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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적 장편소설의 일(一)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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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10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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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 장편소설의 일(一)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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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저널리즘과 문예와의 교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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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예술적 장르의 연구에 있어서든지 그 장르의 발생과 발전과 소장(消張)을 역사적 발전의 불균형성에 있어서 파악하려는 태도은 과학적 문예학의 한 개의 기본적인 입각점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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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장편소설(로만)의 근본법칙에 대한 과학적인 관점은 그의 연구를 사회사에 의거하여 진행시킨다는 곳에 있다. ‘로만’그 자체의 내적 발전의 이론과 그의 연대 유별(類別)과를 사회적 관계의 천명 위에서 연구하려는 태도가 즉 그것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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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이는 때에는 조선의 장편소설의 연구를 그의 사회적 기초의 발전 양상의 과학적 인식에 의거하여 진척시키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불가결의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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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의하여서만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고 또 시방도 생산 배출되면서 있는 조선적 장편소설의 특수성격을 정당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 땅에 있어서의 진정한 로만 발전의 장래성에 대하여도 그릇되지 않는 예견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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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떠한 사물에 대한 예견이란 우리가 섣불리 가질 수 없는 것의 하나이다. 정밀한 과학적 예견이 누누이 뒤틀리고 어떤 돌발사건에 의하여 변경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일이며 또 이것으로 인하여 과학적 예견 그 자체를 불신한다는 것이 한낱 쓸데없는 ‘속견(俗見)’이기는 하면서도 유의치 않을 수 없음이 사실이므로 장편소설의 특수성격을 고찰해보려는 이 단문이 하나의 예견보다 하나의 자각과 자성을 결론으로 가지게 됨은 당연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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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조선에 있어서의 로만 발전의 전환점을 역사적 발전의 불균형성 위에서 파악해보려는 하나의 단초로서 이 작은 일면적인 고찰을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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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작은 고찰이 일면적이라는 것에는 이중(二重)의 의의가 붙게된다. 그것은 조선에 있어서의 장편소설의 발전과 그 장르사적 의의를, 하나의 적은 단초적 형식에서 고찰하려는 점에서 위선 ‘일면적’이며 다시 이것을 특히 저널리즘과 문예와의 교섭점에서 스케치하려는 테마의 특수성에 의하여 다시금 이중적으로 ‘일면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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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망각하고 문제가 전면적으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공식적 견해에 의하여 이 단문을 다루려고 한다면 최근에 유행하는 바와 같이 다시금 비판자 자신의 비극을 낳음에 불과할 것이다. 문제는 개별측면 혹은 일면적인 테마에서 고찰을 기도하였다는 데 있어서는 아니 되며 오직 비판은 개별을 논하면서 일반을 망각하거나 혹은 그것으로부터 이탈할 때에만 엄격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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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단문(短文)의 테마의 특이성을 강조하는 것은 위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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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문예가 저널리즘과 교섭을 시작하는 곳에서 장편소설의 성격의 양상을 포착해보려는 것이 이 단문의 테마인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문제의 고찰을 제기하는 이유는 문예의 본질로부터 파생하는 표현의욕이 저널리즘과 교섭되면서 비로소 만족을 갖게 되는 사실과, 저널리즘의 조선에 있어서의 특수성격이 신문의 학예면, 신문소설 등을 거쳐서 특히 문예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조선의 장편소설이 저널리즘 가운데서도 특히 대(大)신문에 의하여만 발표되어 왔다는 사실과, 다시 저널리즘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모호한 채 그대로 상식화되어 있다는 사실 등등으로써 설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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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제 현상은 이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제 현상의 하나의 특수한 면모로서 그것이 무엇보다 그 토대적인 사회적 관계와 절대적인 과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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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문화현상의 여하한 테마를 취급하면서도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의 ‘조선적인 것’의 성찰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신 창작이론의 구체화의 방향을 고발문학의 제창에서 찾으면서 ‘사유(思惟)에 있어서의 아시아적 후퇴’와 ‘시대적 운무(雲霧)’라는 불명확한 술어로 이러한 성찰에의 관심을 표명하고 이것을 또한 가장 중요한 계기의 하나로 하였는데 이 점이 비판자들에 의하여 경홀시되는 것을 보면 이러한 것의 필요가 불철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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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하튼 조선의 문예(문화)현상의 제 특수성격은 면면(綿綿)한 자기 자신의 내적 발전의 이론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항상 궁극에 있어서 이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의 특수성격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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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또한 과학이 문예와 교섭하는 일면이며 하나의 작가와 평가가 자신의 관심을 조선 농업기구의 해명과 조선사회경제사의 개척에 두는 이유로 되는 소이(所以)이다. 문학(예술)의 존재이유는 예술지상주의자의 수천만 어(語)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회적 기능에 의하여만 설명될 수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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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3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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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여된 바 이러한 테마를 가지고 조선에 있어서의 장편소설의 특수한 면모를 개괄해보려고 할 때에 우리들에게 결정적인 주의를 환기하여 마지않는 것은 위선 ‘로만’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장르라는 것과 조선이 신문학사상에 있어서 예술적 발전의 제 계단을 대표하는 것이 태반 노벨레(단편)이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조선에 있어서는 ‘로만’이 본래의 형태를 갖추고 훌흉하게 발전해오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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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학의 개화기를 약속하는 자연주의 문학이 단편 형식을 취하였고 그 다음 신경향파에 이르기까지의 소위 낭만주의시대라고 지칭되는 복잡한 분화작용의 시기가 또한 동(同)문학으로 대표되고 다시 신경향파와 프로문학의 초기가 단편소설에 의하여 대표된다는 이론은 결코 그대로 간과할만한 근거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일개의 예술가의 자의나 혹은 어떤 문학적 집단의 우연한 발견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니고 이러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적 제 관계의 기형적인 발전과정의 소치이며 동시에 그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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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선에 있어서 ‘로만’의 꽃이 아름답게 만발할 수 없었다는 것은 ‘로만’이라는 장르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표현방식이라는 것과 조선에 있어서의 자본주의가 가장 뒤떨어져서 그의 걸음을 시작하였고 다시 그것이 극히 기형적인 왜곡된 진행밖에는 갖지 못하였다는 것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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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결론으로 가기 전에 약간의 고찰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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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로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인 문학적 현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에 있어서 ‘전형적’이라는 것이 이여(爾餘)의 사회에는 ‘전연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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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 이조사회가 「홍길동전」, 「구운몽」, 「남정기」, 「흥부전」, 「춘향전」의 제작과 허균, 김만중, 박연암 등등의 예술가를 낳은 것은 사실이고, 구라파에 있어서도 고대와 중세기에 일종의 로만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마는 로만이 전형적인 특징을 갖춤에 이른 것이 시민사회의 표현형식으로 된 이후였고 다시 로만이 희랍에 있어서와 같이 ‘고대의 생산방법의 붕괴와 관련하여 상품경제의 제요소가 발생하고 개인이 비로소 형식적으로 독립하는 시대에’이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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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행히 조선사회의 경제사에 어두워 이 자리에서 단언키는 힘들어도 조선소설의 맹아는 역시 화폐경제와 맹아적 상품관계가 나타난 역사적인 시대 이후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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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벌써 명백함과 같이 로만은 시민사회의 특수적인 제 모순을 담기에 가장 적당한 표현방식으로 출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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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비판서설』의 저자가 호머의 서사시의 발생을 씨족적 제도의 원시적 통일의 지반 위에 두려는 형안(炯眼)은 전연 천재적이며 또한 이(理)의 당연한 바라 할 것이다. 호머의 대영웅적 서사시는 인류의 유년시대, 개인과 사회가 원시적으로 통일된 정상적 유년시대의 산물이었고 실로 로만은 시민 사회의 모순의 갈등이 현현(顯現) 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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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에 특유한 유물론적 파토스는 개인적 행동의 사회적 근인(根因)을 구명하는 데 노력하였고 이러한 근안을 표시하기 위하여 개성의 성질과 정열 등의 수 개의 매개물을 빌려서 돌격을 시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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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리얼리스트가 시민사회의 제 모순을 제깐으로 이해하고 이것의 지양과 혹은 해결을 들어 묘파하려 할 때에 그들의 로만 자체가 모순을 경과하면서 성공한 것이 교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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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민사회가 새로운 신세대의 출현과 함께 진보성을 상실하고 그 반대물로 전화할 때에 이를 옹호하려는 시민작가의 최후의 노력이 로만의 붕괴를 초치(招致)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흥미 있는 일이다(조이스, 프루스트의 제작은 로만의 붕괴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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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 창작이론에 의거하는 본래의 문학은(고발문학은 그곳까지 가는 한 과정) 로만의 개조까지를 결과함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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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조선에 있어서의 사회적 제 관계의 지지(遲遲)한 기형적인 발전은 사유에 있어서는 아시아적 후퇴를 결과하면서 로만 발화(發花)의 기반을 상실케 하고 동시에 의연히 내포한 채로 움직이는 생산관계의 시민적 모순을 일방으로 지극히 불활발하고 왜곡된 장편소설을 산출시키는 토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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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장편소설이 통속소설이니 대중소설이니 순수예술소설이니 하는 등의 기괴한 술어로 분열을 보게 된 원이도 또한 이 사회적 토대에 기인한 로만 자체의 왜곡된 양상을 말함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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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37.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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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극히 소박한 개괄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조선에서도 로만의 발생은 구라파에서와 함께 일정한 합법칙적 성격을 갖고 있기는 하였다. 즉 “장편소설은 봉건제도가 점차로 붕괴되고 상업 자본주의가 상승하는 시대의 시민계급의 예술문학 속에 출생하였다”는 기본명제는 이곳에서도 예외를 작성치는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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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구라파에서와 같은 로만의 왕성을 이곳에서 보지 못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있어서의 사회적 경제적 단계의 비참한 후퇴와 그리고 그것이 구라파에서와 같이 순서적 계단적이 못되고 질풍적(疾風的)이면서 또한 기형적이었다는 것과 이 사회적 토대 위에 건축되는 제 이데올로기 현상이 딴 곳에 있어서는 거의 일세기를 두고 치른 것을 불과 1, 20년 내외에 뒤범벅을 개는 통에 치르고 왔다는 모든 제사정 속에서 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로 인하여 장편소설 발생의 존귀한 태반이 되어야 할 문학적 유산의 태무(殆無)를 결과하였다는 것 등을 들어 설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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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상에서 시민적 장편소설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난 시대는 그것이 사회적 세태적 로만으로서 발흥하였을 시대이었고 이것은 도한 산업자본주의사회가 성장하고 개화한 시대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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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에 로만이 시민사회의 산물로서 겨우 자기의 시민권을 주장한 시기는 세계적으로는 이미 시민사회가 점진적인 노후와 증대되는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고 임페리얼리즘에의 이행을 시작한 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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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민적 이데올로기가 노쇠를 초래하여 세계적으로 시민작가의 인식수준이 이미 저하된 뒤이었다. 산업자본의 개화는커녕 임페리얼리즘의 방문에 의하여 비로소 문호를 개방한 것이 이 땅의 특수성이다. 이러한 동양적 후퇴성과 그 뒤의 역사적 운명은 이곳에 있어서의 장편소설 발전의 절대적 제약성이 되었다. 로만이 시민적 양식을 갖추고 이 땅에 등장할 때 그것은 벌써 인생의 평범한 기념비적 정경을 묘사한다든가 정경이 싸고도는 주요한 모순을 포착하여 그것을 평범하게 개괄한다든가 하기에는 너무도 왜곡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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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 이인직 양씨를 거쳐 춘원 이광수씨에 의하여 신문학의 맹아기가 독점될 때에 로만은 거대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미(己未) 전후의 소시민의 요구를 반영한 당시의 춘원문학의 아이디얼리스틱한 경향은 장편소설이란 장르를 다분히 주관의 전달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도 당시의 소시민 지식층이 어느 정도까지의 진보적 역할을 한 때에는 정황의 내포한 모순을 부분적으로나마 추급(追及)하였으나 한번 신세대의 새로운 등장 앞에 부딪칠 때 로만은 일로 특수한 붕괴와 분열의 과정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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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히 그의 사회사의 과정과도 일치한 것이다. 기형적으로나마 자본주의가 수입되어 이러구러 건설되면서 벌써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속에 대립물을 배타하여 순식간에 진보성을 상실한 경유를 한번 돌이켜 보면 이것은 명확해질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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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기영 씨 등에 의하여 로만이 새로운 양식을 갖추고 재등장하기까지는 단편, 시민이 우수한 예술문학이고 장편소설은 모두 비예술문학으로 간주되어온 것이다. 최근에도 이러한 통념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문예비평가가 최근에 연재되는 장편소설을 읽지도 않는다는 것은 아무러한 수치로도 되어 있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것을 쓰는 작가 자신도 단편보다 하위에 두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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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로만이 전형적 정황과 전형적 성격을 창조하는 데 거의 유일무이한 장르라는 것도 정당히 이해되어 있지 아니하고 또 이것을 실천하려는 위대한 리얼리스트 작가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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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변모는 이것을 저널리즘과 문예와의 교섭에서 고구(考究)하면 더욱더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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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저널리즘과의 교섭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문소설, 통속소설, 대중소설 등등의 일반화된 술어의 미몽을 깨뜨리고 동시에 이것이 전부 비예술적인 것을 가리키는 술어인 데 대하여도 이 왜곡된 상식을 일층 더 완강히 물리쳐야 할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신문에 게재되었다고 하여서 이것을 신문소설이라 부를 필요는 없는 것이며 통속적 대중적이란 그 말 자체로서는 고급예술이 이를 배격하여야 될 하등의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에는 신문소설을 제외하고는 장편소설이란 것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알기 쉽게 쓰인 소설, 대중에게 한결같이 읽히는 소설, 신문에 게재된 소설 - 이런 것을 가지고는 그 소설을 비예술적인 것으로 단정할 건덕지가 되지 않을 줄로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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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37.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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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예술은 표현되는 것을 한 개의 고유의 의욕으로 하고 있다. 아니 표현된 것을 가리켜 예술이라고 부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이 음악이나 미술에서와 같이 언어를 통하여 표현되지 않는 것에 있어서도 자신의 성립을 이론적으로 주장할 때에는 항상 말과 문학을 통하여야만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예술과 저널리즘이 교섭되는 면을 표시하는 것으로도 되어 흥미 있는 일이거니와 문예와 같이 본시로부터 언어문자로 표현되는 것에 있어서는 이러한 교섭이 더욱 직접적이고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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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특수화된 예를 제(除)한 외의 여하한 경우에도 문예작품은 저널리즘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 보도할 것을 한 개의 운명으로 하고 있다. 작가가 원고지 위에 작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벌써 작가 자신에 대한 일종의 보도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마는 이곳에는 이미 기지미지(旣知未知)의 대중에게 이것을 전달하는 것에 의하여야만 만족시킬 수 있는 표현의욕이 숨어 있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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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표현은 그대로 보도(報道)를 제 몸에 붙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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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저널리즘에 대한 규정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이론적인 설정 없이는 이것과 문예와의 교섭점에서 장편소설의 특수면모를 포착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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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저널리즘이라면 신문 잡지 단행본 등의 출판물을 생산 판매하는 자본주의적 기구의 일(一)결과이어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상품인 점에 그의 특색이 있다고 할는지 모른다. 물론 우리는 근대적으로 기업화된 저널리즘에서 이러한 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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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상품인 반면에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상층기구에 속하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회현상이란 중요한 일면이 있는 것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즘의 본질일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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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평범한 의미에서의 신문현상 내지는 저널리즘의 본질과 근본 특색은 우리가 서둘러 생각하는 바와 같이 뉴스 보도 본위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평의전망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전망에 있어 보다 정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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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를 제 일위에 두고 비평기능을 제 이로 간주하는 것이 이즈음의 통규(通規)인 듯하나 본시 비평의 성능을 띠지 않은 보도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문의 보도에는 순전히 객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이곳에 저널리즘의 계급성과 당파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그러나 저널리즘의 일체를 부르주아 저널리즘이라고 집어치우는 태도는 이 계급성을 왜곡되게 강조한 결과에 생긴 과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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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리에서 신문 보도 현상의 역사를 회고할 겨를은 없으나 신문을 요구하고 신문의 존재를 가능케 한 것이 시민사회에 있어서의 개인의 해방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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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민사회 대두 이전에도 일종의 신문이 있었다고 하나(주(周) 시대의 『경보』, 시저의 『원로원보』『서민원보』) 그것이 근대적 특징을 비로소 띠게 된 것은 봉건적인 신분사회를 타파하고 시민사회가 대두하기 시작하여 지중해 연안 지방의 상업도시의 발흥을 현실적 기반으로 한 개인의 해방이 소리높여 외쳐질 때의 일이었다(1566). 이때의 보도의 일체가 시민적 자유주의의 정신으로 관통되어 있었던 것은 무론(無論)이며 이것이 봉건세력에 대하여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도 벌써 명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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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근본특색에서 이렇게 비평적 성능을 추출해 보고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인 하나의 사회현상이라고 보면서 신문현상, 출판현상, 문필현상, 연설현상 등등을 통틀어 ‘표현보도현상’이라고 개괄해 놓고서 위선 문제될 것은 이것과의 대립으로서의 아카데미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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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을 아카데미즘과 대비하여 보면 아카데미즘이 전문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저널리즘은 일상적이고 시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다. 아카데미션들이 저널리스트(반드시 신문기자를 말하지 않는다)를 비웃고 혹은 저널리즘을 공박할 때에는 항상 그것이 일체의 문화 내용을 비속화하고 속류화한다는 것을 들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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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무력한 현재의 저널리즘의 소치이지 결코 그것 자체의 죄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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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이 일상적이고 시사적이고 실제적인 것은 하나의 그의 훌륭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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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활은 언제나 일상현상의 속에서 현실적으로 영위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것에 실제로 파고 들어가는 지식이야말로 진실로 산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널리즘의 일상성과 시사성은 비평의 기능과 계몽의 성능과를 합쳐서 진리의 원리를 가장 솔직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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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37.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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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라는 것이 대학도서관 내의 서적과 같이 통제되고 보관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것이 아닌 바엔 그가 계몽에 자(資)하여야 하고 일상생활에 봉사하여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바라 하겠다. 아카데미즘이란 것이 생기게 된 것은 아마도 문화와 생활과의 이율배반이 낳은 ‘문화의 비극’이겠지마는 학문이 저널리스틱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보아 결코 애석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반가운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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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아올 때에는 이 당에 있어서의 아카데미션(!)들은 저널리스트로 되는 것이 진리를 기르는 소이(所以)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나는 조선에 문명비평가, 문화비평가 등의 높은 저널리스트들이 출현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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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의 대신문이 여하한 센세이셔널한 기사거리나 혹은 트러블이 발생하여도 학예면을 위하여 침중(沈重)히 14단을 제공하는 것을 아름다운 유일의 전통이라고도 생각하며 다시 금후의 사설도 역시 문명비평의 성격을 띠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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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하튼 저널리즘에 대한 이상과 같은 인식을 가질 때에는 학문(과학)과 저널리즘이 비평 비판과 계몽의 일점(一點)에서 서로 교섭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동시에 비평에까지 이르기 전 표현 보도의 의욕을 거쳐서 벌써 문예와 교섭하고 있는 것도 또한 이(理)의 당연한 바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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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교섭의 일점을 잡아가지고 조선의 표현 보도현상으로서의 저널리즘을 돌이켜 보면 신문현상만이 기형적으로나마 제대로 모양을 갖추었고 이여(爾餘)의 것은 거의 싹이 변변히 못 튼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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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장편소설의 출산에 있어 절대적인 기반이 되어야 할 출판현상은 대단히 미약하여 한번도 본격적인 출판상태를 보이지 못하고 신문에 게재된 것을 뒤늦게 단행본으로 내놓는 데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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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로만 발생의 당초부터 우금(于今)에 이르기까지 장편소설을 신문에 의하여야만 발표케 한 기본적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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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문현상, 그것이 또한 사회적 토대를 떠나 혼자 건전할 수 없었고, 이것의 금일까지의 발전엔 실로 수많은 굴절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신문이 항상 그의 사명으로 떳떳한 것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천을 따라 상업주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현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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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아카데미즘에 의하여(아카데미즘이 또한 아무 것도 보잘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마는) 저널리즘의 시사성과 일상성이 왜곡되게 이해되는 것은 일방으론 아카데미즘의 반동도 원인되어 있지마는 신문 자신의 상업주의에 의한 일상성과 시사성과 계몽성의 정당한 인식의 상실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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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 일상성과 시사성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오입(誤入)이 아니었을는지 모르나 상업주의로 인해서 왜곡되고 오해된 시사성과 비속한 추상적 대중(어떠한 대중인지는 모르나 더럽게 추잡되고 우연적이고 엽기적이고 감상적이고 색정적인 것만을 즐기는 대중을 이들은 항상 문제시한다)에의 무원칙한 추수는 확실히 로만을 연화(軟化)하고 타락시킨 원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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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조선에서의 로만 발전의 현실적 기반을 경제적 사회적인 곳에서, 그리고는 다시 그후에 건축되는 이데올로기적 기구에서 다시 그것을 한쪽으로 돌아서는 저널리즘과의 교섭점에서 갈피갈피 찾아보아도 역시 구라파에서와 같은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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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 기형적인 토대와 그 위에 서 있는 모든 문화의 후퇴성이 오늘날의 장편소설과 같은 특수한 면모를 갖추게 한 사회적 문화적 근거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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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우리들은 이 고찰로부터 한 개의 결론을 낳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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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로만의 이론을 정당히 파악하여 그의 개조를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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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시민작가의 손에 의하여 로만이 붕괴되는 시대인 것을 알고 위대한 리얼리스트는 이것을 넘어서 로만이란 장르 그 자체의 변질과 개조에 노력하여야 한다(고리끼의 『끌림 삼낀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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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널리즘 자신도 하나의 자각이 필요할까 한다. 이 땅에 있어서의 문화와 문학의 제 특수성격과 표현 보도현상의 중대한 문화적 역할과 사회성을 정당히 인식하여 로만 발전을 위하여 기여하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저널리즘은 그의 시사성과 일상성에 대한 인식을 왜곡된 상식으로 부터 찾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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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아올 때에는 이 땅의 로만은 위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나 또한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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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동아일보』1937. 10. 23]
【원문】조선적 장편소설의 일(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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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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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