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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탉 ◈
해설   본문  
1933년 11월
이효석
1
을손은 요사이 울적한 마음에 닭시중도 게을리하게 되었다. 그 알뜰히 기르던 닭들이 도무지 눈에도 들지 않으며 마음을 당기지 못하였다. 모이는새로에 뜰 앞을 어른거리는 꼴을 보면 나뭇개비를 집어 들게 되었다. 치우지 않은 우리 속은 지저분하기 짝없다.
 
2
두 마리를 팔면 한 달 수업료가 된다. 우리 안의 수효가 차차 줄어짐이 그다지 애틋한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제때 가질 운명을 못 가지고 우리 안을 헤매는 한 달 동안의 운명을 벗어난 두 마리의 꼴이 눈에 거슬렸다. 학교에 안 가는 그 한 달 수업료가 늘려진 것이다.
 
3
그 두 마리 중에서도 못난 한 마리의 수탉―---가장 초라한 꼴이었다. 허울이 변변치 못한 위에 이웃집 닭과 싸우면 판판이 졌다. 물어 뜯긴 맨드라미에는 언제 보아도 피가 새로이 흘러 있다. 거적눈인데다 한쪽 다리를 전다. 죽지의 깃이 가지런하지 못하고 꼬리조차 짧았다. 어떤 때는 암탉에게까지 쫓겼다. 수탉 구실을 못 하는 수탉이 보기에도 민망하였으나 요사이 와서는 민망한 정도를 넘어 보기 싫은 것이었다. 더구나 한 달의 운명을 우리 안에 더 붙이게 된 것이 을손에게는 밉살스럽고 흉측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4
학교에 못 가는 마음이 몹시 답답하였다.
 
5
능금을 따고 낙원을 쫓기운 것은 전설이나, 능금을 따다 학원을 쫓기운 것은 현실이다.
 
6
농장의 능금은 금단의 과실이었다.
 
7
을손들은 그 율칙을 어긴 것이다.
 
8
동무들의 꾐에 빠졌다느니보다도 을손 자신 능금의 유혹에 빠졌던 것이다. 능금은 사치한 욕망이 아니다. 필요한 식욕이었다.
 
9
당번은 다섯 명이었다. 누에를 다 올린 후라 별로 할 일 없이 한가하였던 것이 일을 저지른 시초일는지 모른다. 잡담으로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방을 나가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과수원의 철망을 넘었다.
 
10
먹다 남은 것을 아궁이 속에 넣은 것은 감쪽같았으나 마지막 한 개를 방구석 뽕잎 속에 간직한 것이 실책이었다.
 
11
이튿날 아침 과수원 속의 발자취가 문제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뽕잎 속의 그 한 개가 발견되었다.
 
12
수색의 길은 빤하다. 간밤의 다섯 명의 당번이 차례로 반 담임 앞에 불리게 되었다.
 
13
굳게 언약을 해 놓고서도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그 어디로부터인지 교묘하게 부서진다. 약한 한 사람의 동무의 입에서 기어이 실토가 된 모양이었다. 한 사람씩 거듭 불려 들어갔다.
 
14
두 번째 호출이 시작되었을 때 을손은 괴상한 곳에 있었다.
 
15
몸이 무거워 그곳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의 귀찮은 시간을 피하려 일부러 그곳을 고른 것이었다.
 
16
한 사람이 들어가 간신히 웅크리고 앉았을 만한 네모진 그 좁은 공간―---거북스럽기는 하여도 가장 마음 편한 곳도 그곳이었다. 그곳에 앉았으면 마치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것과도 같이 몸이 거뿐한 까닭이다.
 
17
밖 운동장에서는 동무들의 지껄이는 소리, 웃음 소리, 닫는 소리에 섞여 공 구르는 가벼운 소리가 쉴새없이 흘러와 몸은 그 즐거운 소리를 타고 뜬 것 같다.
 
18
을손은 현재 취조를 받고 있을 당번의 동무들과 자신의 형편조차 잊어버리고 유유히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한 개 집어내서 불을 붙였다. 실상인즉 담배도 능금과 같이 금단의 것이었으나 율칙을 어김은 인류의 조상이 끼쳐 준 아름다운 공덕이다. 더구나 그곳에서 한 모금 피우기란 무상의 기쁨이라고 을손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19
이것도 그곳의 특이한 풍속으로 벽에는 옷을 입지 않을 때의 남녀의 원시적 자태가 유치한 필치로 낙서되어 있다. 간단한 선 서투른 그림이면서도 그것은 일종의 기쁨이었다.
 
20
을손도 알 수 없는 유혹을 받아 주머니 속에서 무딘 연필을 찾아 향기로운 연기를 길게 뿜으면서 상상을 기울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21
능금을 먹은 위에 담배를 피우며 낙서를 하며―---위반을 거듭하는 동안에 을손은 문득 학교가 싫은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가령 학교에서 능금 딴 제자를 문초한 교사가 일단 집에 돌아갔을 때 이웃집 밭의 능금을 딴 어린 아들을 무슨 방법으로 처벌할 것이며 그 자신 능금을 따던 소년시대를 추억할 때 어떤 감상과 반성이 생길 것인가. 또 혹은 학교에서 절제의 미덕을 가르치는 교사 자신이 불의의 정욕에 빠졌을 때 그 경우는 어떻게 설명하여야 옳을 것인가―---마치 십계명을 설교하는 목사 자신이 간음의 죄에 신음하는 것과도 흡사한 그 경우를.
 
22
가깝게 생각하여 특수한 과학과 기술을 배워야 그것을 이용할 자신의 농토조차 없는 형편이 아닌가.
 
23
변변치 못하다. 초라하다. 잗다란 보수를 바라 이 굴욕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좁고 거북한 굴레를 벗어나 아무 데로나 넓은 세상으로 뛰고 싶다.
 
24
을손의 생각은 고삐를 놓은 말같이 그칠 바를 몰랐다.
 
25
아마도 오래된 듯하다.
 
26
하학 종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이튿날 아버지는 단벌의 나들이 두루마기를 입고 학교에 불리었다.
 
27
무기정학의 처분이었다.
 
28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정든 아들을 매질할 수도 없었으므로.
 
29
을손은 우리 안의 닭을 모조리 훌두드려 팔아 가지고 내빼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났으나 그것도 할 수 없어 빈손으로 집을 떠났다.
 
30
이웃 고을을 헤매다가 사흘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31
밭일도 거들 맥 없어 며칠은 천치같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32
우리 안의 닭의 무리가 눈에 나 보였다. 가운데에서도 못난 수탉의 꼴은 한층 초라하다.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여도 이웃집 닭에게 지는 가련한 신세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33
못난 수탉, 내 꼴이 아닌가―---을손은 화가 버럭 났다.한가한 판이라 복녀와는 자주 만날 수는 있는 처지였으나 겸연쩍은 마음에 도리어 주저되었다.
 
34
을손의 처분을 복녀는 확실히 좋게 여기지는 않는 눈치였다.
 
35
복녀는 의지의 여자였다. 반년 동안의 원잠종 제조소의 견습생 강습을 마친 터이라, 오는 봄부터는 면의 잠업 지도생으로 나갈 처지였다. 건듯하면 게을리 되는 을손의 공부를 권하여 주고 매질하여 주는 복녀였다. 학교를 마치면 맞들고 벌자는 언약이었으나 을손의 이번 실수가 복녀를 실망시킨 것은 확실하였다. 무능한 사내―---복녀에게 이같이 의미 없는 것은 없었다.
 
36
하룻저녁 복녀를 찾았을 때 을손에게는 모든 것이 확적히 알렸다.
 
37
나온 것은 복녀가 아니요 복녀의 어머니였다.
 
38
“앞으론 출입도 피차에 잦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섭섭하기 그지없네.”
 
39
뜻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복녀의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40
“기어이 알맞은 사람을 하나 구해 봤네.”
 
41
천근 같은 무쇠가 등골을 내리쳤다.
 
42
“조합에 얌전한 사람이 있다기에 더 캐지도 않고 작정하여 버렸어.”
 
43
복녀는 찾아볼 생각도 못 하고 을손은 허전허전 뛰어나왔다.
 
44
‘복녀의 뜻일까, 춘향모의 짓일까.’
 
45
물을 필요도 없었다.
 
46
눈앞이 어둡고 천지가 헐어지는 것 같았다.
 
47
며칠 동안은 눈에 아무것도 어리지 않았다.
 
48
앙상한 밤송이 같은 현실.
 
49
한 달이 넘어도 학교에서는 복교의 통지도 없다.
 
50
저녁때였다.
 
51
닭이 우리 안에 들어 각각 잠자리를 차지하였을 때 마을 갔던 수탉이 어슬어슬 돌아왔다.
 
52
또 싸운 모양이었다.
 
53
찢어진 맨드라미에는 피가 생생하고 퉁겨진 죽지의 깃이 거꾸로 뻗쳤다.
 
54
다리를 저는 것은 일반이나 걸어오는 방향이 단정치 못하다. 자세히 보니 눈이 한쪽 찌그러진 것이었다. 감긴 눈으로 피가 흘러 털을 물들였다.
 
55
참혹한 꼴이었다.
 
56
측은한 생각은 금시에 미움의 감정으로 변하였다. 을손은 불 같은 화가 버럭 났다.
 
57
‘그 꼴을 하고 살아서는 무엇 해.’
 
58
살기를 띤 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에 잡히는 것을 되고말고 닭에게 던졌다.
 
59
공칙하게도 명중되어 순간 다리를 뻗고 푸득거리는 꼴에서 을손은 시선을 피해 버렸다.
 
60
끊었다 이었다 하는 가엾은 비명이 을손의 오장을 뒤흔들어 놓는 듯하였다.
 
 
61
(『이효석전집』, 창미사, 1983)
【원문】수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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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수탉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193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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