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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제3 충돌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제3 충돌

1
덕기는 떠나는 것을 또 하루 이틀 물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친이 시탕을 한다든지 하면 걱정이 없겠지만 펀펀히 제가 앞에 있으면서 조부가 기동이나 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었다.
 
2
조부도 떠날 테거든 떠나라고는 하지마는 그래도 앞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3
그러나 집에 들어앉았기도 싫었다. 모친과 서조모의 충돌이 생긴 이후로는 제 처와 안방 식구와도 싸우고 난 닭 모양으로 지내는 것이 보기 싫었다.
 
4
이튿날 덕기는 부친에게 가보았다. 이것저것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경애 이야기도 물론이려니와 그저께 저녁에 조부와 충돌된 데데 대해서 제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5
부친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모친이 조부의 증세를 물은 뒤에 서조모가 무어라 하더냐고 물었으나 모른다고만 하였다. 어제 사랑에 나와서 울며불며 무슨 말을 한 것은 몰라도 제 처를 가지고 나는 나갈 테니 잘들 살아보라느니, 너의 세 식구가 입을 모아 나를 쫓아내려 한다느니 하고 까닭 없이 들볶는 것을 못 들은 것도 아니요, 또 아내에게 자질구레한 사연을 듣고는 분하기도 하고 의아한 점도 있었으나 그까짓 말은 모두 귓가로 넘기자는 것이었다.
 
6
"또 네 처를 볶겠구나? 할아버니께 또 있는 말 없는 말 쏘삭이는 것은 어쨌든지간에 그 어린 것을..."
 
7
모친은 새삼스럽게 분해한다.
 
8
"그런 줄을 뻔히 아시면서 덧들여놓으시는 어머니께서 딱하시지 않아요? 무어라든 어쩌든 가만 내버려두시면 그만 아녜요?"
 
9
"사람을 까닭없이 들컹거리는 것을 어떻게 가만 있니? 어제 아침만 해도 사랑에 좀 늦게 나갔다고 시비요, 네 처를 보고 시아버니가 숨을 몰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이니 어서 돌아가셔서 모두 제 차지가 되었으면 너희들은 춤을 추겠구나- 하고 생트집을 잡더라니 그게 말이냐? 제가 그따위 앙심을 먹고 어서 돌아가셔서 벳백이고 꾸려 가지고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조씨 집에서 빠져나가려는 생각이니까 그러는 게 아니냐?"
 
10
모친은 이에서 신물이 나는 듯이 펄펄 뛴다.
 
11
"글쎄, 어머니께서부터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시니 그 사람도 우리를 또 그렇게 들씌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까? 첩이라 하고 게다가 나이 젊으니까 하는 수 없지만 더구나 네 똥 구린 줄을 모르느니 하는 말씀을 하시면 누구는 가만 있을까요?"
 
12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라 덕기는 자기 모친 편을 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모친이 매사에 좀더 점잖게 해서 수원집을 꽉 누르고 채를 잡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부족하였다.
 
13
"아무러면 내가 공연한 소리를 했겠니? 제삿날만 하더라도 그 부산통에 어멈과 틈틈이 수군거리다가 남들은 바빠서 쩔쩔매는데 친정에서 누군가 올라와서 무슨 여관에선가 앓아 누웠는데 곧 가보아야 할 일이 있다고 영감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휘 나가버리니 제 어멈이 숨을 몬대도 그럴 수 없는데 그게 말이냐? 그건 고사하고 간난이년이 보니까 최 참봉하고 문간에서 또 수군거리다가 최 참봉은 사랑으로 들어가 버리고 수원집은 허둥지둥 나가더라니 저희끼리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암만해도 수상하지 않으냐? 아무리 정성이 없고 할 줄 모르는 일이라 하기로 대낮까지 경대를 버티고 앉았던 사람이 겨우 나물거리를 뒤적거리는 체하다가 쓸어 맡겨 놓고 휘 나가는 그런 버릇은 어디 있고, 원체 그 어멈이 최 참봉의 천으로 들어온 거라는데 들어온 거라는데 들어온 지 며칠이 못 되어서 부동이 되어 숙덕거리고 또 게다가 나갈 제 대문 안에서 최 참봉과 수군거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어쨌든 저희들끼리 무슨 내통들이 있는 것이 뻔한 게 아니냐마는 할아버니께서는 그런 걸 아시기나 한다든!"
 
14
덕기는 수원집이 제삿날 조부가 출입한 틈을 타서 한 시간 동안이나 나갔다 들어왔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었으나 그다지 의심스럽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모친의 말대로 그렇다 하면 좀 의아하기는 하다.
 
15
건넌방 아이 보는 간난이년이 보고 들어와 한 말이, 최 참봉하고 수원집이 문간에서 만나본 것은 사실일 것이나 애초에 수원집을 조 의관에게 대어준 사람이 최 참봉이니 들어오고 나가고 하다가 우연히 문간에서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멈을 최 참봉이 지시하여 들인 것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 반드시 그지간에 맥락이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없으며, 또 수원집이 제삿날 나갔다는 것만 하여도 사실 친정에서 누가 와서 있다가 독감이고 걸려서 누워 잇게 되어 사람을 보내서 만나자고 기별하니까 어멈이 말을 받아넘기느라고 수군수군하고 뒤미처 나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16
"친정에서 누가 왔대요?"
 
17
덕기가 물으니까,
 
18
"오라버니라나 보더라마는 오라비면야 왜 사랑에 와서 판을 차리고 누웠지 않고 여관에 가서 자빠졌겠니? 어쨌든 오라비기로 그렇게 붙이시각하고 뛰어갈 건 무어냐?"
 
19
하는 모친의 눈초리는 어디까지든지 의심을 내는 것이었다.
 
20
"그 역시 사람의 일을 누가 안다고 그렇게만 밀어붙여 둘 수 있나요? 할아버니께는 벌써 말씀해 두고 나갔던 것인지도 모를 거이요..."
 
21
덕기는 그래도 모친의 그런 생각을 말리려 하였다. 수원집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라 어쨌든 구순하게 지내게 하자는 생각으로이었으나 모친은 아들이 자꾸 수원집 편을 드는 것 같아서 못마땅하였다.
 
22
모자는 잠깐 말이 그치다 덕기는 일어서면서,
 
23
"할아버니께서 이따고 내일이고 좀 오시라고 하시더군요."
 
24
하고 조부의 명을 전하였다.
 
25
"어차피 어떠신가 가뵈려 했지만 무슨 말씀이 계신 게로구나?"
 
26
모친은 잠깐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27
"몰라요. 수원집이 무어라고 했는지요."
 
28
"그야 묻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지만..."
 
29
모친은 아무래도 뒤가 꿀리는 말을 해놓아서 애가 씌었다.
 
30
부친은 사랑에서 밥상을 받고 앉았었다.
 
31
"오늘 못 떠나겠구나?"
 
32
"네..."
 
33
덕기는 할아버니와 아버니께서만 그러시지 않았으면 저야 가도 좋겠지요만...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34
"이번 봄이 졸업 아니냐? 그래 어디를 들어갈 테냐?"
 
35
부친이 아들의 공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처음이다. 절대 방임주의, 절대 자유주의라 할지 덕기가 꼼꼼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하여 조부에게 말하면 이 양반은 신지식에 어두워 그런지 학비만 내어줄 뿐이요, 부친에게 허락을 구하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으로 보면 덕기가 이만큼이나 되어가는 것은 제가 못생기지 않고 재주도 있거니와 철도 일찍 들어 그렇다고 할 것이다.
 
36
"경도제대로 들어갈까 하는데요."
 
37
"그럴 게 무어 있니? 경성제대로 오면 입학에 경쟁이 심한 것도 아니요 또 집안 형편으로도 좋지 않으냐?"
 
38
"글쎄올시다. 그래도 좋겠지요."
 
39
덕기는 아무쪼록 서울을 떨어져 있고 싶었으나 경성으로 오게 되면 와도 그리 싫은 것은 없었다.
 
40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하는 게 무엇보다도 집안 형편에 좋고..."
 
41
부친은 말끝을 아물리지 않았다. 실상은 '내게도 좋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만 것이었다.
 
42
상훈의 생각으로 하면 부친이 이대로 나아가다가는 어떠한 법률상 수단으로든지 자기를 쑥 빼어 놓고 한 대 걸러서 이 아들에게로 상속을 시킬지도 모르겠고 또 게다가 수원집의 농락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뒷일이 안심이 안 된다. 그렇다고 요사이의 누구누구의 집 모양으로 부자가 법정에서 날뛰는 그따위 추태는 자기의 체면상으로도 못할 일이요, 더구나 종교가라는 처지로서 재산 문제로 마구 나설 형편은 못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쨌든 덕기를 꼭 붙들어 앉혀서 수원집이나 기타 일문 일족의 간섭이나 농간을 막게 하고 한편으로는 덕기를 자기 손에 쥐고 조종해나가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요, 또 그러자면 아무리 부자간이라 하여도 지금까지와는 태도를 고치어서 비위를 맞추어주고 살살 달래서 벗으러져 나가지 않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43
"그래, 무슨 과를 택하란?"
 
44
"법과루 가겠에요."
 
45
덕기는 법과 중에도 형법에 주력을 써서 장래에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형사 전문의 변호사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조선 형편으로는 그것이 그것이 자기 사업으로 알맞을 것 같았다.
 
46
병화에게 언젠가 그런 말을 하니까,
 
47
"흥, 자네는 전선의 후부에 있어서 적십자기 뒤에 숨어 있겠다는 말일세그려?"
 
48
하고 비웃은 일이 있었다.
 
49
"말하자면 군의총감이 되겠다는 말이지?"
 
50
"누가 아나. 자네 따위라도 그 소위 전선에서 포로가 되면 나 같은 간호졸도 필요하지."
 
51
"포로엔 간수가 필요한 걸세. 간수가 되겠다는걸세그려? 자네다운 소릴세."
 
52
하고 짓궂이 놀리었던 것이다.
 
53
어쨌든 덕기는 무산 운동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냉담히 방관만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제일선에 나서서 싸울 성격도 아니요 처지도 아니니까 차라리 일 간호졸 격으로 변호사나 되어서 뒷일이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덮어놓고 크게 되겠다는 공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책상물림의 뒷방 서방님으로 일생을 마치기도 싫었다. 제 분수대로는 무어나 하고 싶었다.
 
54
"법과보다는 경제과나 상과를 하면 어떻겠니?"
 
55
부친은 아들을 실업 방면으로 내보내고 싶어하는 말눈치였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대로의 무슨 사업을 해보겠다는 셈속이다.
 
56
"경제과는 해도 좋지만 상과는 싫어요."
 
57
여기에도 덕기는 몽롱하나마 제 속다짐이 있는 것이었다.
 
58
"너 알아 하렴."
 
59
부친은 아무쪼록 아들의 말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이 가벼이 대답을 해 집어치우고 나서 목소리를 낮추어서,
 
60
"그건 그렇다 하고 너 일전에 어느 카페에 갔었니?"
 
61
하고 조용히 묻는다.
 
62
덕기는 깜짝 놀랐다. 카페에를 갔기로 부친이 별안간 물을 리가 없다.
 
63
'이 양반이 벌써 어디서 듣고 묻는 것일까?'
 
64
하는 생각을 하며,
 
65
"네에, 김병화에게 끌려서 가 본 일이 있어요."
 
66
하고 부친의 눈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도리어 덕기의 얼굴이 벌개졌다.
 
67
"거기서 누구 만났니?..."
 
68
덕기는 부친에게 앞질려서 한 수 넘어간 듯도 하여 무어라 대답할지 맥맥하였다.
 
69
"대강은 짐작하는 터요 상관없는 일이지만..."
 
70
부친은 또 말을 시키려고 애를 쓴다.
 
71
"홍경애...를 만났지요."
 
72
홍경애라는 이름을 부르기가 서먹서먹하고 거북하였다.
 
73
"어느 카페든?"
 
74
"카페가 아니예요. 바커스라는 술집... 오뎅야더군요."
 
75
덕기는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조금도 겸연쩍은 낯빛은 없이 남의 일처럼 묻는 부친의 얼굴이 빤히 보이었다.
 
76
"무얼 하고 있든?"
 
77
한참만에 또 묻는다.
 
78
"술을 팔더군요."
 
79
"제 손으로 경영을 해?"
 
80
"아뇨, 고용살인가 봐요."
 
81
덕기는 그 주인과 동무로서 같이 하자고 하여 소일 삼아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리어 가엾은 사정이요 타락한 모양이더라고 하고 싶었다.
 
82
그것은 경애에게 동정이 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당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네다...고 오금을 박고 싶은 충동으로이었다.
 
83
"꼴은 어떻든?"
 
84
"그저 그렇지요. 일본 옷조각을 입고..."
 
85
부자의 수작은 잠깐 끊기었다.
 
86
"그건 어디서 들으셨에요?"
 
87
한참만에 덕기가 물었다.
 
88
"글쎄 어디서 잠깐 들었기에 말이다."
 
89
하고 부친은 웃어버린다.
 
90
덕기는 더 캐어볼 수도 없고 궁금증이 났다.
 
91
"김병화가 그런 말씀 해요?"
 
92
"아니, 김병화를 내가 만나기나 하였니?"
 
93
하고 또 웃으면서,
 
94
"하여간 그런 데로 술을 먹고 다니지 마라. 벌써부터 술을 그렇게 먹고 다녀서 쓰겠니?"
 
95
하고 부친은 타일렀다.
 
96
그 말이 옳기는 하면서 덕기에게는 도리어 반항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여간 술을 그렇게 먹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그란 몹시 취한 김에 뉘게 그런 말을 해서 부친의 귀에까지 들어가지 않았나 싶었다.
 
97
그러나 뉘게 이야기를 하였을꼬? 생각이 막연하다.
 
98
그란 취중에 아내에게 경애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였던가? 그래서 아내가 어머니께 말씀하고 또 말이 아버니께로 들어가고 만 것인가?- 덕기는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다.
 
99
사실은 그 추측이 옳았다.
 
100
모친은 가뜩이나 한 판에 며느리에게 '어제 애아범이 홍경애인가를 일본 술집에서 만났대요' 하는 소리를 들을 제 한동안 잊었던 일이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고 영감이 그저 끼리 돌면서 밑천을 대어주어서 그런 하이칼라 술집까지 경영시키는 것이라고만 믿어 버렸다.
 
101
모친은 아들을 보고 너까지 그년과 한편이 되어서 술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싶었으나 그동안 큰집에서는 이런 말을 꺼낼 틈이 없었고 아까 안방에서는 수원집과 싸우고 다니느냐고 야단을 칠 때 마누라의 입에서 홍경애 논래가 나오고 말았다.
 
102
마누라의 말은 네 살이나 다섯 살 먹은 자식까지 달렸는데 좀처럼 헤어질 리가 있겠느냐고 상성이요, 영감의 말은 헤어지든 말든 아랑곳이 무어냐? 지금이라도 이혼해 달라면 이혼해 주마고 맞장구를 친 것이었다.
 
103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마는 저대루 내버려두시면 어떻게 합니까?"
 
104
덕기는 말을 꺼내기가 거북한 것을 억지로 부리를 땄다.
 
105
"내버려 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니? 내 처지도 내 처지요, 제가 발광을 하고 떨어져나간 것을..."
 
106
"말눈치가 그렇지 않은가 보던데요. 어쨌든 아버니 체면만 생각하시고 거기 달린 두 사람 세 사람을 희생을 해버리시고 마는 것은 아무리 아버니께서 하신 일이라도 저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107
덕기는 당돌히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108
"네가 참견할 것 아니야!"
 
109
하고 부친은 소리를 친다.
 
110
"제가 참견할 것도 아닙니다마는 처음 일이고 나중 일이고 모두 아버니 책임이 아닙니까? 그 책임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111
아들은 대드는 수작이다.
 
112
"책임이 내가 무슨 책임이란 말이냐? 어쨌든 네가 쥐뿔나게 나설 일이 아니야!"
 
113
부친은 또 불쾌히 핀잔을 주었다. 학교 이야기를 할 때까지는 덕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잘 어루만져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지금은 그것도 잊어버리고 전대로의 까닭 모를 못마땅한 사람이 머리를 든 것이다.
 
114
"어쨌든 저편에서 일을 버르집어낸 것도 아닐 거이요, 저편에서 물러선 것은 아니겠지요. 세상에서 떠드니까..."
 
115
"잔소리 마라! 어린 게 무얼 안다고 주책없이 할 소리 못할 소리 무람없이..."
 
116
부친은 듣기도 싫지만 아비 된 성검을 세우려는 것이다.
 
117
덕기는 잠자코 앉았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이 난 김이니 하고 싶던 말은 다 하고야 말겠다고 단단한 결심하였다.
 
118
"어쨌든 그 애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 애까지야 무슨 죄로 희생이 됩니까? 제가 감히 아버니의 잘잘못을 말씀하려는 게 아닙니다마는 뒷갈망을 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119
"나더러 무슨 뒷갈망을 하라는 말이냐?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야!"
 
120
하고 부친은 소리를 한층 더 버럭 지른다.
 
121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더도 그저께 저녁에 가보고 왔습니다만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안 할 말씀으로 아버니께서 책임을 모피하시려고- 허물을 저편에 들씌우고 발을 빼시려고 그렇게 모함을 잡으신 것은 설마 아니시겠지요?"
 
122
덕기는 상성이 났다.
 
123
"무어 어째? 그게 자식으로서 아비에게 하는 말버릇이냐?"
 
124
하고 부친은 화를 참느라고 소리를 낮추어서,
 
125
"어서 가거라! 어서 가!"
 
126
고 돌아앉는다. 마치 제삿날 조부가 자기에게 한 말을 대를 물리듯이 나가라고 한다.
 
127
부친은 덕기가 아이까지 가보았다는 말에는 역정을 내면서도 궁금증이 났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따져서 물어볼 형편도 아니다.
 
128
지금 덕기에게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막가는 말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 때까지 교회 사람이나 일반 사회에 대하여 경애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이 변명하기 위하여 해 내려 온 말을 자식에게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거이요, 자기 마음을 혼자 몰래 쪼개놓고 본다면 내 자식이 아니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자식보다도 경애 자신에게 대하여까지라도 3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아주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와서는 새삼스럽게 가까이 할 기회도 멀어졌고 만나볼 면목도 없고 보니 애를 써 묵은 부스럼을 건드릴 필요가 있으랴마는 생각으로 내버려둘 뿐이다.
 
129
지금의 상훈만 하여도 그때에 경애를 매정스럽게 떼버리지 않고도 다른 도리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 당시의 상훈은 대담치가 못하였다. 세상- 세상이라느니보다도 교회 속에 소문이 퍼지는 것만 무서워서 겁을 벌벌 내다가 그야말로 어떻게 뒷갈망을 할 수 없으니까 흐지부지 떨어지게 되고 만 것이다. 그때 돈 1000원 가량만 들여서 멀리 딴 시골로만 보내버려도 좋았겠지만, 부친의 손에서 명목 없는 돈을 1000원씩 끌어내기 어렵고 화개동 집의 집문서조차 부친의 수중에 있으니 불시에 빚을 내는 수도 없는 터에 동경 간 경애는 미칠 듯이 돌아오겠다 하고 또 사실 몸이 무거워 가는 것을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하여 데려 내오기로는 하였으나 나와서 당주동 집에 있으면 드나드는 교회의 전도 부인들의 눈이 무섭고 하니까 급한 대로 북미창정 집으로 숨겨 버린 것이었었다.
 
130
남 듣기에는 딸은 여전히 동경서 공부하고 자기는 서울서 혼자살이하기 어려우니까 수원으로 다시 내려간다 하고 교회 사람의 전별까지 무서워서 어름어름하고 수원으로 잠깐 갔다가 올라와서 집 정돈을 하고 딸을 맞아들인 것이다. 모녀의 종적이 감쪽같아진 것을 보고 누구나 천당에 먼저 올라가서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던 것이다. 감추고 숨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요 좁은 서울 바닥에서 전차 속에서나 길거리에서 전일의 교회 형님 아우님을 만날 때 시골서 잠깐 다니러 왔다는 핑계도 한두 번이다. 소문은 얼토당토않은 데서부터 점점 정통을 쏘아들어가게 되니 어지중간에서 볶이는 사람은 경애 모친이요, 상훈은 얼굴이 노래서 돌아다닐 뿐이었다. 아주 교회와 담을 쌓고 패를 차고 나선다면 첩 하나 얻었다고 세상에 없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요 도리어 떳떳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간적 명예를 희생할 용기는 아니 났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멀리 보내거나 떨어지기도 싫었다. 그 동안에 아이는 낳았다.
 
131
"자아 인제는 멀리 떨어져 가 살 테니 한 밑천 해 주우. 죄인같이 서울 속에서 숨어 살수도 없고 수원으로 갈 수가 없지 않소. 자식은 물론 길러 바칠 것이요, 인연을 끊자는 것도 아니오."
 
132
경애 모친은 또다시 돈 논래를 꺼냈다. 생각해보니 상훈이 교인이라 아내가 죽기 전에야 이혼을 할 수 없고 이혼 못하면 떳떳이 내놓고 살 수 없다. 그것도 자기네들이 교회 방면에 연이 없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의 유족으로서 가위 조상훈의 첩 노릇을 한 대서야 상훈의 체면도 체면이려니와 죽은 이의 낯도 더럽히는 것이다. 어쨌든 서울은 떠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상훈은 몇 달 전에 경애를 동경서 불러내려 할 때보다도 돈 순환이 더 어려웠다. 그것은 수원집이 그 동안에 수원 떨거지 편으로 소문을 듣고 영감님에게 고자질을 하기 때문이다.
 
133
영감은 아들에게는 이런 말 저런 말 안 하였으나 한층 더 돈 한 푼 자유로 쓰지 못하게 단속을 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돈을 시원히 해줄 수 없는 한편에 소문은 점점 퍼져가고 게다가 수원집이 덕기 모친의 속을 태워주느라고 이런 사연을 짓궂이
 
134
들려주고 충동이니 덕기 모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135
덕기 모친은 부부끼리 옥신각신 하기 전에 수원집이 가르쳐주는 대로 단통 북미창정으로 뛰어가서 모녀를 붙들고 머리채만 내두르지 않았을 뿐이지 갖은 욕설, 갖은 위협을 다하였던 것이다. 위협이라는 것은 너희가 떨어지지 않으면 교회 속에 소문을 퍼뜨리고 우리 시어머니를 시켜서 너의 고향인 수원에까지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136
이 때부터 상훈의 부부는 아주 등을 맞대고 살게 된 것이었으나, 아내가 방망이를 들고 났댔자 그것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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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덮어놓고 세상을 꺼린다 하여도 상훈으로서는 세상 사람이 경애의 부친이나 그 가족에게 친절히 한 것이 처음부터 그 딸 하나를 보고 야심이 있어서 한 것이라고 오해할 그 점이 싫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다만 지사요 선배요 또한 그들의 가긍한 처지를 동정하여서 도운 것이요 나중에 경애와 그렇게 된 문제건만 그것을 혼동해 생각할 것이 자기의 인격상 큰 차이가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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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자기 아내와 교인인 처지로서나 장성한 자식들의 낯을 보아서나 도저히 이혼할 수 없는 처지니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바에야 아이는 얼른 떼어서 누구에게나 내맡기고 제대로 시집이나 가게 하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재도 역시 얼마간 주어서 시골로--아무쪼록 학교에 취직할 자리가 있을 만한 시골로 쫓아보내는 게 상책이었으나 그렇게 입에 맞는 떡이 여기 있소 하고 나설 리도 없으니 차일피일하고 지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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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애 모로 생각하면 이런 억울한 일이 없다. 딸 버리고 넓은 세상을 좁게 살고 욕더미에 앉아서 소득이라고는 성이 가신 외손자 새끼 하나뿐이다. 들어 있는 집도 문서가 남의 손에 있으니 내 것이 아니다. 만일 이 사람이 한 가지 굽죄는 일만 없으면 멱살이라도 들고 날 것이요, 둘러치나 메치나 매한가지니 벗고 나서서 세상에 떠들어 욕이라도 보이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는 의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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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돈 1000원 해달라고 하여 어디로든지 서울을 뜨자는 것이나 그 역시 정말 힘에 겨워 그런지 마음에 없어 내대는 수작으로 그런지 어름어름하고 그날그날을 보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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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하루 와서는 큰 결심이나 한 듯이 척 하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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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뉘게 맡기고 우선 이것을 가지고 어디로든지 가시오. 자식은 꼭 내 자식이란 법도 없고 내 자식이기로 없었던 셈만 치면 그만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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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돈 300원을 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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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가 당주동 집을 떠날 때 500원 전셋돈 찾은 것이 있으니 그럭저럭 1000원 돈은 되는 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500원이라는 것은 이사하고 세간 장만하고 해산하고 하는 데 상훈이 대어주었대도 넉넉지 못하니까 찔러 들어가고 그동안 몇 달 사는 데도 식량 이외에는 날돈으로 대준 게 없으니 자연 흐지부지 다 쓰기도 하였지마는 어쨌든 하는 말이 괘씸하였다. 또 그것은 고사하고 딸자식은 꼭 내 자식이란 법도 없고, 내 자식이라 하여도 없었던 셈만 치자는 말을 들을 제 트집을 잡을 말이 없어서 한말이라 하기로 이것이 사람의 탈을 쓴 놈의 말인가 하고 어이가 없어 말이 아니 나왔다. 대자바기만큼 싸워야 소용이 없었다. 남은 것은 단돈 300원이요, 그 이튿날부터는 상훈이 발그림자도 아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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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은 그렇게 해서 파차의 정을 떼자는 것이요, 세상에 대하여도 변명거리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경애 모녀가 종적을 감춘 것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 아이 아비 되는 남자와의 연애 문제 때문이라고 소문을 내놓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해놓고 보면 싫어도 하는 수 없이 조만간 자기 손으로 뒷갈망을 못 할 것이니까 자연히 해결되게 할 도리는 그밖에는 상책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애 모져는 그대로 오늘날까지 3, 4년간을 그 집 속에 들엎드려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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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 모친도 사내같이 걸걸한 성미에 그까짓 사람답지 못한 놈과 다시 잇새는 어울러서 무엇하겠느냐는 뻗대는 생각과 또 하나는 그래도 전일의 은인이라는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 모든 분을 참고 제대로 내버려 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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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두 달이 일년이 되고, 일년이 이태가 되니 분도 식어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상훈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으나 더 캐어 알려고도 아니하였다. 아무쪼록 잊어버리기에 노력해왔고, 또 그 집에 대하여는 노영감도 세전 안 받고 빌려 준 셈치고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노영감이 아직도 헤어진 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이랬거나 저랬거나 아들의 명예를 위하여 휩싸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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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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