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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스’는 어델 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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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월
김상용
生活(생활)의 片想[편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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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스’는 어델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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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서 자라나든 동리에 李[이]첨지라는 영감 하나이 살았었읍니다. 그도 6,7년 전에 고인이 되었으니 지금쯤은 살긴 커냥 뼈도 남았을 지가 의문이지요. 이 영감이 입이 빠르고 경솔하야‘까부리영감’이라는 별명까지 드렀든 것입니다. 그처럼 ‘체신이’가 없든 늙은이지만은 그래도 一趣[일취]는 확실이 있어 ‘낙시질’이 천하에 일등이요‘사냥’하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하얏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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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이 되야 낙시질을 못하게 되면 사냥을 나갑니다. 사냥이라해도 제법 총을 쏘아 잡는 현대적 법ㅅ자 사냥은 못됩니다. 집에 기르는 두 세 마리 사냥ㅅ개를 다리고 액구진 너구리,살광이 같은 적은 즘생을 잡는 말하자면 아조 구식의 사냥이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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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李[이]첨지는 가을이 오고 또 밤이 들면 몃몃의 젊은애와 개를 다리고 좀 으슥한 ‘곡식낙가리’가 쌓인 골작이로 일없는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싸다니는 것입니다. 대개 그런 때면 너구리, 오소리 같은 즘생이 곡식 싸인 곳으로 나려온다 합니다. 필시 ‘도토리알로’양이 못찬 궁한 놈이 나저진 ‘수수ㅅ니삭’‘콩알’나부랑이를 주서먹으러 오는 것이겠지오. 한데 이런 놈이 불행이 李[이]첨지네집 사냥ㅅ개 눈에 띄면 그놈은 부득불 낫든 보람 없이 非命橫死[비명횡사]를 하야 이첨지의 진망태 속에 드러나게 되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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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계로 李[이]첨지는 언제나 사냥ㅅ개를 길렀었고 길르되 무서운 놈을 택하야 세네 마리식 길렀든 것입니다. 그래 李[이]첨지네 사냥ㅅ개 하면 그 근처에서도 일홈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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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李[이]첨지네 개떼는 너머나 안하무인 - 아니 無犬[무견]이었고 李[이]첨지의 개 세력이 너머 서슬이 푸르럿든 것입니다. 그꼴이 어린 생각에도 좀 괘씸하고 보기가 실혀 엇지하면 우리집에도 무서운 개를 노아볼ㅅ고 李[이]첨지네 개같이 강한 아니 그 놈들을 무러박지를 만한 더 무서운 개를 노아볼ㅅ고 하고 혼자 이루기 어려운 꿈을 꾸어도 보았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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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원인이 되야서 그랫던지 하여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이 개를 좋아하얏든 것입니다. 엇던 때에는 기르고 싶은 생각이 오매가 되야 개를 다리고 뛰어다니는 꿈을 꾼 적까지 있었지오. 그러나 부모님은 나와 달라 이 즘생기르기를 별로 달갑게 녁이지 안았든 것입니다. 그래 그다지 기르고 싶든 그 시절에는 강아지 하나 내 집웅밑에 먹여보지를 못하얏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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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좋아한다 하니 더퍼놓고 개면 다 좋아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입니다 ‘삽사리’는 크고 짓는 소리가 우렁차되 놈의 外套[외투]가 추합니다. ‘발발이’는 당돌하야 그 氣[기]만은 사랑할 만하나 풍채가 옹종하고 게다가 짓는 소리가 악착스럽다리 만치 깜직합니다. 染病[염병]에 가마귀소리는 그래도 厚重한 맛이나 있지 밤중쯤 남의 단잠을 깨는 발발이의 악쓰는 소리를 드려 보십시오. 천하에 못드를 것은 그 소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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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새 멋없는 개장수들이 자랑거리냥 길거리를 끌고 다니는 ‘뽈떡’이란 洋種[양종]은 그 ‘파닥지’가 구역이 납니다. 천생 ‘망난이’같은 그 꼴! 오즉하야 개 팔자로 태여났을 것이 아니지만은 개 중에도 그꼴을 타고난 그놈의 팔자가 ‘도야지뜨물’보다 더 구저뵙니다. 日本種[일본종]은 대개 귀가 느러저 멋이 없고 털만은 반질함함하나 이 亦[역] 근자의 ‘모뽀’‘모가’의 꼴같애 보기에 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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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좋아하는 개란 털이 짧도 길도 않고 빛이 누름스름하고 키가 설멍하고 귀가 벌룩하고 꼬리가 꿋굿하게 뒤를 삐치고 입이 넓적 기름하야 하품을 하면 주홍같은 아가리가 두 뼘은 되고 한번 지즈면 산악이 울릴 만치 그 소리가 웅장한 장부다운 놈입니다. 잘 때 보면 그 안존한 맛이 고양이갓되 깨서 뛰면 그 위풍이 범같은 ‘숫개’입니다. 이런 놈을 하나 다리고 다리에 진이 나도록 산을 싸다녓스면 얼마나 쾌할ㅅ가? 이것이 말을 타고 너른 들을 마음껏 달려보고 싶든 것과 함께 내 어렸을 시절의 두가지 소원이 되었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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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좋아하지를 아니하야 길러보지를 못하고 맘대로 기를 만한 처지가 되니 이곳 저곳을 떠다니게 되야 결국 강아지 하나 노아볼 기회가 없었든 것이지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5년전에 처음으로 서울살림을 시작하게 되야 年來[연래]의 소원푸리로 강아지 하나를 길러 볼 때를 얻었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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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을 시작한 지 근 1년은 되었을 때 엇던 친구집에 강아지 다섯이 낫다는 소문이 들렸읍니다. 이 소식이 들리자 곳 쫓차가보지를 안했겠습닛가.가 보니 귀가 느러젓고 어미꼴이 푼푼치 못한 것으로 보아 좀 당길심이 적어젔든 것입니다. 그럿타고 입에 맛는 떡이 어데 있읍닛가. 그래 부탁을 해두엇다가 젓뗄 때가 되자 수놈 하나를 얻어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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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원래 씨가 변변치 못한지라 자라갈사록 외모가 옹종하고 몸 가지는 것이 경망합니다. 하도 까불대는 것이 미워 어떤 때 “이놈”하고 소리도 지른 일이 있읍니다. 하면 발서 겁이 나서 마루밑이나 부엌구석에 숨어 바립니다. 그러나 단 5분이 못하야 또 기어나와 달랑달랑 사람에게 덤벼듭니다. 아즉 저놈도 철이 못나 저런가 보다 차차 낫살이 먹으면 설마 나질 때도 있겟지 하고 그럭저럭 3년을 지나지 안았겠서요. 웬걸 3년이 지나도 까불대는 것이 그저 그 모양 추호도 나지를 못합니다. 사람이고 즘생이고 간에 타고난 천성은 나이먹어도 엇절 수 없는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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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집 ‘빡스’(그놈의 일홈입니다.)는 네 살이 먹도록 종급 제경솔을 면치 못하얏든 것입니다. 좀 묵중해 젓스면 좋겟다 하는 희망이 결국 수포가 된 줄을 각오하얏을 때 일종의 비감조차 없지 안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까부리 빡스’에게도 一長[일장]은 있어 짓는 소리가 대단이 좋았었습니다. 사람으로 태낫던들 제법 ‘조선 카루소- ’행세는 했을만치 성량이 크고 고앗든 것입니다. 혹 외상으로 사신은 구두 한 켜레를 탐해 드러왔다가 빡스의 ‘테너-’음성에 놀나 다라난 樑上君子[양상군자]가 있었을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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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十短[십단]에 一長[일장]밖에 없든 빡스였지만은 내게는 역시 정답든 내 빡스였습니다. 혹 저녁에 늦게 도라가면 집안사람들은 다 잠이 드럿스되 유독 빡스만은 굳이 깨어 있어 마조나옵니다. 그럴 때에는 진정으로 그 충성이 귀이 생각이 됩니다. 그래 머리를 두드려 줍니다. 하면 너머 황송해서 엇절지를 모르고 그저 업드려 꼬리를 칠 뿐이든 것입니다. 이러하야 빡스는 때때로 구박도 바덧스되 과이 큰 탈 없이 내집에서 내집에서 잔뼈가 굵어 금년 여름까지 4년너머를 사라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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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금년 여름방학에 20여일간 어대를 갓다 오니 빡스가 나가 10여일을 아니 드러왔다 합니다. 그 전에도 그래도 수놈이라 난봉이 나면 2,3일 집을 떠나본 적도 없지는 안앗스되 10여일을 나가 아니 드러오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필시 鑑札[감찰] 떠러진 것을 그대로 두엇더니 어느 심술구진 ‘올개미장수’놈이 올가바렸나 보다 하고 집안사람들이 말을 하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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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드러오겟지 하고 나는 정다운 친구를 기다리듯 빡스의 오기를 기다리었습니다. 열흘을 기다려도 빡스는 오지를 안엇습니다. 한달을 기다려도 빡스의 소식은 막연합니다. 가을이 와도 빡스는 아니 오고 겨울이 되어도 빡스의 종적은 없습니다. 결국 빡스는 죽은 빡스가 분명합니다. 사라있고서야 이렇게 아니 드러올 리가 없습니다. 미웠던 고왓든 3,4년간을 한 집에 사라온 빡스입니다. 사람과 즘생의 차 뿐이지 한 솟의 밥을 먹든 내 빡스입니다. 지금에 그가 죽엇거니 하면 엇젠지 가슴이 무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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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혹 밤에 도라가도 마조나오는 빡스가 없읍니다. 이럴 때 그가 더욱 그립습니다. 지금에 그놈이 툭 튀여든다면 얼마나 반가울가요? 아마 반가운 김에 목을 껴안고 울ㅅ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즘생이나 사람이나간에 한번 간 바에야 어떻게 다시 도라를 옵닛가. 종시 빡스와 나와는 3,4년간의 인연 밖게 없어 때가 되니 잠시 나를 찾아왓다가 때가 지나니 빡스는 제 갈데로 가버린 것 같읍니다. 이런 데까지 生離死別[생리사별]의 쓰라림이 있는가 하면 실로 娑婆[사바]란 허ㅅ된 곳 한 만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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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지 믿건댄 빡스는 지금쯤은 윤회의 苦[고]를 잇고 거륵한 영을 환생하야 天堂[천당]이나 蓮花臺[연화대]에 가 있을 것입니다. 빡스는 천품이 좀 경솔하야 까불댄 잘못은 있습니다. 그러나 4년의 짜른 일생을 통하야 위선적 언사 한 마듸 해본 적이 없읍니다. 배곺을 때 버린 조기대가리 낫이나 주어먹은외에 남을 속여 부당의 재화를 騙取[편취]해본 일도 없읍니다. 권세를 얻고저 남을 陰害[음해]해본 적도 없고 지위가 욕심이 나서 권모술수를 써본 적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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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생전에 두 벌 옷을 가저보지 아니하고 空手來 空手去[공수래 공수거]한 빡스입니다. 이만치 결백하고 無辜[무고]하얏든 빡스가 엇재 윤회의 苦[고]나 지옥의 慘[참]을 다시 맛보겟습니가? 만일 내 빡스의 넉으로 하야곰 다시 사바의 괴로움을 밧게 한다면 나는 지공타 하는 天道[천도]의 상판에 받침을 베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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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빡스의 일생은 짧앗스되 탈없이 살고간 隱者[은자]의 일생이었습니다. 빡스는 ‘앨릭산더포-’의 소원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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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 없이 사라지이다. 이는 이도 없이 사라지이다. 죽을 때 애통도 없어지이다. 세상에서 남몰래 시워젓나니 누은 곳에 돌하나도 세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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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숨은 일생을 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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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生[신생]」,1934년 1월 1일)
【원문】‘빡스’는 어델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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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빡스는 어델 갔나 [제목]
 
  김상용(金尙鎔) [저자]
 
  # 신생 [출처]
 
  193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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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