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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羅稻香(나도향) ◇

해설목차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1948.3~
김동인
1
1923년 여름 나는 창작집 「목숨」을 자비로 출발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
 
2
어떤 출판사에서 출판하자고 교섭이 있었지만 무책임한 출판사가 무책임하게 출판하는 것은 나의 프라이드가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3
어느날 인쇄소(한성도서주식회사)에 갔다가 내 처소(태평여관)로 돌아오는 길에 그 도중에 있는 청진동 안서의 여관에 들렀더니, 그때 안서는 웬 손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4
흰 린넬 쓰메에리 양복을 입은 얼굴에 굴곡 많은, 나이의 나보다 한두살 아래로 보이는 키는 작은 편인 젊은이였다.
 
5
나는 그 젊은이의 입은 옷이며 얼굴 생김이 마치 형사 같으므로 형사인가 하여 도로 돌아설까 하는데 안서가 그 젊은이를 나도향이라 소개하였다.
 
6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라는 도향의 소설을 본 기억이 있는지라, 이 친구가 도향인가 호기심은 났으나, 그 형사 같은 첫 인상이 불쾌하여 나는 뚱한 채 그다지 말도 사괴지 않고 그냥 내 처소로 돌아왔다.
 
7
그런데 이튿날 도향이 여관으로 찾아왔다. 와서는 서슴지 않고 린넬 저고리를 벗어서 병풍에 걸고 마루에 장기판을 보고 장기둘 줄 아느냐고 묻는다.
 
8
“약간.”
 
9
나는 어제의 인상이 좋지 못한 찌꺼기가 있어서 흥미없는 듯이 대답하였더니,
 
10
“한 번 놉시다.”
 
11
하면서 장기판을 들여왔다.
 
12
몇 번 놀았는지 그 승부가 어땠는지는 4반 세기를 지난 옛날이라 기억이 없지만, 서로 수가 비슷비슷하였다고 기억한다. 장기를 몇 차례 논 후에 도향은 나에게도 눕기를 권하며 자기도 보료 위에 번뜻 자빠누웠다.
 
13
그리고는 담배를 한참 뻐근뻐근 빨다가 문득 어두운 데 홍두께로,
 
14
“김 형, 사람의 세상은 왜 이리 외롭소?”
 
15
한다.
 

 
16
‘종로 네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노라면 사람들이 곁으로 앞으로 휙휙 지나 갑니다. 그들이 내 얼굴을 보면 마주보며 미소해 주려고 벼르지만, 눈만 마주치면 얼른 외면해 버리고 그냥 씁쓸히 지나가니 사람의 세상이란 꼭 그렇듯 서로 무관심히 지내야 합니까?’
 

 
17
그의 소설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에 나타난 적적미를 나는 여기서 그 본인에게서도 발견하였다.
 
18
“도향, 우리 술 먹으러 갈까?”
 
19
“대찬성! 대찬성.”
 
20
어제의 불쾌하던 인상이 기억을 깨끗이 씻고 두 젊은 소설학도는 작반하여 청량리로 나갔다.
 
21
그로부터 매일 도향은 나의 처소에 와서 날을 보냈다.
 
22
육당(최남선)이 《시대일보》의 주인이 되며 염상섭이 《시대일보》 사회부장이 되면서 빙허(현진건)와 도향이 사회부 기자가 되어 《시대일보》 사회부는 소설작가로 조직되었다.
 
23
그 겨울에 나는 무슨 일로 상경하여 저녁에 우리는 어떤 술집으로 갔다.
 
24
우리란 염상섭, 나도향 및 朱鍾健(주종건)이라는 공산주의자(역시 《시대일보》기자)였다.
 
25
그 자리에서 주종건은 주로 내게 향하여 공산주의의 설법을 시작하였다.
 
26
염상섭은 소위 ‘진보적 사상’이라 하여 얼마만치 공산주의를 시인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설법을 만나면 또한 그의 성격상 반대의 입장에 서는 사람이었다. 내게로 향한 주종건의 설법에 대하여 상섭이 대맡아 논전이 시작되 었다.
 
27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문득 한 마디 끼어 보았다. 소위 체면이든가 체재라든가 하는 것을 공산주의에서는 어떻게 보느냐고.
 
28
“체재라든 체면이라든, 그런 건 다 소부르조아적 근성입니다.”
 
29
“그럼 주 공, 이건 내 눈이 무딘 탓인지는 모르겠소마는, 주 공 가슴에 걸려 있는 싯누런 시계줄을 나는 도금줄이라 봤는데, 설사 도금이 아니고 진정한 금이라 한들, 니켈이나 그저 쇠줄이나 노끈을 쓰지 않고 싯누런 줄을 쓰는 건 무슨 까닭이오? 또 실례지만 그 줄 끝에 시계가 있기는 하오?
 
30
알맹이 없이 누런 줄만 가슴에 장식한 건 아니오? 주 공이 싯누런 시계줄을 가슴에 걸고 있는 동안은 공산주의 선전의 자격이 없다고 나는 보오.”
 
31
도향이 연해 발가락으로 내 무릎을 꾹꾹 찌르는 것은 통쾌하다는 뜻인지 너무 심하다는 뜻인지는 모르지만 주씨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닫쳐 버렸다.
 
32
그 자리를 파한 뒤에 염(상섭)은 나더러 너무 심하다고 나무랐지만 도향은 소년처럼 올라뛰며,
 
33
“김 형 만세! 김 형 아니면 못할 말, 김 형만이 할 수 있는 말 ― 김 형, 만만세! 만만세!”
 
34
하며 좋아하였다.
 
35
나이 젊은 사람, 더우기 경제적으로 불순한 환경에 있는 사람은 아주 감염치기 쉬운 공산주의로되, 도향은 불순한 환경의 젊은이이면서도 끝끝내 거기 대립하여 있었다.
 
36
1924년 겨울 춘해가 《조선문단》을 창간하였다. 원고료를 200자 한 장에 50 전씩 내었다.
 
37
이 원고료는 《개벽》에서 먼저 시작한 일로서 《창조》 잔당들은 돈으로 글을 팔랴 하여 도리어 불쾌하게 보았다.
 
38
그러나 나만은 강청에 못이기어 글을 썼지만, ‘개벽사’건 ‘조선문단사’ 애당초 내게는 원고료를 낼 생각도 안했고, 나도 받을 생각도 안했고, 그런 만치 글쓰는 데 자셋상스러웠다.
 
39
그러나 재경 문사들은 이 두 잡지사의 원고료가 술값 도움에 적잖은 보탬이 된 모양이었다.
 
40
여기 대해서는 뒤에 더 쓸 기회가 있겠거니와 도향은 여기서 약간 여유가 생긴 모양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41
그러나 동경에 얼마 있지 못하고 다시 귀국하였다.
 
42
동경서도 異鄕(이향)의 적적함을 여러번 엽서로 하소연하던 도향이라, 그가 귀국한 뒤에 나는 일부러 상경하여 그를 만났다.
 
43
평양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도향의 하소연에 꼭 오라고, 오면 술과 기생은 싫도록 대접하마고, 도향이 下壤(하양)할 날까지 약속하고 나는 평양으로 돌아와서 도향의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 날을 당하여 도향에게서 사정때문에 못 간다는 엽서가 왔다.
 
44
그 사정이란 물론 찻삯 등 경제사정일 것이 짐작이 가서, 이 뒤 상경할 기회가 생길 때 함께 데리고 오리라고 벼르는 동안 그 뒤 한 달쯤 지나서 신문지는 도향의 죽음을 알렸다.
 
45
나는 이 신문보도를 보고 소리없이 울었다. 총각으로 죽은 도향이었다. 굴곡 많은 얼굴이며, 땅딸보 키며, 가난이 여인의 사랑을 끌 매력이 없는 것이라 살틀하고 다정한 도향이었지만 그의 짧은 생애를 고적하고 쓸쓸하게 마치었다.
 
46
그 뒤 얼마 지나 역시 고인 曙海(서해)(崔鶴松(최학송))에게서 도향의 비석을 해 세우려 하니 얼마간 찬조하라는 편지가 왔다. 나는 그때 왜 이런 태도를 취하였는지 지금까지도 생각날 때마다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고 후회하는 바이지만, 그때의 서해의 간곡한 편지에 대하여 나는 내가 《조선문단》에 글을 쓸 터이니 그 원고료를 받아서 비석 비용에 보태라고 회답하였다 (서해는 그때 조선문단사에 있었다).
 
47
그때 서해가 조선문단사에서 내 원고료라는 명목으로 얼마 받아서 비석 비용에 보태 썼는지 어떤지는 따져 본 일이 없지만, 뒷날 사진으로 본 도향의 비석(작다란 화강석 비석이었다) 따위는 도향에게 대한 우정 관계로든 서해에게 대한 의리 관계로든, 나 혼자의 힘으로라도 넉넉히 해 세울 수 있을 것이었다.
 
48
서해는 내 태도를 불쾌히 여겼는지, 혹은 조선문단사에서 내 원고료라는 명목으로 얼마 꺼냈는지는 모르지만 도향의 비석은 서해의 힘으로 건립되었다. 가장 기대 크던 도향이었다.
 
49
나이 어리니만치 아직 미성품 채로 사라진 도향이지만, 여러 각도로 뜯어 보아서 가장 기대 크게 가질 작자였다.
 
50
도향 죽기 전후의 조선문단(주로 소설단)을 개괄적으로 살펴 보자면 최서해는 조선문단사의 식객으로, 사원으로, 서기로, 하인으로, 명목 모호한 존재로 겨우 몇 편의 창작으로 출발하려던 무렵이라 말할 바이 없고, 빙허(현진건)는 질보다 재간이 과승하여 재간으로 메꾸어 나가던 사람이요, 염상섭은 그 풍부한 어휘와 아기자기한 필치는 당대 독보지만 끝막이가 서툴러 ‘미완’혹은 ‘계속’이라고 달아야 할 작품의 꼬리에 ‘끝’자를 놓는 사람이요, 월탄(박종화)은 《개벽》에 창작 몇 편을 실어 보았지만 습작 정도에 지나지 못하고, 중일전쟁 전후에야 《매일신문》에 ‘신문소설’을 써서 비로소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이요, 춘해(방인근)는 그때부터 오늘까지 전진, 후퇴 전혀 없는 사람이요, 나 역 시 그 시절 작품은 모두 묻어 버리고 싶은 형편이니 말할 것도 없고, 이러 한 문단 형편에서 도향을 잃었다는 것은 조선문학 발전에 지대한 손실이라 지 않을 수 없다.
 
51
도향의 죽음의 가장 큰 원인은 영양부족한 창자에 독한 냉주를 끊임없이 사발로 들이킨 때문이다.
 
52
소월하며, 도향하며, ‘조선’이란 땅은 천재를 내려주기는 너무도 아까운 땅이다. 성경의 귀절에 있나니 가로되,
 
53
‘도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지 말라. 도야지는 진주의 그 무엇임을 알지 못하느니라.’
 
54
영양부족으로 죽은 도향의 비석에 이 구(句) 한 귀를 새겨 주고 싶다.
【 】羅稻香(나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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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게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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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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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