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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삼인(病者三人) ◈

◇ 1장 ◇

해설목차  서문  1권 2권  3권  4권  1912년
조중환

1. 1장

1
여교사 이옥자 본저
2
무대에는 이옥자의 집 방안이요, 그 부엌에는 밥짓는 제구와 소반 그릇 등들이 널펴있는데, 부엌에서는 이옥자의 남편되는 정필수가 불도 들이지 아니하는 아궁이에서 밥을 짓느라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
 
3
정필수
4
아이참, 세상도 괴악하고, 강원도 시골구석에서 국으로 가만히 있어서, 농사나 하고 들어 업드려 있었으면 좋을 것을 이게 무슨 팔자란 말이오. 서울을 올라올제. 우리 내외가 손목을 마주 잡고 와서 무슨 큰 수나 생길 줄 알고, 물을 쥐어 먹어 가면서 내외가 학교에를 다니다가 막 이월에 졸업이라고 하여서 어떤 학교의 교사 시험을 치르었더니, 운수가 불행하느라고 마누라는 급제를 하여서 교사가 되고, 나는 낙제를 하여서 그 학교 하인이 되었으니 이런 몰골이 어데 있나. 학교에만 가면 우리 마누라까지 나더러 하인 하인 부르면서 말 갈 데 소 갈 데 함부루 시부름을 시키고, 하도 고단하여 할 수 없이 집에서 앓고 있을 때는 이렇게 밥이나 짓고 있으니, 이런 망할 놈의 팔자가 어데 있나, 계집을 이렇게 상전같이 섬기는 놈은 나밖에 없을 걸. (하며 중얼거리고 앉아 있는데 쌀집 주인 여편네 업동어머니가 달음질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며)
 
5
업동모
6
아이고 무얼 하시오. 서방님이 부엌에서 밥을 다 지시네. (하며 들어오는데, 정필수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시침을 뚝 떼이며)
 
7
정필수
8
응, 업동어멈인가. 오늘은 우리 마누라란 사람이 학교에 가서 입때까지 아니 오네그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금 내가 밥짓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일세. 그러나 자네 집 쌀은 왜 그렇게 문내가 나나, 응.
 
9
업동모
10
그럴 리가 있나요. 언제든지 댁에 가져오는 쌀은 상상미로 가져 오는 데요.
 
11
정필수
12
아, 이게 상상미야. 좀 이 쌀 내음새를 맡아 보게. (하며 솥뚜껑을 열어다가 업동어미의 코에 콱 대니, 업동모는 내음새를 맡아보고,)
 
13
업동모
14
아이고머니, 서방님도 이것은 쌀이 언짢아서 그러합니까, 쌀을 잘 일지를 못해서 그러하지요. 그게 겻내올시다. 문내가 아니라.
 
15
정필수
16
옳지, 그래서 날마다 우리 마누라가 나더러 밥 잘 못 짓는다고 핀잔을 주었구먼.
 
17
업동모
18
아, 그러면 진지는 서방님이 노상 지으십니까.
 
19
정필수
20
아니, 날마다 내가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흑간 가다가 심심하면 운동 겸하여서 하는 것이지.
 
21
업동모
22
아이, 댁 아씨는 남편 양반도 잘을 얻으셨지, 어쩌면 심을 그렇게 덜어 주실까.
 
23
정필수
24
천만에, 나는 잘 얻지도 못하였어. 마누라라고 밤낮 서방을 나무라기만 하니까 아주 귀치 않아 못 견디겠어.
 
25
업동모
26
아, 그것은 서방님이 너무 순진하시니까 그렇지요. 가끔가끔 좀 사나이 행티를 하시구려.
 
27
정필수
28
응, 내 사정을 누가 알겠나. 제법 서방인 체하고 무슨 말을 하였다가는 첫째 코 아래 구녕에 들어갈 것이 있어야지.
 
29
업동모
30
네? 무엇이야요, 코 아래 구녕에 들어갈 것이 없어요? 정말 그러하시면 우리 쌀값은 언제 받나요. 쌀값을 아니 주시구 오래 가면, 우리도 코 아래 구녕에 뫼실 쌀을 못 드리겠는데요---
 
31
정필수
32
그게 무슨 소린가. 그래서야 쓸 수가 있나, 자연 우리 마누라가 학교 교사를 다니게 된 이후로는 의복에도 돈이요, 친구 추축하는 데도 돈이요, 집안일을 내버려두고 저는 쏘단기면서 나더러는 일상 밥이나 지으라고 하고, 혹시 잘못하면 꾸지람은 하고, 나도 정말 못 견디겠네. 이 불쌍한 내 사정도 좀 생각하여 주어서 이번 월급날까지만 좀 참아주게.
 
33
업동모
34
공연히, 그런 실없는 말씀 마셔요. 댁에서는 내외분이 다 학교 교사를 단기시면서 두 분이 다 월급을 타시면서 그러셔요. 남의 돈을 갚지 아니하실 작정이신 게지.
 
35
정필수
36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진정 말일세 마는 나는 아직 교사직위까지를 가지 못하였단 말이야.
 
37
업동모
38
네에 그럼, 서방님은 날마다 학교에 아니 가시오. 요전에 말씀이 내외분이 교사하는 시험을 치렀다고, 교사가 되면 월급을 탈 터이니 쌀값은 그때 주마하고 하시지 아니 하였소.
 
39
정필수
40
응, 옳지.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저간에 내가 그렇지 못한 연고가 있어서 교사를 하지 않었지.
 
41
업동모
42
그러면, 교사시험을 보시다 떨어지신게구려.
 
43
정필수
44
그, 그저, 그렇다면 그렇고, 저렇다면 저렇고---
 
45
업동모
46
아이그머니나, 나는 도무지 그런 줄은 몰랐지. 아이 별 양반도 다 있지, 마누라에게 얹혀 사는 이가 어데 있소. 여편네 뜯어먹고 있는 이에게 나는 외상 줄 수가 없어요.
 
47
정필수
48
아아니, 천만에, 내 말을 다 듣고 말을 하란 말이야. 나도 사내인데 아무리기로 계집을 뜯어먹고 살까. 나도 학교의 교사는 아니라도, 그래도 다달이 그 학교에서 상당한 월급을 타는 사람인데, 그러나---
 
49
업동모
50
네에 그러면, 서방님은 그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월급을 타시오.
 
51
정필수
52
응, 나 하는 일 말인가. 내 사무야말로 참 대단히 분주하지. 안팎에 쓰레질도 하고, 찻물도 끓이고, 손이 오면 명함도 전하여 주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심부름도 대신하여 주고, 한두 가지가 아니지. 내 사무같이 분주할까. 도트러 말하면 내 사무는 위생과 외교내치(外交內治) 를 겸한 것이지.
 
53
업동모
54
아이고, 무슨 사무가 그리 야단스러워요, 그러면 그 학교 하인이구려. 다를 것이 무엇 있나요.
 
55
정필수
56
이를테면, 그저 그러하지---
 
57
업동모
58
아이고, 망측해라. 아씨는 선생님이고 서방님은 하인이라니. 아이고, 그 세상은 거꾸로 되었지. 그런 일이 어디 있어. 아이 망측해라. 그러니깐 서방님이 밥짓고 꾸지람 들어도 할 말 없겠소.
 
59
정필수
60
그저, 자네까지 이렇게 구박을 주면 어찌하나. 정말 서러워 못 견디겠네. 그러나 내 사세가 아까 말한 대로 이 모양이니까 암만하여도 내 힘으로는 외상값을 갚지 못하겠으니, 이따라도 주인이 들어오거든 내가 말을 잘 하여서, 이 그믐 안으로는 다 끊게 할 것이니 어서 가게. 응.
 
61
업동모
62
아, 그러면 진작 그 말씀을 하시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암만 졸라야 피천대푼 나올 도리 없습니다그려. 그럼, 요 다음날, 아씨가 아씨가 아니 주인양반이 계시거든 와 말씀하지.요. (하며, 업동모가 일어서려 하는 것을 다시 불러 앉히고,)
 
63
정필수
64
자네 지금 집으로 가나?
 
65
업동모
66
네, 집으로 가지요. 그럼 어딜 가요.
 
67
정필수
68
그러면 요 앞에 칠보네 장국밥집을 지나지 아니하나, 아마 그리 지내어 가겠지.
 
69
업동모
70
암, 그리 해서 가지요.
 
71
정필수
72
그러면 불안하지만은 청 하나 할 것이 있네. 다른 게 아니라, 그 칠보네 집에 가서, 산적 스무 꽂이만 하고, 장국에 밥은 넣지 말고 국수나 좀 놓고, 홉살하고, 맛난이 많이 쳐서, 따끈따끈하게 한 그릇만 하고 가져오라고 일러 주게.
 
73
업동모
74
압다, 남의 외상값은 아니 갚고 입치레는 되우 하십디다.
 
75
정필수
76
아니야, 그것은 내가 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 마누라가 들어오면 저녁 반찬을 하려니까 그렇지. 내 손으로 만든 반찬은 도무지 맛이 없다니까 그리하는 걸세. 수고는 되지마는 어찌하나, 가는 길에 잠깐 들러 주게나그려. 너무 불안하이.
 
77
업동모
78
내가 언제 댁에 심부름하러 왔소. 외상값 받으러 왔지. 그러나 과히 힘드는 일이 아니니까 말은 이르고 가오리다. 서방님의 신세야 참 부럽기도 하오.
 
79
정필수
80
그렇지 어찌하나, 제 팔자를 그렇게 타고난걸.
 
81
업동모
82
압다, 속은 퍽이나 유하십니다. 그렇기나 하기에 새기고 살겠지만---
 
83
업동모는 부대 하수(下手)로 들어간 후, 정필수는 업동모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밥을 눌려붙인 모양으로 마누라에게 꾸지람 듣겠다고 허둥지둥 하는데, 하나멋지(花道)로부터 정필수의 아내 고등여자학교 교사 이옥자(21,2세) 가 검은 치마에 하사시가미하고 책보를 들고 학교로부터 오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84
이옥자
85
아이고 밥탄 내야. (코로 내음새를 맡아 가며)
 
86
정필수
87
에구 언제 오십니까, 누룽지를 좋아하시기에, 조금 밥을 눌렀지요.
 
88
이옥자
89
밥을 눌리면 밥이 준다고 해도 그렇게 정신을 못 차려. 예참 말도 안 듣지.
 
90
정필수
91
그저--- 잠깐--- (머리를 쓱쓱 긁으며)
 
92
이옥자
93
그저--- 잠깐이 다 무엇이야, 어서 이 구두나 벗겨 주어요. 어서.
 
94
정필수
95
네에.
 
96
이옥자
97
네에 네만 하지 말고 어서 신을 벗겨 주어야지.
 
98
(신을 벗겨주매 이옥자는 책상앞 방석위에 앉으며)
 
99
이옥자
100
내가 지금 들어오느라니까 어떤 계집년 하나가 우리집에서 나가니 그년은 웬년이야. 내가 집에 없을 때면 모든 못된년을 끌어다가 지랄 발광을 하니까 밥 아니라 옷은 안 태울까.
 
101
정필수
102
그것 무슨 소리야, 내가 아무렇기로 그럴 리야 있나. 그 계집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요 앞에 싸전장이 계집인데, 쌀 외상갑 받으러 왔던 길이야요. 공연히 자세 아지도 못하고 남만 나무라네그려.
 
103
이옥자
104
그럼, 쌀값은 입때까지 안 주었소.
 
105
정필수
106
갚고 말고--- 당초에 할 수가 있어야지. 지난 달 월급은 알금 자네--- 아, 아니 선생님 옷에다 디밀어 버리고, 어떻게 한다는 수가 있습니까.
 
107
이옥자
108
그래도 그것을 어떻게라도 해서 주지 않고---
 
109
정필수
110
어떻게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야?
 
111
이옥자
112
원, 사람도, 지금 나이 삼십에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세음을 그렇게 몰라서 어찌한단 말이오.(대갈일성)
 
113
정필수
114
아무리 세음을 잘 알기로 없는 돈으로 외상을 어떻게 갚는단 말이오.
 
115
이옥자
116
(그러할 듯이) 그러면, 진작 그렇다고 말을 하지요.
 
117
정필수
118
(옳다, 언제는 내가 이겼으니 들이대어 주겠다는 모양으로) 내가 그리게 아까부터 하는 말이 그 말이지. 저는 밤낮 편하기만 하구서, 구차한 살림은 날더러만 하라니, 이놈은 어떻게 하라고 그리 하나 응, 여보게.
 
119
이옥자
120
(별안간에 성이 잔뜩 나서) 날더러 저가 무엇이고, 여보게가 무엇이야. 언감이 아래위 입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 선생과 하인의 구별을 좀 생각해야지.
 
121
정필수
122
네에, 그저 잘못했습니다.
 
123
이옥자
124
그러나 오늘은 학교에 와서 심부름도 아니 하고 팔자 좋게 집에 들업드렸어? 무슨 까닭으로,
 
125
정필수
126
날마다 잔심부름도 하많아서 고단하기에 오늘은 하루 쉬려고 그래서 안 갔지요. 그리고 아무리 하인이기로 그저 노오 하인 하인 하고 부르니까 창피해서---
 
127
이옥자
128
하인이니까 하인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대사인가. 창피하다는 것은 다 무엇이야. 아이고, 꼽살스러워라. 그리고 밥 뜸들 동안에 매일 하는 일이 공부를 해야지요. 어서 국어독본을 이리 가져오. 내 가르쳐 줄게.
 
129
정필수
130
그 공부는 제발 밥 먹고 나서 밤에 합시다. 누가 오더라도 남부끄럽지 않습니까.
 
131
이옥자
132
그렇게 되지 않은 부끄러운 생각부터 있으니까 공부가 늘지 않지. 선생님이 무엇이라고든지 분부를 내리면 네 하고 고분고분해야지, 왜 이리 방패막이를 하고 있어. 못된 버릇도 다 하네.
 
133
정필수
134
네에. (하릴없이 일어서서 책을 가지러 가는 모양으로 가면서 혼자말) 이런 제기, 남의 집에서는 내외가 밥 먹을 제 같이 겸상하여서 정다이 권커니 자커니 하고 먹는데, 이놈의 팔자는 무엇인지를 모르겠네, 계집이라고 계모인지도 모르지. 까닭을 알지 못하겠네 그려.
 
135
이옥자
136
(그 말을 잠깐 듣고) 이애, 하인아, 교사를 향하여서 계모 같은 계집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버릇 없는 소리야.
 
137
정필수
138
(제발 비는 모양으로) 여봅시오, 학교에 가서는 하인 하인 하더라도 집에 있을 때는 좀 내외간같이 지내어 봅시다그려.
 
139
이옥자
140
주제남은 소리 또 하고 있네, 공자 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하셨으니, 하인 소리 듣길 싫거든 어서 공부를 잘해서 나처럼 교사가 되어야지요,
 
141
정필수
142
그러게 나도 교사가 언제 될 터야.
 
143
이옥자
144
그러면 왜 어서 책을 가지고 오지 않어. 그렇게 하는 말을 잘 안들었다가는 내쫓칠 터이니 알아 해요. (정필수는 내어쫓는단 말에 겁이 나서 급히 책을 가지고 이옥자의 앞에 와서 책을 펴놓으니, 이옥자는 책장을 넘기며,)
 
145
이옥자
146
아마 전에 배운 가나합음(假名合音) 을 잊어버렸을 터이니, 처음부터 배요. 가우고 기야우교,
 
147
정필수
148
가우고--- , 기야우교--- .
 
149
이옥자
150
시우슈, 시야우쇼--- .
 
151
정필수
152
시우슈, 시야우쇼--- .(두서너 번 가르친 후에,)
 
153
이옥자
154
언제는 혼자 합음을 해보오.
 
155
정필수
156
가우구, 기야우고--- .
 
157
이옥자
158
가우고--- , 기야우교--- 라고 해요, 그렇게 정신이 없어. (정필수는 떠듬떠듬하면서 합음을 그릇하는 고로, 이옥자는 몇 번을 가르쳐 주어도 잘 못하니까, 나중에는 골이 나서 바른손에는 서산대, 왼손으로는 책상을 두드르며)
 
159
이옥자
160
글세, 시야우소--- 가 아니라, 시야우쇼--- 에요, 그렇게 못 알아듣는단 말이오. (소리쳐 꾸짖으니 정필수는 얼굴이 벌개지며 애를 써서 잘하려 하나, 점점 더 아니 된다. 이옥자는 골이 바락 나서)
 
161
이옥자
162
대체 이 귀는 무슨 까닭으로 달고 있소, 귀가 있으면 남의 말을 알아들어야지, 그렇게 미련스러이 못 알아듣는 데가 어디 있소. (정필수는 점점 합음을 삐뚜로 하니 이옥자는 참다 못해서)
 
163
이옥자
164
가우고--- 시야우쇼--- 그렇게 하는 것이야요, 귀가 먹었나, 왜 그렇게 못 알아들어. (하며, 귓바퀴를 손으로 한번 붙이니 정필수는 별안간에 귀가 먹은 것 같이 어름어름한다.)
 
165
이옥자
166
다시 한 번 읽어보아요, 저 따위도 사람이라고 밥을 먹나.
 
167
정필수
168
(어름어름하면서) 그만 밥이나 먹어 보자는 말씀이오,
 
169
이옥자
170
밥 먹자는 것이 아니라, 어서 찬찬히 읽어 보라는 말이야요,
 
171
정필수
172
네에, 찬 말씀이오, 찬은 내가 만들 줄을 몰라서 장국집에 산적을 맞추었지요, 아마 오래지 아니해서 올걸.
 
173
이옥자
174
아, 정말 귀가 먹은 걸세. (이옥자는 귀가 먹은 줄 알고 깜짝 놀라고, 정필수는 점점 아니 들리는 것같이 귀를 후비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이때에, 여자고등학교 촉탁의사 하계순이가 문간에 와서 (이리 오너라) 찾는다. 정필수는 못 들은 체하고 이옥자가 일어서서 문을 열고 보더니 반가와하면서,)
 
175
이옥자
176
하계순씨, 오십니까, 마침 잘 오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서요. (하며 소매를 붙잡아 끌어들인다.)
 
177
하계순
178
왜 이리십니까. (끌려와서 자리에 앉는다.)
 
179
이옥자
180
다름이 아니라, 하인 이 애가 지금 별안간에 귀머거리가 되어서--- 어서 진찰을 좀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181
하계순
182
네? 귀머거리가 되었어요. 그것 큰일났구려. 어디 잠깐 진찰해보지요.
 
183
(하며, 정필수의 옆으로 가까이 가 앉으니, 정필수는 꾀병한 것이 탄로날까 겁하여 눈짓 손 짓으로 하여 보이며, 귀머거리로 진찰하여 달라는 뜻을 보이니, 하계순도 알아듣고 눈짓으로 허락하고 웃음을 참고, 귓구녕을 들여다본다.)
 
184
하계순
185
에이 참, 귓구녕도 더럽고, 한 백년 귀도 후비지 아니하였나 보다. 지금 진찰을 하여 본 즉 의외에 병이 대단 위중하외다. 이옥자 씨께서 이 사람을 몹시 구박하셨지요.
 
 
186
이옥자
187
네, 그런 것이 아니라요, 지금 일어를 가르쳐 주는데 하도 알아듣지를 못하기에 좀 말마디나 했지요.
 
188
하계순
189
하하, 내 어쩐지 그렇드라니, 그거 안되었소이다. 지금 조곰 잘못하면 귀창이 아주 떨어지겠습니다. 까딱하다가는 귀창이 아주 떨어질 터이니 귀창이 떨어지면, 다시는 고칠 수가 없지요,
 
190
이옥자
191
(깜짝 놀라는 기색) 지금은 곧 약을 쓰면 고치지요.
 
192
하계순
193
글쎄올시다, 우선 내일부터 학교에 와서 일을 시키지 말고, 제 마음대로 몸을 좀 편안히 두어야 하겠습니다. (필수는 가만히 감사해하는 눈치)
 
194
이옥자
195
그렇게만 하면 나을까요.
 
196
하계순
197
그리구요, 또 한 가지는 당신이 이 사람더러 하인 하인하고 홀대마시오, 이 사람은 그 하인이란 말이 마음에 대단히 격노가 되어서 이런 병이 생겼으니 행여 그 말씀은 하지 마시오.
 
198
이옥자
199
그리고 또는 없어요.
 
200
하계순
201
아니, 또 있지요. 그리고 아침이면 당신이 먼저 일어나서, 집안도 말갛게 치워 놓고, 밥을 지어 가지고 반찬도 맛있게 만들어서 이 사람을 권하시고, 술 담배 사먹을 돈냥도 주고, 당신이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거든 이 사람의 팔다리도 주물러 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드리고--- 앗차 참, 귀먹장이지--- 어떻든지 그렇게 잘 대접만 하면 곧 낮지요.
 
202
이옥자
203
(기가 막혀서) 네, 그렇게 아니하면 낫지 아니할까요.
 
204
하계순
205
암, 그렇게 아니 하면 백 년을 가도 아니 낫지요, 당신이 지금, 누구시오. 그래도 이 개화세상에 여학교 교사로 있는 양반이구려. 여간 사나이 첩둔 심으로만 치고, 이 정필수 하나를 잘 먹여 살리시구려.
 
206
이옥자
207
아, 먹여 살리기야 지금도 먹여 살리지요마는, 명색이 이 집안 주인된 내가 밥을 짓는다 팔다리를 주무른다 해서야 너무 심하지 않어여. 제일 첫째로 학교 교사로 다니는 사람이 그런 천역을 해서야 체통이 되었습니까.
 
208
하계순
209
아니오, 그렇지 않지요. 병 있을 때에는 남편이라도 마누라의 다리도 치고 배도 문질러 주는 일이 없지 아니 있는 것인데요.
 
210
이옥자
211
옳지, 그는 그러하지요. 암만 어른이라도 아랫사람이 병이 나면 그 심부름도 해주는 일이 있지요. 그리고 다른 약은 쓸 거 없을까요.
 
212
하계순
213
네, 이 병은 다른 약 쓸 것은 없어요. 지금 말씀한 대로 편히만 하여 주고 맛난 음식이나 먹이고 하면 자연 쾌차하지요.
 
214
이옥자
215
아따 그런 병은 앓을 만도 한 병이올시다그려.
 
216
하계순
217
지금 내 말씀한 대로 그렇게 하셔야지, 조금이라도 틀렸다가는 이 병인의 목숨이 없어지기 쉽습니다. 정신차리시기요. 그러나 나도 우리 마누라가 오기 전에 내가 집에 먼저 가서 있어야 할 터이니까 나는 가겠습니다.
 
218
이옥자
219
댁에서는 내외분이 다같이 날마다 학교에 사진하시니까 좋으시겠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하인이 되어논 데다가 가끔 이렇게 앓기는 하고 귀찮아 죽겠어요.
 
220
(하며, 가장 근심되는 것같이 말한다. 정필수는 등뒤에 서서 일서서 나아가는 하계순을 바라보며 은근히 감사한 뜻을 표하니 하계순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사하고 화도로 좇아나간 후에, 하계순의 처 공소사가 들어온다. 연기는 이십 이삼 세 되었고 하이 칼라한 사람인데, 이 여자도 그 여학교 촉탁여의(囑託女醫) .)
 
221
공소사
222
이옥자 씨 계시오. 벌써 나오셨습니까.
 
223
이옥자
224
아이구, 이게 웬일이시오. 인제 학교에서 나오시는 길이오. 지금 막 당신 남편 양반이 여기 다녀가셨는데요.
 
225
공소사
226
아, 그게 댁에를 왔었에요. 학교에서 집으로 간다고 해서 먼저 나오더니 여기와서 또 지절거리다가 갔구먼. 인제는 혼자 먼저 가지 못하게 해야 하겠네. 그러나 당신도 그 사람하고 가까이하지 마시오. 밤낮 앉으면 당신 이쁘다는 말뿐이니 정신차리시오.
 
227
이옥자
228
에그, 숭업소,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런 게 아니라오. 우리집 하인이 오늘 학교에를 못갔으니까 웬일인고 하고 궁금해서 오셨던 길이야요. 그러나 이리 좀 올라와 앉으시오.
 
229
공소사
230
(방으로 들어와서) 하인이 왜 무슨 병이 났나요. 학교에 오늘도 결석을 했어요.
 
231
이옥자
232
그런게 아니라 별안간에 귀가 먹었어요. 그래서 마침 남편 양반이 오시기에 좀 보아 달라고 했지요.
 
233
공소사
234
그까짓 위인이 진찰했으니 무엇을 알겠소. 그래도 내가 진찰을 해야지. (정필수는 진찰할까 겁하여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이옥자가 붙들어 앉히고,)
 
235
이옥자
236
오이, 이리 와 앉어. 저 의사께서 일부러 병을 보아 주마고 하시는데 그리 달아나려 해. (억지로 끄집어 당기며 공소사가 진찰을 한다. 정필수는 역시 눈짓 콧짓으로 귀머거리로 진찰을 하여 달라는 뜻으로 은근히 부탁하는 모양.)
 
237
공소사
238
하계순이는 보고서 무엇이라고 합디까.
 
239
이옥자
240
대단히 중증이라고 합디다.
 
241
공소사
242
(빙그럼이 웃으며) 옳소, 병이 중하기는 중하오.
 
243
이옥자
244
그러면 댁 남편 양반이 말씀하시듯이. 평안히 노려두고 맛난 음식이나 먹어야 나을까요.
 
245
공소사
246
아니, 우리 집 영감장이가 그렇게 말합디까. 워낙이 명의라 진찰은 똑바로 하였구먼. 참, 그렇게 해야만 낫겠소. (하며, 정필수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말을 하니, 정필수는 좋아하는 모양이요. 이옥자는 근심하는 모양.)
 
247
공소사
248
그러니 여보, 병 있는데 이런 찬 마루에 앉았으면 병이 더하기 쉬우니 뜻뜻한 방안으로 가서 좀 누워 계시오. (정필수는 아니 들리는 체하고 어름어름하니 이옥자가 손짓을 하여 안으로 들어가라 하메 정필수는 안으로 들어간다.)
 
249
이옥자
250
정말 병이 그렇게 몹시 들었을까요. 그나마 저 모양이면 내 팔자를 어찌한단 말씀이오. (하며 실심한다.)
 
251
공소사
252
걱정 마시오. 귀커녕 아무 것도 아니 먹었소.
 
253
이옥자
254
귀가 안 먹었어요.
 
255
공소사
256
귀가 무엇이야요. 거짓말로 능청을 그렇게 부리느라고 그러지요.
 
257
이옥자
258
아, 저것 보게.
 
259
공소사
260
그러나 나는 인제 집에 가서 서방인지 남방인지 들어대 줄 일이 한가지 더 생겼으니 당신 덕에 너무 고맙소.
 
261
이옥자
262
우리 집 하인도 능청스럽지만 당신 남편 양반은 어쩌면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사람을 그렇게 속이실까요.
 
263
공소사
264
나는 집에 가면 실컷 해대어야지.
 
265
이옥자
266
아이고, 요새 세상은 명색 사나이들이 어찌해서 모두 그 모양들인가. 그래서야 이 문명세계에 여편네의 권리가 어디 있겠소. 우선 우리집 하인부터 단단히 나무래야 하겠소. (하며 안으로 들어가서 정필수를 공박하려 하는 것을 공소사가 말리며,)
 
267
공소사
268
여보, 가만히 계시오. 이 보복으로 분풀이를 하려며는 한 계교가 있소. 그래서 아까도 내가 처음 진찰하였던 말 같이 중병이니 편안히 놀리어 두고, 맛난 음식을 주라 하였지요. 내 가만히 할 말이 있으며 귀를 잠깐 이리 대시오. (두 여자가 무슨 말인지 한참 수군수군하더니 이옥자는 화하는 모양이라. 이때 문간으로부터 사람 들어오는 소리나며 장국밥집 더부살이놈이 장국과 산적을 목판에 받쳐 가지고 들어온다.)
 
269
270
장국하고 산적 여기 가져 왔습니다. (두 여자는 깜짝 놀래고 안으로부터 정필수가 달음질하여 나오더니 그 목판을 받아들고 장국에 산적을 넣어서 풍풍 퍼먹는다. 이옥자는 급히 목판을 빼앗으며,)
 
271
이옥자
272
이건 무슨 행세야.
 
273
정필수
274
맛난 음식을 아니 먹으면 병이 안 낫는다지요?
 
275
공소사
276
어. 말소리가 들리는 게구려. (정필수는 깜짝 놀래어, 두 손으로 귀를 훔켜 쥐는 것이 막 닫히는 군호 딱딱딱.)
 
277
정필수
278
가우구--- 기야우고--- 사우시, 시오소--- . (하며, 공부나 하는 듯이 외우고 있으매 두 여자는 기가 막혀 서로 바라보고 있고 장국밥집 더부살이는 영문을 모르고 먹먹히 섰는데 막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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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견 1
필아저* (106.240.***.***)   
2021-05-31 11:00:16
우리나라 최초 희곡!! 1910년대 대표 연극인 조중환의 유일한 창작 작품으로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한국 최초 희곡이다. 1912년 11월 〈매일신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저자의 유일한 창작으로 개화기 당대 사회 현실에서 여성을 통해 주인공들의 지위적인 일상을 풍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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