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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자의 슬픔 ◈
◇ 8 ◇
해설   목차 (총 : 12권)     이전 8권 다음
1919년
김동인
 

1. 8

 
2
늘 그치지 않고 줄줄 내리붓던 비는 종시 조선 전지(全地)에 장마를 지웠다.
 
3
엘리자베트가 있는 마을 뒷뫼에서도 간직하여 두었던 모든 샘이 이번 비로 말미암아 터져서 개골가에 있는 집 몇은 집채같이 흘러내려오는 물로 인하여 혹은 떠내려가고 혹은 무너졌다.
 
4
매일 흰 물방울을 안개같이 내면서 왉왉 흘러내려가는 물을 보면서 엘리자베트는 몇 가지 일로 느끼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반성도 없지 않았다.
 
5
이번 이와 같이 큰 재판을 일으킨 것이 엘리자베트의 뜻은 아니다. 법률을 아는 사람이 '그리하여야 좋다'는 고로 엘리자베트는 으쓱하여서 그리할 뿐이다. 그에게는 서생아 승인으로 넉넉하였다.
 
6
"에이 썅."
 
7
그는 만날 이 일이 생각날 때마다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8
서울을 떠난 것도 그의 느낌의 하나이다. 차라리 반성의 하나이다. 오촌모는 '에이구 내 딸 에이구 내 딸' 하며 크담한 엘리자베트의 궁둥이를 두드리며 사랑하였고, 엘리자베트는 여왕과 같이 가만히 앉아서 모든 일을 오촌모를 부려먹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는 만족지를 못하였다. 그는 낮고 더럽고 답답하고 덥고 시시한 냄새 나는 촌집보다 높고 정한 서울집이 낫고, 광목바지 입고 상투 틀고 낯이 시꺼먼 원시적인 촌무지렁이들보다 맥고모자에 궐련 물고 가는 모시두루마기 입은 서울 사람이 낫다. 굵은 광당포치마보다 가는 모시치마가 낫고, 다 처진 짚신보다 맵시나는 구두가 낫다. 기름머리에 맵시나게 차린 후에 파라솔을 받고 장안 큰거리를 팔과 궁둥이를 저으면서 다니던 자기 모양을 흐린 하늘에 그려 볼 때에는, 엘리자베트는 자기에게도 부끄럽도록 그 그림자가 예뻐 보였다.
 
9
장마는 걷혔다.
 
10
장마 뒤의 촌집은 참 분주하였다. 모를 옮긴다 김을 맨다 금년 추수는 이때에 있다고, 각 집이 모두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나서서 활동을 한다. 각 곳에서 중양가(重陽歌)의 처량한 곡조, 농부가의 웅장한 곡조가 일어나서 뫼로 반향하고 들로 퍼진다.
 
11
자농(自農) 밭 몇 뙈기와 뒤뜰에 터앝을 가진 엘리자베트의 오촌모의 집도 꽤 분주하였다. 자농 밭은 삯을 주어서 김을 매고 터앝만 오촌모 자기가 감자와 파 이종을 하기로 하였다.
 
12
뻔뻔 놀고 있기가 무미도 하고 갑갑도 한 고로, 엘리자베트는 아주머니를 도와서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13
첫번에는 일하기가 죽게 어려웠지마는, 좀 연습된 뒤에는 땀으로 온몸이 젖고 몸이 곤하여진 뒤에 나무 그늘 아래서 상추쌈에 고추장으로 밥을 먹고 얼음과 같은 찬 우물물을 마시는 것은 참 엘리자베트에게는 위에 없는 유쾌한 일이 되었다. 첫번에는 심심끄기로 시작하였던 일을 마지막에는 쾌락으로 하게 되었다.
 
14
그러는 새에도 틈만 있으면 그는 집 뒤 뫼에 올라가서 서울을 바라보고 한숨을 짓고 있었다.
 
15
보얀 여름 안개로 둘러싸여서 아침 햇빛을 간접으로 받고 보얗게 반짝거리는 아침 서울, 너무 강하여 누렇게까지 보이는 여름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여기저기서 김을 무럭무럭 내는 낮 서울, 새빨간 저녁놀을 받고 모든 유리창은 그것을 몇십 리 밖까지 반사하여 헬 수 없는 땅 위의 해를 이루는 저녁 서울, 그 가운데 우뚝 일어서 있는 푸른 남산, 잿빛 삼각산, 먼지로 싸인 큰거리, 울깃불깃한 경복궁, 동물원, 공원, 한강, 하나도 엘리자베트에게 정답게 생각 안 나는 것이 없고, 느낌 안 주는 것이 없었다.
 
16
'아― 내 서울아, 내 사랑아
 
17
나는 너를 바라본다
 
18
붉은 눈으로 더운 사랑으로……
 
19
아침 해와 저녁 놀, 잿빛 안개
 
20
흩어진 더움 아래서, 나는 너를
 
21
아― 나는 너를 바라본다.
 
22
천 년을 살겠냐 만 년을 살겠냐.
 
23
내 목숨 다하기까지, 내 삶 끝나기까지,
 
24
나는 너를 그리리라.'
 
25
처량한 곡조로 엘리자베트는 부르곳 하였다.
 
26
엘리자베트는 한 자리를 정하고 뫼에 올라갈 때에는 언제든지 거기 앉아 있었다. 뒤에는 큰 소나무를 지고 그 솔그늘 아래 꼭 한 사람이 앉아 있기 좋으리만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엘리자베트의 정한 자리다.
 
27
그 바위 두어 걸음 앞에서 여남은 길 되는 절벽이 있었다.
 
28
이 절벽을 내려다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한 기쁨이 움직였다.
 
29
종시 재판날이 왔다.
【원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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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191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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