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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이튿날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이튿날

1
"어서 일어나요. 어머니 오셨어요."
 
2
아내가 건넌방 창으로 달려와서 깨우는 바람에 덕기는 그제야 우뚝 일어나 앉았다.
 
3
"어제 늦은 게로구나? 그래 오늘 떠나니?"
 
4
모친은 들어오면서 말을 건다. 아들이 떠난다니까 보러 온 것이었다.
 
5
"봐서 내일 떠나지요..."
 
6
덕기는 일어서며 하품 섞인 소리로 대답을 한다.
 
7
아내도 뒤따라 들어와 부리나케 자리를 게 얹는다.
 
8
안방 식구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안방 식구란 덕기의 서조모 식구다. 말하자면 서시어머니가 안방에 있을 터이나 덕기의 모친은 건너가보려고도 아니하고 또 나어린 서시어머니는 조를 차려서 들어와보려니 하고 버티고 앉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9
서시어머니가 안방을 차지 한 지가 5년, 따라서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나간 지도 5년이다.자기보다도 다섯 살이나 아래인 서시어머니하고 한 솥의 밥을 먹기가 싫었다. 싫기는 피차 일반이었다.
 
10
부자간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노영감은 손주는 귀애하여도 아들은 못마땅하였다. 게다가 귀한 젊은 첩을 들어앉히자니 아들 식구는 밀어내었던 것이다. 또 피차에 난편도 하였던 것이다.
 
11
70 당년에 첩의 몸에서 고명딸 겸 막내딸을 낳았다. 지금 네 살, 이름은 귀순이다.
 
12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날 때 중학에 다니던 덕기도 물론 부모를 부모를 따라 나갔었다. 그러나 중학교 4년 때 장가를 들자 반년쯤 부모 앞에서 지내다가 이 할아버지 집으로 옮아왔다. 어머니는 내놓으려고 아니하였다. 색시의 친정에서도 젊은 시서조모 밑에 두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조부의 엄명을 거역하는 수는 없었다. 조부의 엄명은 서조모의 엄명이다. 서조모가 만만한 어린 내외를 데려다두고 휘두르며 부려먹기에도 알맞고 또 한가지는 나먹은 며느리- 눈 안 맞는 며느리를 고독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13
그래도 노영감으로서는 손주 내외가 귀여워서 데려온 것일지 모른다. 또 덕기도 제 아버지보다는 조부를 따랐던 것이다. 게다가 재산이 아직도 조부의 수중에 있고 단돈 한푼이라도 조부가 차하를 하는 터이라 조부의 뜻을 맞추어야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14
혼인한 이듬해에는 건넌방에서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게 되었다. 첫아들이었다. 집안이 경사났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입으로만이었다. 서조모는 소견이 좁고 보고 배운 것이 없었다. 공연히 건넌방 아이, 증손자를 시기하는 것이었다. 네 살짜리의 할머니와 세 살 먹은 손주가 자랄수록 손이 맞아서 일을 일리고 어른 싸움이 벌어지게 하였다.
 
15
증조부가 간혹 건넌방 아이를 좀 안아주면 안방마마의 눈귀가 가로 째지는 것이었다.
 
16
노영감도 불공평하자는 것은 아니나 몸이 괴로웠다. 결국에는 자기 딸이 귀엽고 젊은 첩에게로 쏠리건마는.
 
17
"아버니 지금 계세요?"
 
18
덕기는 마루로 나와서 또 한 번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건넌방에다 대고 물었다. 부친에게 길 떠나는 문안을 갈 생각이다.
 
19
"몰라! 사랑에 계신지 나가셨는지."
 
20
모친의 대답은 냉담하였다. 원체 이 중늙은이 내외는 이름만 걸리 내외였다.
 
21
식사도 사랑, 잠도 사랑, 세수까지도 사랑에서 내다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코빼기도 못 보는 날이 많다. 그래도 남 보기에는 그리 의가 좋지 않은 것 같지도 않다. 검다 희다 말이 도대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하기 때문에 세속 일에 대범하고 초연해서 그런지? 도를 닦아서 여인에게는 근접을 아니하느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40에 한둘 넘은 이 중년 부인은 얼굴을 잊어버리게 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22
"이애는 어디 갔니?"
 
23
모친은 손주새끼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24
"업고 나갔어요. 사랑마당에서 노는지요."
 
25
하고 어린 며느리는 안방 애 보는 년을 불러내어서 나가보라고 이른다.
 
26
"얘, 얘, 사랑에 나가건 영감님께 화개동 마님께서 오셨다고 여쭈어라."
 
27
며느리는 안방 아이를 업고 마루로 내려가는 계집애년에게 소곤소곤 일렀다. 자기 시어머니가 시할아버지께 문안드릴 기회를 만들자는 분별이다.
 
28
아이년이 나가자 노영감이 곧 들어왔다. 며느리가 그리 급히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온종일 할 일이 없어서 하루에도 몇십 번씩 들락날락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인데 성미가 급하여서 듣기가 무섭게 들어온 것이다.
 
29
사랑문에서부터 기침을 칵하는 소리에 건넌방에서 며느리가 나왔다.
 
30
"음..."
 
31
며느리를 쳐다보고는 이렇게 한마디하고 마루 끝에서 자리옷을 입고 세수를 하다가 일어서는 손자를 보고,
 
32
"무슨 옷을 저렇게 헤갈을 해 입었니?"
 
33
하고 우선 한 번 쏜 뒤에,
 
34
"어제는 어디를 갔다가 몇 치에 들어왔단 말이냐?"
 
35
하고 역정을 낸다. 몇 시에 들어온 것은 오늘 아침에 벌써 안방마마의 보고로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것이다.
 
36
덕기는 물 묻은 얼굴로 가만히 비켜섰을 수밖에 없었다. 영감이 안방으로 들어가니까 며느리도 따라 들어가서 절을 하였다. 비로소 시서모와 대면을 하였다.
 
37
"응, 별고 없지?"
 
38
영감이 출입이 별로 없고 며느리도 이 집에를 여간한 일이 아니면 오기를 싫어하니까 시아버지 문안이 한 달에 한 번도 될까말까하다.
 
39
"내일 모레 제사까지 묵어갈 테냐?"
 
40
며느리는 천만 의외의 소리를 시아버지에게 들었다. 잠자코 섰을 뿐이다.
 
41
생각해 보니 모레가 바로 시할아버니 제사- 이 영감에게는 친기인 것을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다.
 
42
"급한 일 없거든 왔다갔다하느니 아주 묵으려무나. 어린것들만 맡겨두어두 안 될 것이고 하니..."
 
43
며느리 입에서는 '네' 소리가 좀처럼 아니 나왔다. 시아버지는 못마땅하였다.
 
44
"그럼! 좀 있어서 차려주어야지. 나 혼자서는 어린것을 데리고 이 짧은 해에..."
 
45
한옆에 모로 앉았던 젊은 시서모가 비로소 말참견을 했다. 어린것들에게만 내맡겨둘 수 없다는 영감의 말이 며느리 앞에서 자기에게 모욕이나 준 것 같아 못마땅하여서 슬쩍 이렇게 돌려댄 것이다. 며느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여전히 입을 봉하고 섰다.
 
46
첫째 그 반말이 듣기 싫었다. 마주 반말을 해도 좋으나 그래도 밑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 분하다.
 
47
'첩 노릇은 할지언정 원 바닥이 있고 얌전하다면서 소대상을 차리니 말인가 무슨 장한 제사를 차린다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람! 어린애 핑계를 하니 아이 기르는 사람은 제사도 못 지내던감.'
 
48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49
"너희는 예수굔지 난장인지 한다고 조상 봉제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나보더라마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막무가내다!"
 
50
며느리가 끝끝내 잠자코 섰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연년이 제사 지낼 때마다 부자간에 충돌이 생기던 것을 생각하고 주름살 많은 얼굴이 발끈 상기가 되며 치미는 화를 참는다. 며느리는 좀 선뜻하였으나 무어라고 입을 벌릴 수는 없었다.
 
51
"그래 너두 이제는 천주학쟁이가 되었니? 내가 죽은 뒤에는 물 한 방울 떠놓겠니?"
 
52
시아버지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갔다.
 
53
수원집(시서모는 수원 태생이다)은 영감이 며느리를 꾸짖는 것을 보고 까닭 없이 시원하였다. 며느리가 무어라고 말대답이나 한마디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54
"아녜요. 쟤 떠나는 것도 보고 아주 제사까지 치르고 가겠어요. 그렇지 않어두 그럴 생각으로 왔어요."
 
55
며느리의 말이 의외로 온순하여지니까 영감은 도리어 김이 빠지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마음이 적이 풀리었다. 그러나 수원집은 마치 불구경 나갔다가 연기만 모락모락 나고 그만두는 것을 보고 돌아올 때와 같은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56
예수교 아니라 예수교보다 더한 것을 믿기로 그래 조상 정사--부모 제사 지내는 게 무에 틀린다 말이냐? 예수는 아버지를 모른다더라마는 어쨌든 예수도 부모가 있었기에 태어나지 않았겠니? ...덕기도 잘 들어두어라."
 
57
하고 영감은 마루 편으로 소리를 치고 나서 또 밤낮 듣는 잔소리를 꺼낸다.
 
58
예수교 논래- 뒤따라서 아들의 논래를 한참 늘어놓고 나서는,
 
59
"덕기야!"
 
60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수건질을 하고 섰는 손주를 불렀다.
 
61
"네..."
 
62
하고 건너왔다.
 
63
"그 일복 좀 벗어버려라. 사람이 의관을 분명히 하고 있어야지!"
 
64
하고 우선 꾸지람을 한 뒤에,
 
65
"너도 제사 지내고서 떠나거라!"
 
66
하고 엄명을 하였다.
 
67
"네..."
 
68
덕기는 고단도 하고 어제 의외에 만남 경애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기가 좀 마음에 걸리던 차에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경애 일에 몸달 일이야 없고 그것으로 출발을 연기까지 할 묘리는 없으나 이래저래 잘된 셈이다.
 
69
그러나 덕기는 조부가 부친에게 대하여 육장 줄로 친 듯이 꾸지람을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누구 편은 더 들고 주구 편은 덜 드는 것이 아니지만 조부의 결은 잔소리- 그거나마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예수교 논래에는 시비는 하여간에 이제는 머리가 띵하였다. 일년에 몇 차례씩 되는 제사 때면 한층 심한 것이다.
 
70
더구나 자기 마님 제사- 즉 덕기에게는 조모 제사요 부친에게는 친기가 되지만 그 때가 되면 연년이 난가가 되는 것이다.
 
71
"에미도 모르는 자식!"
 
72
이 소리가 사랑으로 안으로 들락거리는 노영감의 입에서 몇십 번 몇백 번이나 나오는지 파제삿날 저녁때나 되어서 눈에 뛰는 사람이 없어져야 간정이 되는 것이었다.
 
73
"대체는 영감마님이 의는 퍽 좋으셨던 게야."
 
74
젊은 여편네들이 수원집더러 들어보라고 짓궂이 이런 소리를 하면 덕기 모친은,
 
75
"내외분의 의가 좋으셨기나 했기에 혼쭐나게 얌전하고 유명짜한 그런 아드님을 나셨지."
 
76
하고 자기 남편을 비웃는 것이었다.
 
77
그러나 부친은 끝끝내 자기 어머님 제사 참례도 아니하고 영감님 분별로 덕기 모자와 일가에서 모여드는 동할렬끼리만 지내는 것이었다.
 
78
게다가 할머니 제사에 또 한 가지 겸치는 것은 수원집이 까닭도 없이 방구석에만 죽치고 들어앉아서 꽈리주둥이가 되어 아이들만 들볶는 것이었다. 여편네들은 영 그 꼴이 미워서 잔칫집처럼 깔깔대고 법석을 하면 서 영감님이 친기보다도 마님 제사는 더 위하신다는 둥- 하는 소리를 수원집 턱밑에서 주거니받거니하고 밤새도록 떠드는 것이었다.
 
79
덕기는 조부의 제사에 정성이 부족하다는 훈계를 들으면서도 지끈지끈하는 무거운 머리로,
 
80
'오늘 저녁때 바커스에 다시 한 번 가볼까?'
 
81
하고 생각이 떠오를 뿐이요, 조부의 쓴 안경알이 꺼멓게 어른거리는 것조차 멀리 어렴풋이 바라다보였다.
 
82
어제 왔던 그런 좋지 못한 친구하고 어울려서 밤늦도록 나다니지 말라는 훈계가 끝나자 덕기 모자는 겨우 안방에서 풀려서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83
덕기는 밥상을 받고, 화롯가에 담배를 피워 물고 가만히 앉았는 모친을 바라보고는 또다시 어제 만난 경애 생각이 났다.
 
84
'어머니는 대관절 그 일을 아시나? 아신다면 그 당시에 어쨌을꾸?.. .그러나 어떻게 돼서 언제 헤지구 말았는구? ...분명히 소생- 내게는 누이동생이나 코빼기도 보지 못한 고마울 것도 없는 누이동생이 하나 잇다는 말을 들었는데...'
 
85
덕기는 혓바닥이 헤어지고 머릿속에서 그저 지진이 나는 것 같은 것을 참고 물말이를 정신없이 퍼 넣으며 혼자 생각을 하였다.
 
86
'어머니께 여쭈어볼까?'
 
87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그러나 모친에게 묻기가 너무 잔인한 것 같기도 하고 알든 모르든 가엾은 생각이 나서 그만두리라고 돌려 생각하였다.
 
88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일을 뉘게 물어보나? 하고 공연히 갑갑증이 났다. 부친에게 직통대고 묻는 수도 없고 집안에서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시급히 알아 보아야 할 일은 아니건마는 그래도 궁금하였다.
 
89
부친의 친구를 찾아가서 물으면 알리라 하는 생각이 들자 물어봄직한 사람을 속으로 골라보았다. 몇 사람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나 부친은 혼자만 속에 넣어 두는 일생의 비밀일 터인데 섣부른 짓을 하다가 덧드러나게 되면 큰일이라고 이것도 돌려 생각을 하였다. 교회 속 일이니만큼 그리고 아직도 부친이 교회의 신임을 받고 그 사회 속에서는 그래도 웬만큼 알리어 있느니만큼 부친의 전비는 어쨌든지 명예를 위하여 함부로 발설 못할 일이었다.
 
90
그러나 부친을 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이상하게도 한옆에서 부친을 미워하는 마음이 머리를 들었다. 부자의 정리보다도 부친에게 대한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불현듯이 떠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혹은 그와 같은 정도로 옆에 앉았는 모친과 경애가 가엾이 생각되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경애가 낳은 딸- 보지 못한 누이동생 그리고 자기 남매까지 불행하고 측은히 생각되었다.
 
91
부친이 그리 잘난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인격으로 아들에게만이라도 숭배를 받았던들 얼마나 자기는 행복하였을까?
 
92
덕기는 부친에게 인격적으로 경의를 표할 수 없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설혹 부친이 자기에게 냉담하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섬겨 보고 싶었다.
 
93
'할아버지께서 이해가 없으신 것도 사실이지만 아버지만 그러시지 않아도 어머니도 행복이시고 우리도 행복이었을 것이다. 경애도 제대로 올곧게 제 운명 제 길을 찾아나갔을 것이 아닌가?...'
 
94
이번 양력설을 쇠고는 스물 세 살이 된 그다. 세상의 못된 물이 들지 않고 지각도 들 만큼 들어갈 때다.
 
95
"어머니! 요새두 아버지께서 약주 잡수세요?"
 
96
덕기는 숭늉을 천천히 마시다 말고 옆으로 앉은 모친을 쳐다보았다.
 
97
"누가 아니! 약주를 잡숫든 기생방에 가든!"
 
98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다가 자기 말이 너무 몰풍스러운 것을 뉘우친 듯이,
 
99
"술상 보아 내오라는 말씀이 없으니 안 잡숫는 게지."
 
100
하고 다시 웃는 낯을 지어 보였다.
 
101
그러나 모친의 나중 말도 덕기에게는 부친을 비웃는 말로밖에 아니 들렸다.
 
102
"아버님께서 잡숫는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주의를 해요!"
 
103
시어머니와 화로를 격해서 윗목에 쪼크리고 앉았던 아내가 오금을 박는다.
 
104
"잔소리 말어!"
 
105
하고 핀잔을 주고 덕기는 담배를 들고 가만히 화롯불에 꼭꼭 눌러붙인다.
 
106
"너두 술 먹니?"
 
107
하며 모친은 얼마쯤 놀란 듯이 아들을 쳐다본다.
 
108
"어제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서 오밤중에나 들어왔습니다."
 
109
며느리는 남편이 행여 무어랄까 보아 얼른 고자질을 하고는 밥상을 번쩍 들고 나가 버렸다.
 
110
"내력 술이니까 하는 수 없지만 벌써부터 술을 배워 되겠니...?"
 
111
모친은 가볍게 나무라두었다.
 
112
"친구에게 끌려서 부득이... 몇 잔 먹구 취하나요. 하지만..."
 
113
하고 덕기가 말을 끊으려니까 모친은 덕기의 뒷말을 기다리고 앉았다가,
 
114
"너 아버지 말이냐? 너 아버지야 그저 그런 이로 돌리려니와..."
 
115
하고 말을 미리 받는다.
 
116
"글쎄 금주 선전 신문인가 무엇엔가 글이나 쓰지 말으셨으면 좋지 않아요! 도무지 교회도 나와버리시구 그런 데 간섭을 마셨으면 좋을 게 아니에요. 밤 10시까지는 설교를 하시고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술집으로 여기저기 갈 데 안 갈 데 돌아다니시니 그러면 세상이 모르나요. 언제든지 알리고 말 것이요... 그것도 거기다가 목숨을 매달고 서양 사람의 둔푼이나 얻어먹어야 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117
덕기는 일전에 병화가 세문 밖 냉동 근처의 좋지 못한 술집에서 자기 부친을 분명히 만나보았다고 신야 넋이야 하며 싫은 소리를 주절대던 것을 생각하며 분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이런 소리를 조용조용히 하였다.
 
118
"그런 소리를 왜 날더러 하니? 너 아버지한테 가서 무슨 소리든 시원스럽게 하렴!"
 
119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었다.
 
120
'그러는 어머니도, 당신 그러면 그러지, 뉘 아나! 하고 남남끼리처럼 하시지 말고 지성껏 아버지를 받들고 그렇게 못 하시게 하시면 자연히 아버지 신상이나 집안 꼴이나 나아가지 않아요!'
 
121
덕기는 이런 말을 하려다가 참아버렸다.
 
122
말은 그쳤다. 모자는 담배만 피우며 싸운 사람들 같이 가만히 앉았다.
 
123
중문간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엉엉 난다. 모친은 앞창을 열고 내다보며,
 
124
"추운데 어디를 이렇게 싸지르는 거냐?"
 
125
하며 애년을 나무라고 나서,
 
126
"어 우지 마라, 어어 우지 마라!"
 
127
하고 건너다보고 어른다.
 
128
며느리가 얼른 가서 우는 아이를 받아 안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아이는 어머니 겨드랑이만 파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129
"이게 무슨 짓이야? 할머니께 안녕 안녕- 하는 게 아니라."
 
130
하고 어미는 나무라면서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젖통이를 내놓기가 부끄러운지 머뭇머뭇하니까,
 
131
"어서 젖을 물리렴!"
 
132
하고 시어미니는 그래도 귀한 손주새끼를 넘겨다본다.
 
133
어린애는 젖을 물자 눈을 감아버린다.
 
134
"잠이 와서 그러는구나."
 
135
"새벽같이 깨어서 바스락거리니까요..."
 
136
고식도 더 말할 게 없는 사람처럼 다시는 입을 아니 벌렸다. 이 방(건넌방)의 아이 보는 계집애년은 세 식구가 잠잠히 앉았는 것을 보고 심심해서 스르르 마루로 나가버렸다. 그 바람에 시어머니는 말을 꺼낸다.
 
137
"이 추위에 얼마나 고생이냐? 손등에 얼음이 들었구나!"
 
138
하며 시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앉은 며느리의 새빨간 두 손을 바라보고 눈을 찌푸렸다.
 
139
"무어 그저 그렇지요."
 
140
며느리는 예사롭게 대답을 하며 싱끗 웃었다.
 
141
"안방에서는 여전히 쓸어 맡기고 모른 척하니?"
 
142
"그러믄요!"
 
143
하고 어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다정한 말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144
"밤낮 그 아이 하나로 온종일 헤어나지를 못하고 방문 밖이나 나오시나요."
 
145
하고 하소연을 한다.
 
146
"계집애년두!"
 
147
"그럼요. 버릇을 애초에 잘못 가르치셨으니까요."
 
148
"행랑것은 새로 들어왔다더니 어떠냐?"
 
149
"밥이나 짓지요마는 온 지 며칠 안 된 것이 능글능글하게 엉너리만 치고 안방에만 들락날락거리고 가관이죠."
 
150
"지시는 누가 했는데?"
 
151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사랑에서 데리고 들어오셔서 오늘부터 두게 된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마 사랑 손님이 지시한 것이지요."
 
152
"어쨌든 그래서 안 됐구나."
 
153
"무어요?"
 
154
"아니, 글쎄 말이다. 안방에만 긴한 듯이 달라붙어 버리면 어지중간에 너만 괴롭잖겠니?"
 
155
"......"
 
156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동정에 감격해서인지 고개를 숙이고 콧등을 훌쩍 들이마신다.
 
157
"어리다고 하속배라도 넘볼 것이요 윗사람이라고 그 모양이니... 네 고생도 다 안다. 내가 너희들만 데기로 있다면야 낸들 무슨 걱정이 되고 불평이 있겠니! 그것두 모두 내 팔자 소관이니까."
 
158
시어머니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이 부인은 야소교인이 아닌지라 '그것두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 하지 않고 내 팔자 소관이라고 한다.
 
159
덕기는 더 듣고 앉았기가 싫어서 벌떡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모친 앞이라 참아버렸다. 덕기는 사랑으로 나오면서 혼자 한숨을 쉬었다. 집안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고 싶었다.
 
160
사랑 댓돌 위에는 고무신 경제화가 네댓 켤레 놓여 있다. 할아버지의 그 쌀쌀한 규모로 사랑에도 60먹은 지 주사 한 사람 외에는 군식구를 두지 않건마는 그래도 놀 데 없고 먹을 것 없는 노인들은 모여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제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서 지금 안에서 듣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161
지체 보아서 한다고 할아버지가 야단야단치고 얻어 맡긴 아내는 또 그것도 처음에는 좋다가 일본 갈 때쯤은 싫증도 났던 아내이건마는 시서모 앞에서 남편도 없는 동안에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 가엾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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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구식 가정에서 자랐기에 이 속에서 배겨 있지 요새의 신여성 같으면야 풍파가 나도 몇 번 났을지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신지식 없다고 싫어하던 것이 이제는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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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잠 푹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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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도 제사까지 지내고 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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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분명히 조부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법하다. 꿈이 아니었던가 하며 소스라쳐 깨어 눈을 떠보니 머리맡 창에 볕이 쨍쨍히 비친 것이 어느덧 저녁때가 된 것 같다. 벌써 새로 3시가 넘었다. 아침 먹고 나오는 길로 따뜻한 데 누웠으려니까 잠이 폭폭 왔던 것이다. 어쨌든 머리를 쳐드니, 작취가 이제야 깨인 듯이 거뜬하고 몸도 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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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처두 묵으라고 하였다만 모레는 너두 들를 테냐? 들르면 무얼 하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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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의 못마땅해하는- 어떻게 들으면 말을 만들어보려고 짓궂이 비꼬는 강강한 어투가 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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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부친이 왔나보다 하고 가만히 유리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수달피 깃을 댄 검정 외투를 입은 홀쭉한 뒷모양이 뜰을 격하여 큰 마루 앞에 보이고 조부는 창을 열고 내다보고 앉았다. 덕기는 일어서려다가 조부가 문을 닫은 뒤에 나가리라 하고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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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오지요마는 덕기는 붙드실 게 무엇 있습니까, 공부하는 애는 그보다 더한 일이 있더라도 하루바삐 보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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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부친의 소리다. 부친은 가냘프고 신경질적인 체격 보아서는 목소리라든지 느리게 하는 어조가 퍽 딴판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와 느린 말투는 젊었을 때에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예수교 속에서 얻은 수양인가 보다고 덕기는 늘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비하면 조부의 목소리와 어투는 자기 생긴 거와 같이 몹시 긴경질적이요 강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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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더한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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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를 차리는 사람이 저편의 말끝을 잡은 것만 다행이라는 듯이 조부의 목소리는 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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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잠자코 섰는 모양이다.
 
174
"계집 자식이 붙드는 게 그보다도 더한 일이냐? 에미 애비가 숨을 몬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냐?"
 
175
"왜 불관한 일에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176
똑같이 부드럽고 똑같이 이분간에 50마디밖에 아니 되는 듯한 말소리다. 그러나 노영감은 아들의 그 말소리가 추근추근히 골을 올리려는 것같이 들려서 더 못마땅하였다.
 
177
"그래 무어 어쨌단 말이냐? 에미 애비 제사도 모르는 놈이 당장 내가 숨을 몬다기로 눈 하나 깜짝이나 할 터이냐? 그런 놈을 공부는 시키면 무얼 하니?"
 
178
영감은 입에 물었던 담뱃대로 재떨이를 땅땅 친다. 방 안에 좌우로 늘어앉은 노인축들은 두 손을 쓱쓱 비비며 꾸뻑꾸뻑 조는 사람처럼 고개들을 파묻고 앉았을 뿐이다. 이 사람들은 주인 영감의 말이 꼭 옳은지 안 옳은지 뚜렷이 판단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79
"종교가 달라서 제사 안 지낸다고 반드시 부모의 임종까지 안하리라고야 할 수가 있겠습니까?"
 
180
'아들의 말을 들으면 그도 그래!'
 
181
하는 생각을 노인들은 하였으나 그래도 제사 안 지낸다고 야단치는 점만은 주인 영감이 옳다고 속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었다.
 
182
"무슨 잔소리를 그래도 뻔뻔히 서서 하는 것이냐? 어서 가거라! 네 자식도 너 따위를 만들 작정이냐? 덕기는 내가 기르고 내가 공부를 시키는 터이다. 너는 낳았달 뿐이지 내 손으로 밥 한술이나 먹이고 학비 한푼이나 대어 주었니? 내가 아무러면 너만큼 못 가르쳐놓겠니! 잔소리 말고 어서 가거라! 도덕이니 박애니 구원이니 하면서 제 자식 하나 못 가르치는 놈이 입으로만 허울좋은 소리를 떠들면 세상이 잘될 듯싶으냐!"
 
183
이것도 이 영감에게서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다. 옳은 말이라고 노인들은 생각하였다.
 
184
"영감, 고정하지요. 영감 말씀이 저저히 옳으신 말씀이지만 저 사람도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려니까 제사 참례만 안 한다는 것이지 어디 누가 반대를 하는 건가요."
 
185
저녁때가 되어서 사람이 삐어 식구가 줄면은 술상이 나올까 하고 배를 축이고 앉았던 제일 연장되는 노인 한 분이 중재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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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아랫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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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 뵈려고 하였어요. 글피쯤 떠날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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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부친 앞에 가서 이런 소리를 하고,
 
189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190
하고 재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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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잠자코 아들을 바라보다가 모자를 벗고 방 안에다 대고 인사를 한 뒤에 안에는 아니 들르고 대문 편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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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가 창문을 후닥닥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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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적마다 조부에게 꾸중만 맞고 안에도 들르거나 말거나 하고 훌쩍 가 버리는 부친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덕기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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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친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남에 없는 위선자거나 악인은 아니다. 이 세상 사람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한 돈도 못 되는 한 푼 내외의 차이밖에 없건만 부친이 어떤 동기로이었든지- 어떤 동기라느니보다도 2, 30년 전 시대의 신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버리고 나서려고 허비적거릴 때에 누구나 그리하였던 것과 같이 그도 젊은 지사로 나섰던 것이요, 또 그러느라면 정치적으로는 길이 막힌 그들이 모여드는 교단 아래 밀려가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 오늘날의 종교 생활의 첫 발길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만일 그가 요샛말로 자기 청산을 하고 어떤 시기에 거기에서 발을 빼냈더라면 그가 사상으로도 더 새로운 시대에 나오게 되었을 것이요, 실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의 성격대로 순조로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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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는 동시에 그러한 위선적 이중 생활 속에서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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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현실상 앞에 눈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온 시대상과 너희의 시대상의 귀일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네 사상과 내 사상이 합치되는 소위 "제 3 제국"을 바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 걸음 나아갔고 나는 그만큼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의 시대에서 또 한 걸음 다시 나아가면 그 때에는 도리어 내 시대의 사상,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어떠한 일부분이라도 필요하게 될지 누가 아니? 나는 그것을 믿고 그것을 믿고 그것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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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덕기가 돌아와서 부친과 병화의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사상 문제와 실제 운동 문제에까지 화제가 돌아갔을 때 덕기가 부친에게 종교를 내던지라고 하니까 부친은 이와 같은 대답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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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부친의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구습상 부친에게 반대할 수도 없고 또 제 주제에 길게 논란할 수도 없는 터이어서 그만두었다. 그뿐 아니라 부친이,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현대 사상 경향이나 사회 현상에 대하여 아주 어둡고 무관심한 것이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이 반갑기도 하고 부자간의 이런 토론은 처음이었으나 그로 말미암아 부친과 자기 사이가 좀 가까워진 것 같은 기쁜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웃고만 말았지만 어쨌든 부친은 봉건 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 조부와 덕기 자신의 중간에 끼여서 조부 편이 될 수도 없고 아들인 덕기 자신의 편도 못 되는 것과 같은 어지중간에 처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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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이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자기의 사상 내용으로나 가장 불안정한 번민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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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덕기는 부친에게 대하여 가다가다 반감이 불끈 치밀다가도 한편으로는 가엾은 생각, 동정하는 마음이 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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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온 덕기는 제 방에서 어젯밤에 들어와 벗어 건 양복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웬 셈인지 오늘은 더욱이 사랑에 나가서 혼자 오뚝이 앉았기도 맥없고 안에 들어와서 고식이 마주 앉아 안방 논래나 부친 논래를 하고들 있는 것을 듣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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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두 안 먹고 지금 어디를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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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나무라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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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바람 쐬고 들어와요."
 
205
"아버지 뵈러 가지 않니?"
 
206
"아버닌 지금 다녀가셨는데요."
 
207
"응?..."
 
208
모친은 놀라는 소리를 하다가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자기가 와 있어서 안에는 안 들러 갔구나-고 생각한 것이었다.
 
209
"그럼, 안에 어쩌면 좀 안 들어오시고 그대로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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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섭섭한 듯이 시어머니 대신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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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시니까 그런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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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덕기는 핀잔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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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기가 싫어서 그런 것이지만 모친은 속으로 아들도 못마땅하였다.
 
214
'너두 네 아비 편만 드는구나!'
 
215
하는 약속한 생각으로.
 
216
"어머니- 그런데 오늘 묵어가세요?"
 
217
덕기는 다시 온유한 낯빛으로 물었다.
 
218
"그럼 어쩌니! 나는 40을 먹어도 호된 시집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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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이렇게 자탄을 하다가 나가는 길에 화개동 집에 가서 자기가 묵는다는 말을 이르고 누이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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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 갈 새가 있을라구요. 아무쪼록 가겠습니다마는 누구든지 보내십쇼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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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정처가 있어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화개동 막바지까지가 가기가 싫어서 이렇게 일러놓고 나오면서 지갑 속에 든 돈 요량을 하여보았다. 아직 노비와 학비를 분명히 타지 않았기 때문에 병화의 밥값 한 달치를 주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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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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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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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