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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도 (赤道) ◈
◇ 인생의 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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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현진건
1
사월 십삼일, 봉천행 밤차 이등실에는 신랑 신부의 일행이 탔다. 신랑은 갈걍갈걍한 키에 미목이 청수하나 삼십이 넘은 노신랑, 신부는 백설 같은 너울로 부끄러운 듯이 슬쩍 얼굴을 가리어 나이를 분명히 알 길이 없으나 그 아른아른한 뺨과 앳된 입모습으로 보아 이십 안팎밖에 되지 않았을 듯.
 
2
신부 쪽으로 처형이 되는지, 신랑 쪽으로 누이가 되는지 스물 너덧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부인 하나가 후행 겸 하님 겸 따랐을 뿐이다. 흰 숙고사 겹저고리에 다듬은 모시 치마, 그리고 흰 고무신, 수수하나마 깨끗하게 차린 그 부인은 어데를 보든지 틀에 박은 구식 가정부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3
객지에서 쓸쓸하게 혼례식을 지냈음이리라. 전송 나온 사람 하나 없었다.
 
4
아니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 여행을 떠나는 길인지, 또는 혼례식을 치르러 가는 길인지, 그것조차 분명치 않다. 침대에도 들지 않고 신랑 신부가 곁눈질 한번 않고 시침을 따는 것을 보면 결혼 전인지도 모르리라.
 
5
이 일행은 앉은 고 자리에서 꼬박이 밤을 세우고 안동현에 대어도 나리지 않았다. 그 이튿날 밤에 잠깐 봉천에 나렸으나 그것은 천진행 기차를 바꾸어 타기 위함이었다. 천진에 나리자 신랑은 두 여자를 데리고 정거장 근처 객잔(客棧)에 들어 하롯밤을 쉬고, 그 이튿날 정거장에 나오는 길에 신랑은 일본 돈을 따양으로 바꾸고, 여자 청복 두 벌을 사고 마침 지나치는 일 자신문 천진 신문을 한 부를 사 가지고 왔다.
 
6
그들은 다시 총총히 남경행을 바꾸어 탔다.
 
7
기차가 움직이자 그들은 완전히 마음을 놓은 모양이었다. 중국 기차 이동은 휑덩그렁하게 비었다.
 
8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꾸민 신랑과 신부 놀음을 구만두고 말짱하게 청복을 갈아입었다. 신랑만은 그대로 모닝을 입고 있었다.
 
9
신랑과 신부는 물을 것 없이 상열과 은주, 후행은 명화였다.
 
10
새 옷을 갈아입으매 두 여자의 기분은 새로워졌다.
 
11
"밤낮으로 아모리 가도 왜 이리 지리펀펀만 해요?"
 
12
명화는 멍하게 차창을 내다보다가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13
"그게 광막한 인생의 벌판이구려."
 
14
하고 상열은 의미 있게 웃는다.
 
15
"그래요, 이 질펀한 광야가 끝나는 곳에 새로운 희망의 나라가 있을 것 같애요."
 
16
은주가 맞장구를 친다. 두 여자의 눈은 새 희망에 번쩍인다. 상열은 생각난 듯이 신문을 펴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별안간,
 
17
"앗!"
 
18
외마디 소리를 쳤다.
 
19
"왜 그러셔요?"
 
20
하고 명화와 은주도 신문 위에 고개를 디밀었다.
 
21
"이걸 봐요. 여해가 죽었구려."
 
22
"네!"
 
23
두 여자도 놀라 부르짖었다. 상열의 떨리는 손가락은 다음과 같은 간략한 기사를 가리켰다.
 
24
제목도 이단 두 줄이었다.
 
25
취조중 선인 청년 폭탄 깨물고 즉사
 
26
「경성전보」 경성 ˟˟서에서는 지난 12일 밤 조선인 청년 한 명을 검거하여 취조 중, 그 청년은 어데 감추고 있었던지 폭탄 한 개를 깨물어 굉연한 음향과 함께 현장에서 즉사하였는데, 취조 받은 피의자가 폭탄을 깨물고 자살하기는 전무후무한 사실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그 청년은 상해 방면에서 잠입한 듯한 모라고 하나 취조가 진행되기 전에 죽어 버렸으므로 공범 관계라든지, 계통 기타는 전연 알 수 없다고.
 
27
세 사람은 침통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아모 말이 없었다. 이윽고 상열은 입을 열었다.
 
28
"열정에 지글지글 타는 인물. 한 시라도 열정의 대상이 없고는 견디지 못하는 인물. 그런 종류의 사람은 태양에 비기면, 인생의 적도선이라 할까……."
 
29
몬지가 자욱히 앉은 차창엔 지평선 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대륙의 새빨간 태양이 숭엄한 얼굴을 비취었다.
【원문】인생의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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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玄鎭健) [저자]
 
  193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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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