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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文人報國會(문인보국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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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1
북경 여행에서 돌아와서, 기억력을 잃었노라는 핑계로 연이어 각 온천장으 로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세상의 형태는 아주 달라졌다.
 
2
세상은 전쟁 색채와 협력 색채로 아주 메워졌다.
 
3
여기서 무슨 강연회, 저기서 무슨 음악회가 모두 전쟁 색채였다. 게다가 일본이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선을 포고한 뒤에는, 이 땅도 싸움하는 땅으로, 이 백성은 황국신민으로 모두가 된 듯하였다.
 
4
위정 당국도 이 백성을 황국시민으로 화하기 위해서는 조선문학의 선전력을 빌어야 될 것을 비로소 느낀 모양으로, ‘朝鮮文人協會’(조선문인협회)를 총독부 후원하에 조직하게 하고, 朴英熙(박영희)로서 그 간사장을 삼고 이광수는 형사피고인이라 보류해 두었지만, 실질에는 회장이었다.
 
5
'조선문인협회'가 '조선문인보국회'로 발전하고 총독문화상 제도가 생겨서 문사들은 상을 타려고 경쟁하며 날뛸 때도 나는 병을 핑계삼아 이곳 저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피하고 있었다.
 
6
더우기 만주국 문학가들이 와서 환영하는 뜻으로 무슨 대회를 할 때 그때 시골 가 있던 이태준까지 끌려와서 거기 참석하였지만, 나는 멀리 양덕 객창에서 친구들의 모임을 신문지로써 겨우 알았다.
 
7
국문 언론기관이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하나이 남고 다 폐간당하고, 잡지란 《朝光》(조광) 등 한두 개가 남을 뿐이었지만, 그 남은 것조차 소위 '국문 페이지'라 하여 '일문 페이지'를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고단스러운 세상ㅡ 이런 세상에서 조선문, 조선문학의 생명이나마 유지해 보려는 것은 지대한 공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8
1940년경 나는 병도 거진 나았노라 기억력도 거진 회복되었노라 하고 서울로 아주 돌아왔다. 그러나 나의 이 도피생활은 당국의 미움을 샀던 모양으로서, 서울서 한두 달 간 안온한 생활을 하려는데, 갑자기 그닥지도 않은 일로 헌병대에 붙들렸다.
 
9
일본 군헌의 교묘한 유도심문에 능락되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 수단의 탓으로 소위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만 1년간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지냈다. 형무소에서 나는 비로소 알았다. 일본 정치가 얼마나 가혹하게 전쟁을 추진시키는가를.
 
10
造言蜚語(조언비어)죄로 들어온 죄수, 전시 절도죄로 들어온 죄수, 별별 불경 죄수, 그리고 바깥 세상에서는 그런 말싹만 티었다가는 유언비어죄로 걸릴 만한 소리도 형무소 안에서는 공공히들 하고 있는 것을….
 
11
1년을 지나서 나와 보니 세상은 더욱 좁아져 한 다리 한 팔을 자유로이 움직일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조선문, 조선어 박멸 정책은, 실제로는 우리 의식의 줄이며 나아가서는 이 종족의 줄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12
조선어가 없이 장차 우리는 무엇으로 이민족에게 우리가 조선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으랴? 문학이라는 것은 민족 있고야 볼 일이다.
 
13
우리의 자손이 일본말을 쓰는 인종으로 변하면 그들은 장차 무엇으로 자기가 조선인임을 변명하랴? 언어의 말살은 즉 민족의 말살이다. 무슨 변이 있을지라도 이 민족의 언어만은 사수해야겠다.
 
14
이리하여서 나는 죽도록 이 민족의 언어만은 사수할 결심을 하였다.
 
15
사실 그때 이태준까지도 자기가 일본말에 통하지 못하매, 자기의 작품을 친구시켜 일본말로 번역해서 발표하는 등의 苦肉策(고육책)까지 쓰는 형편이었다.
 
16
이 노력은 필경은 헛된 노력으로서, 3, 4년 뒤에는 국가가 해방되어 조선말의 세상이 이르렀지만, 그때의 나의 어린 딸에게 애써 가르쳤던 조선어가 일어로 교육받은 다른 동창들과 섞이어서 단연 이채를 나타낸 것은 그 노력의 한 보수라고 할까?
 
17
그때의 일어의 추진정책은 얼마나 세었는지, 거리의 작은 가게에서라도 일본말로 물으면 잘 응하지만 조선말로 물으면 눈 거들떠보지도 않던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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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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