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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 상사(相思) ◇
해설   목차 (총 : 7권)     이전 4권 다음
1925년
이광수
1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2
4. 相思(상사)
 
 
3
오류정에서 몽룡을 이별하고 돌아온 춘향은 종일 아무것도 아니 먹고 방에 누워 있었다. 월매는 딸을 생각하여 밥도 권해 보고 밥을 안 먹으면 죽도 권해 보고 미음도 권해 보 며,
 
4
"아가, 어서 무얼 좀 먹어라."
 
5
하고 애를 쓰면 춘향은 늙은 어머니가 애쓰는 것이 미안하 여 일어나 숟가락을 들어 보나 눈물에 목이 메어 먹는 것이 넘어가지를 아니한다.
 
6
"어머니, 목이 메어 못 먹겠소."
 
7
하고 숟가락을 놓으면 월매는 화를 더럭 내며,
 
8
"이년아, 너는 서방만 알고 어미는 모르느냐. 네가 안 먹 으면 낸들 먹겠느냐. 네 앞에서 내가 목절피를 하여 죽는 것을 보랴느냐?"
 
9
하고 몸부림을 한다.
 
10
"어머니, 우지 마오. 내가 먹을리다. 우지 마오. 지금은 목 이 메어 못 먹겠으니 두고 건너 가시면 이따가 먹을리다."
 
11
이 모양으로 월매의 권에 못 이기어 먹으며 말며 춘향은 마치 병든 사람 모양으로 그날 그날을 보낸다.
 
12
"이런 줄 알았더면 보내지를 마옵거나 차라리 가는 님을 따라라도 가올 것을 보내고 애타는 나를 나도 모르겠네. 이 별이 설운지고 님 이별이 과연 설운지고. 생각던 것보다도 한없이 더 서럽구려. 이 설움 어이 품고 살거나. 나는 못 살 겠네. 사랑이 깊사오매 이별이 더 설운지고. 이리 설은 이별 이면 사랑이나 말을 것을. 사랑코 이별한 몸이 차마 살기 어려워라. 울며 잡는 소매 뿌리치고 가신 도련님아. 내 이리 설울진댄 님인들 아니 설울소냐. 이 설움 어이 참아 지내시 나. 눈물겨워 못 살겠네. 오늘은 어디나 가실꼬. 오늘 밤은 어느 여막에서 날을 혀오시나. 님도 나와 같아선 잠 못 이 루시나."
 
13
이 모양으로 혼자 울고 생각하고 탄식하다가 여러 날 상사 의 괴로움에 지어치어 어슴푸레 잠이 들었더니 문밖에 낯익 은 발자취 들리며,
 
14
"춘향아!"
 
15
하고 몽룡이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춘향이 자리에 누워 잠 든 것을 보고,
 
16
"못 믿을건 여자론다. 여자를 못 믿을레라. 나는 너를 찾 아 천리길에 예 왔건만, 저는 나를 잊고 깊이 잠이 들었네 그려. 못 믿을손 여자의 맘이로고나."
 
17
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문을 도로 닫고 나가 버린다. 춘향 이 놀라 잠을 깨어 일어나서 버선발로 따라나가니 몽룡의 도포자락이 중문간에 펄렁하는 듯하고 불러도 대답없고 섬 밑에 이슬 맺힌 파초 잎만 달빛에 너훌너훌, 반딧 불만 소 리없이 반짝반짝 오락가락할 뿐이다.
 
18
춘향이 도로 방에 들어와,
 
19
"꿈이로구나. 한바탕 꿈이로구나. 한양에 가신 님의 꿈 아 니고 오실 리 있나? 꿈아 어린 꿈아. 오신 님도 보낼건가.
 
20
오신 님 보내느니 잠든 나를 깨우려문. 날 두고 가시기로 잊으신 줄만 여겼더니 꿈에 와 찾으시니 님도 나를 생각하 시나 보이."
 
21
이러구러 몽룡이 떠난지 이십일이 넘어서 하루는 방자가 춘향의 집으로 뛰어 들어오며,
 
22
"춘향아, 잘 있느냐. 도련님한테서 편지 왔다."
 
23
하고 편지를 내어 준다.
 
24
춘향은 그 편지를 받아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차마 떼 지는 못하고 방자더러,
 
25
"그래 먼길에 발덧이나 안 났소? 도련님께서 내행 모시고 무사히 득달하시었소? 그래 가시는 길에 도련님이 나를 생 각이나 하십디까?"
 
26
하고 공손하게 묻는다.
 
27
평생 이녀석 저녀석하던 춘향이가 자기를 보고 공손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방자 일변 이상하게도 생각하고 가엾이 도 생각해서 그렇지 아니하면 농담 마디라도 할 것이언마는 아주 의젓하게,
 
28
"다 무고히 가시고 도련님도 길에서 밤낮 네 말만 하시더 라. 내가 띠나오랴고 하직할 때에도 도련님께서 이 편지 주 시며 차마 울지는 못하고 입만 벙긋벙긋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그만 비감해서 먼저 울었다."
 
29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는다.
 
30
춘향은 상단을 불러 방자에게 안주 잘 놓고 술 한 상 차려 대접하라 분부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몽룡의 편지를 떼었다—.
 
31
"오류정 이별이 아까 같건마는 벌써 일순이 시내었으니, 세월의 흐름이 물같이 빠르도다. 원컨댄 세월이 살같이 빠 른게 흘러 그대와 상봉할 날이 속히 돌아오기를 바라노라. 그 동안 니어 평안하며 장모도 무고하신가 궁금하며, 나는 사당 내행 모시고 일로 평안히 서울에 득달하여 혼실이 별 고 없음을 보니 행이어니와, 사랑하는 그대를 칠백리 남원 에 두고 나 홀로 한양에 돌아오니 만호장안이라 하건마는 광야에 있는 듯하도다. 그대의 용모와 음성이 주야로 내 눈 과 있으니 어찌 침식인들 평안하리오. 삼각의 암암한 바위 와 종남의 울울한 창송이 모두 그대인 듯하여 정히 맘을 진 정할 수 없노라. 그대도 나와 같을 줄을 생각하매 만날 마 음이 살보다 빠르거니와, 내 아직 그대를 찾을 수 없고 그 대 아직 나를 따를 수 없으니 진실로 단장할 일이로다. 그 러나 우리의 연분이 삼생에 이어 있고 우리의 언약이 철석 과 같으니 반드시 다시 상봉할 날이 있으리라. 부대 맘을 변치 말고 천만보중하여 그날을 기다리라. 종이를 대하니 할 말이 무궁하도다. 면면한 정회를 붓으로 다 그릴 수 없 으니 원컨댄 생각하라. 나의 마음을 그대 알고, 그대의 마음 을 내 알거니 어찌 모르미 말하리오. 돌아가는 편이 총총하 매 이만 그치노라."
 
32
하고 연월일 밑에 이 몽룡은 서라고 쓰고 나서 다시 작은 글자로,
 
33
"상단도 잘 있으며, 청삽사리 물 잘 먹고 화계에 석류 꽃 은 어떠하며, 부용당 앞에 파초도 몇 잎이나 더 피었으며, 담 밑에 늙은 향나무 그늘이나 좋은지 모두 눈에 암암하도 다."
 
34
하였다. 춘향은 보고 또 보고 사오 차나 보고 나서는 혹 편지 뒷등에도 무슨 말이 써 있는가, 혹 필봉 속에 한 장 더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뒤집어 보고 떨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없으므로 편지를 무릎 위에 놓고 길게 한숨을 지며,
 
35
"왜 편지라도 좀 길게 안 쓰시었나."
 
36
하고 탄식한다.
 
37
그리고는 또 한 번 무릎에 놓인 편지를 들고 읽고 나서,
 
38
"어머니!"
 
39
하고 불렀다.
 
40
월매는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41
"왜 그러느냐?"
 
42
"도련님헌테서 편지 왔소."
 
43
"응. 무어라고?"
 
44
하고 월매 일어나 문지방으로 머리를 내밀어 춘향의 방을 바라보다가 방자가 마루에 앉아 술 먹고 있는 것을 보고,
 
45
"오 너 무사히 다녀왔니? 발덧이나 안 났느냐?"
 
46
"아주머니, 편안하시오? 그까진 서울이야 열 번 다녀오면 발덧 나겠소?"
 
47
하고 방자는 맘놓고 술만 마신다.
 
48
월매는 눈을 비비며,
 
49
"그래, 무어라고 했어?"
 
50
"잘 있느냐고. 어머니도 평안하냐고. 무사히 왔으니 염녀 말라고. 상단이도 잘 있느냐고. 화계에 석류꽃은 어찌 되었 으며, 부용당 앞에 파초는 새 잎이 몇 잎이나 나왔느냐고.
 
51
늙은 향나무 청삽사리 다 잘 있느냐고."
 
52
월매 못마땅한 듯이 침을 퉤 뱉으며,
 
53
"망할 녀석! 사내 녀석이 별 잔소리를 다하지. 퍽도 일이 없던가 보고나. 그래 그뿐이야? 다른 말은 없니?"
 
54
춘향은 월매의 말에 좀 불쾌하였으나 억지로 참고 공손히,
 
55
"다른 말은 없어요."
 
56
하고 창 밖으로 내밀었던 고개를 들이켜 버린다.
 
57
월매는 또 한 번 침을 퉤 뱉으며,
 
58
"천하에 전 깍장이 녀석 같으니. 이번 오는 편에도 돈 한 푼 이렇단 말이 없담."
 
59
하고 춘향이 모양으로 문지방 위로 내밀었던 목을 움츠린다.
 
60
춘향은 곧 붓을 들어 몽룡에게 답장 쓰기를 시작하였다—
 
61
"도련님 전 상살이 도련님께오서 박석퇴 넘으심을 뵈옵고 천지가 아득하와, 눈물로 집에 돌아온 후로 우금이순에 도련님 소식 몰라 궁 금하고 답답하옵던 차에, 방자편에 부치신 하서 받자와 원 로에 평안히 행차하시고, 댁내 한결같이 만안하옵심 듣자오 니, 깃사옵기 이로 측량 못하오나, 주야로 사모하옵는 도련 님께서는 산첩첩 수중중한, 천리 한양에 계시와 만나 뵈올 기약이 망연함을 생각하오니, 도로혀 눈물이 앞을 가리오나 이다. 도련님은 대장부시라 이별의 설움을 잊을 일도 많으 시려니와, 소첩은 일개 아녀자라 독수공방에 생각나니 오직 도련님 뿐이오니 하루 열 두시 어느 시에 도련님을 생각지 아니하오며 어느 시에 상사의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오 리이까. 도련님 뵈옵고 있을 때에는 과연 석화광음이라, 일 년 열 두달이 꿈결같이 지나가옵더니 도련님 이별하온 후로 는 일각이 삼추 같사와 지나간 이순의 세월이 이년보다도 더 긴 듯하오니, 이 앞에 오는 세월을 어이 굴어 보내오리 이까. 생각할사록 오직 눈물이요, 한숨뿐이로소이다. 그러하 오나 가슴에 맺힌 일편단심이야 천만년을 지난들 가실 줄이 없사오리니, 불행히 생전에 도련님을 다시 뵈옵지 못하고 소첩의 실낱 같은 목숨이 끊어진다 하오면, 도련님을 사모 하옵는 혼은 반드시 훨훨 날아 한양으로 가오려니와 몸은 망부석이 되어 마지막으로 도련님을 이별하옵던 박석퇴에 서서 천년 만년에 피눈물을 흘리며, 도련님을 기다릴까 하 나이다. 세상에 슬픈 일이 많다 하온들 사랑하는 님 이별하 기보다 더 슬픈 일이 있사오며 못할 일이 많다 하온들 천리 에 계신 님을 기다리기보다 더 못할 일이 있사오리이까. 만 나 지를 말았거나 만났거든 떠나지를 말았거나, 떠났거든 그리지를 말았거나 만났다가 떠나고 그리옵기는 차마 못할 일이로소이다. 그러하오나 소첩도 다행히 옛글을 배운지라, 어찌 한갖 정만 생각 하옵고 대의를 헤아릴 줄 모르리이까.
 
62
소첩은 비록 아녀자의 몸이 되어 규중에 있어 장부를 생각 하므로 능사를 삼으려니와, 도련님은 대장부라 반드시 뜻을 크게 하시와 위로 성상을 도와 아래로 만민을 다스릴 직책 을 가지시니, 해가에 홍규의 정을 생각하시리이까. 방자의 말을 듣사옵건댄, 도련님께서 하루라도 속히 소첩을 만나실 일을 생각하신다 하오니 그 두터우신 정은 감격하오나, 이 는 소첩의 본의 아니오니, 금방에 이름을 거시고 국가에 중 신이 되시길 전에 비록 소첩을 찾으시더라도 소첩은 차라리 자진할지언정 다시 뵈옵지 아닐까 하나이다. 원컨댄 도련님 은 일시의 정애를 잊으시고 경국제민의 큰 의를 생각하시옵 소서.
 
63
소첩의 어미 평안하시고 상단이도 잘 있사오며 화계의 석 류는 벌써 꽃잎 이울었고 부용단 앞에 파초는 도련님 가신 뒤에 두 잎이 새로 났사오며 늙은 향나무 싱싱하옵고 청삽 사리도 잘 있사오나 이로부터 소첩의 집을 찾을리 없사오니 삽사리도 짖을 일이 없을까 하나이다. 종이를 대하오매 살 을 바를 알지 못하옵고 오직 눈물이 앞을 가리오니 아녀자 의 용렬한 정을 웃어 주시옵소서."
 
64
하고 연월일 밑에 소첩 춘향은 상서라 하고 붓을 던지고는 한참이나 말없이 망연히 앉아 입만 벙긋벙긋하더니,
 
65
"나도 어리석다. 도련님 편지는 오는 신편이 있어 왔건마 는 내 편지는 누가 갖다 주리라고 썼나?"
 
66
하고 한숨을 진다.
 
67
방자 마루에 앉았다가 춘향의 탄식하는 것을 보고,
 
68
"춘향아! 네 편지어는 내 갖다 주마."
 
69
"에그, 뜻은 고맙소마는 구실은 어찌하고 또 서울을 간단 말이요?"
 
70
"참 그도 그렇구나. 옳다."
 
71
하고 방자 무릎을 치며,
 
72
"불원에 신연 하인들이 올라갈 터이니 그때에 부치어 주마."
【원문】상사(相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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