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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朝鮮文壇(조선문단)》 시대 ◇
해설   목차 (총 : 39권)   서문     이전 16권 다음
1948.3~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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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文壇) 30년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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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文壇(조선문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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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가을 춘해 방인근이 자기 시골 진답을 죄 팔아가지고 상경하여 춘원 이광수의 집에 기류하면서 이광수 주재, 전영택․주요한 고문이라는 구호로써 월간 문예잡지 《조선문단》을 창간하였다. 상해에 망명해 있던 이광수, 주요한 등이 그 직전에 ‘귀순’을 표명하고 귀국해 있던 것이었다. 그때는 《창조》의 잔당들의 《영대》를 간행한 직후요 《폐허》의 잔당들이 《폐허이후》를 계획 중인 시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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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앉아서 보자면 이 춘해의 《조선문단》은 조선 신문학사상 몰각할 수 없는 큰 공적을 남기었다. 춘해 자신은 우금 조선문학에 기여한 한 개의 작품도 만들지 못하였지만, 그의 창간한 《조선문단》이 문학사상 남긴 공적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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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나도향, 현빙허 등이 스타트를 한 것은 《개벽》 지상이었지만 소설가로 토대를 완성한 것은 《조선문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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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최학송―아까운 천재였다)의 요람도 《조선문단》이었다. 蔡萬植(채만식)의 요람도 《조선문단》이었다. 尙虛(상허) 李泰俊(이태준)의 문학청년으로서의 요람, 鷺山(노산) 李殷相(이은상)의 요람, 그 밖 적잖은 작가들이 이 《조선문단》을 요람으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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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도 서해 최학송은 출중한 거물이었다. 삯꾼, 부두 노동자, 중, 아편장이 등의 파란중첩한 고난살이의 과거를 가진 최서해가 마음에 불붙는 문학욕을 품고 찾아든 것이 오래 전부터 사숙하던 춘원 이광수였다. 그 집이 겸해 조선문단사 임시 사무소 겸 춘해 방인근 기류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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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해는 그때 조선문단사 주인(사장)이요 또한 스스로 기성인이라 자진하던 시절이요, 서해는 장차 출발하려는 아직 ‘알(卵)’이라 서해는 처음 조선문단사의 사환 겸 문사 겸으로 있었다. 그때 갓 바람이 난 방춘해가 기생집에라도 묵고 싶으면 서해를 시켜 인천쯤으로 가서 서해는 전화를 조선문단사로 걸어서 방춘해의 부인(田有德(전유덕) 여사요 전영택의 매씨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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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잡지사 용무로 방 선생(춘해)과 함께 인천에 왔는데 혹은 오늘 밤 은 인천서 묵게 될런지도 모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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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을 통해 두고 방춘해는 마음놓고 기생(아마 김산월이라는 기생으로 기억한다)을 품고 밤을 지새고 서해는 전화 끝내고 도로 서울 춘해에게 돌아 와서 방춘해가 기생 품고 자는 웃목에서 새우잠을 자는― 그런 불우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방춘해가 서해에게 대한 대접은 너무 잔학하고 너 무 무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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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한창 문학욕이 왕성하여서 바야흐로 폭발할 듯이 문학정열에 들뜬 서해는, 이 주인 아닌 주인(방춘해)의 수모를 쓰게 보지 않고 오직 이 집에 기류해 있으면 많은 문사들과 지면할 기회가 있고 또는 방춘해의 감식에 맞으면 자기(서해)의 글을 《조선문단》 잡지상에서 실을 수 있는 점을 고맙게 보아서 굴욕적 생활을 탓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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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춘해는 《조선문단》을 창간만 춘원 댁에서 하고는 용두리로 옮겼다. 시골서 전답을 팔아 와서 돈이 있는지라, 문사들에게 원고료(200자 한 장에 50 전으로서 《개벽》도 그 정도였다)를 내주었다. 그리고 어느 편이 원인이고 어느 편이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 즉 자기가 놀고 싶어서 문사들과 축지어 다녔는지 축지어 다니노라니 바람이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같이 문사들과 짝지어 놀러다니고 술 먹으러 다녔다. 명월관 지점, 혹은 태서관으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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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평양 사는 사람이라, 늘 함께 놀지는 못하였지만, 상경하면 꼭 초대향응을 받았다. 그때 방춘해의 술을 많이 얻어 먹은 사람이 염상섭, 고 나도향, 고 현빙허, 고 유지영, 고 梁白華(양백화), 박월탄, 박회월 등과 심부름꾼 격인 최서해 등이었다. 그 모두가 斗酒(두주)를 사양치 않는 호걸들이요, 또한 모두가 주머니 빈 사람들이라 매일같이 쓴 방춘해의 유흥비는 막대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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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춘해의 부인 전유덕(호는 春江(춘강) 여사)은 지금은 고인이 된 사람이지만, 유명한 신경질의 사람이요, 질투 세고 욕 잘하는 사람이었다. 염상섭이며 고 현빙허 등이 방춘해를 끌어내려(술 씌우려) 조선문단사로 찾아갔다가 춘해 부인 춘강 여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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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자식들, 뭘 하러 지근지근 남의 참한 서방님을 유혹하러 찾아다니느냐? 배라먹을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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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욕을 얻어먹기를 수없이 하였고, 눈치보아 가면서 욕 안 먹을 만한 사람을 골라서 밀사로 보내는 수단까지 써서 방춘해를 끌어내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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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 사람으로 그다지 방춘해를 끌어낸 일도 없거니와 춘강 여사의 오라버니 되는 늘봄 전영택의 친구요, 그 위에 선배되는 관계도 있어서 춘강 여사에게 개자식이란 욕을 얻어먹은 적은 없지만, 염상섭, 현빙허, 박월탄, 양백화 등은 개자식 욕을 욕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면역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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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가 어떤 해(1926년이라 짐작한다) 상경하여 그때의 정숙인 태평여관에 투숙하여 저녁에 나도향을 만나 함께 태평여관에 묵은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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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깨어서 그냥 일어나지 않고 자리에 누운 채 담배를 피우며 나도향과 이야기하고 있노라는데 방춘해 당황한 얼굴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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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눈꼽이 낀 채로 소청하는 말이, 이제 자기의 안해(춘강)가 이리로 자기를 찾으러 올지 모르겠으니 와서 자기를 찾거든 지난밤 함께 자고, 일찍 돌아갔다고 해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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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탁을 하고 춘해 방인근이 돌아간 지 10분도 못 되어 우리(나와 나도향)가 누워 있는 방문을 벼락같이 열며 춘강 부인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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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근이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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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은 여러번 겪은 일인 듯이 그저 무심하였으나, 나는 대처 그 ‘우리 인근’이란 날에 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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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해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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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반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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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녀석 그래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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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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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어디 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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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나와 나도향 두 사람의 자리만 아직 개키지 않은 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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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가 개켜 내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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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디를 간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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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으로 갔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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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 일으킨 여인의 독특한 흥분된 어조로 이놈을 , 이놈을 중얼거리면서 다시 왜각 문을 닫고 돌아서는 춘강 여사에게 나는 오히려 공포감까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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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서운 암〔雌(자)〕범의 시하에서도 그냥 바람 부릴 수 있는 방춘해의 용기가 깊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그 암범의 감시 아래 있는 재경문사들의 재간에 또한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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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형편이라, 그때 방춘해가 제 집에서 외출을 하려면 內(내)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고 내허락을 따내기 위하여 최서해의 인천 시외전화의 수단이 안출되었고(서해가 인천에 밀파되어 조선문단사로 전화 걸어 급한 社務 (사무)가 있으니 인천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다),그렇지도 못한 때는 뒷일은 어떤 벼락을 맞던 간에 부인의 눈만 안 떼는 데 빠져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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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방춘해가 밖에 빠져나올 구실을 얻기 위해서 조선문단사에서는 교외 절간에 ‘좌담회’‘합평회’등을 자주 열었다. 그리고 그것(회합)뒤에는 반드시 제2차 회가 어떤 요정에 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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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상경한 때마다 그러한 좌석에 참여했지만, 그때 함께 담소하던 벗이 대개 벌써 저 세상으로 간 오늘날에서 회고하자면 감개 깊고 짝없이 그립다. 나도향, 현빙허, 양백화, 유지영, 최서해, 전춘강 여사. 모두 아하 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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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보건대 조선문학 30년에 그 시절이 가장 호화스러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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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에는 파당적 분열이 없고, 선배와 후배 새에 샘이나 자만의 갈등이 없고, 모두 서로 자기문학 건설에만 열중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리고 3․1 운동 뒤에 신혼기분과 호경기에 따르는 생활안정 가운데서 마음이 모두 부드럽고 용가하고 기운찬 분위기가 작품 행동에도 영향되어 활발하고도 무게있는 작품들이 속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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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으로 보아서 방춘해의 공로도 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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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춘해는 시골서 논밭을 팔아 가지고 서울 올라와서 《조선문단》 잡지와 술값에 다 탕진했지만 '《조선문단》 시대' 라는 한 절기를 만든 것은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원문】《朝鮮文壇(조선문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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