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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學(문학)이 副業(부업)이라던 朴龍喆兄(박용철형) ◈
해설   본문  
1949.10.1.
김영랑
1
⎯ 故人新情[고인신정]
 
2
영영 가 버린 날과 이 세상 아무 가질 것 없으매 다시 찾고 부를 인들 있으랴. 억만 영겁(億萬永劫)이 아득할 뿐.
 
3
용철(龍喆) 형! 가신 지 이미 10년도 넘었으니 형은 이제 참으로 옛사람이 되었구료. 10년도 이만저만 아니지요. 인류사(人類史) 있은 뒤 처음 무서운 전쟁의 수행(遂行), 과학의 승리, 역사(歷史)의 창조, 그리하여 민족의 해방, 동혈(同血)의 상극(相剋)이 모두 그 양(量)으로나 질로나 어느 전세(前世)에도 볼 수 없는 최선 극악(最善 極惡)의 10년이고 보니 이렇게 형을 불러 보는 내 심정 천감만래(千感萬來)에 숨이 막히고 마나이다. 내 죽음에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는 이즈음 근대(近代)의 일편(一片)을 들어 형을 불러는 보아도 형은 백년 전 어느 깊은 산골을 떠나가 버린 그 산울림이신 듯 대답 있을 리 없으니 허무한 노릇일 밖에요. 오! 10년도 전에 우리의 말이 마지막 앗아지려던 날 그대 그 앓는 자리에 누우신 채 「전쟁은 크게 발전하겠지, 민족과 언어가 같이 멸망한 역사를 어디 보았더냐」 하시며 태연하셨지요. 중·일전이 벌어질 때 우리는 겨우 미소를 띄웠었고 겨레로서의 새론 보람이 겨우 소생하려던 때 「나는 이젠 별도리가 없다」 하고 가시고 말았으니 인류 최대의 참극과 인지(人智) 최고의 발달을 못 보심도 애석타 하려니와 민족 해방의 감격 환희를 못 겪으셨음을 생각할 때 형을 위하여 통분(痛憤)할 자 나만이 아니겠지요. 그 옛날 왜경(倭京)서는 4년을 한 품 자리에서 자던 사이, 달이나 밝으면 흔히 형을 홀리어 풀밭에 이슬 받으며 뒤둥글고 그대에겐 필시 외도(外道)임에 틀림 없던 길을 같이 걷자고 졸랐었고 귀국(歸國)하여서도 그대 나같이 까다로운 아버지들 밑에 눈치코치 받아 가면도 산길 들길 백리 사이를 시를 위하여 오고가고 시낭(詩囊)이 두툼해지고 익어서 씨가 저절로 돌고 빠지고 하게 되자 같이 상경(上京)하였고 시붕(詩朋) 지용(芝溶)을 만나서는 서로 늦만남을 서뤄하고 예쁘고 고웁던 구슬을 모아서 은(銀)쟁반에 한 그릇섿 담아 내놓지 않았던가.
 
4
형아! 천하(天下)가 우리 것이 아니더냐. 서로가 민족적인 애수(哀愁)에서 비록 못 벗어나긴 하였어도 자신 없이야 심해(深海)를 깊이 들어 진주(眞珠)와 산호(珊瑚)를 어찌 캐내인달 말이냐. 몽상(夢想)도 할 수 없는 것을 그래 천하가 우리 것이 아니더냐.
 
5
형아, 「나는 음치(音癡)로다」 하더니만 형의 시는 특히 음률(音律)에는 가까운 멜로디였고 「문학은 나의 부업(副業)이라」 하더니만 문학을 그리 잘 하던 이 또 있던가. 나는 평론(評論)이니 비평(批評)이니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형과 같이 남의 문학을 그리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평론이고 비평이거니 하고 생각이 돈 뒤에는 세상의 평론, 비평가에게도 차차 경의가 표해지던 나 아니던가. 형이 좀더 계시더면 혹은 시필(詩筆)을 던졌을지도 몰라. 그러나 평론가로서의 형의 존재는 왕자(王者)였으리라 본다. 이제도 시론가(詩論家)로서의 형의 옥좌(玉座)는 햇빛이 무안할 만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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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가신 뒤의 시의 생리학자(生理學者) 누구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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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가신 뒤의 시의 정론가(政論家) 누구뇨. 장안(長安)을 뒤져 보아도 찾아지질 않는다. 가엾다, 왜 더 못 사셨나. 10년만 더 왜 못 사셨나. 형아, 그대가 엮어 놓은 여러 책자(冊子) 중 『지용시집(芝溶詩集)』, 『영랑시집(永郞詩集)』이 맨 마지막이었다. 15년 전 일 사람이 늙어가도 청춘의 오류(誤謬)로 씌어졌다 할 시이거니 그거야 어디 늙을 수 있으랴. 이제 내 옛날의 노래를 모아 다시 엮어 보리라 계획하니 그대 생각 불현듯 치밀어와 다시 젊어지는 듯싶구나. 지용(芝溶)마저 민족의 선을 넘어서 평양을 갔다는 둥 수선한 세상 어찌 혼자만 남은 듯도 싶어서 섭섭해지기도 해 형아 종달(鍾達)이 일(逸)이 율(律)이가 어진 어머님과 서울에 평안히 사시고 있으니 부디 잊으라. 이제 가을 바람이 제법 쌀살히 불어 오니 고련근 노 ⎯ 란 열매를 찾아서 우리 같이 시골 길을 걸을거나.
 
8
오! 서울서 그대 산소는 천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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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聲[민성]》 5권 10호 1949년 10월 1일)
【원문】문학이 부업이라던 박용철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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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金永郞) [저자]
 
  194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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