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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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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暮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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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의 삼베보를 벗기자 머루와 다래가 나왔다.
 
3
내게 사달라는 것이다. 머루와 다래의 덜 익은 맛을 나는 좋아 않는다. 나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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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처구니없이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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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의 바구니엔 복숭아가 가득 들어 있었다. 복숭아는 복숭아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써 무릇 복숭아는 아니다. 새파랗고 조그만 하여간 다른 과실이었다. 그러나 이건 복숭아인 것이다.
 
 
6
나는 그것들을 조금씩 먹어 보곤 감짝 놀랐다. 대체로 내 혓바닥은 약하다. 내 혀는 금세 맹목이 될 성싶다.
 
7
촌사람들 특히 아해들은 아귀처럼 입을 물들이며 먹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혀가 초인간적으로 건강한 데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촌사람만도 아니다. 파는 사람 자신부터가 열심히 먹으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게 먹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식욕을 일으킬 수 있다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 늘어진 팔자라 하겠다.
 
8
한 사람은 꼬부랑 노파로서 불행한 운명 때문에 50 평생을 이미 꼬깃꼬깃 구겨 버리고 말았다. 보기만 해도 가엾은 상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어처구니없이 젊다, 그것은 어머니다.
 
9
젖먹이 어린놈은 더럽혀진 장난감처럼 삐이삐이 하고 때로 심술궂게 악을 쓴다. 그런데 어머니는 거의 무신경이다. 그뿐인가, 때 묻은 유방을 축 늘어뜨리고서 맛나게 머루만 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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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노파는 한푼이라도 더 돈으로 바꾸고 싶은 노파심에서였을 것이다. 먹지도 않고 그 곁에서 수연만장(垂涎萬丈) 하는 나에게 하나쯤 먹어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먹음직하거든 제발 좀 사달라고 얼굴은 울음 반 웃음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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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의 노파심 때문에 하여간 나는 사지 않을 테니 필요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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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번엔 어린것에게 젖을 먹이느라고 잠시 먹던 걸 중지한 그 젊은 어머니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녀는 노파의 며느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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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다시 복숭아와 머루를 그 시원스런 즙을 입속 가득히 스며들도록 넣으면서 음향 효과도 신명지게 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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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는 스물일고여덟밖에 안 되는 새댁이 어떻게 어린 놈을 낳았을까 하고 그것이 가장 불가사의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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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은 건장한 농사꾼일 것이다. 약간 나이가 위인…… 아니면 나이가 아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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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비밀 ― 노파의 저 쭈굴쭈굴한 얼굴에 나타난 단념과 만족의 표정. 아들의 행복은 바로 노파의 행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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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새댁도 어느덧 저 세피아 색으로 반짝반짝거리는 노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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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저 가슴팍에 매달려 있는 젖먹이 때문에 자기의 50 평생을 희생한 것도 잊고서 단념과 만족의 전생(全生)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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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 며느리를 맞이할 때도 산엔 다래와 머루가 익을 것이다. 그땐 그것이 벌써 전매특허가 되어 버렸을지 모른다. 어느덧 모색(暮色)은 마을에 내려와서 저 빈약한 장사치들도 다 돌아가 버렸다.
 
20
그러나 저 노파의 자태는 다만 홀로 ‘조세장려표항(租稅獎勵標杭)’ 곁에서 애닳게도 고요히 호젓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노파의 노파심에서일 것이다. 젊은 어머니의 자태는 이미 그 곁에 없었다.
【원문】모색(暮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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