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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이광수) ◈

◇ 18. 나라의 부르심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1923.12
이광수
1
하시고, 다만 구하는 것이 제갈 양에 비길 만한 모사와 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처로 사람을 보내어 일변부자를 달래고, 일변 지혜와 모략과 용맹이 있는 사람을 구하였습니다. 금강산 지리산 같은 명산속에 숨어 있는 불승 선객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 잡는 어부며, 나무베는 초부며, 심지어 도적놈 거지 중에서라도 키가 남달리 크러나 또는 적거나 얼굴이 남달리 준수하게 생겼거나, 또는 기괴하게 새겼거나, 목소리가 남달리 크거나, 또는 가늘거나, 코게 약아 보이거나, 크게 어리석어 보이거나 밥을 남달리 많이 먹거나, 숨을 많이 먹거나 걸음을 빨리 걷거나, 헤엄을 잘 치거나, 무릇 조금이라도 남과 다른 사람이며 불러 울리고 한 가지 재주라도 남보다 나으며 불러 울려서 이상야릇한 사람들이 장안 안에 수천명이나 왁시글 덕시글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여름에 얼음을 얼린다는 놈, 육정육갑육을 부려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고, 모래 판에 불리 붙게 한다는 놈, 귀신과 이야기를 한다는 놈,한 번 곤두박을 치면 스무 길 서른 길이나 공중으로 올라 솟는다는 놈, 돌팔매 잘 치는 놈, 택견 잘하는 놈, 욕지거리 잘하는 놈, 키가 구척이나 되는 놈, 땅에 붙어 발발 기는 등꼽장이, 곰보, 애꾸눈이 , 외팔이, 대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팔도 괴물들이 날마 다 꾸역꾸역 남대문으로 동대문으로 기어 올라와서는 어딘지 모르나 어느 대궐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나라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구한다 하니까, 난봉놈, 건달놈, 남의 밎을 지고 할 수 없는 놈, 능청스럽게 거짓말일수 잘 하는 놈, 놀기만 좋고 일하기 싫은 놈들이 모두 무슨 큰 재주나 품은 듯이 나도나도 하고 서울로 기어오르는데 크나 큰 나라 기구로도 미처 이 많은 괴물들을 주체할 도리가 없이 되었습니다.
 
2
이 무리들이 밥을 마냥 먹고, 술을 마냥 먹고, 어떤 놈은 주역을 외우고, 어떤 놈은 마당에 나와서 칼릉 두르고, 어떤 놈은 대궐 기둥과 택견을 하고, 어떤 놈은 궁장을 뛰어 넘노 라고 궁장 기괏장으 깨뜨리고, 어떤 놈놈은 빽빽 소리를 지르고, 어떤 놈은 바람 벽을 향하고 않아서 어깨를 넘고, 어떤 놈은 동팔매를 쳐서 남의 집 장독을 깨트리고, 대체 와글와글 응앙 와당탕 퉁탕 삘리리 뺄리리 떨거덕 딱딱 도깨비판입니다.
 
3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별로 특별한 재주를 가진 자도 없는 모양이요.가끔 가다가 내 도가 정도다. 내 재주가 제일이다하고, 언쟁이 시작되다가는 와지끈 뚝딱하고 싸움이 벌어져서 피가 프르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귀가 떨어지고, 코가 날아가고, 대가리가 터지고 야단이 납니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잡아다가 가둘 수도 없고, 내어 쫓을 수도 없고, 상감께서도 두통이 나셨습니다.
 
4
어쩌면 조선 팔도를 그물로 흝으다시피 뒤져도 이렇게 사람이 없담! 상감께서는 심히 낙망하시게 되셨습니다. 상감님께서도 젊으셔부터 경영하시는 일이 두위밑에 백발이 희끗 희끗 보이게 되어도 뜻을 이루지 못하시니 어찌 한이 안 되시겠음니까 그래서 글레레는 날마다 이 대장을 대하셔서 근심을 하겼습니다. 이러한 즈음에 변 진사가 이 대장에게 허생 말을 하였더니 이 대장,
 
5
『옳소! 허생원 말은 나도 어디서 들은 일이 있거니와 이 사람이요! 이 사람이요!』
 
6
하고 곧 대내에 들어가서 삼감님께 허생의 말씀을 아뢰었습니다. 그런즉, 삼감께서는,
 
7
『만일 그럴진댄 이사람이야 말로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람이요. 그러면 이 대장 오늘 밤으로 그 사람을 찾아 보오, 찾아 보아서 과연 그러하거든 내가 부른다고 하오.』
 
8
하셨습니다.
 
9
『예, 명대로 하겠습니다.』
 
10
하고 이 대장이 그날 밤에 허생을 찾기로 하고 물러 나왔습니다.
 
11
이 대장은 저녁을 먹고 사람을 보내어 변 진사를 청하였습니다. 이 대장이 변 진사를 보고,
 
12
『여보시오,오늘 전하께서 허생을가 보고 부르라하고 하시니 찾아야 가겠소! 체면에 내가 어떻게 일개 백면서생을 찾아야 가겠소 어찌 변 진사가 가셔서 내 집으로 허생원을 좀 데리고 오실 수가 없겠소!』
 
13
한즉, 변 진사는 큰일이나 난 듯이 펄쩍 뛰며,
 
14
『대감 망녕입시오.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이길래 불러오신다는 말씀이 당하오니까. 대감께서 친히 찾아가시더라도 꼭 만나실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대감 망녕입시오.』
 
15
합니다. 이 대장은 껄걸 웃으며,
 
16
『압다 어쨌으나, 그 사람이 어지간하기는 한가 보오마는 설마 그처럼 도고하겠소? 자 한 번 가 보시오 ─옳지! 그러 면 내가 손수 편지를 써 드리리다,』
 
17
하고 벼룻집을 여는 것을 보고, 변 진사는 손으로 막으며,
 
18
『대감 아니 됩니다. 그렇게 불러서 올 사람이 아닙니다. 상감 마마께오서 부르신다 하더라도 좀체로 올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만일 대감께서 허생원을 만나시려거든 나하고 같이 허생원 댁으로 가셔야지 그렇지 않고는 만나실 도리가 없습니다.』
 
19
하고 아주 준절하게 이 대장의 말을 거절합니다.
 
20
이 대장은 하릴없는 듯이 사람을 불러 등불을 들리고 사오인 호위병을 앞세우고 초헌에 높이 앉아 묵적골 허생의 집을 찾아가갔습니다. 변 진사는 이 대장더러 잠깐 대문 밖에 서 기다리라 하고 자기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허생은 변 진사가 오는 발자취를 듣고 창을 열고 맞으며,
 
21
『오늘은 어찌해 늦으셨어요? 나는 변 진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늦도록 아니 오시기로 혼자 술을 먹고 있지요. 자 들어오셔요. 술이란 동무가 있어야 하는 것이야요. 돈은 혼자만 가져야 좋지요?』
 
22
하고 조롱하는 듯이 변 진사를 끌어 들입니다. 변 진사는 허생에게 끌려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어찌할 줄을 몰라 허둥지둥하는 것을 보고 허생이,
 
23
『웬 일이시오? 오늘은 돼 이렇게 허둥지둥하시오? 돈을 잘리셨어요? 자 한 잔 잡수시오.』
 
24
하고 한잔을 따라 변 진사를 권합니다.
 
25
변 진사는 한참 동안이나 어떻게 말을 내어야 좋을지 몰라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기운을 내어 떨리는 소리로,
 
26
『대문 밖에 누가 기다리십니다.』
 
27
한즉,
 
28
『누구야요. 술동무를 하나 청하셨나요? 들어외시라지. 내 집에 못들어올 사람이 어디 있어요!』
 
29
하고 허생이 일어나려 하는 것을 변지사가 허생의 팔을 붙 들며,
 
30
『다른 이가 아니라 저 나도 여러 번 말씀하였거니와 저 재동 대감이 오셨는데 어명을 받들어 가지고 생원님을 만나 보이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31
하고 허생의 귀에 거슬리지 않게 말을 하려고 애를씁니다.
 
32
그러나 허생은 그 말도 다 듣지 아니하고,
 
33
『재동 대감이란 누구요?』
 
34
하고 물은 즉,
 
35
『저, 이 완이 대장 말씀이야요.』
 
36
하고 변 진사는 허생의 낯 빛만 엿봅니다.
 
37
허생은 일어나며,
 
38
『아뭏든 이 내 집에 못 들어올 사람은 없으니까.』
 
39
하고 쌍창을 열어젖뜨리며 큰 소리로,
 
40
『대문 밖에 섰는 손님 이리로 들어오시오. 내 집에는 아무나 못 들어올 이는 없으니 대문 열고 들어오시오.』
 
41
하고 외칩니다.
 
42
변 진사는 그만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리고 두 손으로 모가지만 만지고, 이 대장도 한참이나 문밖에 우드커니 기다리고 섰는 창피를 당하다가 그래도 대문까지 나와 맞기는 하려니 하였던 것이, 마치 어른께 세배드리러 온 아이들을 부르는 모양으로, 이리 들어오라는 호령을 듣기는 어른된 뒤에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맘에 아니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였지마는 이것도 임금의 명인 것을 생각하고, 또 옛날에 주공이 삼악발 삼토포 하던 것을 생각하여, 나라 일을 하려면 이런 일도 당하여야 한다하여 모든 것을 아니꼬운 침과 함께 꿀떡꿀떡 삼키고 허생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43
허생은 흔연히 이 대장을 맞아 자리에 앉힌 후에 위선 술을 한 잔 따라 권하며,
 
44
『누구신 줄은 압니다. .......자 한 잔 잡수시지요.』
 
45
하고 마치 구면 친구에게 대한 듯합니다. 이 대장도 남아라 이말 저말 없이 허생이 주는 술잔을 단숨에 죽 들이키고 손수 그 잔에 술을 가득 부어 허생을 권하니 허생이 또한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십니다.
 
46
변 진사만 혼자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게 공연히 얼굴이 후끈거립니다. 그러다가 허생이 너무 이 대장에게 무례하면 어찌하나 하고 그것이 근심이 되는 까닭입니다.
 
47
연해 권하는 허생의 술을 받아 마시노라고 미처 입을 열 새도 없다가 서너 순배나 지나간 뒤에야 간신히 기회를 타서 이 대장이,
 
48
『오늘 저녁에 이렇게 찾아 뵈옵기는 큰 일을 위하여 한 것 입니다.』
 
49
하는 것을 허생은,
 
50
『압다 술상을 대하였을 때에야 술 먹는 것 밖에 더 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자 어서 이 잔을 받으시지요......술을 먹다가 밤이 남으면 그때에 다른 이야기를 하시지요.』
 
51
하고 연해 술을 권하고, 다른 말은 아예 들을 생각도 하지 아니합니다. 이 대장도 이런 자리에서 용렬한 모양을 보일 수가 없으므로 주는 대로 받아 먹기는 하면서 막중한 군명을 생각하면 차차 맘이 오마조마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참다 못하여 겨우 또 한번 기회를 타서,
 
52
『그런데, 내가 오늘 선생을 찾아 온 일이 심히 중데한 일 이니까 막중한 군명이요. 국사니까 생원께서 말씀할 기회를 주셔야겠는데요.』
 
53
하였습니다. 이 말에 허생은 심히 의외인 듯이 이 대장을 보며,
 
54
『군명이라니, 무슨 군명이시오!』
 
55
하고 엄숙하게 물습니다. 그제야 이 대장은 말할 기회를 얻었다 하고,
 
56
『선생께서도 아시겠지요마는 금상께서 북벌을 생각하시고 준비하시는지가 벌써 십 이년이 되셨지요. 그래서 일변 무기와 화약을 만들고, 일변 팔도 인재를 구하여 인제는 거의 준비가 다 되었는데, 이러한 국가 대사를 하려면 큰 인물이 있어야 하지 아니합니까. 그래서 금상께옵서도 소의 한식으로 인물을 구하시던 중에 선생의 성화를 들으시옵고, 오늘 나를 부르셔서, 선생을 모셔오라 하시고 대명을 내리시와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선생을 찾아 온 것입니다. .....선생게서는 세상 공명을 부운같이 생각하시고, 천지간에 우유자적하시기를 본회로 아시는 것은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마는 막중한 군명이시고, 또 국가 대사니 선생게서 출마를 아니하시면 군국 대사를 누가 맡겟습니까. 또 지금이 천재 일우의 좋은 시기라 시일을 천연하다가 비기가 누설되면 대사는 낭패가 될 것이니 늦더라도 금춘에는 거사를 하여야 될 것이외다. 선생게서는 사양하지 마시고 군국 대사를 맡으시 도록 허락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57
하고 극히 공손하게 극히 엄숙하게 말하였습니다.
 
58
허생은 눈을 반쯤 감고, 이 대장이 하는 말을 듣더니 이 대장의 말이 다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았다가 스르르 눈을 뜨며,
 
59
『북벌이라 하면 청국을 친단 말인가요?』
 
60
하고 이 대장에게 물습니다.
 
61
『그렇지요.』
 
62
『무슨 까닭에 청국을 치시나요?』
 
63
하고 허생이 묻는 말에 이 대장은 어찌 대답할 바를 모르는 듯이 머뭇머뭇하다가,
 
64
『명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런 것이지요. 임진왜란에 명나라가 우리를 도와 주었으니 그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지요.』
 
65
합니다. 허생은「명나라 은혜」라는 말에 이 대장을 힘껏 노려보더니 심히 분노하는 목소리로,
 
66
『그래, 겨우 그분이란 말이요? 종이 상전의 원수를 갚는 것이로구려?』
 
67
하고 호령을 합니다.
 
68
『그보다 조금 더 속이 클수는 없소? 그래 십년 내로 일단 정성으로 생각한 것이 겨우 요만한 고린 생각뿐이란 말이요? 어서 가시오! 내 집에 앉았지 말고, 냉큼 못 생긴 놈들 틈으로 나가 들어가 박이시오!』
 
69
하고 술상을 손으로 치니 주전자가 술을 흘리며 춤을 추고, 술잔이 방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져 굽니다.
 
70
허생이 호령을 하는 통에 변 진사는 그만 경황 실색하고, 벌벌 떨기만 하고 쓸데 없는 그 커다란 눈만 허생에게서 이 대장에게로 이 대장에게서 허생에게로 쉴새 없이 굴러 왔다, 굴러 갔다 합니다. 이 대장도 어지간히 놀라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으나 꿀꺽 참고, 허생이 진정하기만 기다리다 가 마침내 허생이 자기더러 방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고는,
 
71
『선생, 그렇게 노여시는 것도 지당하시외다. 그러나 좀더 자세한 말씀을 들으시지요.』
 
72
하고 여전히 애걸하는 듯하나, 그래도 힘있는 어조로 말하였습니다. 그런즉, 허생은 적이 노를 진정하며,
 
73
『글세 여보시오! 조선 팔도의 힘을 기울여서 북벌을 한다 하기로 그래도 좀 큰 뜻이나 잇는가 하였더니 겨우 그것이란 말이요?─ 겨우 대명국 원수를 갚는 것 분이란 말이요?』
 
74
하였습니다. 이 말에 이 대장은 한숨을 쉬며,
 
75
『어찌 뜻이 그것뿐일 리야 있습니까. 원수를 갚는다 하더라도 명나라 원수보다 남한산성 원수가 더욱 클 것이지요. 또 이왕 대병을 일으켜서 만리 중원을 들어친다 하면 한번 대조선 남아의 기개를 보이자, 뜻을 펴자, 한번 우리 성상으로 하여금 천하를 다스리도록 하자 하는 뜻이 어찌해 없겠습니까. 이 완이가 비록 용렬한 사람이어니와 몸이 나라의 중록을 먹고, 허리에 칼을 찬 사나이라 비록 벌써 귀밑에 속절없이 센 터럭이 나부낀다 하더라도 그만한 뜻과 기개가 없을 리야 있겠소오니까..... 하지마는 저 몸에 소매 긴 옷을 입고 머리에 정주자의 관을 쓴 무리들이 이소사대(以小事大)를 떠들고, 나 해야 그 무리들의 뭇주둥이를 막을 것이니까 그러는 것이지 어찌 성상의 뜻이나 이 완의 뜻이 그러할 리야 있소오니까?』
 
76
하였습니다.
 
77
허생은 또 아까 모양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이 대장의 말을 듣고 있더니, 이 대장의 말이 끝나자 눈을 번쩍뜨며,
 
78
『그러면 준비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79
하고 태도를 공손히 하여서 물은즉, 이 대장은,
 
80
『화약이 오천근이요, 마병이 만명에, 보병이 이만명, 군량이 오만석, 마초가 십만 단, 돈이 백만 냥, 총이 만자루, 대 완구가 이백 오십채..... 이만하지요.』
 
81
합니다. 허생은 무슨 궁리를 하는 듯이 이윽히 가만히 앉았더니,
 
82
『서울서 북경까지 며칠이면 득달할까요?』
 
83
하고 물습니다.
 
84
『연경이 섬천리라니 하루에 오십리씩 행군을 하더라도 육십일, 두 달만에야 득달을 하지요.』
 
85
하고 이 대장은 왜 이런 소리를 묻는고 하는 듯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허생을 치어다봅니다.
 
86
『암록강에서 북경까지에 다리로 건너는 강이 몇이며, 배로 건너는 강이 몇인가요?』
 
87
합니다. 이 대장은 이윽히 생각하더니,
 
88
『북경 다녀 온 사람에게 물어 보아야 알겠습니다.』
 
89
하고 약간 낯을 붉힙니다.
 
90
『그러면 암록강에서 북경가지에 골은 몇이며, 군대 있는 곳은 어디어딘가요?』
 
91
이 대장은 다만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습니다. 대답이야 있거나 말거나,
 
92
『암록강에서 북경가지에 우물이 몇이나 되나요? 많은 군사가 행군을 하다가 물이 떨어지면 큰 일 아닌가요?』
 
93
또 이 대장은 대답이 없습니다. 대답이야 있거나 말거나,
 
94
『청국에 양자강 이북에 있는 군사는 얼마며, 강남에 있는 군사는 얼마며, 강북에 이름난 장수는 몇몇이나 되며, 성명은 누구누구, 나이는 어떻게나 되었나요?』
 
95
하고 허생이 이 대장을 바라본즉, 이 대장은 수그러진 고개를 더욱 수그릴뿐이요, 대답이 없습니다.
 
96
허생은 가엾은 듯이 얼굴을 찡기며,
 
97
『청국 일을 모르신다 하면 우리 조선에 십 팔세 이상 사 십세 이하 되는 남자의 수효가 얼마나 되나요?』
 
98
한즉, 역시 이 대장은 대답이 없습니다.
 
99
허생은 심히 이 대장이 가엾기도 하고, 또 기막히기도 하여 차마 이 대장을 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다른데로 돌리고, 이 대장은 점점 고개가 숙어지고, 어깨가 숙어지고, 마침내 앉아서 조는 사람 모양이 되어 버리고, 변진사는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듯이 허생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100
허생은 주전자에 남은 술을 따라 한 잔을 죽 들이키더니,
 
101
『여보서요 이 대장, 이왕 모르시는 것을 그렇게 근심만 하시면 어찌합니까.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준비를 하셔야지요. 대체 전쟁이란 얼른 보기에는 화약과 총과 대완구와 마병과 보병으로 하는 것 같지마는 이것은 끝이지요. 두 사람이 장기를 둘 때에 피차에 차, 포, 마, 상, 졸, 열 여섯 쪽을 꼭 같이 가지고 둔다 하더라도 지는 자는 지고, 이기는 자는 이기는 것은 두는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오니까. 그런데 청국은 과연 대국이라 지방이 우리 나라의 이십 갑절이 넘고, 인종이 또한 그러하니 말하자면 이편에는 장기 쪽이 열 여석 밖에 없는데 저편에는 그 스무 갑 절 즉 삼백 스무 쪽을 이기려 하니 어려운 일 중에도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오니까...... 그러나 열 여섯 쪽으로 삼백 스무 쪽을 이기는 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잘하면 이기는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이기는 법은 운수도 아니요 요행도 아니요. 그러면 무엇인가. 저편 삼백 스무 쪽 중에서 적어도 일백 예순 쪽을 내 것을 만들어야지요. 결국 강한 자는 이기고, 약한 자는 지는 것이니까요. 장기로 보더라도 잘못 두는 사람은 제 말 때문에 지기도 하고, 잘 두는 사람은 남의 말을 다리로 삼아서 포장군을 부르는 것이 , 아닌가요. 하니까 이제 우리가 북벌을 하려면 먼저 저쪽 장기 쪽을 내 것을 만들고, 그런 뒤에 화약도 쓸데 있고, 마병 보병도 쓸데 있을 것이요, 우리가 북경을 들이치려 할 때에 어떻게 수만의 군사를 다 끌고 가기는 하며, 그 군사가 먹을 양식을 다 싣고 가기는 합니까. 사람 있는 곳에 우리 군사가 있고, 곡식 있는 곳에 우리 군량이 있고 풀 있는 곳에 우리 마초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금년에 동병한다는 급한 생각은 아예 내어 버리고, 적더라도 금후 오넌 동안 준비를 더 하셔야지요..... 자 식었지마는 술이나 한잔 더 잡수시오. 』
 
102
하고 찬 술을 권합니다. 이 대장은 마지못하여 허생이 권하는 술잔은 받아 마시었으나 혼이 몸에 붙은가 싶지 아니하고 세상에 자기 한몸을 용납할 길이 없는 것 같고, 자기는 마치 눈에 보이지도 않게 아주 조그마한 빈대나 벼룩인 듯 싶었습니다.
 
103
그러나 대장이 보기에 허생은 과연 선생님이었습니다. 인제는 어찌하였으나 허생에게 매어달릴 수 밖에 없다 하여 아까까지 가지고 있던 교만한 생각, 허생에게 대한 아니꼽던 생각이 다 스러지고 마치 진정으로 허생의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같이 생각해집니다. 그래서으로 어린 제자가 선생께 여쭙는 태도로 이렇게 허생에게 물었습니다─.
 
104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제부터 무엇이든지 하시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북벌을 위하여서는 하겠습니다. 이 완이의 목숨이라도 내노겠습니다.
 
105
허생은 이 대장의 정성이 넘치는 말에 깊이 감동이 된 듯이,
 
106
『첫째는 명문 거족의 총준 자제를 많이 뽑아 청국으로 보내어 청복을 입고 청어를 배우고 사백여 주에 흩어저 명나라가 유신의 자손들과 깊이 사귀게 하여야지요─이 일을 할 수가 있나요?』
 
107
하고 이 대장더러 물었습니다. 그런즉, 이 대장은 즉시로,
 
108
『할 수 있지요.』
 
109
합니다.
 
110
『또 한가지는 명문 거족을 딸들을 많이 뽑아 청국으로 보내어 그 나라 명문 거족의 자제들에게 시집을 보내어 인척 관계를 맺어야 하지요─이 일을 할 수가 있나요?』
 
111
『심히 어려운 일이지마는 할 수 있습니다.』
 
112
『또 한가지는 지금 국고에 있는 돈과 곡식과 모든 제물을 떨어 전국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전국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의 은혜를 깨달게 하여야지요─이 일도 할 수가 있나요?』
 
113
〈국고에 모아 쌓은 돈과 곡식을 다 흩어서 가난한 백성에 게 주어라? 그렇게 십여 년을 모두 북벌의 목적을 달할 양으로 애써애써 모두어 쌓았던 것을 다 내어 흩어라?〉 하고 이대장은 혼자 생각 하였습니다.
 
114
이대장은 이윽히 생각하다가,
 
115
『그랬다가 정작 거사를 할 임박에 돈이 없으면 어찌합니까. 』
 
116
하고 허생에게 되물었습니다.
 
117
허생은 물끄러미 이 대장을 보며,
 
118
『그만 백만 냥 돈을 가지고 복벌하기에 족할 듯 싶은가요. 군사 한 사람이 백 냥씩을 쓴다 하더라도 만명 밖에못 될 것이니 만명 군사를 가지고 청국을 쳐 넘어뜨릴 듯 싶읍니까......그러니까 지금에 백만냥을 쁘리는 것은 장차 천만냥을 얻자 뜻이요. 현재 국고에 백만냥 돈을 쌓아 두기 때문에 나라에 돈이 마르고, 돈이 마르기 때문에 공장과 장사가 쇠하는 것이니, 공장과 장사가 쇠하면 백성이 가난하여지는 것이요, 백성이 가난하여지면 나라를 원망하는 것이요, 백성이 가난하고 나라를 원망하면 세금을 바치지 아니하는 것이니 백성에게 흩어 일변 백성들의 업을 차 천만 냥을 거두어도 백성들이 기뻐하게 할 계채기지요.』
 
119
합니다.
 
120
말을 들으면 그럴 듯하나 그래도 차마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수는 없어서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121
『그것은 성상께 상주를 해보아야 알겠읍니다는마는, 그리 고 또 할 일이 무엇이 오니까?』
 
122
하였습니다.
 
123
허생은 이 대장의 얼굴에 떠도는 의심의 빛을 보고, 적이 못마땅한 듯이 잠깐 눈을 찡기더니, 다시 전과 같은 태도를 회복하여,
 
124
『또 한 가지는 지금까지에 만들고 놓은 화약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무기를 녹여 농기를 만들고 장안 안에 모았던 군사를 흩어 돌려보내어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지요─이 일을 할 수가 있나요?』
 
125
하고 이 대장의 얼굴을 쳐다 봅니다.
 
126
이 말에는 이 대장이 아니 놀랄 수라 없었습니다. 어찌 하자고 그렇게 십년 동안을 애써 만든 무기를 녹여 벌리고, 화약을 살라 버리란 말인가. 또 어찌하자고 십년동안을 교련한 군사들을 다 흩어 버리잔 말인가. 그러면 아주 복벌의 졔획을 버리잔 말인가. 이 모양으로 이 대장은 하도 엄청나는 허생의 말에 그만 입을 딱 버릴고 한참은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말할 정신을 수습하여,
 
127
『그러면 아예 북벌을 하자니 그리 해야 된단 말이지요.』
 
128
하고 이 대장의 어성에는 다소 분개한 빛이 있습니다.
 
129
『그러면 모처럼 준비하였던 무기와 화약을 아 없애 버리고, 무엇으로 북벌을 한단 말인가요?.』
 
130
하고 훨씬 기운이 살았습니다.
 
131
허생은 어이가 없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132
『그러면 그까짓 무기와 화약을 가지고 청국과 싸우실 작정이던가요? 고만 것으로는 청국의 한 고을도 치기 어려울 것이지요. 이왕 그것만으로는 안 될, 얼마 되지아니하는 무기와 화약을 쌓아 두기 때문에 청국은 조선을 의삼하게 되고, 의심은 저편에서 우리보다 십배 이십배의 무기와 화약을 준비하게 되고, 그럭저럭하는 동안에 화약은 습기를 먹어 불이 아니 일게 되고, 무기는 녹이 슬어서 쥐를 버히기에도 못쓰게 되면, 이런 우습고 어리석을 일이 또 있습니까. 그러니까 요만 것을 애지중지 하는 것은 도리어 큰 화단을 끄는 것이지요. 차라이 이것을 다 없애 버려서 저편의 의심을 활짝 풀어 버리고, 속으로 힘만 기르고, 모든 준비를 이루어 놓았다가 정말 시기가 인한 때에 후닥닥 후닥닥 만들면 일 년이 못되어 지금 있는 무기와 화약보다 몇 십 갑절이나 많이 만들 수 가 있을 것이요, 또 저편에서는 맘을 놓고, 방비를 아니 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적은 것을 버려 큰 것을 취하는 법이요. 허(虛)를 보이면서 실(實)을 짓는 법이지요.』
 
133
합니다.
 
134
허생의 말을 듣고보니 과연 그럴 듯 하지마는 그렇다고 금싸라기같이 애지중지하는 화약을 대번에 태워 버리고 복 방망이같이 믿던 무기로 호미와 쇠스랑을 만들 생각은 좀 체로 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약간 돌아가기 시작하던 이 대장의 고개는 다시 숙어지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얼마를 있더니 이 대장이 천근이나 되는 고개를 겨우 들며,
 
135
『글세,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도 성상께와 여러 대신들과 의논해야 할 일이요, 나 혼자로는 어떻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136
하고 얼마 동안 말을 끊고 고개를 숙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졸리는 듯한 눈으로 허생을 쳐다보며,
 
137
『또 그 밖에 다른 계책은 없습니까』
 
138
하고 물었습니다. 허생은 그 말에는 대답을 아니하고,
 
139
『내가 졸리니 가시오!』
 
140
합니다. 이 대장은 하릴없이 일어나 나왔습니다. 변 진사가 뒤에 머물러서 허생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허생은,
 
141
『나는 잘 테니 어서 가시오!』
 
142
하므로 변 진사도 하릴없이 허생의 집에서 나왔습니다.
 
143
집에 돌아와서 이 대장은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 습니다. 지금가지에 자기가 믿던 모든 것이 일시에 다 부서져 버린 듯하여 슬프기도 하고, 혼자 부그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궐내에 들어가니 상감 마마께서도 퍽 궁금하게 기다리시다가,
 
144
『그래 만났소? 어찌되었소?』
 
145
하고 물으십니다. 이 대장은 상감 마마 앞에서 어젰밤에 허생이 하던 일장 설화를 차례로 아뢰었습니다. 상감께서는 가만히 이 대장이 아뢰는 말씀을 들으시더니 지금까지 만들어 놓았던 무기와 화약을 다 없애 버리라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잠간 놀라시는 양으로 보이시다가 마침내 길게 한숨을 쉬시고 손으로 무릎을 치시며,
 
146
『과연 큰사람이요─ 과연 허생이 큰사람이요. 곧 나가서 불러오오.』
 
147
하시고 기뻐하시기를 마지 아니하십니다.
 
148
허생을 불러 들이라는 어명을 받아 가지고 이 대장은 위의를 갖추어 묵적골 허생의 집으로 향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대문 틈으로 내다보며,
 
149
『이게 웬일이냐? 묵적골에 이 대장 행차시다.』
 
150
『아니다. 저 비인 초헌을 보아라. 묵적골에 새로 정승이 나셨나 보다.』
 
151
하고 모두 수군거리며 어느 집으로 행차가 드시나 보라고 아이들을 내어보내는 이도 있습니다. 이 대장은 시각이 바쁜 듯이 사람들을 몰아 남산 밑 허생의 집에 다다라 대문에서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습니다. 대문을 메밀어 보니 걸리지를 아니 하였므로 안으로 들어가 본 즉, 방안에 차려 놓은 것은 어제 저녁과 다름이 없건마는 허생은 간 곳이 없습니다. 이 대장이 황망하여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벽상에 글 한 구절을 써 붙인 것이 있습니다.
 
152
『큰 뜻을 품었음이어 펼 곳이 없도다 구태여 구함이 없으니 돌아가 산수로 벗을 삼으리로다 그래도 차마 떠나지 못하여 잠시 왕의 곁에 그닐리라.』
 
153
하였습니다. 이 대장은 고이고이 벽을 붙인 종이 조각을 손수 떼어 가지고 재삼 허생이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면서 도로 궐내로 들오왔습니다. 상감 마마께서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허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시다가 이 대장이 혼자 들어 오는 것을 보시고, 용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 대장더러
 
154
『어찌해 혼자오오?』
 
155
하고 물으십니다. 이 대장은 용상 앞에 엎드려, 허생이 어 디로 가고 형적도 없더란 말과 벽상에 글 한 구절이 있더란 말을 일일이 아뢰고, 소맷속에 그 종이 조각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들어 상감 마마께 드렸습니다. 상감 마마께서 그 글을 이윽히 보시더니 이 대장을 향하여,
 
156
『창고에 쌓인 화약을 훈련원 마당에 말금 내어 놓고 오늘 밤에 그 화약에 불을 지르게하오.』
 
157
하시고 힘있게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 】18. 나라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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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李光洙) [저자]
 
192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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