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당랑(螳螂)의 전설 ◈
◇ 1 막 ◇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처음◀ 1권 다음
1940.10
채만식
1
螳螂[당랑] 의 傳說[전설]  (3幕[막])
 
 
2
〔인물〕
3
박진사(朴進士) …… 자작 영농을 겸한 소지주, 60세 가량
4
고씨(高氏) …… 박진사의 처
5
원석(元錫) …… 장자, 40세 가량
6
최씨(崔氏) …… 원석의 처
7
원석의 소생
8
 인원(仁源) …… 18세 가량
9
 윤원(允源) …… 15세 가량
10
 옥순(玉順) …… 12세 가량
11
형석(亨錫) …… 차자, 35세 가량
12
김씨(金氏) …… 형석의 처
13
형석의 소생
14
 대원(大源) …… 18세 가량
15
 재원(在源) …… 12세 가량
16
정석(貞錫) …… 3자, 27세 가량
17
오씨(吳氏) …… 정석의 처
18
정석의 소생
19
 내원(來源) …… 8세 가량
20
 은순(銀順) …… 3세 가량
21
소저(小姐) …… 딸, 19세 가량, 처녀
22
꼬마동이, 머슴, 마부
23
집달리, 집달리를 따라다니는 형식상의 경매인(고물상) 갑·을, 인부 2,3 인 미두취인중매점(米豆取引仲買店) 마루상의 사무원 갑·을, 동 바다지, 동미두 손님 갑·을
24
다수한 미두꾼, 하바꾼, 옥관(玉觀), 바다지, 구경꾼 등으로 된 미두장 중심의 군중
 
25
〔연대〕
26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즉 대정(大正) 10년대(1921) 8월 하순.
 
27
〔장소〕
28
남방의 어느 원벽(遠僻)한 작은 농읍(農邑)과 인천(仁川)
 
 
29
제 1 막
 
30
〔무대〕
31
초가로되, 칸살이 넓고 드높아 원래는 중후한 느낌이 났어야 할 것이었으나, 너무도 낡고 그을고 추녀 등 군데군데 퇴락이 되고 해서, 그 창연(蒼然)한 황량(荒凉)으로 하여 오히려 음울한 기운이 떠도는 박진사 집의 안채. 상수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의 순서로 되었고, 앞에는 툇마루가 주욱 연해서 달렸다. 환히 죄다 열린 위아래 앞문으로는 안방과 건넌방이 다 같이 거뭇한 장롱이며 추다지 등속이 들여다보이고.
32
대청마루에는 길쌈을 하던 모시베들이, 짠 베가 꽤 많이 감기고도 북이 그대로 걸린 채, 특히 눈에 뜨이도록 가운데 한복판으로 놓여 있고, 한편 구석엔 커다란 뒤주가 한 개. 뒤주 위와 시렁에는 소반, 병풍 그 밖에 여러가지 세간이 얹혀 있고, 열린 뒷문으로 해서는 널따란 뒷마당과 뒤채의 일부분이 내다보인다.
33
하수는 종으로, 전면에 광과 후면에 아랫방이 달린 옆채. 이 옆채와 안채와의 사이에는 약간의 간격이 있어서, 뒤채가 있는 뒤 울안에로의 통로가 된다.
34
상수의, 최전면으로 다가서는 이엉으로 엮어 세운 차면이 있어, 사랑채와 사랑채에 달린 대문이 그 앞에 가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대의 용적이 허하는 것, 되도록이면 상수에다가 다시 종으로, 전면에 외양간에 달린 헛간 한 채를 두고 절구와 확과, 토매, 절굿대, 멍석 등이며, 쟁기, 써레, 홀태 기타 몇가지의 농구를 적당히 배치한다.
35
헛간이 만일 부득이한 경우면 그 대신 광 앞과 마루 밑창 기타 알맞은 자리에 그럴 듯한 농구를 한두 가지씩 채워 놓아두어, 그것으로써 농가다운 기분이 나게 한다.
36
석양은 아직 멀었고 새때가 넌지시 겨운 오후, 막이 열리면, 손녀 은순을 등에 업은 고씨, 실심하니 만사에 경황이 없는 얼굴로 오락가락 토방을 거닌다. 본바탕은 그러나 유복하고 덕스러우며 겸해서 고생에 찌들지 않고 곱게 늙어, 그의 특특한 광당포(廣唐布) 치마적삼이 보기조차 민망할 만큼, 귀골태를 숨기지 못한다.
37
대청 앞마루에서는 만삭 가까운 형석의 아낙 김씨와 정석의 아낙 오씨 두 동서가 마주 앉아서 모시올을 째고 있다. 김씨는 시어머니 비슷하니 복성스런 모습이나 오씨는 날렵한 몸피와 강파른 얼굴이 완구히 히스테리를 지니어 보인다. 동서가 꼭같이 삼베 적삼에 껌정 물감을 들인, 매한가지 삼베 치마를 입었고.
38
건넌방 마루에서는 원석의 아낙 최씨와 소저가 누런 삼베로 크막한 고의와 적삼을 한가지씩 차고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최씨는 부대한 몸집하며 여럿 중에서 누구보다도 유덕한 얼굴이나 약간 우둔한 편이고, 소저는 얄따란 바탕에 좁은 이마 등 성미가 몹시 박절스런 모습이다. 분홍 항라적삼에 치마는 역시 껌정 삼베치마를 입었고, 최씨는 위아래가 제 빛깔의 삼베다.
39
넷이는 생김새는 그렇듯 다 각각이라도 (그리고, 고씨토록은 아니나) 한결같이 걱정 있는 표정을 하고서, 깜박 잊은 듯 한동안 말들이 없이 제마다 일에만 잠착한다)
 
 
40
오씨     (모시 한 올을 송곳니에 물고 한참이나 성화를 먹다가 겨우 째고 나서, 푸뜩 불평스럽게 방백) 이건 쪼개선 다아 무얼 하자구!
 
41
김씨     (언뜻 대청마루의 베틀만 돌려다보고는 무언)
 
42
오씨     집행딱진지 개화장 딱진지 붙여논 년의 베를!
 
43
──(소저와 최씨, 따로이)──
 
44
소저     (바느질하던 삼베적삼을 문득 푸서억하니 치켜 들고는 곰곰이 바라보다가, 방백) 머슴 줬으믄 마침이겠네!
 
45
최씨     (고개를 숙인 채, 빙긋) 나두 허너니 시방 그 말이지!
 
46
소저     어느새 노망두 아니시구. (도로 바늘을 잡으면서) 시상의 이걸 글씨 어떻게 입으신다구!
 
47
──(고씨, 따로이)──
 
48
고씨     (이윽고 딴 정신이 번져,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방백) 빈 또 머얼리 갔구나!
 
49
──(오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50
오씨     낼 모리믄 뭇놈들을 끌구 와서 죄다 모두 팔아 넹긴다믄서!
 
51
김씨     쯧! 인제 또 장만하믄 그만 아닌가?
 
52
오씨     성님두! 장만했다가 또 남 존 일 시키라구?
 
53
김씨     오온! 집행을 또 맞어서 어떡허자구!
 
54
──(소저와 최씨, 따로이 계속하여)──
 
55
최씨     허기사 살림은 나날이 이렇게 쪼들려 가구 (間[간]) 자손들 보는데 당신이 몸소 쥬모를 내시자구 하시는 노릇이지만.
 
56
소저     그날두 글씨 (오씨를 힐끗 돌려다보고는 소곤소곤) 막내오빠가 군산 갔다가 심부름하란 돈에서 이백 냥이나 주구 새루 양복을 해입구 온 걸 보시구서 그만 화증이 나서서 그리섰다우! 다락에서 이 벨 끄내가지구 둘오시더니 어머니더러, 당장 이걸루 내 고의적삼 만들어 노라구.
 
57
──(오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58
오씨     말두 마시우! 인제 두구 보시우만 (고씨가 들을까봐, 돌려다보고는 소곤소곤) 인제 한 달이 머다허구 연해 집행난릴 맞일 테니 두구 보시래두.
 
59
김씨     쯧! 그래두 헐 수 없는 노릇이구! 다아 집안 운수소간인걸.
 
60
──(고씨, 따로이, 한참만에)──
 
61
고씨     하느님마저 야숙두 하시지! 이왕이니 심은 것이나 걷어 먹게 해주시들랑 않구서! (마당으로 내려가서 상수의 차면께로 걸어나가면서) 이 사람한테서는 어쩌자구 오늘두 여태 가암감 소식이 없는구! (間[간]) 찾으러 나가신 으런두, 가시더니 소식이 없구!
 
62
──(소저와 최씨, 따로이 계속하여)──
 
63
최씨     (곰곰이 방백) 집안이 이 꼴이 되기 전에 진작 애기씨가 시집을 갔어야 할 것을! 쯧쯧!
 
64
소저     (고개를 숙이고서 말은 없어도, 누가 아니라느냔 듯이, 불평한 빛이 알아보게 얼굴로 드러난다.)
 
65
최씨     둘두 없는 양념딸얘기니, 다아 참, 고루기두 골라야 할 테지만 (間[간]) 집안이 그만, 이 지경이 되였으니!
 
66
──(오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67
오씨     전답은 버얼써 다아 남의 것이 되구, 집두 잽혔는데 기한이 넘었댑니다! 인전 머, 집두 터두 없구, 죄다 굶어 죽게만 생겼대나 봐요!
 
68
김씨     설마 산 사람 입에 낙거미줄이야 칠라던가?
 
69
오씨     성님두! 아, 우선 지끔만 보시우? 오늘 저녁은 보리만 곱삶어야 안 해요? 보리만 또 많으믄?
 
70
김씨     (깜박 생각이 나서) 참! 내 정신머리 좀 바라. (대견히 최씨를 돌려다보면서) 성니임?
 
71
최씨     (마주 건너다보면서) 으응?
 
72
김씨     저어, 오늘 저녁 (고씨가 들을까봐 돌려다본다)
 
73
고씨     (상수의 차면 밖으로 천천히 퇴장)
 
74
김씨     오늘 저녁 양식은 어떡헌대요?
 
75
최씨     나두 허너니 시방 그 걱정이네!
 
76
김씨     머슴허구 꼬마둥이두 그렇지만, 어머님이 그 노인이 보리곱 삶일 어떻게 잡수시와!
 
77
최씨     즘심에 두주는 닥닥 다아 긁었던가?
 
78
김씨     그리구서두 쌀이 모자라서 들에 내가는 밥이 그렇게 반섞이가 더 되잖었어요.
 
79
최씨     쯧! 광에 있는 독에치라두 조금만 퍼다가 먹었으믄 좋겠다!
 
80
오씨     큰일나라구요?
 
81
최씨     허기사 그렇다데만서두. 그러니 그게 무슨 놈의 법이 그럴꼬? 다같이 집행딱지는 붙었으믄서두 두주치는 먹으라구 허구, 광에다 둔 독에치는 손두 못 대게 허구.
 
82
오씨     두주는 두줄 집행했으니깐 쌀은 먹어두 상관없지만, 독에친 쌀을 집행했으니깐 안된대나 바요.
 
83
소저     (입을 삐쭉) 벨 까달스런 법두 다 많지!
 
84
최씨     가만히, 집행딱지를 떼구서 한 말만 덜어내구 도루 제대루 붙이믄 안될까?
 
85
김씨     그랬다가 말썽이나 생기믄 어떡허게요?
 
86
정석     (무대 뒤에서 머언 소리로) 은순아?
 
87
오씨     네에?
 
88
정석     냉수 한 그릇 떠와!
 
89
오씨     (부엌으로 해서 퇴장)
 
90
──(최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91
최씨     밀이나 좀 갈아 두었드라믄 이런 때 더러 칼제비나 해서.
 
92
김씨     머슴은 가루것두 그리 질겨하잖나 봅디다!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윤원, 옥순, 재원, 내원의 네 아이가 빈 벤또 그릇을 달그락거리면서 요란하니 등장. 사나이 셋은 하얀 일개(日蓋)를 씌운 보통학교의 학모를 쓰고 윤원과 재원은 두루마기까지 입고 일제히 버선에다가 편리화를 신었다. 옥순은 편리화 대신 갖신을 신었고.
 
93
모두들 얼굴이 버얼겋게 익고 땀이 흐르나, 저마다 씩씩하니 원기가 있다)
 
94
최씨     오는구나, 들! 오온, 이 더운데 저것들이!
 
95
──(재원과 김씨, 따로이)──
 
96
재원     (김씨의 앞으로 달려가서) 어머니 어머니!
 
97
김씨     오늘두 학교 논, 김들 맸니?
 
98
재원     나, 수박 사먹게 돈!
 
99
──(윤원과 최씨, 따로이)──
 
100
윤원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어 내던지면서) 할아버지 안 오섰수?
 
101
최씨     안 오섰다!
 
102
윤원     어머니, 나 밥 좀 주?
 
103
──(내원, 혼자서 따로이)──
 
104
내원     엄마아? (오씨를 찾느라고 둘러보다가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뒤 울안으로 달음질을 쳐서 퇴장)
 
105
──(재원과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106
김씨     도온? 넌 돈 이름을 다아 아나보다?
 
107
재원     흐응! 저기 저 수박 많이 난 거!
 
108
김씨     재주 좋거들랑, 좀 사다가 나두 좀 주구, 느이두 먹구 하겠지?
 
109
──(윤원과 최씨, 따로이 계속하여)──
 
110
최씨     밥 먹기두 급하다! 더운데 어서들 벗어붙이구, 훠어훨 찬물루 씻기나 하려므나!
 
111
윤원     배고파 죽겠구먼!
 
112
김씨     넌 그게, 수박 고푸닷 소릴 테지?
 
113
윤원     (히죽 웃으면서) 좀 사주우!
 
114
김씨     그래라, 날 어따가 갖다 팔구서, 수박들 사먹어라.
 
115
재원     어머닐 누가 사나, 머!
 
116
최씨     오온! 자식두!
 
117
김씨     큰일들 났다! 느일 모두 먹구퍼 하는 대루 자알 멕이구, 공부두 다아, 대학교꺼정 졸입을 시키구 하자믄 돈이 집채만 침 있어두 모자랄 텐데! (가볍게 한숨) 이건 되려! (대견히 무릎을 짚고 일어선다)
 
118
──(소저와 최씨와 옥순, 따로이)──
 
119
소저     (기둥을 안고 섰는 옥순을 건너다 보면서) 옥순인 어째 저리두 얌전했을까?
 
120
최씨     얼굴에다가 시방, 수박 좀 사주우 허구, 쓴 게 아주 선연하구면서두!
 
121
옥순     (배시기 웃으면서) 수박이 저어, 물동이마안씩 하겠지!
 
122
소저     (문득 방백) 올 여름은 참, 수박 한번두 실컷 못 먹어봤다!
 
123
──(김씨, 따로이)──
 
124
김씨     밥이나 먹어라! 들. 보리밥에다가 고추장허구, 기름허구, 드뿍 마안히 치구, 열무김치 넣구 해설랑 착착 비벼논다치믄, 참, 꿀맛이지! (토방으로 내려서면서) 수박이 어딜! (間[간]) 자아 시어언한 뒷마루루 가자들. 꿀밥 비벼 주께시니. (토방을 지나 상수의 부엌으로 퇴장)
 
125
(아이들, 대청마루의 뒷문으로 해서, 혹은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뒤 울 안으로 퇴장)
 
126
──(소저와 최씨, 따로이)──
 
127
최씨     뒤채서는 내원이놈이 수박 사달라구, 단단히 시방 성화를 멕히나보다!
 
128
소저     아이라구 하두 어디서, 응석만 부려쌓구, 소갈찌가 사나서!
 
129
최씨     쯧! 한참 그럴 나이라!
 
130
(형석,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총총히 등장. 삿갓을 들고 살포를 집고 탈망바람에 발목만 조금 걷은 채, 버선에다가 대님을 묶고, 헌 마른신을 신었다. 삼베 고의에, 적삼만은 해어지고 등을 받고 했으나마 모시것은 모시것이고.
131
호인 타입으로 모계의 두투룸한 바탕이기는 하나 사람이 좀 우둔해 보이고 겸하여 빈상(貧相)이 진 얼굴이다.
132
최씨와 소저, 돌려다보고는 몸을 조금씩 고쳐 앉는다)
 
133
형석     (누군지를 찾느라고 휘휘 둘러보다가, 최씨더러) 형님 안 오섰어요?
 
134
최씨     (약간 두릿거리면서) 아니요!
 
135
형석     전보두 안 오구요?
 
136
최씨     전보요?
 
137
형석     허, 참! 웬일이어! (살포를 주체 못해 하다가 삿갓만 토방에 다 놓고 올라서면서) 편지두 안 왔어요?
 
138
최씨     편지 (더듬는다) 두, 아마 안 왔지이? (소저를 건너다본다)
 
139
소저     안 왔어요!
 
140
형석     허, 참! (마룻전에 털썩 앉아 잠시 우두커니 먼산을 바라다 보다가 방백) 아버님도 안 오시구!
 
141
일동     (침묵)
 
142
소저     (마침 생각이 나서) 작은오라버니 참, 저녁 양식이 하나두 없대요! 쌀이.
 
143
형석     (버럭 것질러) 모른다! 쌀이구 막덕이구.
 
144
소저     (무춤했다가 그 다음 뾰로통해서 눈을 내리깐다)
 
145
형석     (두런두런) 남 속상하는 근경은 들 모르구.
 
146
일동     (침묵)
 
147
형석     (이윽고) 두주쌀을 그래, 벌써 다 먹었단 말이냐?
 
148
소저     (입술만 뚜우 더 나오고, 무언)
 
149
최씨     쌀이, 두주에 남은 쌀이, 한 거저, 서 말 푼수나 되었을까? (間[간]) 그래두 애껴서 먹느라구 먹었어두 (間[간]) 원체 식구가.
 
150
(고씨,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아까 나갈 때처럼 은순을 등에 업고 거니는 걸음으로 등장)
 
151
형석     형 안 왔어요?
 
152
고씨     쯧! 안 왔나보구나! (間[간]) 넌 왜, 즘심 내간 것두 두어술이나 뜨다가 말었느냐? (間[간]) 속이 편찮은가 보구나?
 
153
형석     전보두 안 오구요?
 
154
고씨     (토방으로 올라선다) 전본지 원 무언지!
 
155
형석     허, 참! (間[간]) 편지두 없구!
 
156
고씨     (최씨와 소저더러) 이년을 좀, 받아서 게 어디 뉘던지 제 에밀 갖다가 주던지 해라. 선잠이 깨서 생뗄 써쌓더니.
 
157
형석     아버님은 또, 웬일이시구!
 
158
고씨     그러게 말이지!
 
159
최씨     (내려와서 은순을 받는다) 떼재기년이 코가 비틀어졌구먼!
 
160
고씨     (마루로 올라가 앉아서 장죽에 담배를 붙인다)
 
161
형석     이앤 드러눠서 또 낮잠인가?
 
162
고씨     뒤채에 있나 보더라!
 
163
형석     (은순을 안고 하수의 옆채 사이로 퇴장하는 최씨더러) 정석이 좀, 나오라구 일르시우!
 
164
최씨     예에. (퇴장)
 
165
형석     (우두커니, 방백) 참, 딱한 노릇이더라! 집안은 사뭇 이 지경이 됐어두 그저 모른 척하구서, 빙 나돌아댕기기 아니면, 밤이나 낮이나 저러구 누워서 낮잠자기! (間[간]) 천핫일을 도모하자면 가사를 돌아보잖는다지만, 그런 주변에 천하사가 어디 당한 거여! 성현의 말씀에두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구 하섰는데! 제 몸 하나 감장 못허구, 제 집안 하나 바루잡을 줄을 모르는 사람이 천하사를 무슨 재주루 해나가더람! 내, 원!
 
166
고씨     젠들 무슨, 속두 없을라더냐!
 
167
형석     말씀두 마시우! 속은 무슨 속이 있어요? (間[간]) 아, 형편이 이렇게 각다분할수록 눈을 쥐어뜯어 가면서, 같이 좀 납디기나 해줘야 답답하기나 더얼 하지요! 내가 무슨, 절 갖다가 부려먹자는 노릇은 아니지만, 아, 오늘 같은 날만 하더래두 번두웅번둥 놀면서 낮잠이나 자느니, 아, 들에라두 소풍삼아서 나와서 서두리라두 좀 해줄 일이 아니요? (間[간]) 간신히 볼(洑) 트긴 텄다는 게 겨우 그저, 참새 눈물만치 내리는 물을, 사방 뭇놈들허구 싸워가면서, 네 군데 다섯 군데 물을 대느라구,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목이 터지두룩 악다구니를 허구, 그러니 그런 때 등신이라두 하나 손대가 있어주면 오죽 힘겨웁구 좋아요? (한숨) 허기야 참, 그 짓을 해서 겨우 일년치 더 농사라구 지여놓면 또 그리우난 무엇이 있으꼬마는, (間[간]) 그러구우, 암만 납딘대두 흉년은 들어둔 흉년이구. 아마 반타작두 어려우리다! 내 남직 할것없이 그 넓운 들이 벼포기는 죄다 뇌랗게 말러 배틀어진걸! 시방 한참 자라구 새낄 치구 할 무렵인데, 세상에 물맛을 얻어보아야 말이지요! (한숨) 그러니, 꼼짝없이 흉년은 흉년인데, 그렇다구 글쎄 두 손목 묶어논 배 아니구, 우두커니 바라다보구만 있어요? 싸우구 뜯구 하면서라두 내려오는 물은 내 논으루 대서 단 얼마라두 농사를 건져야 안해요? 그렇게 해서 막이, 내일날 남의 것이 될망정이라두 우리가 물역을 들인 올 농사는 지여 먹어야 안해요? 내년은 내년이라구, 올 세안은 무얼 먹구 살어요? 그거나마 가꾸잖구서. 아, 우선 당장 오늘 저녁 양식이 없답디다? 당장 오늘 저녁! (間[간]) 그러나마 식구가 적어서요? 이십명이나 되는 권솔 아니여요?
 
168
(꼬마동이, 바지게에다가 밥보자기를 덮은 광주리를 짊어지고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등장)
 
169
형석     머슴 물 잘 보더냐? 논두덕에 가 드러눠서 낮잠 안 자구?
 
170
꼬마동이   예에, 잘 보아요!
 
171
형석     널랑은, 그것 내려놓구서, 인전 가서 꼬올 해와야겠다?
 
172
꼬마동이   예에. (마당 가운데쯤 지게를 받쳐놓고 광우리를 마루로 들여온다)
 
173
형석     아홉 말지기 논에 물 많이 잽혔더냐?
 
174
꼬마동이   아직두 멀었어요!
 
175
형석     꼬올 좀 나우 해! 까치집만치 해서 짊어지구 오지 말구서?
 
176
꼬마동이   예에. (지게를 도로 지고 돌아선다)
 
177
형석     참! 내가 깜박 잊었구나! 옹퉁이나 무엇 하나 좀 지게다가 놓아가지구 대문간에 나가서 기대리구 있거라. 싸전에 가서 혀짧운 소리를 해서라두 쌀을 좀 얻어와야 할까보다!
 
178
고씨     싸전일랑 내라두 좀 가볼거나? 넌 들에 또 나갈 테면서.
 
179
형석     어딜 다 가신다구! 지가 글러루 들러서 나가요!
 
180
고씨     내 것을 내 집에다가 두어두구서두 번연히 못 먹구!
 
181
(꼬마동이, 헛간 혹은 광에서 옹퉁이를 찾아다가 바지게 위에 올려놓아 지고는 상수의 차면 밖으로 퇴장.
182
동시에 하수의 옆채 사이로부터 정석 등장. 풀대님한 모시 고의와 적삼에, 기른 머리가 터부룩하고 낮잠을 자다가 깬 표적으로 얼굴이 부숙부숙하다. 모습은 형석과 한 모습이라도 우둔하지가 않고 지적이요, 특히 눈에는 남을 위압하는 정채가 들어 있다. 표정은 그러나, 정열과 타기(惰氣)의 두 상극진 그림자가 미묘하게 서로 교착되어 가지고, 언뜻 포착하기 어려운 불안한 흔적이 없지 못하다)
 
183
형석     (잠시 정석의 얼굴을 여새겨 보다가, 부드럽게) 웬 낮잠을 그리 자쌓느냐? (間[간]) 여름사람이 낮잠을 너무 자면 병이 생기는 법인데!
 
184
(정석, 하품을 삼키면서 마룻전으로 넌지시 걸터앉는다)
 
185
일동     (한동안 침묵)
 
186
형석     (이윽고 걱정삼아) 오늘두 형님한테서는 여태 아무 소식두 없으니 어떡허면 좋단 말이냐?
 
187
정석     (덤덤하니, 무언)
 
188
형석     허, 참! (間[간]) 아버님은 또, 웬 일이시며!
 
189
정석     (덤덤하니, 무언)
 
190
형석     전보라두, 또 좀 쳐볼거나?
 
191
정석     글쎄요!
 
192
형석     한장 좀, 치려무나?
 
193
정석     네에.
 
194
형석     큰일났다! 큰일났어! (間[간]) 형님이 이번이나 일이 잘 여의해가지구 오시기만 하눌같이 믿구 있는데, 만약에, 만약이라두 참, 삐끗허구 보면!
 
195
정석     (돌려다보면서) 소저, 뒤채 가서 담배곽 좀 가지구 오느라.
 
196
소저     (바느질을 내려놓고,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퇴장)
 
197
형석     (곰곰이) 너두 다아 알다시피, 논이래야 죄다 해서 닷 섬지기, (間[간]) 그게 말끔 다아 저당에 들어갔다가, 넉 섬지기는 벌써 다아 남의 것이 되구! (한숨) 나머지 한 섬지기는 새말 강전이한테 잽힌 것이, 양력으루 새달 그믐이 기한이라는구나! 그러니 한 달 며칠밖에 더 남었느냐?
 
198
고씨     그 논 한 섬지기는 참, 떼답으루 논두 조려니와 느이 징조 할아버님 대버틈 물려 내려오는 논이란다!
 
199
형석     이번에 요행 돈이 다아 돼서, 도루 찾게 되면야 더할 것 없이 좋구, 그렇지 못하면 이자라두 주구서 한 일 년 더 연기라두 하는 것이구, 또오 영영 그두저두 안되겠으면, 아주 뚜드려 팔어서 다만 얼마라두 건질 도리를 하구, (間[간]) 아, 그래야망정이지, 동동 그대루 떠내려보내다께 될 말이냐. 우리는새려 또오, 아버님이 당신 손수 장만하신 것두 아니요, 지끔 어머니 말씀대루, 저어 징조할아버지 적버틈 벌써 사대째나 물려 내려오는 전장을 갖다가!
 
200
(내원, 가죽으로 만든 담배 케이스를 손에 쥐고,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등장)
 
201
정석     (버럭) 성냥은?
 
202
고씨     (성냥을 던져 주면서) 옜다!
 
203
내원     (담배 케이스를 정석에게 주면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수박!
 
204
정석     저 손꾸락! (담배를 붙여 물고) 뒤꼍으루 가서 놀지 못해?
 
205
고씨     지천해쌓지 마라! 어린 것이 먹구 싶어서 그리는걸.
 
206
형석     (내원더러) 수박 내가 이따가 사주마! 응?
 
207
내원     큰 거!
 
208
형석     오냐, 큰 걸루.
 
209
내원     큰 거, 지끔!
 
210
형석     이따가, 이따가 사줘!
 
211
정석     가아, 인전!
 
212
내원     (말끗말끗,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퇴장)
 
213
일동     (잠시 침묵)
 
214
형석     집은 일 년 안이면 언제든지 도로 물려준다니깐, 원 종차 서서히 어떡허든지 한다지만, (間[간]) 허! 인전 내일 하루 더 지나서 모린다치면 벼락같이 (얼굴로 좌우를 가리키면서) 저걸 모두 경매하러 달려들지! (間[간]) 허기야 집안이 티검불 하나 없이 폭 망하는 판에 세간 나부랭이가 그리 대수냐마는, 세상에 그런 망신이 어딨단 말이냐? 돈이나 아니나 많지두 않구 겨우 이백 원에! (間[간]) 돈 겨우 이백 원에 그래, 경매꾼 놈들이 내 집 내정을 둘와서 세간을 모두 끌어내다가 놓구, 이건 암만이요오, 이건 암만이요오 하는 꼴을 당해야 옳단 말이냐?
 
215
고씨     막말이지, 느이 아버님은 사뭇 자결을 하시러 드시리라!
 
216
형석     그러니, 그러니 말이루구나! 요행 참, 내일 해전까지만 형님이 무슨 도리를 해가지구 내려오서서, 천하 못 당할 그 창피두 끄구, 논 일사두 우선이나마 무사하게 규정을 짓구하게 된다면 모르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하는 날이면? 응? 만약 그렇지 못하는 날이면? (길게 한숨) 어떡허면 좋으냐 어떡허면!
 
217
정석     (덤덤하니 담배연기만 뽑으면서, 무언)
 
218
형석     얘야! 정석아?
 
219
정석     (마주 볼 뿐, 무언)
 
220
형석     어떡허면 좋으냐? 응?
 
221
정석     글쎄요!
 
222
형석     글쎄요라니! (間[간]) 이십 명 권솔이 장차 목숨을 들얹아야 할 논 그것마저 떠내려가! 세간은 경매를 당해! 집두 터두 없이 우리 집이란 건 폭 망해! 그렇게 돼두 넌 괜찮으냐? 상관두 없구?
 
223
정석     상관이 있구 없구가 아니라, 걸 지가 어떡허나요?
 
224
형석     그야 넨들 별수가 없지! 없지만서두, 난 이렇게 애가 밭구간이 타는데, 넌 본다치면 아무 걱정두 없는 것처럼 그저, 태연하니, 그래서 하는 말이다!
 
225
정석     쯧! 그런 게 형님허구 저허군 다른 점이 아녜요?
 
226
형석     다른 점이라니?
 
227
정석     (무언)
 
228
형석     (노여서) 넌 속에 신학문두 들구, 사람이 다아 참 도저해서 그러나 보다마는, 못생기구 어리석은 형놈이라구 그렇게 괄시하질랑 마라!
 
229
정석     괄시가 아녜요!
 
230
형석     내가 이렇게 농투산이루, 꿍꿍 소처럼 일이나 하구 기우는 집안을 붙들구 싶어서 앨 써쌓구 하는 것이 무슨 내 한몸뚱이나 내게 딸린 인간들만 위하자는 노릇이더냐? (間[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집안을.
 
231
정석     또오, 형님 공로나 정성을 모르는 것두 아녜요. 아니구, 형님허구 저허구 다르다는 건, 형님은 인생의 목적을 갖다가 한낱 가족에다 가두구서, 그 가족의 행복만을 최선이요 궁극의 이상으로 삼구, (間[간]) 그러자니깐 자연 온갖 정성이며 노력이 글러루만 쏠리는 것이구, (間[간]) 전 그런데, 가족이나 집안일에 대해선 도무지 경황이라는 게 없구, 해서 말하자면 등한하달까, (間[간]) 그게 그러니깐 형님허구 저허군 다아 참, 동태동기간이로되 서루 다르다는 그 말씀예요! 속담에두, 한날 한시에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손꾸락두 길구 짧구 하다구 안해요? 그렇다구서 무슨, 형님의 그런 가족본위 이상이, 그런 포부가 구태라 나뿌다는 것두 아니구, (間[간]) 그러니깐 우열이나 장단은 둘째 문제루 치구서 말씀예요!
 
232
형석     수신, 제가 연후에 치국, 평천하란다!
 
233
정석     위천하자는 불고가사니라구두 일르잖었어요?
 
234
형석     그렇다구 글쎄, 집안이 당장 눈앞에서 망하는 걸 번연히 보구 있으면서두, 태평으루 눠서, 걱정 한번 하는 법 없구! (間[간]) 그래야 옳아?
 
235
정석     걱정을 해서 면할 도리가 있다면야, 기왕 보기두 딱한 노릇이구 허니, 같이서 걱정두 해 드리구 하겠지만서두, 어디, 걱정으루 일이 피나요? 차라리 당하는 일은 당하구, 그 다음 일이나 잘 조처할 도릴 궁리하는 게, 훨씬.
 
236
형석     그래? 막말루, 일을 당한다구. (間[간]) 그 다음? (間[간]) 아니, 일을 당하구 나면 집안은 영영 망하구 마는걸, 다시 도린 무슨 도리란 말이냐?
 
237
정석     집안이 망하면 재산이나 없어졌지, 사람까지 없어지나요?
 
238
형석     그러니 말이여!
 
239
정석     그러니 말씀에요, 사람은 없어진 게 아니구서 죄다 그대루 처졌으니깐, 그 다음버틈 다시 살아나갈 도릴 마련해야 않겠어요?
 
240
형석     그래 글쎄! (間[간]) 집안은 한푼 껀지 없이 망했는데 우쿠를 하니 이십여 명 식구가 무얼 먹구 살아가느냔 말이여?
 
241
정석     헤쳐에죠! 집안을.
 
242
고씨     집안을 헤치다니 그야 어디 될 말이냐!
 
243
정석     알구 보면 아버님 고집으루 집안이 이 지경투룩 됐습넨다! (間[간]) 진작에 집안을 세 포기며 세 포기 네 포기면 네 포기를 뚜욱뚝 갈라서 헤쳐놨어만 보시우? 그랬으면야, 그 중에서 한 포기나 두 포긴 망했을 값이라두 성한 포긴 성했지! 어디가 요렇게 물루 씻은 듯 말끔히 망해 버리구 말아요?
 
244
고씨     느이 아버님, 노상 말씀하시는 용머리 윤선달네 집안, 못 보느냐? 그 사람네 집안은 우리 집 전장만두 못하믄서 식구는 더 많어두, 전답 잽혔다가 떠내려보내네, 집행을 맞네 한닷 소리 없더라! 외려 해마다 성세가 늘어간다는 소문은 들려두!
 
245
정석     어머니? (間[간]) 용머리 윤선달네가 우리 살듯 한답디까? (間[간]) 거긴 드메골짝이구, 옌 명색이 읍이예요. 그 사람네야 들기름이나 쇠기름으루 불을 켜지 우리처럼 남포동에다가 석유불 켠답디까? 그 사람네 여섯 부자가 누구 하나라두 우리들처럼 양복 입구 구두 신구 다닌답디까? 서울루 군산으루 대처(大處) 출입하는 사람이 있으며, 권연 피우는 사람은 있답디까? 자질들을 둘셋씩 서울루 유학 보냈답디까? (間[간]) 그 사람넨 명지허구 모시허굴랑은 짜서 값 많이 받구 팔구서 미명허구 삼베만 입지요? 봄버튼 가을까진 보리밥으루만 욱이지요? 식구라군 있는 대루 죄다 생일을 하지요? 논이라군 있는 대루 죄다 즈이네 손으로 농살짓지요? 번연하잖아요? 쓰는 덴 없는데, 이리저리해서 생기는 건 있으니깐, 되려 밀려서 형세가 늘어갈밖에요.
 
246
형석     우리두, (間[간]) 이런 말은 지금 다아 소용 없는 소리지만 서두 형님이 그렇게 담이 크지만 않았어두, 이 지경투룩은 되질 않았더란다!
 
247
정석     허기야 것두, 큰형님이 무슨, 물산객줄 하시구퍼서 시작했으며, 어장이니, 금광이니, 필경은 막가는 길루다가 미두니, 그런 걸 하시구퍼서 호사거리나 심심소일루 시작하섰나요?
 
248
형석     나두 머, 그 으런을 원망하는 건 아니란다!
 
249
정석     세태가 전과 달라서, 농살 짓구 도질 받구 하는 것만 가지군 일년 가용이 모자라질 않었어? 석율 사서 써야 하고, 삼전이나 오전짜리 권연을 사면 하루밖엔 피우질 못허구, 구두 한 켜레면 팔구 원이요, 양복 한 벌이면 삼사십 원이구, 아이들 학빈 다달이 사십 원씩이구 (間[간]) 그렇게 다리 물쓰듯 쓰는 용을 무얼루 충당했는데요? 큰형님이 군에서 받는 월급 고까짓것 삼십 원으루? 어디 어림이나 있나요? 헐수없이 빚을 질 밖에요! 다달이 빚이요 해마다 늘어가느니 빚 아니겠어요? 몇해지간 그리구 나서 보니 빚이 겁나게 앞에 와서 챘지요? 이건 이래선 안되겠다구, 담은 큰 으런이겠다, 한목 큰 이문을 볼 령으루 물산객줄 시작했지요? 실팰 하구서 그 다음엔 어장을 했지요? 또 실팰 하구서 금광을 했지요? 것두 실팰 하구선 마주막엔 미두! (間[간]) 그렇지만 미둔 더 허왕한 노름? (間[간]) 그동안 줄곧 손만 보잖었어요? 그 사품에 논, 밭, 산장, 집 모두 저당에 들어갔지요? 들어가선 이자만 연해 늘어갔지요? 그리다간 기한이 지난다치면 떠내려가구, 떠내려가구!
 
250
형석 / 고씨   (길게 한숨)
 
251
일동     (잠시 침묵)
 
252
정석     (이윽고) 소위 대가족주의라구, 많은 권솔이 한 울안에서 살기라는 게, 마치 여럿이 한 상에 둘러앉어서 밥먹기 같습넨다! 혼자서 먹는다 치면 가령 반 그릇밖엔 안 먹히던 밥이라두, 여럿이 같이서 먹는다 치면 훨씬 더 멕히질 않어요? (間[간]) 삼형제나 사형제가 한 집에서 살면 혹시 밥짓는 남구나 더얼 들까? 괜헌 용, 무책임한 용 그게 은근히 여간만 나는 게 아녜요! 가령, 우리 집 토지가 논만 닷 섬지긴가 그랬대지요? 그걸 그런데, 분잴하자면 큰형님은 어머님 아버질 모서야 하구 장자니깐 절반 이상 타시겠지. 그나머지 두 섬지기쯤 가지구서 형님허구 저허구 나누겠지. 한다치면 우선 저만 하더래두, 내 재산이란 건 도통 한 섬지기 요것뿐이다 하게 되거던요. 그러니깐 그놈 한 섬지기 재산을 한도로 삼아가지구서 생활표준을 세울 게 아니겠나구요? 그 수입, 그 범위 안에서 옷두 해입구, 담배두 오전째릴 사서 피울 데 삼전째리로 낮추구. (間[간]) 그런데 분잴 하질 않구서 함께들 산다 치면 우리 집 재산이 닷 섬지기니라 하거던요! 닷 섬지기. (間[간]) 닷 섬지기 재산이거니 생각을 하구 있으니깐, 제 앞으루 한 섬지기 재산을 타가지구 나앉으니보담 맘이 우선 풍더분헌 것 같구, 눈두 자연이 높을 게 아녜요? 식구가 그만침 많으니깐 용두 그만침 더 쓰인다는 건 요량을 대개 않구서 말이지요! 그게, 삼형제면 삼형제 죄다가 다아 그렇거든요! 허니깐 결국 가선 삼오십오, 일백오십석지기 재산 정도로 실 가용은 쓰이게 되질 않겠어요?
 
253
형석     내야, 머, 요 몇해지간 정말이지, 권연 한 곽이라두 사 피운 일이라군 없다!
 
254
정석     일 테면 말이지, 해필 형님더러 낭빌 하섰대나요!
 
255
형석     작년 봄버틈, 대원이놈 학비 이십 원씩은 다달이 대오지만서두.
 
256
정석     애당초에 그러니깐, 저어 외국사람들이 하는 법식으루,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일랑 그 두분 따루. 큰형님일랑 큰형님 따루, 형님일랑 형님 따루, 죄가 따루따루 포길 갈랐더라면 설마 오늘날 이 지경투룩은 이르질 않었으리란 그 뜻으루다가 하는 말이에요! (間[간]) 누구보담두 형님은 성했으리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두 단 얼마간이래두 띠어서 당신들이 지니구 기섰으면 십상 무사하섰을 테지만. (間[간]) 그러니, 지금 요모양으루 몽땅 치팰 당하느니보담 한 포기나 두 포기만 성했더래두 그게 어디요?
 
257
일동     (침묵)
 
258
정석     (일어서서 뒷짐을 지고, 토방으로 오락가락하다가) 헤쳐야지요! (間[간]) 지끔이래두 헤쳐야지요. 우선 정릴 해가지구, 단 한푼이 남더래두 그런 대루 정릴 해가지구서 따루따루 해쳐야지요! 그밖엔 아마 별 도리가 없으리다.
 
259
형석     허기야 나두 느을 허느니 그 말이지만, 아버님이 무가내하루 안들으시구, (間[간]) 생각하면 또 그게 어디 일조일석으루 쉰 일이냐?
 
260
고씨     내 밥술이나 먹구 지낼 때두 그렇지 못했는걸 시방 더구나 이 지경이 돼가지구서 뿔뿔이 흩어지다니, 차마 할 노릇이냐! (間[간]) 굶어두 같이 앉어서 굶구, 죽어두 같이 앉어서 죽는 것이구, 허지!
 
261
정석     전 그래서 이렇게 아주 작정을 했어요! (間[간]) 전, 전 떠나구요. (間[간]) 워너니가 영영 집에 붙어 있자던 요량이 아니었으니깐요. 그리구 진작버틈 다시 일어서자구 벼루던 참이니깐요. (間[간]) 그러니깐 이번 계제에 낼이구 모레구 아주 떠나구 마는 것이구요.
 
262
고씨     전답이 없어지거나 집안이 망하거나, 그런 건 다아 열두째니, 제발 이 늙은 에미애비 가슴 좀 고마안 피워주려므나! 어쩌자구 또 뛰쳐나가려굴 든단 말이냐? 어쩌자구!
 
263
정석     허! 궁리가 본디 그렇게 뚫린 걸, 지끔 와서 어떡허는 수가 있나요! 팔자라께 다른 것 없읍넨다!
 
264
고씨     시상의, 불효 불효 해두 너 같은 불효가 있을라더냐? (間[간]) 우완중에 인제는, 전처럼 잘 먹구 잘 입구 편안히 살적허구두 다르구 집안은 망해 부모 형제간은 굶어죽기 아니믄 남의 집 문전걸식을 하게 된 이 정상을 번연히 네 눈으루 보구서두 다시 또 가슴을 피워 주자구 드니, 니두 목석이 아닌 바에야! (눈물을 씻고, 間[간]) 삼순구식을 하더래두 마음이나 편해야 며칠 남지두 않은 여생을 명대루나 살들 않느냐!
 
265
정석     자식 된 도리라든지 인정이라는 걸 생각하면 저두 그야 송구스럽기두 허구, 차마 못할 노릇이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구서 어디.
 
266
고씨     이 천지에 사람이 너 하나뿐이길래, 해필.
 
267
정석     이 천지에 저 같은 자손을 두구서 가슴을 태우는 부모네가 유독 우리 부모뿐이겠어요!
 
268
형석     좌우간 어서 전보나 좀 치게 하려므나?
 
269
정석     네에. (間[간], 여전히) 그리구, 전 떠나구요. (間[간]) 내원이 놈 즈이세 모잘라컨 즈이 외가루 보내겠어요!
 
270
고씨     점점, 헌다는 소리가!
 
271
정석     기집자식을 친정살이 외가살이루 보낸다는 게 치사스럽기두 허구, 즈이루두 못할 노릇이구 하긴 하지만, 지끔 이 지경이 된 집안에다가 떼쳐두구서 저만 훌 떠나버리기두 무책임한 짓. (間[간]) 전과두 달러서 늙으신 부모 댈 심 없이 된 형님네가 어떻게 그 부담까지 하시우? (間[간]) 요행, 끼니는 굶잖는 모양이니깐 가서 눈치밥 좀 얻어먹구 살래지요!
 
272
고씨     (강경하게) 넌 내 자식이래서 그렇게 다아 함부루 거천을 해두 고만인 줄 알어두 난 내 소중한 내 손자자식을, 참, 데리구 앉어서 굶길 망정 천하 없어두 외가살인 안 보낼 테니, 그리 알어라!
 
273
정석     건 또, 자량해서 하세요! 구태라 그렇게만 한다는 건 아니니깐요. 전 머, 이래두 고만 저래두 고만, 불필히 참견하잘 것두 없는 노릇이니깐요! 실상은. (하수의 옆채 사이께로 천천히 걸어간다)
 
274
형석     지끔 곧 치게 해여!
 
275
정석     네에. (퇴장)
 
276
형석     (우두커니 먼산을 바라다보면서 방백) 날이 이렇게 가물든지 해서 그해 농사가 잘 되구 못되구 하게 되는 고팬다 치면 미두가 세월이 좋아서 더러 큰수를 잡는 수두 있다드구먼서두! (한숨) 요행, 이 으런이.
 
277
(인원과 대원,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총총히, 그러나 원기 없이 등장. 둘이 다 같이 경성 어느 관립고등보통학교의 제복 제모로 차렸고, 손에는 바스켓 하나씩 들었다.)
 
278
(동시)
279
 형석    웬일들이냐?
280
 고씨    웬일들이냐?
 
281
(형석과 고씨, 다음 순간 놀란 기색이 물 씨듯 쓰이고 흐린 얼굴로 갈리면서, 인원과 대원이 시무룩하니 말없이 가까이 걸어들어오고 있는 양을 바라다만 본다. 인원과 대원, 토방 앞에서 잠깐 주춤거리다가 이내 마루로 올라가, 고씨한테 우선 절을 한 자리씩 하고. 그 통에 고씨는 도로 자리에 앉고. 형석, 관객석을 향해 선 채 한손은 허리를 짚고서 넋을 놓고.
282
인원과 대원은 형석에게 절을 하지 못해 서서 잠깐 망설이다가 그대로 관객석을 향해 나란히 앉고. 일동, 한동안 침묵)
 
283
고씨     (손 바로 앉았는 대원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쯧쯧! 시상의.
 
284
형석     (이윽고 돌아서서는, 또다시 한참이나 두 아이를 건너다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 게?
 
285
인원 / 대원   (고개를 숙이고 앉아, 무언)
 
286
형석     그래서?
 
287
인원 / 대원   (저희끼리 서로 돌려다보다가 로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
 
288
형석     응?
 
289
인원     하숙집 쥔이.
 
290
형석     못하겠다구!
 
291
인원     한 달치두 아니구, 석 달치씩이나 밀린 걸, 가을꺼정 기대리는 게 다아 머냐구.
 
292
형석     (한숨, 돌아선다. 침통한 얼굴)
 
293
고씨     쯧쯧! 가엾어라! 이것들이 공불 갔다가 밥값을 못 내서 도루 이렇게 쫓결 오다니! (목이 멘다) 에구 가엾어라! (눈물)
 
294
인원     (입술을 야긋이 씹고 있다가 번뜻이 고개를 치들고는) 작은 아버지!
 
295
형석     (그대로) 오냐!
 
296
인원     (잠깐 벼르다가) 전 이따가 밤차루 도루 올라가겠어요!
 
297
대원     난두 따라갈걸! 머.
 
298
인원     대원인, 저 혼잔 안 내려올 령으루 해서, 데리구 왔으니깐, 얼마 동안 집에서 자습이나 하믄서 기대리구 있게 하세요!
 
299
대원     왜 그래? 난두 같이 가서, 고학할걸!
 
300
형석     (돌아서면서) 무슨 소리들이냐?
 
301
인원     전 앞으루 일 년두 다아 못 남었으니깐, 고학이래두 해서 마저 마치겠어요!
 
302
대원     난 고학하믄 못쓰나? 머. (갑자기 주먹으로 눈물을 씻는다) 형허구 같이 할래! 난두.
 
303
인원     넌 아직 못해요! 넌, 내, 인제 졸업하구 나서 취직해서 학비 대주께시니 그동안 기두르구 있는 거야!
 
304
대원     싫여! 난두 같이 가서.
 
305
고씨     건 무슨 소리들이냐?
 
306
형석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선다. 눈엔 눈물이 글썽글썽)
 
307
고씨     으응? 무얼 어떡헌다구?
 
308
대원     난 떼놓구, 형만 도루 가서 고학한대애!
 
309
고씨     고학?
 
310
대원     약두 팔구, 호야만주두 팔구, 그렇게 해설랑 돈 벌어가믄서 공부하는 거 말유! 인력거두 끌구.
 
311
고씨     오온! 느이가 어디라구 그 짓을 하느냐? 오온 게 어디 당한.
 
312
(머슴,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허얼헐 숨이 차 가빠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등장)
 
313
(서로)
314
 머슴    작은서방님!
315
 형석    웬일이여?
 
316
머슴     얼른 좀!
 
317
형석     응! (마당으로 쫓아내려가면서) 왜?
 
318
머슴     물 다아 뺏겨유!
 
319
형석     어느 놈이? (두 주먹을 불끈, 상수의 차면께로 급히 나가면서) 하, 이놈들! 살인나구 싶은가 보다?
 
320
(고씨, 인원, 대원 당황하여 토방으로 내려서고)
 
321
고씨     애야! 남허구 시비할세라!
 
322
인원     할머니! 나, 나가 볼래여?
 
323
고씨     그래라! 어서, 좀.
 
324
대원     난두?
 
325
고씨     너두! 애여 남허구 시빌랑은 마라아?
 
326
(인원과 대원, 구두를 재빨리 집어 꿰고는 상수의 차면 밖으로 마악 퇴장하는 형석과 머슴의 뒤를 쫓아 마당을 달려나가고. 불의의 요란한 동요에 놀란 여인들과 아이들, 대청마루 안방의 뒷문 혹은 옆채 사이로 해서 우우하니 몰려나오고 급히 막)
【원문】1 막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희곡〕
▪ 분류 : 희곡
▪ 최근 3개월 조회수 : 48
- 전체 순위 : 1156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4 위 / 6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4) 벽(壁)
• (2) 제향날
• (2) 두 애인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당랑의 전설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0년 [발표]
 
  희곡(戱曲)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희곡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처음◀ 1권 다음 한글 
◈ 당랑(螳螂)의 전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