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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울전 (金鈴傳) ◈
◇ 차설 ◇
해설   목차 (총 : 2권)     이전 2권 ▶마지막
미상
1
차설, 이 대 변씨는 해룡이 반드시 불에 타 죽었으리라하고 본집터에 와 본즉, 다만 해룡이 있던 방만이 안 타고 벽상에 글이 있더라. 그 글에 써 있으되,
 
2
“하늘이 해룡을 내시매 명도(命途)가 기구하도다, 난중에 부모를 잃으매 도로에 방황하였도다. 이 집에 인연이 있으매 십여 년이나 양육(養育)을 받았도다. 은혜와 정의가 더욱 깊으매 유명이 슬프도다. 은혜를 갚고자 하여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죽을 곳에 보내어 종일 밭을 갈았도다. 두 범을 잡고 살아 돌아옴이여 기꺼워하지 아니하였도다. 살옥(殺獄)에 집어 넣음이여 나의 액화가 다하지 아니함이도다. 불을 놓아 사르매 다행이 죽기를 면하였도다. 이별을 당하매, 눈물이 앞을 가리는도다. 허물을 고치매 후일에 다시 만나리로다. 전일을 생각하매 잊을 길이 전혀 없도다.”
 
3
하였더라. 보기를 다한 후에 혹시 남이 알까 염려하여 그 글을 즉시 사루어 버리고 모자(母子)가 집 한 채를 불에 사르고 외헌(外軒)에서 행랑살이하듯 하며 살더라.
 
4
해룡이 홀홀이 집을 떠나가는데 앞에 큰 뫼가 막혔으며, 어디로 향할 줄을 몰라 주저할 즈음에 금령이 굴러 갈 길을 인도하더라.
 
5
점점 따라 여러 고개를 넘어갈 때에 층암(層巖) 절벽(絶壁) 사이에 푸른 잔디와 암석이 내를 격하여 바라보이매, 해룡이 바위 위에 앉아 잠깐 쉬더라. 이때 문득 벽력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한 곳에 금털 돋힌 짐승이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 자기를 해하려고 하므로, 해룡이 급히 피하고자 하더니 금령이 굴러 내달아 막으니, 그 짐승이 몸을 흔들며 변하여 아홉 머리를 가진 악귀가 되어 금령을 집어삼키고 들어가는 것이었으니, 해룡이 이 거동을 보고 대경하여 낙담하며 말하기를
 
6
“이번에는 반드시 금령이 죽었도다.”
 
7
하고, 탄식하며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홀연히 광풍이 일어나며 공중에서 크게 부르짖기를,
 
8
“금령을 구하지 않고 이리 방황하느뇨? 급히 구하라.”
 
9
하고, 문득 간데 없으매, 해룡이 생각하되,
 
10
‘하늘이 가르치니, 부득이 구하려니와 그러나 빈 손뿐이요. 몸에는 촌철(寸鐵) 하나 없으니 어이 대적하리오.’
 
11
하고, 또
 
12
‘금령이 없으면 내 어찌하여 살아났으리오,’
 
13
하고 옷차림을 단단히 하고 한번 뛰어 들어가니,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할 지경이더라. 수삼 리를 안으로 들어가니 그래도 아무 종적이 없더라.
 
14
그리하여 힘을 다하여 기어이 들어가니 홀연히 천지가 밝아지고 해와 달이 고요한데 두루 살펴보니 청석 돌비에 금자로 새겼으되, ‘남천산 봉래동’이라 하였고, 구름 같은 석교 위에 만장 폭포가 흐르는 소리 세사를 잃어버릴 만하였고, 그곳을 지나 점점 들어가니 아문을 크게 열고 동중에 주궁(珠宮) 패궐(貝闕)이 하늘과 땅에 닿아 내성(內城) 외곽(外廓)이 은은히 뵈이거늘, 자세히 본즉 문 위에 금자로 썼으되 ‘금선수부’라 하니라.
 
15
원래 금제는 천지 개벽 후에 일월 정기로 생겨나서 득도하여 신통이 거룩하고 재주가 무쌍한지라. 해룡이 문밖에서 주저하여 감히 들어가지 못하더니, 이윽고 안으로부터 여러 계집들이 나오는데 색태가 아름답고 시골에 묻힌 계집과 판이하거늘 해룡이 급히 피할 때, 몸을 풀포기에 숨기고 동정을 살피니, 이윽고 사오 명의 계집이 피 묻은 옷을 광주리에 담아 이고 서로 손을 이끌고 나와 시냇가에 이르러 옷을 물에 빨며 근심이 가득하여 서로 말하기를,
 
16
“우리 대왕이 전일에는 용력이 절인하고 신통이 거룩하여 당해낼 자 없더니 오늘은 나가시더니 홀연 속을 앓고 돌아와 피를 무수히 토하고 기절하니, 그런 신통으로도 이런 병을 얻었으니 곧 나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오래 신고하여 낫지 못하면 우리들의 괴로움을 어디에다 비하리오.”
 
17
하니, 그 중에 한 여자가 말하기를,
 
18
“우리 공주 낭랑이 간밤에 한 꿈을 얻으니, 하늘에서 한 선관이 내려와 이르시되 ‘내일 다섯 시에 일위 수재(一位秀才)가 이곳에 와서 이 악귀를 잡아 없이하고 공주 낭랑을 구하여 돌아갈 터이니 염려 말라 하시고 또 이 사람은 다른 수재가 아니라 동해 용왕의 아들로서 그대와 속세 연분이 있음에 그대가 이렇게 됨이 또한 천수(天數)라 인력으로 못하나니 천명을 부디 어기지 말고 순순이 따르라.’ 당부하고 이른 말을 누설치 말라 하시더라. 그러더니 오늘 다섯 시가 되도록 소식이 없으니 그런 꿈도 허사가 아닌가 하노라.”
 
19
하고, 서로 크게 말을 하며 슬피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20
“우리도 언제나 이곳을 벗어나 고국에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 뵈옵고, 우리도 팔자가 기박하여 이처럼 공주 낭랑과 같이 하니 이도 또한 팔자에 매인 천수(天數)인가.”
 
21
하거늘, 해룡이 이 말을 모두 듣고 즉시 풀 포대를 헤치고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내다르니, 그 계집들이 놀라 달아나려 하니 해룡이 나아가 인유하며,
 
22
“그대들은 놀라지 마라. 내 여기 들어옴이 다른 일이 아니라 악귀를 없애고자 들어왔으니 아무 의심을 두지 말고 그 악귀 있는 곳을 자세히 가리키라.”
 
23
하니, 그 계집들은 이 말을 듣고 공주 낭랑의 몽사(夢事)를 생각하매, 신기하기 그지없는지라 여러 계집들이 나아가 울며 말하기를,
 
24
“그대 덕분에 우리들을 살려내어 공주 낭랑과 모두 살아나서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찌 이런 덕택이 있겠습니까?”
 
25
하고, 해룡을 인도하여 들어가니 중문은 첩첩하고 전각은 의의하여 반공에 솟았는데, 몸을 숨기어 가만히 들어가니 한 곳에 흉악하게 신음하고 앓는 소리에 전각이 움직일 듯하니라. 해룡이 뛰어 올라가 보니 그 짐승이 전각에 누워 앓다가 문득 사람을 보고 일어나려 하다가 도로 자빠지며 배를 움키고 온 몸을 뒤틀어 움직이지 못하고 입으로 피를 무수히 토하고 거꾸러지더라.
 
26
해룡이 이 형상을 보고 하수코자 하나 빈손으로 몸에 촌철(寸鐵)이 없어 할 수 없이 방황하는데, 그 때 한 미인이 칠보(七寶) 홍군(紅裙)으로 몸도 가볍게 걸어오며, 벽상에 걸린 보검(寶劍)을 가져다가 급히 해룡에게 주는 것이매, 해룡이 즉시 그 보검(寶劍)을 받아 들고 달려들어 그 요귀의 가슴을 무수히 찌르니 그 짐승이 그제야 죽어 늘어지는지라. 자세히 보니 금터럭 돋힌 암퇘지이어늘, 가슴을 헤치고 본즉 문득 금령이 굴러 나오니, 해룡이 보고 크게 반기며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27
“너희 수십 명이 필경 다 요귀로 변하여 사람을 속임이 아니냐?”
 
28
하니, 모든 여자가 일시에 꿇어앉아
 
29
“우리들은 하나도 요괴가 아니오. 우리 팔자가 기구하여 그릇 이놈의 요괴에게 잡히어 와서 험악한 욕을 보고 수하에 있어 사환이 되어 이처럼 부지하여 죽도 살도 못하고 어느 때를 만나야 다시 세상을 볼고 하여, 이곳에 어찌할 수 없어 억류되어 있는 급한 목숨들이로소이다. 아까 공자께 보검을 드리던 분이 곧 천자의 외따님이며, 금선공주 낭랑이로소이다.”
 
30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의 미인이 나와 채의 홍상을 끌고 옥 같은 얼굴을 가리우고 외면하여 섰으니, 이는 다름 아니요 금선공주더라. 수색(愁色)을 띠며 사례하여 말하기를,
 
31
“나는 과연 공주였더니, 수년 전에 모후 낭랑을 모시고 후원에 올라 달구경 하다가 이 요괴에게 잡히어 와서 지금까지 죽지 못하고 살아 있음은 시비들이 주야로 수직하여 있는 고로 욕을 참고 부지하여 살아 있다가 마침 천행으로 그대의 구하여 주심을 입어, 다시 고궁에 돌아가 부왕과 모후를 만나 뵈옵게 하오니 이 은혜는 각골난망이라 무엇으로 갚사오리까. 이제는 금시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32
하고, 소매로 낯을 가리고 목이 메어 흐느끼는 것이었으니, 해룡이 그이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듣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기를,
 
33
“이제 공주 모시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시각이 바쁘오나 길이 험하여 발설하기 어려울 것이니, 내 이제 잠깐 나아가 북현(北縣)에 고하고 위의를 갖춰 공주를 모시게 하올 것이니 잠깐만 기다리시옵소서.”
 
34
하더라. 공주가 울며 말하기를,
 
35
“그대 간 후에 또 무슨 변괴가 있을런지 알 수 없사오니 제발 데려가 주소서.”
 
36
하여, 함께 가기를 애걸하니 해룡이 위로하여 말하기를,
 
37
“저 금방울이 천지조화로 되었음에 재주가 무궁하고 신통이 기이하기로 정히 요괴를 잡고 공주를 구하여 고국에 돌아가게 하였음이, 다 금령의 조화로 됨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가히 구하리니 아무 염려 마시고 잠깐만 기다리시옵소서.”
 
38
하고, 즉시 문밖에 내달아 바로 남경을 향하여 들어갈 때 십자로에서 여러 사람들이 방 붙인 것을 보고 있더라. 해룡이 괴이히 여기어 가서 자세히 보니 그 방문(榜文)에 하였으되, ‘황제가 이제 천하에 반포하나니 짐이 무덕하여 일찍이 아들이 없고 다만 일위 공주를 슬하에 두고 장중보옥 같이 사랑하더니 모월 모일 모야에 난데 없는 몹쓸 요괴가 와서 잡아갔나니 만일 공주를 찾아 바치는 자가 있다면 강산을 나누어 부귀를 한가지로 하고 여년을 동거하리라.’ 하였더라. 해룡이 읽기를 다하고 즉시 방을 떼니, 방 붙이던 관원이 괴이하게 여겨 놀라 해룡을 잡고 방 떼인 곡절을 묻거늘 해룡이 이르되,
 
39
“이곳은 번화한 곳이라 말할 곳이 못되노라.”
 
40
하고, 이에 관원을 데리고 상관에 들어가 여차여차한 사연을 고하니, 그 관원이 크게 기뻐하여 해룡을 상좌에 올려 앉히고 하례하여 말하기를,
 
41
“이러한 일은 천고에 드물도다.”
 
42
하더라. 해룡이 또한 전후사를 다 고하고 위의를 갖추어 바삐 감을 청하니, 그 사람이 해룡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남산을 바라보고 관군과 장리를 거느리고 나아가는 것이매, 이때 해룡이 나올 때 무심히 골 밖에 나왔더니, 만첩 청산에 들어갈 길을 몰라 정히 방황하다가 홀연히 보니, 금령이 앞을 서서 길을 인도하거늘, 자사(刺史)가 금령의 모양과 거동을 보고 신기히 여기어 따라 골짜기로 점점 들어가게 되더라. 이때 금선공주는 해룡을 골밖에 내어 보내고 하늘께 축수하기를,
 
43
“공자 무사히 돌아와 우리와 더불어 환국하게 하소서.”
 
44
하고, 정히 기다리더니, 문득 금령이 굴러오며 그 위를 바라보니 천병만마가 들어오는지라, 공주가 이를 보고 크게 기꺼워하여 잠깐 시녀를 옹위하여, 멀리 바라보더니, 자사(刺史) 들어와 공주께 복지하며 자사가 이에 몹쓸 요괴의 괴로움을 겪으시던 환난을 문후하고 말하기를,
 
45
“신이 이런 신고를 당하시게 하옴에 신의 불민 불충이로소이다.”
 
46
하고, 시녀로 하여금 공주를 모셔 교자에 앉으시게 하고 시녀로 옹위하여 나아갈 때 모든 여자들도 또한 공주를 모시고 한가지로 나온 후에 해룡이 홀로 동중(洞中)에 있어 극소에 불을 지르고 모두 없이 한 후에 금령을 데리고 골 밖으로 나오니 자사와 추종하던 군사들이 대후(待候)하였다가 해룡을 보고 칭찬하며 즐기는 소리 산천을 울리더라.
 
47

 
48
이 때 공주 낭랑을 모셔 별당에 머무시게 하고 객사 정결한 곳에 잔치를 배설하고 즐기며 일변 이 사연을 천자께 주문하고 공주와 해룡을 공궤(供饋)할 때 각처에 공궤지절이 성만하여 받아들인 것이 이루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더라. 이 때 공주는 금령을 차마 손에 놓지 아니하시고 주야(晝夜)로 안고 길을 재촉하사 경성으로 올라올 때 이십여 명의 여인들도 함께 따라 오더라. 이 때 천자와 왕후는 밤 사이에 공주를 잃으시고 주야로 서러워하사 침식을 전폐하고 번뇌하시며 궁금에 쌓여 만사에 경황이 없이 정사를 전혀 잊으시고 노심함을 마지아니하시더니, 이 기별을 들으시고 도리어 반신반의(半信半疑)하사, 능히 말을 못하시다가 마침 자사(刺史)의 표문(表文)을 보시고 환천 회지하실 때 만조백관이 궐문 밖에 나와 진하함을 칭하니 궁내며 궁외와 장안 백성의 환성이 물끓듯하는지라, 상이 치하를 받으신 후 회색이 만연하시어 한편 청주자사에게 표문을 반포하시고 한편 철기(鐵騎) 삼천을 조발하여 공주를 보호하라 하시며 친히 가시어 영접하려 하실새, 해룡의 공로는 일세에 드문 바라 일시가 바쁘시어 이에 어필(御筆)로 쓰시되 장군을 제수하사 공주를 배행하라 하셨더라.
 
49
해룡이 올라오다가 노상에서 천사의 조서를 받자와 북향 사배하고 이에 말에 앉아 장군(將軍) 인수(印綬)를 허리 아래 비껴차고 각읍 수령 등을 거느려 행차하여 오니 위의(威儀)와 범절(凡節)이 빛나고 거룩하여 칭예치 않는 이 없더라. 주야로 배도(倍道)하여 황성에 이르니 성상이 만조를 거느리고 성밖에 나와 맞아 환궁하실 때 성외 성내 백성들이 길에 가득하여 만세를 부르며 상하 백성이 용약(踊躍)하여 환성이 원근에 진동하더라.
 
50
바로 대전에 들으시니 이때 황후는 공주가 돌아옴을 들으시고,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다가 크게 기꺼워하시며 한편 공주를 안으시고 낯을 대하사 통곡하시며 또한 상께서 도우시는데 공주는 울기를 그치시고 요괴에게 잡혀 가서 고초를 무수히 겪던 말이며 몽중에 신선이 내려와서 이르시되
 
51
“동해용왕의 아들이 사람으로 났으니 속세의 연분을 이루라.”
 
52
하고 금일 다섯 시에 이곳에 들어와 요괴를 잡고 같이 나아가 부왕과 모후를 반기리라 하던 말이 귀에 쟁쟁하며 또한 천지(天地) 조화로 된 금령의 신통함이 기이하여 재주와 수단을 부리고 해룡이 요괴를 잡던 정경을 낱낱이 고하니 황후는 금령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53
“하늘이 너같은 영물을 내사 신통이 거룩하고 재주가 비상하여 또한 요괴를 잡고 공주와 시녀를 구하여 인간에 몹쓸 짐승을 없이하고 짐으로 하여금 잃었던 공주를 다시 만나 천륜이 온전케 하니 이는 다 너의 덕택이라 이와 같은 후은(厚恩)을 무엇으로 갚으리오?”
 
54
하시고 황극전에 전좌하사 문무 백관과 종친 외척이며 근시(近侍)하는 모든 시녀를 다 모시고 한편 해룡을 명초(命招)하시니 해룡이 들어와 고두백배(叩頭百拜) 사은하니 상께서 보시매 용모 당당하고 위의가 늠름하여 만고의 영웅(英雄) 준걸(俊傑)이오 일세의 호걸(豪傑) 장부(丈夫)였으므로 천자께서 한번 보시매 기뻐하사 해룡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시기를
 
55
“경의 공을 논할진댄 태산이 낮고 강과 바다가 얕은지라 그 갚을 바를 알지 못하노라.”
 
56
하시고 또한 공주의 몽사를 말씀하시며,
 
57
“몽사를 의논할진대 이는 공주와 천장배필이라 경으로 공주를 싫다 말고 공주 비록 덕이 없으나 족히 건질 것을 받들 것이니 경은 그리 알라.”
 
58
하시고 부마를 삼고자 하실새 바삐 예부에 명하여 택일하라 하시고 조서를 내리어 하교하시며 일변 청화문 밖에 별궁을 지으시고 화원을 벌여 한편 예부로 하여금 혼구(婚具)를 갖추어 차리라 하시더라.
 
59
해룡이 천은을 입사와 사은 후 물러 나와 군을 총독할새, 군기와 군법을 가르치고 연습하며 주야(晝夜)에 게으른 마음을 먹지 아니하고 분주히 국사(國事)를 극진히 살피더니, 어언간 길일이 다다른지라. 위의를 갖추어 권내에 들어가 공주를 맞을 때 삼천 시녀가 공주를 옹위하여 금령을 시립하고 별궁으로 따라올새 향촉을 피우고 부마는 금안장 준마에 금환관 옥홀을 손에 쥐고 어악을 갖추어 큰 길로 돌아오니 풍채가 늠름하여 당세에 기남아요 국가의 동량이라.
 
60
도로에서 이를 구경하는 이 칭찬치 않는 이가 없더라. 공주와 부마가 마상에 올라 대좌함에 공주의 색태(色態) 염려(艶麗)함이 일광에 비치어 꽃이 부끄러워할 만하고 월색은 빛을 잃어 어디 한 곳 곱지 않은 곳이 없고 부마의 영월 같은 천장에 강산수기를 품었으니 일대 영웅이오 국가의 희한한 귀공이라 만조백관이 뉘 아니 칭찬하리오. 상이 황후와 더불어 별궁으로 돌아오시니 부마와 공주가 내려와 맞아 대에 오르실새 부마는 천자를 모시고 공주는 황후를 모시고 시좌(侍坐)하였으니 향연(香煙)은 요요하고 패옥(佩玉)은 쟁쟁(錚錚)하여 위의가 염연하고 화기가 애연(藹然)하더라.
 
61
 
62
다음 날 큰 잔치를 베풀고 만조 제신과 더불어 황극전에서 즐기시고 공중에서는 황후 낭랑이 제대신의 부인들과 더불어 내전에서 즐기시더라. 공주가 교착하시어 진환하는 천상 천하에 수륙 진찬이 갖추지 아니한 것이 없으며 만국의 부인들이 앉았으니 광채가 찬란하여 일색에 비치는지라. 이 때 이와 같은 국은(國恩)을 입고 귀히 되었음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여 영화를 뵈일 곳이 없어 정사를 전혀 다 잊고 공주와 더불어 화락하고 낮이면 천자를 모시고 국사를 다스리매 주야에 잊지 못하고 몸을 다하여 임군 섬기기를 다하더라.
 
63
공주가 상께 주달(奏達)하여 전일(前日) 요괴에게 잡히어 갔던 여자들을 각각 천금을 주어 제 집으로 보내게 하시니 모두 공주의 덕을 일컫지 않는 자가 없더라. 이 때 북방의 흉노 천달이 대원을 회복코자 하여 대병 백만과 날랜 장사 천여 명을 거느리고 호각으로 선봉을 삼고 설만춘로 구응사를 삼아 황하를 건너 물밀 듯이 나오니 온 백성들이 어찌할 줄 몰라 하더라.
 
64
이 때 천달의 대군이 이르는 곳에 군현(郡縣)이 망풍 귀순(望風歸順)하여 수일 내에 삼십육 군을 얻고 장구대진하여 물 들어오듯 하니 북방의 열읍(列邑)이 진동 대란하는지라. 상이 이 기별을 들으시고 대경(大驚)하사 만조(滿朝) 문무(文武)를 모으시고 의논하실새 문무 백관 중에 한 사람도 응답하는 자 없거늘 상이 탄식하시니 문득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하되
 
65
“신이 나이 어리고 재주 없으나 원컨대 군사를 주시면 북노를 쓸어 버리고 성은의 만분지 일이라도 갚고자 하옵니다.”
 
66
하매 그를 보니 그는 다른 사람 아닌 부마도위장 해룡이더라. 상이 들으시고 한참만에
 
67
“짐이 경의 재주와 마음을 알거니와 전장은 사지(死地)라 흉지에 보내고 짐의 마음이 어찌 편하리오. 황후와 낭랑이 즐겨 허락지 아니하리라.”
 
68
하니 부마가 부복하여 여쭈되
 
69
“신이 듣자오니 국난을 당하되 어찌 편히 있으리있까! 천자를 괘념하여 국가 대사를 그릇하오리까!”
 
70
하며 그 위의(威儀)가 정정하고 사기가 씩씩한지라, 상이 또한 그 뜻을 막지 못하고 즉시 허락하사 진북대장군 수군도독을 제수하시고 백모 황월(白矛黃鉞)과 상방검(尙方劍)을 주시어 군위(軍威)를 돕게 하시니 원수가 명을 받고 물러 나와 장졸을 분배하고 호령이 엄숙하고 위의가 정제하더라.
 
71
황후가 사연을 들으시고 대경하사 원수를 불러 만류하려 하시니 벌써 발행(發行)한지라 할 수 없이 말하기를
 
72
“쉬 대공(大功)을 세우고 개가(凱歌)를 불러 돌아와 주상과 나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73
하시니 원수가 땅에 엎드려 좋은 말로 황후 낭랑과 공주를 위로하고 떠날 때에 상이 만조를 거느리시고 친히 전송하시며, 원수의 손을 잡으시고 연연(戀戀)하사 말하기를
 
74
“접경 밖은 경이 제지하고 접경 안은 짐이 제지할 것이니 영을 어기는 자는 선참(先斬) 후계(後戒)하라.”
 
75
하시고 날이 늦으매 환궁하시니 원수가 대병을 휘몰아서 호호탕탕히 나아갈새 깃발과 창칼이 일월을 가리우고 벽력같은 함성은 산천을 움직이는 곳에 한 사람의 소년 대장이 봉신 투구에 황금 색 갑옷을 입고 우수(右手)에 상방검을 들고 좌수(左手)에 백우선(白羽扇)을 쥐고 천리 준마를 탔으니 사람은 천신(天神) 같고 말은 비룡(飛龍) 같으며 군용이 정제하고 위의가 엄숙하여 일대 영웅이요 만고 기남자라. 호호탕탕히 나아가니 보는 자 칭찬치 않는 이 없더라.
 
76
이 때 호각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창에 다달아 원수의 대군을 만나매 향령 아래 대진할 때 호각이 오색우를 몰아 전진에 서니 허리는 열 아름이요 얼굴은 수레바퀴 같고 머리칼이 누르러 검은 얼굴을 덮었으며 손에 장창을 들고 내달으니 좌에는 설만춘이요 우에는 호달이었다. 각각 신장이 구 척이요 얼굴이 흉악하고 형용은 괴이하였고 또한 진중으로부터 일원 대장이 나서니 얼굴은 관운장 같고 곰의 등에 이리의 허리요 잔나비의 팔일러라. 위풍이 늠름하고 위의가 정제하여 당당한 풍도는 사람을 놀래고 헌헌한 위엄은 북해를 뒤침과 같았으며 호각이 한번 바라보고 대호(大呼)하여 말하기를
 
77
“구상유취(口尙乳臭) 어린아이가 천시를 모르고 망녕되어 전지에 나와 어른을 수욕(受辱)코자 하니 네 어찌 칼 아래 놀랜 혼백이 되려 하는고?”
 
78
원수가 대로하여 좌우를 바라보고 말하기를
 
79
“뉘 나를 위하여 능히 나아가 저 도적을 잡아 근심을 덜게 하리오?”
 
80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한 장수가 내달으니 이양춘일러라. 칼을 춤추며 나아가 바로 호각을 도와 싸울새 오십여 합에 이르도록 승부를 결치 못하더니 문득 설만춘이 거짓 패하여 달아나거늘 양춘이 승승장구하여 나가며 꾸짖기를
 
81
“적은 닫지 말고 내 칼을 받으라.”
 
82
하더니 만춘이 가만히 활을 쏘매 양춘이 무심중 살을 왼편 어깨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니 원진으로부터 장만이 내달아 양춘을 구하여 돌아가니 또한 만춘이 말을 돌리어 따르거늘 장만이 크게 노하여 말을 비끼고 만춘을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승부가 나지 않더니 또다시 호달이 나와 좌우를 깨치며 승승하여 들어오니 장만이 패하여 닫는지라. 원수는 장만이 패함을 보고 징을 쳐 군사를 거두고 양춘을 조리하라 하니 호각이 명일에 싸우자 하고 욕설을 무수히 하며 좌우 치빙(馳騁)하거늘 원수가 크게 노하여 창을 잡고 말을 달려 호각을 맞아 싸워 백여 합에 이르도록 승부를 미결(未決)하더라.
 
83
양진의 군사가 물끓듯하여 항오(行伍)를 차리지 못하니 문득 호진중으로부터 징을 치니 호각이 본진(本陣)에 돌아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84
“내 적장이 나이 어림에 업신여기었더니 이제 보니 그 용력을 당하기 어려운지라 마땅히 계교를 써서 잡으리라.”
 
85
하고 진문을 굳게 닫고 기치를 뉘이며 검극(劍戟)을 걷우더라. 원수가 또 다시 내달아 싸움을 돋우니 적장 호각이 진문을 크게 열어 젖히고 크게 꾸짖어.
 
86
“오늘은 너와 자웅(雌雄)을 결하려니와 만약 내 너를 잡지 못하면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87
하고 오십여 합에 승부를 결하지 못하였더니 문득 호각이 말을 돌려 본진으로 가지 아니하고 저희 비록 간계가 있는 모양이나 내 어찌 저를 두려워하리요. 하고 바삐 쫓아 양산곡중으로 들어 사로잡고자 할 즈음에 호각은 보이지 않고 허수아비가 무수히 섰거늘 원수가 크게 의심하여 말을 돌이키고자 하였더니 홀연히 일성(一聲) 포성(砲聲)에 이어 두 편 언덕으로부터 불이 일어나 화광(火光)이 하늘에 맞닿고 그런 무수한 허수아비가 다 화약을 싸서 세운 것이 많으니 나아갈 길이 없는지라 원수는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기를
 
88
“내 도적을 업신여기어 이곳까지 왔다가 오늘 여기 와서 죽을 줄을 어찌 뜻하였으리요.”
 
89
하고 칼을 빼어 자문(自刎)코자 하니라. 이 때 문득 서남간으로부터 금빛이 떠오르며 금령이 화광을 무릅쓰고 들어와 원수 앞에서 찬바람을 일으키니 충천하던 불꽃이 원수의 앞에는 일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몰려가더라. 원수가 금령을 보고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90
“너의 후은(厚恩)을 생각할 양이면 태산이 가볍고 강과 바다가 얕은지라 어찌 다 갚으리오.”
 
91
하며 못내 기쁘고 즐거움을 마지 아니하더라. 문득 경각에 불 기운이 스러지고 길이 열리는지라 원수가 크게 기뻐하여 금령을 데리고 길을 찾아 본진으로 돌아오매 제장 병졸이 황황(遑遑) 망조(罔措)하여 어찌할 줄 모르더니 천만 뜻밖에 원수가 돌아옴을 보고 한편 놀라고 한편 신기히 여기어 용약하며 환성이 천지를 진동하더라. 이에 원수가 본진 장대에 앉아 제장 군졸을 불러 말하기를
 
92
“호각이 반드시 우리 진을 칠 것이니 이제 우리는 계교 위에 계교를 쓰리라.”
 
93
하고 다시 제장을 불러 귀에 대어 일어 말하기를
 
94
“제군은 여차여차히 하여 약속을 잊지 말라!”
 
95
하고 분부하기를 정한 후에 원수가 가만히 진을 다른 데로 옮기었으니 이 때 호각이 원수를 유인하여 산곡 중에 에워 놓고 본진으로 돌아와 제장을 불러 말하기를
 
96
“장해룡이 비록 하늘로 솟고 땅으로 숨는 재주가 있다하나 어찌 오늘의 불길을 벗어나며 어찌 죽기를 면하였으리오. 오늘밤에 가히 원진을 치리라.”
 
97
하고 이날 밤에 호각이 군을 거느리고 가만히 원진으로 들어가니 진중에 사람은 하나도 없고 빈 채만 남았는지라 호각이 깜짝 놀라 급히 군사를 돌이키고자 하니 문득 한 발 포성이 터지며 한 장수가 길을 막으며 칼을 들어 꾸짖어 말하기를.
 
98
“적장 호각은 나를 아느냐?”
 
99
호각이 황망한 중에 언뜻 보니 장원수라 호각이 대경실색하며 미처 손을 놀리지 못하고 원수의 칼이 빛나는 곳에 호각의 머리가 말 아래에 떨어지는 것이었고 만춘과 호달 등 여러 장수들이 호각의 죽음을 보고 혼백이 비산(飛散)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본진을 바라보고 달아나니 본채에 이르러 보니 원진에서 기치를 세우고 장만이 내달아 한 창에 호달을 찔러 죽이고 설만춘은 달아나다가 양춘을 만나 일합에 죽인 바 되고 기타 제장과 군졸을 다 무찔러 죽이고 돌아오게 되더라.
 
100
원수는 크게 기뻐 잔치를 베풀고 삼군에게 주효를 내어 위로하고 상을 준 후 개선할 때 지내는 바 군현이 놀라서 항복하고 극진히 맞이하여 보내니 수선스럽고 못내 바쁘더라.
 
101
이 때 상이 부마를 전장에 보내고 주야로 염려하사 침식이 불안하시더니 문득 원수의 첩서(捷書)를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어 급히 떼어 보시고 희색이 만면하여 말씀하시기를
 
102
“나이 어린 대장이 이같이 크게 이기었으니 실로 천하의 명장이로다.”
 
103
하시고 조정의 치하를 받으시니 조야(朝野)에 환성(歡聲)이 진동하므로 상이 사관을 보내어 원수의 행차를 위로하시고 곧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기를 재촉하더라. 원수의 일행이 여러 날만에 가까이 이르렀다 하거늘 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만조백관을 거느려 십 리나 마중 나아가 원수를 맞이할 때 상이 멀리 바라보시니 원수의 위의가 엄숙하고 정제하니 그것은 주아부(周亞夫)의 풍도와 같더라. 만조백관을 돌아보시고 말씀 하시되
 
104
“장해룡은 국가의 동량지재(棟梁之材)요 주석지신(柱石之臣)이라 어찌 기쁘지 아니 하리오”
 
105
하시니 만좌가 또한 만세를 부르고 상께서 득신(得臣)하심을 기뻐하더라. 이윽고 원수의 일행이 이르러 궁에 들어가 왕께 사은하니 상이 반기사 원수의 손을 잡으시고 등을 어루만지시며
 
106
“짐이 경을 전장에 보내고 주야로 침식이 불안하더니 이제 경이 승전하고 개가를 불러 돌아와 짐의 근심을 없게 하니 옛날의 장량(張良)과 공명(공명(公明)인들 이에서 더할 바리오. 경의 공을 무엇으로 다 갚으리오.”
 
107
하시니 원수가 땅에 엎디어 주달(奏達)하기를
 
108
“성상(聖上)의 홍복(洪福)과 제장(諸將)의 공력(功力)이요 소장의 공이 아니로소이다.”
 
109
상이 더욱 기특히 여기사 즉시 원수를 데리시고 환궁하사 제신(諸臣)을 모으시고 원수의 공로를 의논(議論)하실새, ‘평북장군 위국공좌승상’을 봉하시니 원수가 굳이 사양하되 상이 불윤(不允)하시고 파조(罷朝)하심에 원수가 마지 못하여 사은하고 물러 나와 집으로 돌아와 내당(內堂)에 들어가 황후와 공주께 뵈오니 황후가 승상의 손을 잡고 즐겨하심을 마지 아니하시며 또 서러워하사
 
110
“간밤에 금령이 이것을 두고 간 곳이 없으니 가장 괴이하도다.”
 
111
하시거늘 승상이 놀라 받자와 보니 작은 족자(簇子)더라. 괴이히 여겨 펴보니 아이 하나가 난중에 부모를 잃고 있는 형용이라 그 아래는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업고 가는 형상을 그리매 승상이 보기를 다하며 문득 깨달아 눈물을 머금고 자기 신세를 생각함에 이것이 하늘이 주심이라 하고 이에 그 족자를 단단히 간수하여 가지고 때때로 내어보며 슬퍼하지 않는 때가 없더라.
 
112
이 때 막씨는 금령을 잃고 주야로 슬퍼할 뿐 아니라 장공의 부부 또한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였더니 하루는 야심토록 서로 말할새 홀연 금령이 문을 열고 들어오거늘 모두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막씨는 뛰어나와 금령을 안고 반겨함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종일토록 금령을 안고 즐기다가 날이 저물며 야심하도록 이야기하다가 양부인이 일몽을 얻으매 천상으로부터 한 명의 선관이 내려와 이르되
 
113
“그대들의 액운(厄運)이 다하였으니 오래지 아니하여 아들이 이 길로 갈 것이니 때를 잃지 말라.”
 
114
하고 또 막씨더러 말하기를
 
115
“그대는 아마도 여아(女兒)의 얼굴을 보면 자연 알리라.”
 
116
하고 또 금령더러 말하기를
 
117
“너는 인연이 다하였으며 인간에 부귀영화 극진할지라.”
 
118
하고 손으로 어루만지니 문득 방울이 터지며 한 명의 옥골 선녀가 나오니 또한 선관이 이르되
 
119
“우리가 주었던 보배를 도로 달라.”
 
120
하니 그 선녀가 다섯 가지 보배를 다 드리니 그 선관이 받아 각각 소매에 넣고 공중으로 표연히 올라가거늘 놀라 깨어보니 침상일몽(沈床一夢)이라. 괴이히 여겨 일어나 금령을 찾은즉 간데 없고 난데없는 선녀가 곁에 앉았거늘 놀랍고 괴이하여 자세히 보니 과연 몽중에 보던 선녀더라. 그 아름다운 자태와 붉은 입술에 흰 이며 갖은 애교가 사람의 정신을 앗으니 가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박씨가 한번 보매 정신이 황홀하게 되는 듯하더라. 어찌할 줄 몰라 어린 듯 취한 듯 다만 금령만 부를 따름이더라. 이때 장공이 외현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한편 괴이히 여기며 한편 신기히 여기어 급히 내당에 들어와 본즉 아름다운 자태와 갖은 애교가 깨끗하고 아름다워 듣는 바 처음이오 보는 바 처음이라 희희낙낙하여 이름을 금령 소저라 하고 자를 선애라 하더라. 금령 소저에게 전후 사적을 물으니 능히 기록치 못할지라.
 
121
이에 하늘께 사례하고 그 즐거워함을 이루 측량치 못할 지경이더라. 이 때 금령이 모친 막씨께 고하여
 
122
“우리 집으로 돌아가사이다.”
 
123
하더라. 막씨가 기특히 여기어 금령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부인도 또한 따라와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더라. 이 때 시절이 흉흉하여 인심이 소동하며 처처에 도적이 벌일 듯하여 백성을 살해하며 재물을 탈취하고 백주(白晝) 대로(大路) 지상에서 노략하기를 예사로 하더라. 이를 능히 주현이 제어치 못하거늘 상이 이 소식을 들으시고 근심하심을 마지 않더니 이 때 위왕이 복지하여 주달하기를
 
124
“신이 비록 나이 어리고 재주 없으나 한 번 나아가 백성의 소요함을 진정케 하고 편안케 하오리다.”
 
125
하더라. 상이 크게 기뻐하시어 즉시 위왕으로 순무도찰어사를 제수하시고 그날로 떠나게 하시니 어사가 사은 숙배(謝恩肅拜)하고 나올새 상이 다시 어사의 손을 잡으시고 말하기를
 
126
“경이 한 번 나아가 주현을 평정하고 백성을 진정하면 어찌 위왕의 덕이 아니리오.”
 
127
하시고 말을 마치고 웃으시니 어사가 국은에 감사하고 나라 황후께 하직하고 공주와 더불어 작별하고 길을 떠나더라. 길에 올라 각 읍을 순찰하며 백성을 타이르고 또한 창고를 열어 모든 사람을 도와 주며 도적을 인의로 설득하여 징벌이 분명하니 지나는 곳마다 자진하여 항복하니 열 읍이 진동하며 백성이 또한 기꺼이 복종하여 불과 수 년 안에 민심이 진정되어 도불습유(道不拾遺)하고 산무도적(山無盜賊)하여 백성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고 또한 어사의 은덕을 일컫지 아니하는 이 없더라.
 
128
이러구러 여러 해 되며 길이 남쪽 뜰로 지나더니 장삼의 묘하(墓下)를 지나게 되었는지라. 어사가 옛날의 일을 생각하며 가장 감창(感愴)한지라. 묘 앞에 나아가 제문을 지어 제사 지내니 눈물이 적삼을 적시더라. 제사를 끝내고 태수에게 나아가 청하기를
 
129
“장삼의 묘 앞에 비틀 세워 치산하고 송축을 많이 심으며 묘막을 수축하여 옛날에 양육(養育)하던 은정(恩情)을 표현하고자 하노라.”
 
130
하니 태수가 즉시 지휘하여 사흘 안에 치산하고, 소룡을 불러 오라 하니 이 때 소룡이 형세(形勢)가 점점 궁핍하여 촌락(村落)으로 다니며 걸식(乞食)하고 있으므로 어사가 이말 듣고 추연(惆然)함을 이기지 못하여 널리 수색하여 불러오매 변씨 모자가 이르러 당상을 우러러 보니 곧 해룡이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자못 청죄(請罪)할 뿐이어늘 어사가 저의 모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어 친히 나려가 변씨 모자를 붙들어 올려 당상에 자리를 주고 그간의 고역(苦役)을 물으며 좋은 말로 위로하니 변씨 모자가 황공하여 눈물이 비오듯하며 능히 말을 이루지 못하더라.
 
131
어사가 조금도 옛일을 개의치 아니하며 벌써 모자가 이를 보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오직 회과(悔過) 자책(自責)할 뿐이더라. 어사는 또한 본관에서 돈 만 관과 비단 백 필을 청구하여 변씨 모자를 주며
 
132
“이것이 약소하오나 십삼 년 간의 양육의 은혜를 표현하옵나니 이 땅에서 살고 매년 한번씩 찾으라.”
 
133
하며 작별(作別)한 후에 떠나니 변씨 모자 멀리 나와 전송하고 들어가 서로 어사의 후덕을 일컫고 남방의 갑부가 되어 매양 어사의 은덕을 잊지 못하니 보는 사람마다 흠앙(欽仰)치 않는 이 없더라.
 
134

 
135
이 때 어사의 행차가 경사로 향할새 길이 뇌양 고을을 지나게 되더라. 뇌양에 들어 객사에 숙소할새 본관에 들어가 본관과 더불어 담화하게 되니 자연히 친하여져서 밤 깊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본관은 하직하고 돌아가는 것이었고 어사는 자연히 심사가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깐 졸더니, 백발 노인이 막대를 들어 어사를 가리켜 말하기를,
 
136
“그대 비록 소년 등과하여 영걸(英傑)의 풍으로 이름이 사해에 차고 위세가 천하에 떨치었으되 부모를 곁에 두고 찾지 아니하고 이는 사람의 도리를 찾지 못함이라 내 그대를 위하여 부끄러워하노라.”
 
137
하니 어사가 이 말을 듣고 비감을 이기지 못하여 노인을 붙잡고 다시 묻고자 하다가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더라. 크게 의혹하여 다시 자지 못하고 본관에 들어가니 본관이 하당 영접하여 말씀할새, 문득 본 즉 벽에 족자가 자기 낭중에 있는 족자와 같더라. 어사가 자세히 보고 크게 의아하여 묻기를
 
138
“족자의 그림이 무슨 뜻이 있는고?”
 
139
본관이 슬픈 듯이 말하기를
 
140
“뒤늦게야 한 자식을 낳았더니 난중에 잃은 지 십팔 년이라 사생 존망(死生存亡)을 알지 못하여 주야(晝夜)로 각골(刻骨)하더니 마침 이인(異人)을 만나 그림을 그려 주기로 걸어 두고 보고 있소이다.”
 
141
하니라 어사가 이 말을 듣고 즉시 금낭(金囊)을 열어 족자 하나를 내걸거늘 본관이 보니 두 족자가 조금도 다른 데가 없고 조금도 틈이 없는 터라. 본관과 어사가 서로 괴이히 여기어 의아하나 뚜렷한 표적이 없어서 발설치 못하고 주저하다가 본관이 어사더러 묻기를
 
142
“그 족자는 어디서 났사옵니까? 이상한 일이 있으니 추호(秋毫)라도 기휘(忌諱)치 말고 자세히 이르소서.”
 
143
하더라. 어사가 또한 신기히 여기어 자기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일일이 다 고한 후에 금령의 도움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귀히 된 말이며 나중에 금령이 잘 때에 이 족자를 주고 가던 사연을 낱낱이 고하매 본관이 이 말을 듣고 목이 메어 말하기를
 
144
“나도 금령의 말이 있노라.”
 
145
하고 또 말하기를
 
146
“족자도 금령이 물어온 것이요. 금령을 여러 해를 보지 못하다가 이제 와서 허물을 벗고 나니 천만 자태와 만고의 희한한 절염(絶艶)이라.”
 
147
하고 또 말하기를
 
148
“내 아이는 등에 일곱 사마귀 칠성을 두었으니 그것으로써 아노라.”
 
149
어사가 이 말을 듣고 문득 실성 통곡하더라. 본관이 또한 통곡함을 마지 아니하니 어찌 슬프고 기이하지 아니하리오.
 
150
일월이 빛이 없고 산천 초목이 슬퍼하는 듯하더라. 이 때 온 읍이 이 소식을 듣고 뉘 아니 신기히 여기며 뉘 아니 이상히 여기지 않으리오. 어사가 울음을 그치고 꿇어 앉아 말하기를
 
151
“소자가 정성이 부족하여 이제야 부모를 만나 뵈오니 그 죄는 씻을 길이 없으나 하늘이 살피사 우리에게 금령을 지시하여 이 일이 있게 하였도다.”
 
152
하고 전후 사연을 낱낱이 고하여 말하기를
 
153
“금령이 비록 환토(還土)하였으나 소자가 한 번 보고자 하나이다.”
 
154
하니 공과 부인이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려 말하기를
 
155
“기쁘고 즐거움과 귀하고 신기함이 천고에 듣던 바 처음이라 네 금령을 보고자 함이 괴이하지 않은 일이어니와 여자의 예모(禮貌)에 너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리라.”
 
156
하더라. 어사 또한 그렇게 여기어 이 사연을 글월로 지어 경사에 보고하매 이 때 상이 어사를 보내시고 주야로 기다리시더니 문득 글월을 보고 떼어 보신 후에 크게 기뻐하여
 
157
“위왕이 천하를 두루 돌아 부모와 금령을 찾았으며 금령이 또한 환도하였다 하니 이도 인력으로 수작치 못할 일이라. 이는 반드시 하늘이 지시함이라.”
 
158
하시고 드디어 내전에 들어가시니 황후와 공주 또한 기뻐함을 마지 아니하며
 
159
“금령은 하늘이 내신 바라. 이제 응천 순인(應天順人)치 않으면 배은(背恩)하는 앙화(殃禍)를 받을지라. 금령의 혼인을 성상과 모후께서 주장하사 그 공을 갚음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160
하니 상이 옳게 여기사 궁녀 수백과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하여금 위의를 갖추어 행장을 준비하여 그날로 떠나라 하시고 금령을 황후의 양녀로 삼아 친필로 직첩(職牒)을 금령공주라 하시고 급히 떠나라 하시며 또 막씨를 봉하되 ‘대절지효부인(大節至孝夫人)’을 봉하시고 장공 부부는 원조(元祖) 충신으로 그 마음이 굳어 벼슬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사 위왕에게 하교하시어 그 뜻으로써 돈유(敦諭)하라 하시더라.
 
161

 
162
이 때 황문시랑이 위의를 거느려 여러 날만에 뇌양에 이르러 성지(聖志)와 직첩을 드리고 바로 막씨 처소에 이르자 막씨가 크게 놀라 황황망조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거늘 이 때 금령공주는 알아채고 모친께 나아와 공순히 여쭈오되
 
163
“오늘 일행이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니 모친은 정당(正堂)에 좌를 정하사 남의 웃음을 듣지 마소서.”
 
164
하더니 말을 채 마치지 않아 상궁과 시녀 등이 먼저 명첩(名帖)을 드린 후 들어와 문안하고 공주의 직첩과 부인의 직첩을 드리거늘, 공주는 향안(香案)을 배설하고 직첩을 받들어 북쪽에 네 번 절한 후에 시녀와 황문이 들어와 뵈옵고 황명으로 공주와 부인을 바삐 모셔오라 하심을 전하니 부인과 공주 지체 못할 줄 알고 모녀 즉시 금덩에 올라 집을 하직하고 길을 떠났고 지나는 바 도로에 위의 거룩함이 가히 형언할 수 없더라. 장공 부부가 또한 길을 떠날 때 위왕이 배열하여 경사로 향하니 길가에 구경하는 자 중에 칭찬치 않은 이 없더라. 여러 날만에 경사에 들어와 바로 대내에 들어가 위왕 부자는 사은하고 공주와 막씨와 부인이 또한 대대로 들어가 황후께 현알(見謁)하니 상과 황후께서 금선공주를 다리시고 못내 흠앙하며 그 손을 잡고 탐탐(耽耽)하여 골육지정(骨肉之情)이 있는지라. 상께서 하교하시기를
 
165
“예부는 택일하고 호부는 잔치를 배설하라.”
 
166
하시며 친히 전(殿)에 내려 부마를 영접하사 인사를 받으시니 고금에 이런 일이 길이 없을 것이라. 위왕이 길목을 갖추어 내전에 들어가 교배(交拜)를 마치고 돌아올새 금선공주의 친영(親迎)도 또한 그 날이더라. 구고(舅姑)께 먼저 납폐(納幣)하고 두 공주가 쌍으로 들어가 가례를 맞고 좌에 앉으니 그 빼어나고 아름다운 태도가 눈에 비치고 만좌에 두드러지더라. 공의 부부와 부인이며 좌상곤고의 즐거움이 비할 데 없더라. 또 상과 후에 전알하니 상과 후께서 한번 바라보시고 두 공주의 화려한 태도며 아름다운 색덕이 사람의 정신을 놀랜만하더라. 대단히 기뻐하사 종일토록 즐기다가 해가 서산에 저물매 등롱을 들고 왕을 인도하여 금령공주의 방으로 들어가 화촉(華燭) 동방(洞房)의 예를 갖추어 옛일을 말하며 밤 깊도록 말씀하시다가 불을 끄고 공주의 옥수를 이끌어 침상에 드시니 그 견권지정(繾綣之情)이 이루 측량치 못할러라.
 
167
익일에 양공주 구고께 신성(晨省)하매 그 구고의 애중함이 비할 데 없더라. 이에 처소를 정할새 금선공주는 응운각에 있게 하고 금령공주는 호절각에 있게 하고 시녀를 각각 분배하여 처소를 정한 후 밤이면 두 공주와 더불어 즐기고 낮이면 부모를 모시고 즐겼다.
 
168
이러구려 세월이 오래매 흥진비래(興盡悲來)는 고금의 상사더라. 장공이 홀연히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니 왕이 지성으로 구호하되 마침내 세상을 이별하니 공의 나이 칠십 육세더라 자녀 등의 망극지통(罔極之痛)을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더라. 장례를 극진히 차려 선산(先山)에 안장하고 돌아와 삼상(三喪)을 지성으로 지내고 문득 가부인이 또 돌아가시더니 더욱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당하매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여 서산에 합장하고 삼년 초토를 극진히 지내더니 또 막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왕이 또한 신상을 구하여 장례를 차려 안장하더라.
 
169
이로부터 왕의 복록이 진진하고 자손이 만당하여 금선공주는 일남 일녀를 두고 금령공주는 이남 일녀를 두었으니 다 아버지를 닮아 모두가 옥인 군자(玉人君子)요 요조 숙녀(窈窕淑女)더라. 장자의 이름은 몽진이니 금령공주의 소생이요, 차자의 이름은 몽환이니 금선공주의 소생이요, 삼자의 이름은 몽기니 금령공주의 소생이더라. 장자 몽진은 이부상서로 있고 차자 몽환은 병마도독으로 있으면 삼자 몽기는 한림학사에 거하여 다 벼슬에 오르더라. 여아는 명문 거족(名門巨族)에게 사위를 맞아 각각 아들 딸을 낳으니 손이 번성하고 복록(福祿)이 진진하더라.
【원문】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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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