른 줄기를 꺾어 보면 제법 진이 나고 벚나무가지의 봉오리를 따 보면 봉곳한 속에 푸른 생기가 넘쳐 있어 그것이 가까워 오는 시절을 분명히 약속하여 주는 것이니 제 아무런 변이 있다 하더라도 이 약속만은 절대의 것이며 새 시절을 당하였을 때에는 지난 시절이란 제아무리 괴롭고 귀찮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결국 지나가 버린, 거듭 올 리 만무한 과거의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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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온일(四溫日)이면 모란대 부근 긴 등에 올라 대동강을 굽어본다. 거기에도 시절의 약속은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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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쪽 잔등에는 욱신한 전나무의 그림자가 짙고 아까운 낙엽의 보료가 발 아래 푹신하다. 강물은 차고 푸르며 기슭에는 물오리 떼가 헤엄치고 건너편 모랫가에는 흰 물새가 긴 다리를 쉬고 있다. 그 느릿하고 한가로운 자태는 아무리 보아도 봄의 것이지 겨울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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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지름길에는 거니는 사람의 그림자가 드뭇하며 길 옆 누른 잔디 위에는 늙은 사주쟁이가 당사주책을 펴놓고 앉았다. 그의 앞에 움츠리고 서서 겸연하고 거북스런 얼굴로 두려운 운명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를 나는 확실히 그 어디서 본 일이 있은 성싶어 곰곰이 생각한 결과 지난 가을에 세금을 받으러 와서 서리같이 독촉이 심하던 바로 부(府)의 수세리(收稅吏) 그 사람임을 깨닫고 그 기묘한 상봉에 뼈저린 유머를 느끼게 된 것도 웬일인지 겨울 아닌 봄 정경의 한 토막인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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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정경도 시절을 고하기에는 아직도 이른 짓궂은 착각임을 알았다. 다음 삼한에 들어가자 봄은 아직도 멀다는 듯이 별안간 추위가 단속되고 눈이 퍼붓기 시작하더니 잔디밭은 눈 속에 묻히고 강물은 꽁꽁 얼어 버렸다. 물새 내리던 강 위에서는 스케이트대회가 열려 원을 그리고 둘레를 친 사람의 떼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불개미 떼 같은 천한 미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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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을 전후하고 일어난 이 큰 변화가 너무도 삽시간의 일이어서 마치 꿈 같이 여겨진다. 물새도 사주쟁이도 수세리도 승천이나 한 듯이 모래와 잔디의 뒷자취가 괴괴하다. 굵은 눈송이가 함박같이 퍼붓는 날은 나뭇가지는 운치를 더하고 거리는 보얗게 저물어 봄 약속은 새로 다시 겨울의 복판으로 시절은 뒷걸음질쳐 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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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절의 착각은 여기서 머물지는 않는다. 눈 오는 날 백화점의 식당에 들어갔을 때 나는 거기서 봄을 느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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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홀 안의 모든 장치가 바로 봄의 것이었다. 정결한 식탁이며 상록수의 분이며 깨끗한 소녀들이며 ─ 더구나 식탁 위의 수선화와 시크라멘과 선인장 꽃의 화분은 그것이 비록 온실산이라고는 하더라도 봄의 감정으로 주위를 장식하고 동화시키고야 만다. 화판과 화분의 향기와 아울러 흰 접시의 야채 ─ 상추,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 몸을 맑게 씻어 내고 세포의 구석구석을 푸르게 물들일 듯도 한 신선한 성찬(聖餐)의 한 묶음 ─ 새 시절의 선물이 아니면 안된다. 식탁에 마주앉아 있는 동안만은 적어도 사람은 겨울을 잊어버리고 다른 시절 속에서 산다. 두터운 외투들을 입고 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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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와 눈송이를 볼 때에 문득 겨울이었던가 하고 다시 놀라게 된다. 세 번째의 착각이다. 화분과 야채의 감각에서 눈을 뜨고 별수없이 찬 객관 속으로 일사천리의 뒷걸음질을 쳐야 된다. 외투섶을 세우고 눈을 맞으며 거리를 걸으면서 먼 꿈을 생각하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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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고 비가 뿌리더니 눈이 녹고 얼음도 풀리기 시작한다. 장미줄기가 푸르고 나뭇가지의 눈이 물을 머금고 부풀어간다. 푸근히 녹이는 날, 과수원 옆 개천에서는 빨래소리가 느릿하고 한가하다. 여러 번의 착각으로 마음을 낚던 시절의 걸음도 이제는 바로잡힌 듯싶다. 오는 시절에의 원망이 더한층 날카로워진다. 시절의 착각이란 사람을 희롱하는 품이 마치 사람의 꾀 같이도 겹겹이요, 고비고비며 ─ 단순한 외통길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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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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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한 좌석에 모여 앉았을 때에 원탁을 둘러싸고 두 편으로 갈라져 노는 패노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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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는 무엇이든지 좋을 것이나, 가령 동전 한 잎이 한패의 누구나의 한 사람의 한편 손에 들었다고 하면 맞은편 패는 그것이 어느 손에 있다는 것을 민첩하게 알아내야 한다. 알아낸 때에는 동전이 그 편으로 옮겨져 가고 못 알아낸 때에는 헛 손을 짚은 만큼의 수효의 득점을 상대편이 얻게 된다. 맞은편 패가 “징킨스 업”을 부를 때에 이편 패 사람들은 두 손을 모두 쳐들고 동전을 가진 손이 어느 것임을 분명이 보인다. “징킨스 다운” 의 군호로 손들을 일제히 내려 원탁 아래에 모으고 비밀한 암중구수(暗中鳩首)로 동전을 한 사람의 한편 손에 은탁(隱托)한 후 알맞은 때 맞은편이 “징킨스 온 유어 테이블”을 분부하면 은밀한 약속을 마친 손들을 동시에 일제히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어느 손에 동전이 들었나의 적발을 맞은편 패에게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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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른 적발의 방법은, 즉 승패의 비결은 온전히 상대의 민첩한 형안(炯眼)에 있음은 물론이다. 형안이 화살을 막아 내고, 혹은 무지러트리기 위하여 귀표(鬼票)의 소유자는 갖은 꾀와 방패를 다 준비하여야 할 것이니,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장시간 겹겹의 심리의 약동과 가지가지의 지혜의 비약이 번개같이 거래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낚아보는 시절의 착각의 경우와 같이 여기에도 또한 두 고비 세 고비의 변법(變法)이 있을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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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은 적발자의 시선을 받는 귀표 소유자의 태도와 손과 얼굴의 표정에 있는 것이니 심리의 약동이 스스로 그 표정에 나타날 것이니까 말이다. 그에게는 과연 몇 고비의 심리의 전동(轉働)이 있을 것인가. 1단 2단 3단까지의 심리 도약을 생각하여 보자. 귀찮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말미암아 가진 체하는 초보적 1단법, 한 꾀를 내서 가지지 않은 체하고 천연스런 표정을 지니는 기만적 2단법, 한 수의 꾀를 더하여 세 고비를 뛰어 차라리 가지고 있으므로 터놓고 가진 체해 보는 환원적 3단법의 3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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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법과 1단법은 결과의 현현(顯現)은 동일하나 그 심리적 용약에 있어서 단순하고 직선적인 1단법보다는 3단법이 두 층이나 윗수임은 물론이며, 다시 2단법과 비길 때에도 한마디 더 구분한 단위의 꾀임이 확실하다. 꾀가 깊으므로 도리어 꾀를 보이지 않은 결과가 되었다. 무지(無智)의 지(智)며 무기교의 기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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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단 5단 6단……으로 거듭하여 올라갈 때 꾀는 끓고 지혜는 한없이 늘어간다. 나중에는 그야말로 별을 딸 수 있을는지도 모르나 그때에는 도리어 지혜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자멸하기 첩경 쉬울 것이다. 꾀는 곧 기만을 의미하는 것이니 원탁유희는 우리에게 기만의 교훈을 던져 주는 것이다.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서 거짓을 꾸미고 허세를 보이는 그 자태들은 그대로가 바로 현실 생활에 처하여 가는 자태 그것이 아닐까. 가장 천연스런 거짓을 꾸밈이 ─ 3단법을 능란하게 씀이 유희와 생활에서 이기는 비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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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법과 관련되는 것에 포오의 단편소설이 있다. 이야기의 기억조차 어슴푸레하나 ─ 수색당하고 있는 귀중한 문서를 감추기에 괴벽한 벽 속이라든지 포도(鋪道)의 돌 밑을 이용하지 않고 주인공은 일부러 허수한 곳을 역용하여 눈에 가장 잘 띠일 가능성이 많은 책상 위 철망 속에 되구말구 던져둔 결과 도리어 수색자의 눈을 효과있게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색자는 항용 궁벽한 은밀한 곳에 눈을 보내기 쉽고 드러난 곳은 주의하지 않고 그대로 스쳐 버리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두 고패의 꾀를 써서 감쪽같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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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3단법의 완전한 성공의 일례를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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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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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혜가 오늘같이 민첩한 날은 없었고, 일상생활이란 지혜의 싸움이라고 하여 과언이 아닐 듯싶다. 지혜는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나 동시에 불서럽고 슬픈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과연 몇 줌의 지혜가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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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지의 과잉은 행복을 가져온 한편에 확실히 불행을 낳게 되었다. 비극이 예지의 결핍에서 온 것은 과거의 일이요, 현대에 있어서는 참으로 예지의 과잉에 불행과 비극은 기인되었다고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예지의 과잉은 시심(詩心)의 상실을 유래하고 시심이 상실된 곳에 공리(功利)와 간파와 산문의 비애가 생기는 것이니 자해를 낳는 것은 참으로 과지(過智)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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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 유희에 있어서 비애는 비단 귀표 보지자(保持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발자의 편에도 있다. 보지자가 2단 3단의 변법을 쓴다 하더라도 적발자가 그 변법의 심적 과정을 간파하고 진실을 맞춰 떨어트릴 때 비애는 도리어 더 많이 적발자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다. 위장한 진실을 간파하고 음막 속의 비밀을 알았을 때에 오는 것은 만족보다도 비애인 까닭이다. 그 가리워진 비밀이 크면 클수록 비애도 커진다. 모르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알아낸 곳에 환멸을 느낌은 하기는 사람의 천성인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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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관상(觀賞)할 때에 일껏 스크린 위에 흐르는 면면한 인생의 이야기에 마음을 뺏기다가도 문득 그 어떤 서슬에 제작자의 입장에 몸을 두고 나타난 영화면의 각종 기술의 관점에 주의의 방향이 향하여질 때 그만 이야기의 흥미는 삭감되어 버리고 무미건조한 관조(觀照)의 태도로 돌아가 한결같이 삭막한 환멸의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항상 경험하여 오는 바이다. 그것은 물론 순진한 관상자의 태도를 버리고 어쭙지않게 제작자의 자리에 서서 그의 가리워진 막 속을 들여다보고 그의 창조의 꾀와 기교를 엿본 데서 오는 환멸이다. 소여(所與)의 인생을 담담한 심사로 맛보지 않고 쓸데없이 관조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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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간의 빈방이 있다. 가운데 책상에 의지하여 한 여자가 어깨를 떨며 울고 있다. 남편에게 배신을 받고 마지막 결심을 하는 인생의 위기에 선 여자의 운명은 애달프고 비참한 것이언만 한번 생각이 그 장면의 촬영의 내막으로 향하여질 때 이야기에서 흘러오는 비참한 동감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 여자는 자신 실상에 있어서 그런 운명에 놓여 있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개의 여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 방은 결코 현실의 방이 아닌 촬영소 안의 대소 도구를 모아다가 꾸며 놓은 세트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방바닥도 벽도 창도 책상도 모두가 잠시간 한자리에 모아다가 짤막하게 붙여 놓은 가짜의 것이요, 여자는 뭇시선을 피하여 그 외딴 으슥한 곳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인즉 그의 앞에는 참으로 많은 눈과 방관자가 있는 것이니 감독을 비롯하여 조감독, 촬영기사, 그 외 수많은 한패가 둘러서서 그를 감독하고 격려하고 엿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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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레프를 든 소원(所員)을 질타하여 여자의 일신으로 모이는 광선을 조절시켜서 명암의 효과를 내게 하고 여자의 표정과 자세를 고쳐 주고 한 손에 든 대본의 지시대로 독백의 대사를 정서를 자아내도록 정정하여 준다. 여자의 눈에 고인 물은 감정에서 솟아나온 눈물도 아무것도 아니오, 점안(點眼)의 약물이나 혹은 수적(水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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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 모든 생명 없는 무기적 도구와 요소를 모아 나열하고 꾸며서 한 토막의 감정 있는 장면을 만들고 이런 여러 토막의 장면을 따로따로 촬영한 것을 순서를 따라서 끊고 잇고 편집하여 드디어 한 편의 생명있는 유기적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니 이 모든 비밀과 꾀를 관상의 도중에서 문득 생각해 낼 때에 이야기에서 오는 감정은 참혹하게도 중단되어 버리고 삭막한 진실로 돌아와 눈은 이번에는 기술의 비판으로 향하여 직책 이상의 것에 관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벌써 그 이상 관상하고 싶은 흥미를 잃어버리고 관상한다 하더라도 다시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가 갖은 기교와 트릭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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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비밀과 꾀를 한 손에 잡아 쥔 냉정한 관조자의 태도를 가지게 될 때 이야기의 흥미는 ─ 인생의 풍미는 그만 삭감되어 버리고 만다. 어수룩하게 속아 넘어가는 곳에 풍미의 참된 향락이 있는 것이요, 꾀와 지가 과도로 발동할 때에는 드디어 인생은 깔깔한 모래의 맛으로 변할 뿐이다. 예지의 비애는 이곳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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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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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비극은 참으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지의 과잉, 심리의 과민 ─ 그의 소위 제2시각 ─ 이것이 그의 비참한 생애를 낳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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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치고 모파상같이 모든 인간의 꾀를, 인생의 흑막 속을 명민하게 들여다본 사람은 적었다. 작가 특유의 제2시각으로 그는 사람의 마음속을 역력히 꿰뚫어보고 날카로운 이도(利刀)로 어둡고 흉측한 그 속 세상을 여지없이 난도질하여 추잡하고 악취 나는 내장을 조각조각 조상(俎上)에 끌어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거의 그의 운명적인 천성이며 재조(才操)였다. 이웃 사람들의 말과 마음을 일일이 보고 짐작하고 설명하고 해석하고 그들의 감정이나 행동을 억제하는 비밀의 근원을 샅샅이 탐구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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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친구나 친척의 그것까지라도 참혹하리만치 공평한 태도로 발겨내지 않고는 안 두었으며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까지라도 잔인하게 해부하고 그의 언어와 행동을 자기의 마음속 저울에 달아보고, 가령 그가 돌연히 자기의 목을 얼싸안을 때에는 그 거동의 속뜻과 계획이 무엇이며, 그것이 행여나 가짜의 연극이나 아닌가 어떤가 까지를 관찰하고 판단하려고 한 것이 그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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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모파상은 자신 인생의 무대의 등장인물인 동시에 인생 연구의 한 사람의 방관자였다. 이 이중성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 행동, 비밀은 그에게는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던가. 그는 보통사람들같이 다만 단순하게 감동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일하고 유쾌하게 살아갈 수는 없었다. 무서운 환멸과 번민과 고통이 그의 생활을 침범하고 위협하였다. 생활이 평범인에게 만족을 주는 때 그에게는 피곤과 절망을 줄 뿐이었다. 생존의 이중성과 제2시각이 드디어 그를 발광과 죽음으로 인도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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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아미’ 인 악한 ‘듀로아’ 는 천품(天稟)의 미모와 대담한 수완과 몰염치의 비인간성을 무기삼아 사업에 성공하고 만나는 대로의 여인을 농락하여 순조롭고 교묘하게 뜻대로 세상을 헤엄친 끝에 나중에는 주인의 아내인 자기의 정부의 질녀, 순결한 처녀 ‘수우잔’을 손에 넣어 드디어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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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一代)의 악한이 주위를 속이고 세상을 희롱하여 갖은 세속적 성공을 거둔 끝에 몸에는 명예의 훈장을 장식하고 순결한 처녀를 속여 그와 결혼하게 되매 석상의 인사들은 그것을 승인하고 승정(僧正)은 그를 축복하여 일세가 그를 앙시하게 되는 ─ 그 기막히고 뼈저린 장면을 그리고 인생의 무서운 진실의 한 토막을 피력할 때 작자 모파상의 마음속에는 한줌의 눈물이 징긋이 고여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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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냉정한 침착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슴속으로는 가만히 느껴 울지 않았을까. 꾀 많은 인생의 진실이 악착한 기만과 허위가 민첩하고 예리하며 엄격한 양심과 생활태도를 가진 그로 하여금 절망과 과피(過疲)에 빠지게 한 결과 마침내는 인생 증오와 허무사상의 길로까지 내닫게 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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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모파상이 아니요, 혹은 그에게 비길 바 못 된다 하더라도 작가인 이상, 혹은 명민한 현대인인 이상 다소의 여상(如上)의 과지는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복잡한 일상생활의 착잡한 주위환경에 처하고 있는 한 우리는 거의 순시로 심리의 과중에 헐떡거리지 않을 수 없다. 투심경(透心鏡)으로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준동하는 악의 과립을 똑바로 뜯어낼 때 거기에는 자살적 우울과 고뇌 이외의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42
현대인은 이 첩첩한 심리의 과중을 기뻐하여야 옳을 것인가, 슬퍼하여야 옳을 것인가. 새삼스럽게 어리석어지고 둔감한 벌레로 전화(轉化)할 수 없는 이상 그것은 현대 지인(智人)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다. 지과(智果)의 비애를 몰아다가 흐르는 사온일의 조화에 맡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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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37. 2. 17~20
【원문】사온사상(四溫肆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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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사온사상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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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