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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皇軍 慰問(황군 위문)' 北支行(북지행) ◇

해설목차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1948.3~
김동인
1
앓는 몸을 이끌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보니, 나의 친지들은 대개 종로 경찰서를 거치어 서대문 형무소에 입소되어 있고 서울 시내는 완연 戰時都會 (전시도회)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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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 거리에 나가 보니, 거리는 방공연습을 하노라고 야단이고, 소위 민간유지들이 경찰의 지휘로 팔에 누런 완장을 두르고 고함지르며 싸매고 있었다. 夢腸 (몽장) 呂渾亨(여혼형)은 그런 일에 나서서 삥삥 돌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날도 누런 완장을 두르고 거리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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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몽양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쓰고 싶은 말도 많지만 다 삭여 버리고 말고, 방공훈련 같은 때는 좀 피해서 숨어버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 나는 한심스러이 그의 활보하는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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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야담》 1년나마의 경영에 얼마나 노심을 했는지, 그때 꺾인 건강상의 손해는 좀체 낫지 않아서, 이듬해 앓는 사람에게는 겨울은 견디지 못할 일이었다. 긴긴 겨울밤을 이불을 쓰고 누워서 나는 이불이나 쓰고 있지만 지금 연해 보도되는 저 멀리 싸움마당에서 쫓기는 戰災民(전재민)들은 얼마나 고생하는가? 그때는 나는 중국 본토는 아직 가 보지도 못한 좁다란 인생이라, 중국 땅은 춥게만 생각되어서 신문지가 보도하는 바 몇십만 명, 몇백만 명의 죄없는 백성의 유랑이 끝없이 가긍하였다. 동시에 일변으로 겁나는 것은 총독부 정치의 나날이 강화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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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화에 질겁을 하여 이 땅 각 계급, 각 사회는 소위 皇軍 慰問(황군 위문), 소위 전쟁 협력, 소위 報國行動(보국 행동) 등 명칭으로 각각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꿈쩍 않고 가만 있는 사회가 하나 있다. 즉 문단이라는 사회만은 천하의 대변도 모르는 듯이 각각 제 할 일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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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보고도 모른 체하고 버려 둔다. 이것이 정녕 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너 두고 보자 벼르는 것이다. 문단에 탄압이나 간섭이 내리는 날에는 나 金東仁(김동인)이는 제일차의 희생물로 꿰어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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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동우회’ 사건으로 벌써 감옥에 들어가 있고 만약 문단에서 희생자를 구하자면 내가 제일차로 될 것이다. 병으로 날카롭게 된 신경에는 이것이 여간 큰 협위가 아니었다. 이 몸으로 감옥에 들어가면 당장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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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사들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근자 漢口(한구) 위문이니 전쟁문학이니 자꾸 협력 행위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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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가족을 거느린 주인이 감옥에 들어가면 그 가족 전부가 참변이다. 이런 협위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음력으로 섣달 그믐께 아픈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그 길로 택시를 불러 타고 총독부로 사회교육과장 某(모)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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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생각으로는 일본 문사들 모양으로 한구 방면에 군사 위문이나 알선해 주려니, 그렇게 되면 나는 중학 병태라 도저히 여행은 못할 게고, 문단에서 누구 두세 명 선택해서 소위 군사 위문을 보내면 당국의 눈짓도 좀 덜해지려니 해서 그 사람(과장 모씨)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 과장 씨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군사 위문은 군에서 시끄럽다니, かミッパイ(가미시바이)를 문사들이 쓰도록 해 보시지요, 하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없는 말이라 나는 그냥 총독부를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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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에 종로 네거리 이태준 경영의 文章社(문장사)에 들러서 지금 총독부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고 함께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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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볍게 웃어주었지만 이태준은 내 이야기에 가슴 찔리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쟁에 협력 행위를 않고 초연하게 있는 것은 문단만이 아니었다. 문단과 마찬가지로 출판업자들도 전쟁 나 모른다는 태도로 있던 것이었다. 더구나 출판업자 중에도 서적상이라든가 인쇄업자가 아닌 ‘인텔리’출신이요, 문사를 겸한 출판업자가 이태준의 문장사, 林和(임화)의 學藝社(학예사), 崔載瑞(최재서)의 人文社(인문사) 등 세 곳이 있다. 내가 문장사를 다녀간 뒤에 이태준은 겁이 나서 학예사 임화며, 인문사 최재서 등을 초청하여 협의한 결과 세 출판사에서 돈을 내어 여비를 만들어서 문사 몇 사람을 선택하여 전선 위문을 보내기로 합의가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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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장차 내려 씌워지려는 불세례를 문단 출판업자 연합으로 방비해 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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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도 않는 섣달 그믐날, 집에서 설차림 떡을 먹고 있노라는데 이태준에게서 속달 우편으로 지금 학예사 임화며, 인문사 최재서며가 함께 모였는데 곧 좀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나갔더니 세 사람이 모여서 함께 警務局 (경무국) 圖書課(도서과)에 좀 같이 가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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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학무국 사회교육과에 갔다가 ‘가미시바이’나 쓰라는 소리를 듣고 나온 나는, 그다지 시원히 생각지 않았지만 그들의 간청으로 함께 경무국 도서과를 찾았다. 그랬더니 도서과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뻐 환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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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도서과에서는 문단에서 무슨 협력 행위가 있기를 가다리고, 만약 없으면 처벌이라도 하려고 벼르던 중이었다. 이럴 즈음에 문단과 출판업자가 협력해서 무슨 행위를 하겠노라 자진해서 청하니까 그들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부에도 알선해 주겠노라, 현지 각 당국에도 알선해 주겠노라, 자기네가 쓸 수 있는 호의는 다 쓰겠노라 하며 나더러 안색이 매우 좋지 못 하니 만약 여행을 하게 되면 감당하겠느냐 묻는다. 그래서 나는 건강상 여행을 감당할 수 없으니 누구 적임자에게 밀겠다고 하였더니, 도서과에서 네가 안가면 되겠느냐, 어서 건강 회복을 도모해서 한두 달 안으로 건강 회복토록 노력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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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온 문단은 무언의 협위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었다. 이 단체 저 단체가 모두 위문이니 무엇이니 해서 당국의 취체의 예봉을 피하는 이 시절에, 한개의 단체도 못 가진 문사들이라, 장차 무슨 무서운 탄압이나 간섭이 있 을 것은 누구나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단체도 없기 때문에 앉아서 이 제재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던 문단은 이번 일을 매우 흡족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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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뚱단짓 곳에서 시비가 생겼다. 춘원 이광수는 자기가 문단의 수령이노라고 자임하고 있었는데, 온 문단적 행사에 자기가 끼지 않았으니 이는 문단적 행사가 아니라 하여 《조선신문》이라는 日文(일문) 신문에 공격을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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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을 그때 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보석으로 나와 있던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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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동차를 달려서 자하문 밖 춘원의 산장을 찾아 춘원을 만나서, 누누이 이번 행사가 문단을 당국의 손에서 구해 보려는 일임을 설명하여 그대가 이 일을 방해해서야 되겠느냐 하여 서로 양해가 되고, 이튿날 춘원은 일부러 龍山軍司令部 (용산군사령부)로 가서 《조선신문》 상의 공격은 자기가 한 바 아니요, 金文輯(김문집)이 라는 친구의 노릇이라고 변명하고 춘원이 선두에 나서서 이번 일을 공공연히 추진시키기를 약속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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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하마터면 문단에 내릴 뻔한 탄압 제재의 손을 묘하게 피해 버리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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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조선 사회ㅡ 그때 주최 세 출판사를 비롯하여 서울 온 출판업자가 죄 모여서 거둔 돈이 겨우 세 사람 여비밖에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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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지는 北支部(북지부), 기간은 세 달로서 세 사람은 길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그 길에서 빠지고자 여러번 꾀해 보았으나, 내 건강이 나날이 양호해 가서 건강을 핑계 삼을 수 없고, 도서과에서도 네가 빠지면 일이 되겠느냐고 강압하여서 부득이 길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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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길에는 중대한 책임이 짊어지어졌다. 전선을 시찰하거든 돌아 와서 시찰 보고문을 저술해서 공포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이 떠날 때에 는 총독부 국장, 과장급이 모두 정거장에 환송하여 진실로 성대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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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랄까, 다행이랄까, 나는 돌아오는 길에, 臨芬(림분)을 지나다가 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버리었다. 그때 함께 갔던 친구 朴英熙(박영희), 林學洙(임학수) 두 사람은 ‘戰線紀行’(전선기행) 詩(시)와 수필을 저술하여 짊어졌던 중임을 이행했지만, 기억력을 잃은 나는 당국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종내 이행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不敬罪’(불경죄)라는 죄로 징역 1년을 산 일이 있는데, 그것도 요컨대 그 임무를 이행하지 않은 탓이라 짐작은 하지만, 1, 2년 징역을 살면 살았지 그때 북지에서 본 참담한 실황의 ‘無敵 皇軍(무적 황군)의 美德(미덕)’으로는 도저히 쓰지 못 할 것이었다.
【 】‘皇軍 慰問(황군 위문)' 北支行(북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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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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