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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세 여성 ◇
해설   목차 (총 : 42권)     이전 21권 다음
1932년
염상섭
1
삼대(三代)
 
2
21. 세 여성
 
 
3
50이 넘어도 가리마 자국 하나 미어지지 않고 이드를하게 한창 기름이 오른 얼굴에는 별양 주름살도 없이 푸근한 젖빛 같은 살결을 보면, 10년은 젊어 보이는 중년 부인이다. 회색 망토를 한 팔에 걸고 의젓이 버티고 들어온 뒤에는, 날씬한 트레머리 여학생이 감색 외투를 사뿟이 입고 따라섰다. 언뜻 보기에는 대갓집 모녀분 같고, 좀더 뜯어보면 노기나 대궐 퇴물인 귀인이 행차 같다.
 
4
-흥흥, 이것이 장안의 명물 매당이군!
 
5
경애는 고개를 갸우뚱히 비꼬고 의자에 딱 젖히고 거만히 비껴 앉아서 들어오는 두 여자를 한수 내려다보듯이 한편 입귀를 빼뚜름히 다물고 눈웃음을 쳐 가며 쏘아본다.
 
6
상훈이 어색하게 헤헤 웃으며 앉았자니까,
 
7
"아 이거 무슨 난봉이 이렇게 난단 말씀이요? 이왕 자리를 뜰 바에는 하다못해..."
 
8
하고 매당은 달뜬 목소리로 나무라듯이 소리를 치다가, 경애의 냉소하는 눈길과 마주치자 입을 닫아버린다. 뒤에 따른 여학생도 웃는 이빨에서 금빛이 반짝하다가 꺼지며 금시로 새침하여진다.
 
9
매당을 우선 초벌 간선한 경애의 눈길은 여학생- 다음 시대에는 없어질 말이지마는 아직까지도 여학생이라는 이 말에는 좋고 나쁘고간에 얇은 살갗이나 깜짝깜짝하는 옴폭한 눈이 인형을 연상하게 하는 온유한 표정이요, 치수는 작으나 날씬한 몸매가 경애의 눈에도 예쁜 아가씨로 비치었다. 이렇게 첫인상이 좋은 데에 경애는 도리어 동정이 갔으나, 이 애가 낮에는 유치원에서 천사같이 나비춤을 추고, 밤에는 술상머리에 앉는구나!고 생각하며 경애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의경을 나무라는 것인지 세상을 한탄하는 것인지, 또는 자기 자신을 혀를 차는 것인지 자기도 모르겠다.
 
10
"앉으슈."
 
11
경애는 자기 옆자리를 권하였다. 의외의 양장 미인이 앉아 있는 데에 저기가 된 의경은, 쭈뼛쭈뼛하면서도 대항적 태도로 눈은 딴 데다가 두고 고개만 까딱해 보이며 외투를 입은 채 의자에 걸터앉는다. 외투를 벗지 않고 체모를 차리는 것이 좌중을 무시한다는 경애에 대한 무언의 반항을 의미하는 기색이다.
 
12
매당이 상훈과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을 경애는 곁눈으로 거들떠보며 자기의 '큐라소' 잔을 들어 쭉 마시고, 빈 잔을 의경에게 내민다. 경애는 의경이 일부러 자기를 무시하는 기색을 보이려는 눈치에 반감이 생기어 첫눈에 가졌던 호감이 스러지고 '아니꼬운 년!' 하고 조금 시달림을 주려는 생각이다.
 
13
"에그 난 못 먹어요."
 
14
의경은 저편 이야기를 골독히 들으려고 정신이 팔려 앉았다가 질색을 하면서, 시키지 않은 짓 그만두라는 듯이 손으로 막는다.
 
15
"온, 소리 못하는 기생, 손 못 보는 갈보는 있다구먼마는 술 못 먹는 술집 색시는 처음 보겠네!"
 
16
경애는 의경의 표정이 한층 더 아니꼬워서 이런 꼬집는 소리를 하고 깔깔 웃으니까, 매당과 상훈이 말을 뚝 끊고 바라다본다.
 
17
"김의경 아씨! 한잔 드우. 여기는 유치원과 달러! 염려 말구 한 잔 들어요. 우리 동창생 아닌가? 하하하..."
 
18
경애는 너 그럴 양이면 어디 견디어봐라 하는 반감과, 제 아무런 매당이라도 내 앞에선 꿈쩍 못하게 납청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객기가 난 것이다.
 
19
얼굴빛이 변한 매당은 금시로 두 볼이 처지며, 눈이 실룩거렸다. 그보다도 의경은 얼굴이 푸르락붉으락 어쩔 줄 몰라 가슴을 새가슴처럼 발랑거리며 말끔히 경애를 치어다볼 뿐이다. 처음에는 누군지 모르고 섣불리 툭 쏘았으나, 술집 색시라고 모욕을 하는 데에 발근한 것도 한 순간이요, 자기 이름을 부르고 유치원을 쳐들고, 나중에는 동창생이 아닌가 하고 농쳐버리는 데에는 의기가 질리고 만 것이다.
 
20
"팔 떨어지겠군 그래 이 진을 그대루 놓을 수야 있나? 손이 무색치 않은가?"
 
21
경애가 일부러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약간 쇠하는 기색을 보이자,
 
22
"어쨌든 받으렴."
 
23
하고 매당이 타이른다. 그러나 입맛이 쓴지 눈썹 새에 내 천 자를 누빈다.
 
24
의경은 마지못해 잔을 받았으나 울며 겨자 먹는 상이다.
 
25
"술투정은 한다더구먼마는 술 한잔 대접하기에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26
술을 따르는 경애는 의기양양하다. 장안의 여걸(?)이라는 매당이 자기의 외수 전갈에 의경을 끌고 온 것을 보고도 경애는 속으로 샐쭉 웃으며 콧날이 우뚝해진 터에, 속이 쓰리면서도 의경더러 술잔을 받으라고 똥기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경애는 이제는 완전히 매당의 기를 꺾어놓았다는 만심도 생기는 것이다.
 
27
"아 참 두 분 인사하시지. 이분은 조선의 여걸 장매당 마마, 이분은 서울의 모던 애기씨..."
 
28
"난 술장수 홍경앱니다. 말씀은 익히 듣잡고 이렇게 뵙기가 늦었습니다."
 
29
매당은 '술장수 홍경애'라는 말이 자기를 빈정대는 것을 들렸던지 좋지 않은 기색이었으나 만나기가 늦었다는 인사를 자기에게 가까이하려는 기미로 알아차렸던지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걸풍의 너털웃음으로 농쳐 버리며,
 
30
"우리집에두 놀러 오세요."
 
31
하고 의미심장한 인사를 한다.
 
32
"그렇지 않아두 아까두 댁 문전까지 갔었습니다마는 나 같은 것두 붙이십니까?"
 
33
하고 냉소를 한다.
 
34
"헤? 우리집에를?"
 
35
하고 매당은 놀라다가,
 
36
"난봉 영감 붙들러 다니기시에 뼛골두 빠지겠소마는, 이왕이면 좀 들어오시지를 않구."
 
37
"머리에 성에가 서는 영감을 붙들어다 약에나 쓸까마는 이 아씨 앞에서 그런 말씀 마슈."
 
38
하고 경애는 콧날을 째끗해 보이며 의경에게,
 
39
"영감 뺏길 염려는 없으니 마음놓슈마는 잃어버리지 않게 호패를 한 해서 채슈."
 
40
하고 좌충우돌이다.
 
41
"객설 그만해!"
 
42
상훈은 경애를 나무라며,
 
43
"그런데 저 색시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 알던가?"
 
44
하고 아까부터 궁금한 말을 꺼낸다.
 
45
"장안 일 쳐놓고 나 모르는 일이 어디 있단 말씀이요, 노상 안면야 많지 우리 간동 근처서 늘 만나지 않았소?"
 
46
이런 딴전도 붙인다. 의경은 말을 탄했다가는 자기만 밑질 것 같아서 그런지 얼굴이 발개서 눈만 깜짝깜짝하고 앞에 놓은 술잔만 노려보고 앉았다가 팔뚝시계를 보며 일어선다.
 
47
"왜 가려우? 술잔이나 내주고 가야지 않소."
 
48
하고 경애는 일어나서 다정히 어깨를 껴안듯이 하여 앉힌다. 매당도 일어설 생각이 없는지 가만히 앉았다. 더 앉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요년의 춤에 놀아서 어설피 나와가지고는 놀림감만 되고 그대로 간대서야 여걸의 체면에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경 역시 매당이나 영감이나 엉덩이를 들려도 않고 먼저 가라는 분부도 아니 내리니 주저앉는 수밖에 없지 마는 물계가 아무래도 영감을 뺏길 것 같아서 지키고 앉았자는 것이다.
 
49
술잔 재촉을 또 받고서 의경은 어찌는 수 없이 자기 앞의 잔을 '어머니'에게로 밀어 놓았다. 매당은 잔을 성큼 들어 쭉 마시었다. 조선의 여걸도 브랜디, 위스키는 알지마는 이런 기린 모가지 같은 병의 술은 처음 보는 거라 호기심으로 마시기는 하였으나 술잔을 요 괘심하고 가증스런 양장 미인에게 돌려보내고 따라 바치는 것은 한 번 더 치수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을 시초로 매당과 경애는 정종으로 달라붙어서 주거니 받거니 두 술장수가 내기를 하는지 판을 차리고 먹었다.
 
50
"이거 주류상 경음회인가? 경음회인가?"
 
51
상훈은 재담을 한 마디 내놓았으나 술잔은 그리 들지도 않는다.
 
52
"바커스 대 매당의 초회전이라우."
 
53
"플레이, 플레이! 바커스 세다!"
 
54
이호, 삼호, 둘씩 한자리에 앉히고, 주지포림에 세상이 꽨 듯싶은지 상훈은 나이 아깝게 경애를 응원하고 앉았다.
 
55
"당신은 깃발 대신에 이거나 휘두르구 어머니 응원 좀 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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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경애는 앞에 놓인 수건을 의경에게 던진다.
 
57
이건 객담으로 재미도 없는 술이 깊어갔으나, 매당은 아무래도 이 계집애를 잠뽁 취하게 해서 자기 집으로 끌고 가고 싶은 것이다. 젊은 년이 무람없이 덤비는 것이 괘씸하나 여걸의 체면보다도 장사가 급하다. 수양딸로 삼고 싶은 것이다.
 
58
"에구, 벌서 자정 들어가네. 영감 이젠 일어섭시다."
 
59
매당은 시계를 보더니 남은 잔을 마시고 일어서려 한다. 경애는 매당의 '영감 일어섭시다'하는 의논성그런 말씨가 그럴 듯이 드렸던지,
 
60
"걸맞는 내외분 같구려. 따님 아가씨 데리구."
 
61
하며 깔깔 웃는다. 경애는 층계를 내려오는 발씨가 위태위태하였으나 매당은 자기 집에서부터 전작이 상당하건마는 아직도 싱싱하였다. 문밖에 나오니 인력거 네 대가 대령하고 있다.
 
62
"우리 함께 가서 또 한잔합시다."
 
63
매당은 경애를 부축해 태워주며 권하였다.
 
64
"그거 좋은 말씀요. 어디 하룻밤 새워 보십시다요."
 
65
경애는 말없이 대찬성이었다. 상훈도 해롭지 않은 듯이 말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네 채가 의경의 인력거를 앞세우고 열을 지어 큰길을 건너서니까, 둘째로 선 경애의 차가 채를 돌리면서,
 
66
"안녕히 가 주무슈. 구경 잘 시켜줘 고맙습니다."
 
67
고 소리를 치며 빠져 달아나버린다.
 
68
인력거 위의 매당은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동짓달 밤바람에 설취한 술도 다 깨어버렸다. 그러나 끝끝내 패에 넘어간 것이 분한지, 우연히 그물에 걸렸던 단단한 한밑천감이 미꾸라지 새끼 빠져나가듯이 놓쳐버린 것이 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여간에 그런 재치 있고 색깔 다른 '수양딸'이라면 우선은 웃돈 주고라도 사들이고 싶고, 인물로만 해도 자기 집에 드나드는 누구보다도 나을 것 같아서 허욕이 부쩍 나는 것이었다.
 
69
"영감 덕에 오늘은 욕 단단히 봤소. 그 대신에 영감 솜씨로 고년 꼭 한 번 데려와야 해요.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가르쳐놔야지."
 
70
집에 들어가서 밤참으로 또 한 상 차려놓고 앉아서 매당은 상훈에게 폭백을 하는 것이었다.
 
71
"재주껏 해 보구려. 여간 그물에는 걸리 것 같지도 않으니!"
 
72
상훈도 오늘 눈치로 경애는 이젠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샘이 나서 그러나 하였더니, 결국에 그야말로 구경이 하고 싶은 객기요 보복적 조롱에 지나지 않은 것을 이제야 겨우 짐작이 난 모양이다.
 
73
의경도 이 날은 여기서 묵고 말았다. 이 집에 드나든 지가 벌써 서너 달 되어도 아직까지는 집에서 나와서 잔 일은 없으나 워낙이 늦기도 하였지만 경애 같은 강적을 만난 뒤라 내친걸음에 한층 더 대담하여졌다. 게다가 요새는 또 한 가지 걱정이 생겨서 상훈에게 아주 몸을 탁 싣는 것이다. 이 달 들어서부터는 다달이 보이던 것이 없어져서 애를 쓰는 것이다.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미끄러져 들어갔다.
【원문】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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