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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野談(야담)》·《月刊野談(월간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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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3~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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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文壇) 30년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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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談(야담)》·《月刊野談(월간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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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尹白南(윤백남)(敎重(교중))이 내게 무슨 원고를 한 뭉치 보내면서, 그것을 읽어보고 그 이야기에 따라서 원고지 100매 가량의 소설을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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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이 출재자를 얻어서 《월간야담》이라는 잡지를 시작하는데, 원고를 매호 제공해 달라는 것이다. 대체 윤백남을 비상한 才子(재자)로서,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의 마누라 유산홍이 윤백남의 애독자인 탓으로 연해 동아일보의 講演面(강연면)을 담당하던 사람으로, 인재 박덕으로 어디를 가든 오래 있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지금 출재자를 잘 만나서 《월간야담》을 창간하지만 며칠이나 계속할는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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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원고 주문만 받으면 다닥치는대로 응하여 안회남에게, 후배에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고 욕을 먹던 나는 이 백남의 청도 곧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역사소설의 한 선구로 지목받기는 하는 터이나, 역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전 깜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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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이 내게 보여준 원고(「元斗的(원두적)」였다)를 참고하여, 원두표 이야기를 한편 써서 백남에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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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연이 되어 史譚(사담) 방면으로 손을 벌리게 되었다. 고답적 문학작품 이외에는 붓들기를 피해 오던 나는, 이리하여 글로 밥을 마련하기 위하여 온갖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거기 대한 변명적 이론조차 지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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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은 그 천성은 역시 벗지 못하여 《월간야담》 창간 두세 달을 지내서는 그만 또 만주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월간야담》 간행에서 재미를 본 그 잡지사에서는, 이번은 내게 달려들어, 그 당시 《월간야담》은 거진 내 글만으로 꾸며나가며 간행을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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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한동안 보다가, 나도 한 잡지를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월간야담》이 내 글만으로 꾸며나가는 것은 둘째 두고, 그때 내가 다달이 쓰던 글의 분량을 모으면 한 개 잡지쯤은 넉넉히 당할 만한 분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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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한 잡지를 창간하기로 하였다. 제호는 《야담》이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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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필생활이 지난한 이 땅에 있어서, 그 새 문필만으로 살아오자니 과연 진저리가 났다. 그 새의 경력이 있으니 그래도 글 주문이 연락부절로 왔지, 그 주문을 글을 사양치 않고 쓰자니, 사실 지기지기하였다. 글 주문이나 없고 한 때에는 등이 달았다. 물가 비싼 서울 살림에서, 더우기 새살림을 차려 놓고 건설하는 판이니, 그 살림이란 여간 초조하고 등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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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의 《월간야담》 경영상태를 보니 수지는 제법 맞는 모양이었다. 《월간 야담》은 거진 내 글로 꾸며진다. 그럴진대 그 내 글로써 내가 잡지를 간행하면 매번 구구하게 원고료 받지 않고도 내 살림은 영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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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創刊費(창간비) 약간을 마련해 가지고 《야담》 잡지를 간행하였다. 숫자로 따져 보자면 수지는 맞았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9천여 부까지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매호 새 비용을 처넣지 않으면 다음 호의 간행이 불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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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나의 건강은 철저적으로 꺾이어 나갔다. 시작한 지 1년 반, 잡지로 16, 7회를 낸 뒤에는, 그 잡지를 어떤 진남포 사람에게 내어맡기고 나는 몸을 쉬려 平南(평남) 寧遠(영원) 어떤 광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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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광산이나, 산수 경치 진실로 명랑한 곳이었다. 그곳에 자리잡고 있을 동안에, 중국 북경 교외 蘆溝橋(노구교) 근처에서 몇 방 총이 울리고 제 2차 대전의 서막인 支那事變(지나사변)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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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한 조각의 쇠가 없고, 있을지라도 쓸 줄을 모르는 우리 한국인은 자연 이웃 나라의 사변에 관심을 갖는다. 지나사변의 서곡인 滿洲事變(만주사변)이 터졌을 때도 이 백성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무슨 호박이나 생기지 않는가고, 매일 배달되는 신문의 특별호외를 목을 길게 하고 기다리던 터였다. 그 만주사변이 헛되이 ‘만주국’이라는 허수아비 나라 하나를 세운 뿐으로 막을 닫힐 때, 이 백성은 얼마나 실망을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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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사변이 차차 격화될 때에 이 백성은 다시 숨을 모아 쉬며, 그 진전을 보고 있었다. 광산의 사무실 계통은 물론이요, 한낱 광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3, 4일만에 한 번씩 배달되는 신문을 기다리고 신문의 보도를 보고 자기의 상상력을 가하여 가면서, 소위 지나사변의 추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조선의 경찰 당국은 이 사변이 조선 민심에 영향될까 보아서, 취체가 차차 강화되었다. 그러다가 광산 광주되는 내 가형도 종내 ‘同友會(동우 회)’ 관계로 囹圄(령어)의 몸이 되었다. ‘동우회’란 島山(도산) 安昌浩 (안창호)가 만든 ‘興士團(흥사단)’의 조선 안 단체로서 그때 안창호도 수감되어 마지막 옥사까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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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野談(야담)》·《月刊野談(월간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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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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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