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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류(濁流) ◈
◇ 10 태풍 ◇
해설   목차 (총 : 19권)     이전 10권 다음
1937.10
채만식
1
탁류(濁流)
 
2
10. 태풍
 
 
3
마침내 태수와 초봉이의 결혼식은 별일이 없이 끝났다. 대단히 경사스럽고 겸하여 원만했다.
 
4
다만 청하지 않은 아낙네들 구경꾼이 많이 와서 결혼식장의 번화와 폐를 한가지로 끼쳐 준 대신 온다던 태수의 모친이 오지를 않은 ‘사건’이 있었을 따름이다.
 
5
정주사네는 중난한 미지의 사부인한테 크게 경의를 준비해 가지고 그를 기다렸던 것인데, 웬일인지 온다던 날짜인 결혼식 그 전날에 까맣게 오지를 않았고, 겨우 당일에야 결혼식장으로 전보만, 다른 축전 몇 장 틈에 끼여서 들이 닿았다. 갑자기 병이 나서 못 내려온다는 것이었었다.
 
6
태수는 사실 제가 결혼을 한다는 것을, 애오개의 남의 집 단칸 셋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저의 모친한테 알리지도 않았었다. 전보는 서울서 그의 친구가 미리 서신으로 부탁을 받고서 그대로 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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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사네는 사부인의 그러한 불의의 급병이며 사랑하는 자제의 경사스런 혼인에 참례를 하지 못하는 섭섭할 심경이며를 사부인을 위하여 대단히 심통(心痛)해하는 정성을 표하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결혼식이 무슨 구애를 받을 것은 아니요, 그러므로 대망(大望)의 가장 요긴한 대목의 한쪽이 이지러지거나 할 며리가 없는 것이라 마음은 지극히 편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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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에는 승재도 참예를 했다.
 
9
승재는 제 가슴의 아픔을 상관 않고 일종 비장한 마음으로, 그 소위 거룩하다 한 초봉이를 위하여 그의 결혼을 축하하려고 참석을 했던 것이다.
 
10
그러나 그의 기대는 어그러져, 다시 새로운 슬픔을 한 가지 안고 돌아오지 않지 못했다. 초봉이가 지극히 슬퍼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11
흰 의복에, 흰 면사포에, 흰 백합꽃에, 이러한 흰빛만의 맨드리가 흰 빛이 지나쳐 창백한 것이며, 단을 향하여 고개를 깊이 떨어트리고 천천히 천천히 다만 항거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듯, 한 걸음 반 걸음 걸어나가는 그 고요함이라니, 그것은 마치 소리 없는 엘레지인 듯, 승재는 그만 어떻게나 슬프던지, 시방 초봉이는 정녕코 눈물을 흘리지 싶어 승재 저도 눈이 싸아 하면서 아프고, 차마 그 다음은 고개를 들어 정시(正視)하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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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실상은 옥구구요, 사실 초봉이는 누구나 처녀로 결혼식장에 임하여 경험하듯이, 아무것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제법 슬퍼하고 기뻐하고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데, 승재는 부질없이 제 슬픔에 잡쳐 가지고는 그게 초봉이에게서 우러나는 초봉이의 슬퍼함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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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보니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환멸이다. 물론 그렇다고 승잰들 초봉이가 오늘 결혼식장에서 벙싯벙싯 웃고 명랑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야 아니지만, 그러나 초봉이가 슬퍼하리라는 것도 또한 거기까지는 예측을 못 했던 일이다.
 
14
했다가, 초봉이가 신부라고 하기보다도 상청의 젊은 미망인인 듯 초초하고 슬퍼 보여, 그런데 거기에 또 한 가지 생각 못 했던 정경으로는, 초봉이만 빼놓고 그의 가족 전부가 누구 할 것 없이 만족과 기쁨이 싱글벙글 넘쳐흐르는 얼굴들이다.
 
15
이때에, 승재는 전날에 머릿속에서 우러러보던 성화는 전연 반대의 것으로 바뀌어, 그림의 전면에는 가족들이 살지고 만족한 여러 얼굴들이 웅기중기 훤하게 드러나고, 초봉이는 저편 뒤로 보일락말락하게 불쌍하게 서서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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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는 뜨고 있는 눈에도 선연히 보이는 이 불쾌한 그림을 차마 보지 않으려고 부지중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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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을 감고 있잔즉 그제는 검은 옷을 입은 ‘희생(犧牲)의 주신(主神)’이 지팡막대로 앞을 가로막으면서,
 
18
‘나를 알으켜 내야만 이 길을 비켜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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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짓궂이 수염을 쓰다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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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는 식이 끝나기가 바쁘게 자리를 빠져 나왔다. 피로연에는 애초부터 가지 않을 요량이었지만, 만약 누가 잡아 끌기라도 한다면 버럭 성을 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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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승재는, 마음 아름다운 초봉이를 거룩하다고만 막연히 탄복하고 있지 못하고, 슬픈 양자로 시집가던 초봉이를 슬퍼하는 마음이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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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서야 비로소 그는, 이 앞으로 초봉이의 운명이 자못 평탄하지가 못하고 어떠한 불행이 약속되어 있거니 하는 막연한 불안이며, 정주사 내외의 그 불순(不純)한 정책 혼인에 대한 반감이며가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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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그렇듯 무사히 혼인을 했고, 다시 무사한 열흘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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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는, 유월로 접어들어 여름은 적이 완구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침 새벽은 아직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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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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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시 반 첫 사이렌 소리에 (맞추듯) 초봉이는 친가에 있을 때의 버릇대로 퍼뜩 잠이 깨어, 깨던 맡으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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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앉으면서 그는 가벼운 경이의 눈으로 방 안을 둘러다본다. 덧문을 닫지 않은 위아래 앞문과 뒤창이 다 같이 희유끄름히 밝으려고 하는데 파아란 덮개를 드리운 전등은 아직 그대로 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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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로 바른 위에다가 분을 먹여 백지로 덧발라 놓아서, 희기는 희되 가볍지 않고 침착한 바람벽, 윗목으로 나란히 놓인 양복장과 삼층장의 으리으리한 윤택, 머릿장, 머릿장 위에 들뭇하게 놓인 금침 꾸러미, 축음기 등속 모두가 눈에 생소한 것이면서 그러나 어젯저녁에 잠이 들기 전에 보았던 그것들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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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진 자리옷에 남색 제병 누비이불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앉았는 초봉이 제가, 보아야 역시 저다. 바로 제 옆에서 자줏빛 제병 처네를 걸치고 누워 자고 있는 고태수가, 장히 낯선 사람은 사람이라도 어젯저녁 잠이 들기 전에 보았던 초봉이 제 남편인 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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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 그대로인 것, 잠을 깨서 보니 오늘도 다 그냥 그대로인 것이 번연한 일이데, 그래도 초봉이는 그것이 이상하고 그리고 신통하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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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잠이 깨고 난 첫순간에 인식되는 이 현실을, 거진 음성을 내어 중얼거릴 만큼 오늘도 이런가? 하고 가볍게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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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래 놓고는 이어 다음 순간, 오늘도 이런가라니? 그럼 그게 어디로 갔을까 봐? 하고 번연한 노릇을 가지고 그런다고 혼자서 우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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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제가 하는 짓이 꼬옥 아기 같고, 그래서 하하하 소리를 내어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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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혼자서 웃고 앉았던 초봉이는 이윽고 있다가 이번에는 고개를 꺄웃꺄웃,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이상하다고 태수와 저를 번갈아 보고 또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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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고 하는 것을 하고서, 어머니 아버지며 동생들은 다 집에 그대로 있는데 나만 혼자 이 집으로 오고, 와설랑은 이 사람―---여기서 자구 있는 이 사람―---색시 노릇을 하고, 대체 이 사람이 나하고 무엇이길래 나를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그렇게도 이쁜지 밤이나 낮이나 마구 좋아서 죽고, 그리고 나는 또 그걸 죄다 받아 주고…… 이게 다 무엇 하는 짓인지, 가만히 우습기만 하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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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너머 둔뱀이 사는 초봉인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네 딸이고 계봉이네 언니고 형주 병주네 큰누나고 한초봉인데, 어째서 초봉이가 이 집에 와서 이 사람하고 이럴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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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해도 초봉이 저는 따로 있고, 시방 저는 남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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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그래 남! 나말고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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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이는, 이 제 자신이 남으로 여겨지는 자의식(自意識)의 분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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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나는, 정말 초봉이는 시방도 저 너머 둔뱀이 우리 집에 있다. 맨 먼저 일어나서 시방 몽당빗자루로 토방을 쓴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짓는다. 안방에서 병주가 사탕을 사달라고 아버지를 졸라 댄다. 어머니는 여태 자고 있는 계봉이더러 부엌에를 같이 나가지 않는다고 나무람을 한다. 짜악 소리 없던 뜰아랫방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만에 뚜벅뚜벅, 승재의 커다란 몸뚱이가 대문간으로 걸어나간다. 때르릉 전화가 온다. 몇 번 만에야 이번은 옳게 승재의 음성이다. 나 승잽니다. 나 초봉이에요. 저어, 무슨 무슨 주사 한 곽만…… 네, 시방 곧……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저편에서도 역시 그러고 싶은지, 잠깐 말이 없다가야 전화를 끊는다. 삐그덕 대문이 열리면서 승재가 뚜벅뚜벅 들어온다. 얼굴이 마주치고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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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가운데의 웃음이 현실로 육체에로 옮아, 방긋이 웃던 초봉이는 문득 옆에서 태수가 잠덧을 하느라고 돌아눕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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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던 웃음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별안간 괴로운 고뇌가 좌악 얼굴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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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인지 겨우, 초봉이는 마디지게 한숨을 몰아쉬고는 강잉해 안색을 단정히 고쳐 가지고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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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다! 잡념이다! 지나간 일이며 지나간 사람은 씻은 듯이 죄다 잊고, 여기로부터서 인제로부터, 새로운 생애를 북돋아 새로운 생활을 장만하자 했으면서……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한 결혼이든지 간에 일단 결혼을 하기는 한 것인즉, 앞으로의 생활은, 이미 결혼을 했다는 그 사실―---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그 사실―---을 근거로 하고서 행동을 가져야 할 것이요, 동시에 그 행동은 추궁된 동기나 미련 남은 과거에게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내 스스로가 고태수한테로 약간의 뜻이 기울었던 계제인데, 마침 그의 힘을 입어 집안이 형편을 펴게 되리라고 했기 때문에 와락 그리로 마음이 쏠려 버렸던 것이 아니냐? 그리했으면서 인제는 완전히 외간 남자인 과거의 사람에게 미련을 가짐은 크게 어리석은 짓일 뿐더러, 전부를 내맡기고 평생을 같이할, 이 남편 되는 사람에게 죄스러운 이심(二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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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이는 적이 개운한 마음으로, 제가 덮었던 이부자리를 걷어 치운다.
 
46
초봉이가 이렇듯 생각이 많기는 오늘이 처음인 것이 아니다. 그는 어제 새벽에도 잠이 깨자 오늘처럼 그러했고, 그저께 새벽에도 또 결혼을 하던 이튿날인 그 다음날부터 줄곧 그래 왔었다. 새로운 객관(客觀)에 무심한 낯가림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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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초봉이는 승재를 못 잊어하는 번뇌가 있기는 있으면서 그러나 이 새로운 생활환경이 불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가지 두 가지 차차로 기쁨이 발견됨을 따라 명랑한 시간이 늘어 가고 있다. 제웅이 제가 제웅임을 모르고서, 제단 앞에서 제단의 아름다움에 취해 기뻐하는 양임에 틀림이야 없지만…….
 
48
하얀 행주치마를 노랑 저고리에 받쳐 입은 남 치마 위로 가뜬하게 두르면서, 초봉이는 옷미닫이를 조용히 열고 마루로 나선다.
 
49
바깥은 첫여름의 맑고도 새뜻한 새벽 공기가, 기다렸던 듯 얼굴에 좌악 끼치어 그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50
초봉이는 반사적으로 가슴에 하나 가득 숨을 들이쉬었다가 호― 길게 내뿜는다. 이어서 또 한번 두번 신선한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동안, 밤 사이 후텁지근한 방 안에서 텁텁해진 머리와 부자연하게 시달린 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다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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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 행길에서는 장사아치들이며 행인들의 잡음도 아직 들리지 않고 집은 안팎이 두루 조용하다. 태수도 그대로 자고 있고, 식모도 여섯시가 되어야 부엌으로 나온다. 건넌방에서 형보가 잠이 깨어, 쿠욱 캐액 담을 배앝으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52
초봉이가 마루 앞 기둥에 등을 대고 잠깐 생각하는 것 없이 생각에 잠긴 동안 날은 차차로 차차로 밝아 오다가 삽시간에 아주 훤하니 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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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이는 이끌리듯 신발을 걸치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밤이 아니고 밝는 새벽, 그러나 인적이 없는 정적의 틈을 타서 홀로 마당도 걷고, 화단에 손질도 해주고, 하늘도 우러러보고 하는 것이 결혼 이후로 초봉이에게는 매우 사랑스러운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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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머니, 어쩌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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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이는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무심코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황홀해 소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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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이따가 한낮만 되면 전부 활짝 필 모란 꽃밭의 숱해 많은 꽃망울들과 같다고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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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갓은 맑게 개었고, 한복판으로 조그만씩 조그만씩 한 엷은 수묵색 구름 방울들이 망울망울 수없이 많이 널려 있는 그놈 봉오리 끝이 제각기 모두 볼그레하니 연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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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로 그저 좋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휘황하고 번화스런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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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이는, 고개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하늘의 모란 꽃망울들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제 꽃밭이 생각이 나서, 조르르 화단 앞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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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은 그가 혼인하기 전 집을 둘러보러 왔다가 보고서 유념한 대로, 혼인한 그 이튿날부터 손에 흙을 묻혀 가면서 추어 주고 가꾸어 주고 했었다. 그러고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손질을 해주곤 하는 참이다.
 
61
촉촉한 아침 이슬에 젖은 꽃떨기들은 모두 잎과 가지가 세차고 싱싱하다. 백일홍은 두어 놈이나 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채송화는 땅바닥을 깔고 누워 분홍 노랭이 빨갱이 흰 놈, 벌써 알쏭달쏭 꽃이 피었다. 아사가오(나팔꽃)는 매준 줄을 타고 저희끼리 겨룸이나 하는 듯이 고불고불 기어 올라간다.
 
62
초봉이는 꽃포기마다 들여다보고 다니면서 밤 사이의 인사나 하는 것같이 웃어 보인다. 그는 사람한테 생소한 정을 먼저 꽃한테다가 들이던 것이다.
 
63
초봉이는 화단 옆으로 놓여 있는 댓 개나 되는 빈 화분들을 보고, 오늘은 국화 모종을 잊지 말고 꼭 사다 달래야 하겠다고 요량을 하면서 마악 돌아서는데, 방에서 태수의 음성이 들린다.
 
64
“여보오?”
 
65
태수는 제법 몇십 년 같이서 늙어 온 영감이 마누라를 부르는 것처럼 아주 구성지다. 혼인하던 그날 저녁부터 그랬다.
 
66
태수가 초봉이를 이뻐하는 양은 형보더러 말하라면, 눈꼴이 시어서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67
그는 결혼을 했으니 어디 온천 같은 데로 신혼여행을 갔을 것이지만, 만일 여러 날 동안 제 자리를 비워 놓으면, 그 동안 다른 동료가 대신 일을 맡아 볼 것이요, 그러노라면 일이 지레 탄로가 나기 쉬울 테라, 혼인날 하루만 할 수 없이 겨우 빠지고는 바로 그 이튿날부터 출근을 했다.
 
68
지점장도 며칠 쉬라고 권고했으나 그는 은행 일에 짐짓 충실한 체하고 물리쳤다.
 
69
그러나 신혼여행은 가지 못했어도 그 대신 신혼의 열흘 동안을 힘 미치는 껏 마음을 들여서 재미있게 즐겁게 지내기를 잊지 않았다.
 
70
그는 초봉이와 결혼을 하기는 하더라도 역시 전처럼 술도 먹고 행화한테도 다니고, 또 되도록이면 다른 기생도 오입을 하고 다 이럴 요량을 하기는 했었다.
 
71
그러나 그는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런 짓을 하나도 시행한 것이 없다.
 
72
술 한잔 먹으러 간 법 없고 행화 집도 발을 뚝 끊었다. 은행의 동료들이 붙잡고서 장가턱을 한잔 뺏어먹으려고 애를 썼어도 뺀들 피해 버렸다. 그래서 동료들이며 술친구들은 결혼이 태수를 버려 주었다고 탄식했다.
 
73
그러거나 말거나 태수는 그저 은행에서 시간만 마치고 나면, 곁눈질도 않고 씽하니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74
그래저래 곯는 것은 형보다. 그는 태수가 술을 먹으러 다니지 않으니, 달리 술을 먹을 길은 없고 아주 초올촐하다.
 
75
그는 전자에 태수가 돈 만 원을 빼둘러 가지고 도망을 가자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시방도 미운데, 또 술을 사주지 않아서 한 가지 더 미움거리가 생겼다.
 
76
그러나 만일 그러한 것만이라면 형보는 잊고 말 수도 있고 그런 대로 참을 수도 있고 하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태수를 해칠 악심도 생길 기회가 없고 말았을 것이다.
 
77
그런 것을, 형보에게 무서운 자극을 주는 게 무엇이냐 하면 초봉이다.
 
78
그 마침으로 오도독 깨물어 먹기 좋게 생긴 것을 갖다가 태수가 따악 차지를 하고는 밤과 아침 저녁으로 갖은 재미를 다 보고 하는 것을 형보 저는 건탕으로 건넌방 구석에서 처박혀 끙끙 앓아 가면서 듣고 보고 하기라니,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악형을 당함과 같았다.
 
79
‘조, 묘하게 생긴 조게, 갈데없이 내 것이 될 텐데!’
 
80
그는 조석으로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는다.
 
81
‘저, 원수가 얼른 후딱 떼가서 콩밥을 먹어야 할 텐데!’
 
82
이런 생각을 그 동안 몇 번째 했는지 모른다.
 
83
사실 그는 가만히 앉았으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아니 이따가 저녁때쯤 태수가 경찰서로 붙잡혀 갈 테고, 붙잡혀 가는 날이면 ‘조것’은 내 것이 될 테라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84
그러나 도무지 하루 한시가 참기는 어려워 가는데 대체 결혼식인들 무사히 치를까 싶던 ‘원수녀석’ 태수는 이내 멀쩡하고 붙잡혀 가는 기맥이 없다.
 
85
만일 이대로 밀려 나가다가는 두세 달이 걸릴지 반년이나 일년이 더 걸릴지 누가 알며, 하니 그러다가는 형보 저는 애가 밭아 죽든지 급상한이 나서 죽든지 하고 말 것이다.
 
86
‘안 될 말이다!’
 
87
형보는 마침내 어제 그저께부터 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88
이 전짜리 엽서 한 장이면 족하다. 은행으로든지 백석이나 다른 여러 곳 중 어디든지, 사분이 이만저만하고 이만저만하니 조사를 해보아라, 이렇게 엽서에다가 써서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태수 제야 아무 때 당해도 한 번 당하고 말지만 켯속이 되어먹은 것, 그러니 내일 당해도 그만이요, 모레 당해도 그만이요, 일년이나 이태 더 끌다가 당해도 매일반인 것이다.
 
89
하기야 태수가 노상 입버릇같이 죽어 버리면 고만이지야고 했으니까, 정말 자살이라도 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90
자살을 하기만 하면야, 붙잡혀 가서 콩밥이나 좀 먹고는 몇 해 후에 도로 나와 가지고는 제 계집을 빼앗아 갔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썽도 씹히지 않을 것이매, 두 다리 쭈욱 뻗고 초봉이를 데리고 살 수가 있어서 좋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섣불리 밀고질을 했다가는 일이 별안간에 뒤집혀 가지고, 이놈이 어마지두 책상머리에 앉았던 채 바로 수갑을 차게 할 혐의가 없지 않으니, 일을 그저 어떻게 묘하게 제가 먼저 눈치를 채고서 얼른 자살을 해버릴 여유가 있도록, 서서히 저절로 탄로가 나야만 천 냥짜리다.
 
91
그런데 그놈 천 냥짜리를 꼭지가 물러 저절로 떨어지기를 입만 떠억 벌리고 기다리잔즉, 이건 마구 애가 말라 견딜 수가 없다.
 
92
그러니 그렇다면은, 밀고를 하기는 해도 일이 한꺼번에 와락 튕겨지지를 않고 수군수군하는 동안에 제가 눈치를 채도록, 그렇게 어떻게 농간을 부리는 재주가 없을까?
 
93
어제로 그저께로 형보의 골똘히 궁리하고 있는 게 이것이다.
 
94
태수는 형보의 그러한 험한 보짱이야 물론 알고 있을 턱이 없다. 그는 가끔 무서운 꿈은 꾸어도 깨고 나면 종시 명랑하고 유쾌하다.
 
95
오늘 아침에는 그는 자리 속에서 잠이 애벌만 깨어 눈이 실실 감기는 것을, 초봉이가 보이지 않으니까 보고 싶어서, 여보오 하고 영감처럼 그렇게 구수하게 부르던 것이다.
 
96
초봉이는 대답을 하고 신발을 끌면서 올라와서 방으로 들어선다. 바깥은 훤해도 방 안은 아직 어슴푸레하다.
 
97
태수는 눈을 쥐어뜯고 초봉이를 올려다보면서 헤벌심 웃는다. 초봉이는 아직도 수줍음이 가시지 않아서, 태수와 얼굴이 마주치면 부끄럼을 타느라고 웃기 먼저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98
태수도 웃고, 초봉이도 웃고, 이렇게 하고 나면 태수는 볼일은 만족히 끝난다. 눈앞에 초봉이가 보였고, 웃어 주었고, 그래서 태수 저도 웃었고…….
 
99
“몇 시지?”
 
100
“다섯시, 반.”
 
101
“밥 지우?”
 
102
“아직…….”
 
103
“헤에.”
 
104
초봉이는 벌써 열흘째나 두고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속으니까, 인제는 길이 들어서 아주 그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105
“참, 여보?”
 
106
초봉이가 마악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태수가 전에 없이 긴하게 불러 놓더니,
 
107
“……그런데…… 저어 거시키, 한 천 원은 있어야겠지?”
 
108
태수는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하고, 초봉이는 무슨 소린지 몰라서 뚜렛뚜렛한다.
 
109
“……아따, 저어 아버지, 저어 장사하실 것 말야…….”
 
110
초봉이는 비로소 알아듣기는 했으나 그냥 웃기만 한다. 그는 애초에 일을,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태수가 그것을 해줄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면서 이따가 저녁을 먹는다는 것을 측량하지 않듯이 별반 괘념을 않고 있었던 참이다.
 
111
“……일러루 와서 좀 앉아요. 생각났던 길에 그거 상의나 하게…….”
 
112
태수는 머리맡에 있는 담뱃갑을 집어다가 피워 물면서 베갯머리께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113
초봉이는 시키는 대로 가서 앉고, 태수는 그의 무릎에다가 팔을 들어 얹는다.
 
114
“……한 천 원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떨꼬? 모자랄까?”
 
115
“글쎄…….”
 
116
“글쎄라니! 우리 둘이서 상읠 해야지.”
 
117
“그래두…….”
 
118
초봉이는 사실은 이래라저래라 하고 같이서 말을 하기가 막상 거북했다.
 
119
당초에 그러한 조건으로 결혼을 했고, 그랬대서 저편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얼른 내달아 콩이야 팥이야 하는 건, 새삼스럽게 제 몸뚱어리를 놓고서 흥정을 하는 것 같이나 불쾌한 생각이 들던 것이다.
 
120
또, 천 원이라고는 하지만, 천 원이라는 액수가 초봉이한테는 막연한 숫자라, 그놈이 어느 정도의 돈이지 알 수가 없다.
 
121
그리고 또, 전에 듣잔즉 몇천 원을 대주겠다고 했다면서 태수는 지금 천 원이라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보 처음에는 몇천 원이라고 했다더니…… 이렇게 따지자니, 그야말로 몸값 흥정의 상지가 될 판이다.
 
122
그러니, 내가 그 일에 말참견을 않는다고 대주자던 돈을 안 대줄 이치도 없는 것, 나는 모른 체하고 말려니 굳이 상의를 하고 싶으면 아버지와 둘이서 천 원이고 혹은 몇천 원이고 좋도록 귀정을 내겠지. 이렇대서 초봉이는 빠져 버리자는 것이다.
 
123
태수는 처음 혼인말을 건넬 때야, 공중 그저 그놈에 혹하기나 하라고 장사 밑천을 얼마간 대주마고 했던 것이나, 인제 문득 생각하니 그놈 거짓말을 정말로 둘러 놓아도 해롭잖은 노릇일 것 같았다.
 
124
첫째 기왕 남의 돈에 손을 대어 일을 저지른 바에야 돈이나 한 천원 더 집어낸다더라도 결국 일반일 바이면 다른 일에나 뒤를 깨끗이 해두는 게 사내자식다운 활협이니, 함직한 노릇이다.
 
125
그리고 그렇게 해놓고 죽으면 제가 죽는 날 불행히 초봉이를 데리구 같이 죽지 못하더라도 초봉이는 그 끈으로 저의 부친을 의지삼아 그다지 몹쓸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니, 그도 함직한 노릇이다.
 
126
그런데 또 보아라! 그 말을 꺼내 놓으니, 초봉이가 사양은 하면서도 저렇게 은근히 좋아하질 않느냔 말이다. 초봉이를 즐겁게 해줌은 바로 내 즐거움이거든, 이날에 천 원은 말고 만 원도 헗다! 만 원이라도 내게는 종잇조각 하나…… 흥! 만 원은 말고 백만 원을 먹었은들, 어느 누구 시체를 감히 벌할 자 있느냐? 쾌하다! 시원타!…… 오냐, 수일 간 기회를 보아서 몇천 원이고…….
 
127
이것은 물론 일이 뒤집히는 마당이면 정주사의 장사 밑천도 태수가 대어 준 것이 탄로가 날 것이고, 따라서 도로 다 뺏기게 될 것이지만, 태수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128
“그래두가 무어야? 우리 둘이서 얘길 해가지구…….”
 
129
태수는 초봉이의 무릎을 잡아 흔들면서 조른다.
 
130
“……응? 그래야 할 거 아냐?”
 
131
“전 모르겠어요!”
 
132
초봉이는 그만 해두고 일어서서 뒷걸음질을 친다.
 
133
“이잉! 그럼 어떻게 해?”
 
134
“저어, 아버지허구…… 아버지허구 상의해 보세요.”
 
135
“아아, 아버지하구?…… 그건 나두 알지만 말야…….”
 
136
“그럼 됐지요, 머…….”
 
137
“그래두 우리 아씨한테 한번 상의는 해야지, 헤헤.”
 
138
“몰라요!”
 
139
아씨란 말에 질겁해서 초봉이는 얼굴이 빨개진다.
 
140
“아하하하, 그럼 아씨 아닌가?”
 
141
“몰라요! 난 나갈 테에요…….”
 
142
초봉이는 뒤로 미닫이를 열고 나가려다가,
 
143
“……오늘은 국화 모종 꼭 사가지구 오세요?”
 
144
“국화 모종? 그래그래, 오늘은 꼭 사가지구 오께.”
 
145
“다섯 포기만…….”
 
146
“겨우?…… 한 여남은 포기 사다가 심지.”
 
147
“화분이 다섯 개뿐인걸?”
 
148
“화분두 사지?”
 
149
처억척 대답은 하면서도 태수는, 너는 누구더러 보라고 국화를 심자 하느냐고, 아무 내평도 모르고서 어린아이처럼 좋아만 하는 초봉이가 측은하여 다시금 얼굴이 치어다보였다.
 
150
초봉이가 부엌으로 내려간 뒤에 건넌방에서 형보가 잠이 깨었다는 통기를 하듯 쿠욱 캐액 담을 배앝더니,
 
151
“고주사 기침하셨나?”
 
152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일상 하는 짓이라 태수는,
 
153
“어―”
 
154
하고 궁상맞게 대답을 한다.
 
155
형보는 속으로, 어디 이 녀석을 오늘은 좀 위협이라도 슬그머니 해주리라고 벼르면서 유카다 자락을 펄럭이면서 안방으로 건너온다.
 
156
부엌에서 형보의 음성을 듣던 초봉이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오싹한다. 초봉이는 형보가 처음부터 섬뜩하더니 끝끝내 그가 싫고, 마치 커다란 구렁이라도 한 마리 건넌방에 가 사리고 있는 것만 같아 시시로 무서운 생각이 들곤 했다.
 
157
그럴 때면 그는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저를 타이르고, 물론 겉으로는 흔연 대접을 해왔었고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갈수록 무서움이 더하면 더했지 가시지는 않았다.
 
158
그렇다고 초봉이가 형보의 음흉한 속내를 눈치채거나 했던 것은 결코 아니고 다만 그의 외양이 그 중에도 퀭한 눈방울이 너무도 무서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159
태수는 회회 감기는 자줏빛 명주 처네를 걸친 채 팔을 내뻗어 불끈 기지개를 쓴다. 형보는 물향내와 살냄새가 한데 섞여 취할 듯 이상스럽게 물큰한 규방의 냄새에 코를 사냥개처럼 벌씸거리면서 너푼 들어앉는다. 그는 이 냄새를 매일 아침같이 맡곤 하는데, 그러노라면 초봉이의 몸뚱이가 연상이 되고 하여 그 흥분이 괴로우면서도 맛이 있었다. 그는 그래서, 별로 할 이야기가 없더라도 아침이면 많이 문을 여닫아 그 냄새가 빠져 버리기 전에 안방으로 건너오곤 한다.
 
160
“나는 어제 저녁에 신흥동(유곽) 갔다 왔다, 제기.”
 
161
“그러느라구 새벽에 들어왔네그려?…… 망할 것!”
 
162
“왜 망할 것야? 느이끼리 하두 지랄을 하구 그러니, 어디 견딜 수가 있더냐?…… 늙두 젊두 않은 놈이 건넌방에 가 처박혀서.”
 
163
“……면 돈 안 들구 좋았지? 하하하하.”
 
164
“네라끼!…… 허허허허, 그거 원 참!”
 
165
“하하하하.”
 
166
“허! 그거 참…… 그러나저러나 간에 여보게, 태수?”
 
167
형보는 부자연하다 할 만큼 농담하던 것을 쉽게 거두고서 점잖스럽게 기색을 고쳐 갖는다. 태수는 무언고 하고 형보를 바라다보면서 그 다음을 기다린다.
 
168
형보는 천천히 담배를 피워 물고는 제법 소곤소곤, 그리고 다정하게,
 
169
“다아 이건 조용한 틈이길래 하는 말이네마는, 대체 자네는 어쩔 셈으루다가 이렇게 태평세월인가? 응?”
 
170
“무엇이?”
 
171
태수는 첫마디에 알아듣고도, 그래서 이 사람이 왜 방정맞게 식전 마수에 재수없이 그따위 소리를 꺼낼까 보냐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래 짐짓 못 알아들은 체하던 것이다.
 
172
“못 알아들어? 저 거시키, 소소…….”
 
173
“으응…… 쯧! 할 수 있나!”
 
174
태수는 성가신 듯 씹어 뱉는다.
 
175
“할 수 있나라께? 그래, 날 잡아잡수우 하구 그냥 앉아서 일을 당할 테란 말인가? 그 일을? 그 흉한…….”
 
176
“당하긴 왜 당해? 괜찮어, 일없어.”
 
177
“일없다? 안 당한다?”
 
178
형보는 가볍게 놀란 제 기색을 얼른 가누면서,
 
179
“……아니, 그러면 혹시 어떻게 모면할 도리라두 채려 놨나?…… 그렇다면야 여북 좋겠나!…… 그래 어떻게 무슨 묘책이 있어?”
 
180
“쯧! 있다면 있구, 없다면 없구.”
 
181
태수는 심정이 상하구 귀찮아서 말대꾸가 아무렇게나 나가고 흥이 없던 것인데, 그것이 속을 모르는 형보가 보기에는 태수가 어느 구석인지 타악 믿는 데가 있어 안심을 하고서 아무 걱정을 않는 걸로만 보이던 것이다.
 
182
분명 무슨 도리가 있는 눈치다. 대체 그렇다면 요 녀석이 어디를 가서 무슨 꿍꿍이속을 부렸기에? 응?
 
183
하하! 오옳지, 옳아, 그랬기가 십상이겠군…….
 
184
형보는 속으로 가만히 무릎을 쳤다.
 
185
그는 퍼뜩 탑삭부리 한참봉네 아낙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태수와 관계가 이만저만찮이 깊었던 것이며, 그런데 그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형보는 잘 알고 있었다.
 
186
그런지라, 제 품안에서 놀던 태수를 제가 서둘러서 그처럼 장가까지 들여 줄 호기가 있는 계집이거드면, 제 돈 몇천 원을 착 내놓아 애물의 위급을 감장시켜 주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87
형보는 예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제 일이 그만 낭패라, 그런 것을 모르고서 해망만 하고 있었다니 그럴 데라고는 없다.
 
188
그러나 그는 짐짓 무얼 알아맞히겠다는 듯이 고개를 깨웃깨웃, 한참이나 앉았다가,
 
189
“야 이 사람아! 그렇게 어물어물하지 말구서, 이얘길 까놓구 하게그려? 응?…… 궁금해 죽겠구먼서두……?”
 
190
“무얼 그래?…… 다급하면 죽어 버리는 것두 다아 수가 아닌가!…… 쥐 잡는 약이 없나? 잠자는 약이 없나?…… 강물두 깊숙해서 좋구, 철둑도 선선해서 좋구.”
 
191
“지랄 마라!…… 자살두 다아 할 사람이 있지, 자넨 못 하네.”
 
192
“흥, 당하면 못 하리?”
 
193
“그럴 테면 세상에 누렁옷 입구 쇠사슬 차구 똥통 둘러메구서 징역살이할 놈 없게?…… 다아 자살두 제마다 못 하길래, 그 고생 그 창피 당해 가면서 징역을 살구 있지!”
 
194
“듣기 싫어!”
 
195
태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돌아눕는다. 그는 형보가 말하는 대로 제가 방금 누렁옷을 입고 쇠사슬을 차고 똥통을 둘러메고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꼴이, 감옥의 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눈앞에 선연히 보이던 것이다.
 
196
형보는 의심이 풀리지 않은 채, 더 물어 보지는 못하구 속으로 저 혼자만 궁리가 깊어 간다.
 
197
태수는 조반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은행에 출근을 했다. 그러나 아침에 형보가 지껄이던 소리가 자꾸만 생각이 나고, 그것이 마치 식전 마수에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꺼림칙했다.
 
198
그래서 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아 근래에 없이 이마를 찌푸리고 겨우 시간을 채웠는데, 네시가 다 되어 이 분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에 농산흥업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199
농산흥업회사라면 태수가 위조한 소절수로 예금을 축내 주고 있는 그 세 군데 중의 한 군데이다.
 
200
농산흥업회사에서 당좌계에 있는 사람을 대달라는 전화가 왔다고 급사가 말하는 소리에 태수는 반사적으로 흠칫 놀랐다. 피는 한꺼번에 심장으로 쏟혀 들고 얼굴은 양촛빛같이 해쓱, 등과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올랐다.
 
201
그러나 이것은 태수의 의사와는 독립하여 다만 근육의 반사일 따름이다.
 
202
‘기어코 오늘이 왔나!’
 
203
당연한 것을 기다리고 있던 양으로, 이렇게 생각이라고 할는지 각오라고 할는지, 마음은 다뿍 시쁘듬했다. 그런만큼 (실상은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은 유리같이 맑고 뛰던 가슴이 이내 가라앉았다.
 
204
“나를 찾어?” 
 
205
우정 장부를 걷어 치우던 손을 멈추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말로 씹어 본다. 음성은 약간 목이 갈리는 것 같았으나 그다지 유표하진 않다.
 
206
“……나를 찾더냐? 당좌곌 찾더냐?”
 
207
“당좌곌 대달래요.”
 
208
“우루사이나(에잇 성가셔)! 시간두 다아 됐는데…… 왜 그린다던?”
 
209
“모르겠어요, 거저 대달라구만…….”
 
210
“가만있자아!”
 
211
태수는 추움춤하면서 시계가 네시를 지나 버리기를 기다려, 급사더러 수통의 냉수를 길어 오라고 쫓아 버리고는 전화통을 집어 든다.
 
212
“네에.”
 
213
하는 대답을 따라 저편에서,
 
214
“여기는 흥업회산데요…… 우리 당좌에 조금 미상한 데가 있어서요…….”
 
215
하는 게 절박한 힐난이 아니고 정중한 상의다.
 
216
태수는 속으로 역시 그렇겠지야 하고 생각하면서 음성을 낮추어,
 
217
“네에! 아, 그러세요?…… 에 또, 에― 당좌계는 시간이 다 돼서 나가구 없는데요. 무슨 일이신지요? 웬만하면 내일 아침에 일찍…….”
 
218
“네에, 그래두 괜찮지만…… 그럼 지점장두 나가셨나요?”
 
219
“네에.”
 
220
“하하하!…… 그럼 내일 다시 걸겠습니다…… 머 별일이야 없겠지만, 조금 미심한 데가 있어서요.”
 
221
전화 끊는 소리를 듣고 태수도 신호를 울리고서 돌아서려니까, 마침 맞게 급사가 냉수를 가져와 준다.
 
222
태수는 냉수 한 곱뿌를 맛있게 다 들이켰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다. 생각이란 다른 게 아니고, 지금부터 나가서 일을 차릴 계획이다.
 
223
시방 나가면서 ‘쥐 잡는 약’을 하나만 사고, 그리고 전처럼 과실과 과자를 사서 들고, 흔연히 집으로 돌아간다.
 
224
집에서는 초봉이가 웃으면서 맞아 준다. 오후를 초봉이를 데리고 재미있게 놀고, 저녁 후에는 잠깐 나온다. 행화네 집을 다녀서 김씨를 찾아간다. 요행 탑삭부리가 없거들랑 두어 시간 구회를 풀어도 좋다. 그렇다. 신정이 구정만 못하다더니 역시 구정이 그립기는 한 것인가 보다.
 
225
옳아! 우리가 서로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그리하는 게 좋겠지. 만약 탑삭부리가 있으면 그야 할 수 없지. 그저 혼인한 뒤에 처음이니까 수인사 겸 들른 체하고 돌아오지.
 
226
빌어먹을 것 그 여편네까지 행화까지 다 데리고 초봉이와 넷이서 죽었으면 십상 좋겠다. 그렇게 했으면 통쾌할 테지만, 괜한 욕심이고.
 
227
김씨한테 들렀다가 돌아오면서는 정종을 맛좋은 놈을 한 병 사서 들고 집으로 온다. 초봉이더러는 안주를 장만하라고 시키고 그 동안에 소절수를 농간하던 도장과 소절수첩을 없애 버린다. 없애나마나한 것이지만 기왕이니.
 
228
그러고 나서 안주가 되거들랑 초봉이를 술상머리에 앉혀 놓고서 한잔 마신다. 초봉이도 먹인다. 열두시까지만 그렇게 놀다가 자리에 눕는다. 세시만 되거든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서 비로소 초봉이를 일으켜 앉히고 실토정 이야기를 죄다 한다. 그리고 나서 같이 죽자고 한다.
 
229
초봉이가 싫다고 하면?
 
230
그러거들랑, 네 속을 보느라고 그랬다고 웃으면서 안심을 시켜 잠이 들게 하지. 잠이 들거든 무어 허리띠 같은 것으로.
 
231
가만있자! 영감님 장사 밑천을 마련해 주지 못했지? 좀 안됐다. 돈 천 원이나 빼내서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조금만 돌이켜서 생각이 났어도 좋았지.
 
232
그러나 뭐, 인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233
그러면 다 됐나?
 
234
아뿔싸! 이런!…… 어머니를! 어머니를 어떻게 한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235
‘나는 도적놈이요, 못된 놈이요. 그러고도 불효한 자식!’
 
236
태수는 마침내 생각지 못했던 회심에 다들려 후― 길게 한숨을 내쉰다.
 
237
‘쥐 잡는 약’을 사서 포켓 속에 건사를 하고도 태수는 그런 것은 남의 일같이 천연스럽게 과실 바구니와 과자 꾸러미를 양편 손에다 갈라 들고 허둥허둥 집으로 달려든다.
 
238
“여보오?”
 
239
그는 대문 문턱을 넘어서기가 바쁘게 초봉이를 부르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하나 가득 흩트린다. 결코 오늘의 최후를 짐짓 무관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요, 절로 그래지는 것이다.
 
240
초봉이는 마침 마당에서 화분들을 벌여 놓고 흙을 장만하느라고 손에 어린아이같이 흙칠을 하고 있다. 형보도 옆에서 초봉이와 같이 흙을 주무르느라고 끙끙하고 있다.
 
241
초봉이는 발딱 일어나서 웃으면서 태수가 들고 온 과일 바구니와 과자 꾸러미를 받는다.
 
242
“고주사 오늘은 좀 늦으셨네그려?”
 
243
“장주사 수고하네그려?”
 
244
태수는, 무릎이 어깨까지 올라오게 쪼글트리고 앉아 있는 형보를 들여다본다.
 
245
“수고랄 게 있나!…… 거, 아주머니가 고운 손에다가 흙을 묻히구 그리시길래 내가 보기에 민망해서 지금…….”
 
246
“그럼 나두 해야지.”
 
247
태수는 팔을 걷으면서 초봉이를 돌려다보고 벙긋 웃는다. 초봉이는 손에 받았던 것을 마루에 가져다 놓고 도로 내려오다가 겨우 국화 모종을 안 사가지고 온 것을 깨우치고서 흙이 대래대래 묻은 조그마한 손을 태수한테로 내민다.
 
248
“국화 모종…….”
 
249
“아뿔싸!”
 
250
태수는 무릎을 탁 치면서 혀를 날름날름한다. 그는 그런 중에도 시방 제 앞에다가 내미는 초봉이의 손이 흙이 묻은 것까지도 어떻게나 이쁜지, 형보만 없는 데라면 꼬옥 잡아다가 조몰조몰 주물러 주고 싶었다.
 
251
“……깜박 잊었어! 어떡허나?”
 
252
“차라리 내한테 시키시지?”
 
253
형보가 저도 빠질세라고 한몫 거들고 나선다.
 
254
“……그 사람은 그런 심부름 시켜야 개울 건네다가 잊어버린답니다.”
 
255
“그럼 아재가 내일 오시는 길에 사다 주세요?”
 
256
아재란 건 물론 형보더러 하는 말인데, 태수가 그렇게 부르라고 시켰던 것이다.
 
257
“아냐, 내일은 꼭 잊잖구서 사가지구 오께, 허허허허.”
 
258
태수는 말을 하다가 그만 꺼얼껄 웃어 버린다. 그러나 아무도 웃는 속을 몰랐고, 형보가 농담을 하는 체,
 
259
“정치게 효도할려구 드네!”
 
260
“네라끼 망할 것!”
 
261
“너무 그러지들 말게! 자네들이 너무 정분이 좋은 걸 보면 나는 괜히 심정이 나군 하데.”
 
262
“아재두 살림하시지요?”
 
263
“돈두 없거니와 여편네가 있나요? 어디.”
 
264
“행화?”
 
265
“행? 화?…… 허허허허, 어허허허허.”
 
266
초봉이는 형보가 과히 웃어 쌓는 것이, 혹시 무슨 실수된 말을 했나 해서 귀밑이 발개진다. 태수는 형보와 마주보지 않으려고 슬쩍 돌아선다.
 
267
그때 마침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에 있는 계집아이가 대문 안으로 꺄웃이 들여다보면서 마당으로 들어선다.
 
268
“오오, 너 왔니?”
 
269
태수가 김씨가 저를 부르러 보냈겠지야고 짐작을 하고, 그렇다면 막상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270
계집아이는 태수와 초봉이더러 인사를 하고 나서, 고주사나리 저녁 잡숫고 잠깐 다녀가시란다고,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고 전갈을 한다.
 
271
“오냐, 참봉나리가 그러시던?”
 
272
“네에.”
 
273
계집아이는 김씨가 시킨 가늠이 있는지라 그대로 대답을 한다.
 
274
그래서 초봉이는 그저 그런가 보다고 심상히 여기고 말았을 뿐이지 깊이 유념도 하지 않았다.
 
275
실상 또 태수와 계집아이가 그렇게 꾸며 대지를 않았더라도 초봉이는, 그저 김씨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잠깐 오라는 것이겠지 했을 것이지 그 이상 달리 새김질을 하거나 의심을 하거나 그럴 내력이 없었다.
 
276
그러나 형보는 그렇질 않았다.
 
277
그는 오늘 저녁에 김씨가 분명코, 태수가 돈 범포낸 그 조건에 대해서 앞일 수습을 상의할 것이고, 혹은 벌써 그 동안에 돈 준비가 다 되어서 몇천 원 착 태수의 손에 쥐어 주기까지 할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까 아침에 태수가 수상한 눈치를 보이던 일을 미루어 보더라도, 역시 그게 틀림없으리라고, 달리는 더 의심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278
‘그렇다면은?’
 
279
‘밑질 건 없으니 칵 질러 버려라!’
 
280
형보는 마침내 혼자 물어 보고 혼자 대답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떡거렸다.
 
281
일곱시가 조금 지나서 형보는 저녁을 먹던 길로 볼일이 있다고 힝 나가더니, 여덟시가 못 되어서 도로 들어왔다. 여느때 같으면 그는 태수가 초봉이와 같이 축음기를 틀어 놓고 일변 먹어 가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 오라고 청을 하거나 말거나 안방으로 덤벙 들어앉아 저도 한몫 끼였을 판이었었다.
 
282
그러나 전에 없이 얼굴빛이 해쓱하여, 기분이 좋지 않다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불을 끄고 누워 버렸다.
 
283
태수는 저녁을 먹으면서 초봉이더러 싸전집에 잠깐 들러 보고, 마침 또 서울서 친한 친구가 왔으니까 나갔던 길에 찾아보고 올 텐데, 그러자면 자정이 지날지도 모르겠은즉 기다리지 말고 일찌감치 먼저 자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284
저녁 후에는 전대로 한참 재미나게 놀다가 아홉시가 되는 것을 보고 유카다를 입은 채 게다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서 그는 저녁 먹을 때 초봉이더러 이르던 말을 더 이르기를 잊지 않았다.
 
285
행화는 마침 놀음에 불려 나가고 집에 있지 않았다. 태수는 그것이 도리어 잘되었다 싶었지 섭섭한 줄은 몰랐다. 그는 기다리고 있을 김씨의 무르익은 애무가 차라리 마음 급했다.
 
286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까지 와서 우선 가게를 살펴보았다. 빈지를 죄다 잠갔고, 빈지 틈바구니로 들여다보아도 캄캄하니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이만하면 가겟방에도 탑삭부리 한참봉이 있지 않은 것은 알조다.
 
287
그래서 안심을 하고 나니까, 그제야 저 하던 짓이 우스웠다.
 
288
‘왜, 내가 이렇게 뒤를 낼꼬? 다 오죽 잘 알고서 데리러 보냈을까봐서.’
 
289
그렇기는 하면서도 웬일인지 모르게 전처럼 마음이 턱 놓이지를 않고, 어느 한구석이 서먹서먹해지는 듯싶은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290
그러기 때문에 그는 안대문께로 돌아가서 지쳐 둔 대문을 밀고 들어서서도,
 
291
“헴, 아저씨 주무세요?”
 
292
하고 짐짓 기척을 내보았다.
 
293
김씨는 태수의 기척이 들리기가 무섭게 앞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연둣빛 처네를 걸친 윗도리를 내놓으면서 말은 없고 웃기만 한다.
 
294
태수는 그의 하고 있는 맵시가 작년 초가을 맨처음 그날 밤과 꼭 같다고 자못 회포 있어 하면서 성큼 방으로 들어선다.
 
295
김씨는 이내 웃으면서 옆에 와서 앉으라고 요 바닥을 도닥도닥 가리킨다.
 
296
태수는 그리로 가서 털 숭얼숭얼한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펄씬 주저앉는다. 그는 새삼스러운 긴장과 아울러 임의롭기 큰마누라한테 온 것같이나 마음이 놓임을 스스로 느꼈다.
 
297
눈치빠른 계집아이가 건넌방에서 나오더니, 대문을 잠그고 태수의 게다를 치워 버린다.
 
298
“그래, 새루 장가간 재민 좋더냐?”
 
299
김씨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태수의 빙그레니 웃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기 어르듯 한다.
 
300
“인전 장가를 갔으니깐 어른인데, 그래두 이랬냐 저랬냐 해?”
 
301
“아이고 요것아!”
 
302
김씨는 손가락으로 태수의 볼때기를 잡아 쌀쌀 흔들다가 그대로 끌어다가는 ×× ×××. 기왕이니 한바탕 깍 물어 떼고 싶은 것을 차마 아직 참던 것이다.
 
303
“……장갈 들더니 재롱 늘었구나!”
 
304
“헤헤.”
 
305
“얼굴이 많이 상했다가? 젊은 것들 장갈 딜여 주면 이래서 걱정이야!…… 그렇지만 너무 그리지 마라, 몸에 해루니라.”
 
306
“보약이나 좀 지어 보내 주덜랑 않구서!”
 
307
“오냐, 날새 내가 지어 보내 주마. 그렇지만 좀 조심해야 한다!…… 그 애가 온 그렇게두 이쁘더냐?”
 
308
“응.”
 
309
“하하하! 고것이야!…… 그렇지만 너 오늘 저녁은 내 것이다? 약속 알겠지? 한 달에 두 번은 내한테 오기루 한 거.”
 
310
“응, 그렇지만 열두시까지유?”
 
311
“이건 누가 쫓겨가더냐?”
 
312
“그런데 참, 오늘 저녁에 탑삭부리가 없을 줄은 어떻게 미리 알구서?”
 
313
태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이 착 놓이지를 않던 것이다.
 
314
“그거?…… 그런 게 아니라 오늘이 그년 생일이라나? 그리니깐 여니때두 아니구 갈 건 빠안하잖아? 그래 나두 늦기 전에 미리서 다아 요량을…….”
 
315
“그런 걸 글쎄 난 미심쩍어서 가겔 다아 딜여다 봤지! 헤헤.”
 
316
“그런 걱정을랑 말구서 맘놓구 다녀요, 내가 오죽 알아서 할까 봐?”
 
 
317
탑삭부리 한참봉은 불도 켜지 못하고 가겟방에 웅숭그리고 누워서 지리한 시간을 기다린다.
 
318
작은집에서 열시에 나왔으니 하마 열한시는 되었음직한테 종시 시계 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319
그는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청승맞은 짓을 하고 있느니라 싶어서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일변 겁이 나기도 했다. 가만히 팔을 뻗쳐 본다. 머리맡에 놓아 두었던 굵직한 다듬이 방망이가 손에 잡힌다. 조금 마음이 든든해진다.
 
320
탑삭부리 한참봉은 아까 저녁때 일곱시가 마악 지났을 무렵에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다.
 
321
항용 거저 쌀을 보내 달라는 전화겠거니 하여, 네에 하고 무심히 대답을 하는데, 저편에서는 딱 바라진 음성으로 이상스럽게 다지듯,
 
322
“여보시오, 한참봉이신가요?”
 
323
“네에.”
 
324
“확실히 한참봉이시지요?”
 
325
“글쎄 그렇단밖에요…… 뉘십니까?”
 
326
“네에, 내가 누구라는 건 아실 것 없습니다. 또오 성명을 대디려두 모르실 게구…… 그렇지만, 나는 한참봉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327
“네에…….”
 
328
한참봉은 겉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눈을 끄먹끄먹한다.
 
329
그는 선뜻 돈을 어디로 가져오라는 협박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르면 몰라도 협박전화치고서 이렇게 음성이 공손할 리가 없다. 또 그뿐 아니라 한참 당년에 ×××을 모집한다면 ×××들이 사방에서 날뛰던 그런 때라면 몰라도 지금이야 그런 건 옛말이지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는 일이다.
 
330
“그러면 말씀하시지요?”
 
331
저편에서 목을 가다듬더니,
 
332
“……에, 다름이 아니라, 당장 오늘 저녁에 큰 재앙(災怏)이 한 가지 한참봉 댁에 생기게 된 것을 알으켜 디릴려고 전화를 거는 겝니다…….”
 
333
“재애앙?”
 
334
“쉬위! 떠들지 말구…… 자, 자세히 들으십시오…… 아뿔싸! 지금 가게에 누구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335
“없지요!”
 
336
“그럼 맘놓구서 이야길 하지요…… 한데 한참봉 오늘 저녁에 작은댁엘 가시겠다요?”
 
337
“네에?”
 
338
탑삭부리 한참봉은 깡총 뛴다.
 
339
“하하! 그렇게 놀라실 건 없습니다. 없구…… 에, 이따가 저녁을 자시구 나서 가게를 디린 뒤에…… 자세 들으십시오!…… 아주 천연스럽게 작은댁으루 일단 가신단 말씀이지요. 댁의 하인이나 부인한텔라컨 말루든지 작은댁에 꼭 가시는 체하셔야 하십니다, 네?”
 
340
“네에!”
 
341
대답이 아니라 바로 신음 소리다.
 
342
“그래 그렇게 작은댁으로 가셨다가 말씀이지요. 열한시쯤 되거들랑 어딜 좀 댕겨오시겠다구 하구서 도루 큰댁으로 오십시오. 오시되, 미리서 가게의 빈지문 하나를 안으루다가 걸지 말구서 고리를 뱃겨 놨다가는 글러루 들어오시든지, 혹은 아녈 말루 담을 넘어서 들어오시든지 아무튼 쥐두 새두 모르게 들어오십니다. 아시겠지요?”
 
343
“네에!”
 
344
“그렇게 살끔 들어와서는 그댐엘라컨 가만가만 발자욱 소리두 내지 마시구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들어가서.”
 
345
“그―래서요?”
 
346
탑삭부리 한참봉은 어느결에 다뿍 긴장이 되어 가지고 성미 급하게 재촉을 한다.
 
347
“네에…… 그래 그렇게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가설랑은 거저 두말 없이 거저, 안방문을 열어 제치십시오. 그러면 다아 아실 겝니다.”
 
348
“아니, 여보시오!”
 
349
“글쎄 더 묻지 마십시오, 그러면 다아 아실 겝니다.”
 
350
“아니, 여보시오!”
 
351
“글쎄 더 묻지 마십시오. 더는 묻지 마시구, 그렇게 하실랴거든 해보시구, 또 내 말이 곧이들리지 않거들랑 고만두시는 게구…… 그러나 종차 후횔랑은 마십시오.”
 
352
“글쎄 여보시오!”
 
353
“여러 말씀 하실 게 없습니다. 그리구 또 한 가지……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조금치두 무슨 이해 상관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건 참 어찌 생각 마십시오.”
 
354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저편은 전화를 끊어 버린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로소 정신이 들기는 했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전화통에다가 매달린 채 돌아설 줄을 모른다.
 
355
이것은 형보가 정거장 앞에 있는 자동전화를 이용한 것임은 물론이다.
 
356
형보는 흔히 신문에서 보는, 샛서방〔間夫〕과 계집이 본서방에게 들키는 현장에서 한꺼번에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와 같은 요행수를, 오늘 밤 일의 결과에다가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아울러 태수가 제 집을 비워 두는 시간을 넉넉히 이용하여 사전(事前)에 우선 초봉이를 조처해 둘 요량이었었다.
 
357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태수가 김씨를 찾아가서 그 몇천 원의 돈을 받으리라는 초저녁 시간을 지정하지 않고, 느직이 열한시라고 했던 것이다.
 
358
오늘 저녁의 일은 가령 허사가 되더라도 태수를 법망에 얽어 넣을 방법이 얼마든지 종차로 있으니까 밑질 게 없지만, 혹시 뜻대로 일이 되어서 태수가 죽기만 한다면 미상불 형보한테는 호박이 절로 떨어지는 판이었었다.
 
359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윽고 수화기를 걸고 신호를 울린 뒤에 천천히 돌아섰다.
 
360
그는 도무지 맹랑해서 어떻다고 이를 데가 없고, 허황한 품으로는 누구의 장난 같았다. 그러나 장난치고는 너무나 심한 장난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그러한 장난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분명코 장난은 아니고.
 
361
그러면, 작은여편네가 어떤 놈하고 배가 맞아서 오늘 저녁에 나를 따돌리려고 꾸며 낸 흉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이러한 경우에 만만한 건 남의 첩인지 미상불 그럼직하기는 했다.
 
362
그러나 실상인즉 작은집에서는, 오늘이 제 생일이라서 제 동무들까지 몇을 청해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이어 밤새도록 놀아 젖힐 채비를 차리고 있고, 그래서 조금 전까지 벌써 세 번째나 어멈을 내려보내서 제발 오늘은 가게를 일찍 드리고 올라오시라고 기별을 했는데야!
 
363
그러니 혹시 여느때라면 몰라도, 오늘 저녁 일로는 작은집에다가 그러한 치의를 할 계제가 되지 못하고.
 
364
그 끝에 자연한 순서로 큰댁 김씨에게 의심이 갈 것이지만, 혹은 평소에 너무 믿음이 도타웠던 탓인지 아직은 미처 그의 생각은 나지도 않고.
 
365
‘그러면은?’
 
366
무엇이란 말이냐고, 고개를 두루 깨웃거리나 통히 종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른 체하고 말자니 꺼림칙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367
그게 어떤 놈이길래, 원 어떻게 해서 내 집안 사정이랄지, 또 더구나 오늘 밤에 작은집에를 간다는 것은 아직은 나 혼자만 염량을 하고 있는 터인데 그것을 제가 알아냈느냔 말이다. 귀신이 아니고는 그렇게 역력히 알아맞히진 못할 것이다.
 
368
‘귀신!’
 
369
아닌게아니라 귀신의 장난 같기도 했다. 하다고 생각을 하니, 별안간 몸이 으시시하면서 뒤가 돌려다보였다.
 
370
그러나 실상 장성 센 사람이면 흔히 그러하듯이, 탑삭부리 한참봉도 젊어서 이래로 귀신이라는 것을 믿지를 않고, 그래서 남들이 귀신을 보았네 귀신이 뭐 어쨌네 하는 소리를 시뻐하고 곧이듣지 않던 사람이다. 오늘 일도 귀신의 작희로 돌리지 않았다.
 
371
‘에잉! 쯧! 어떤 미친놈이 미친 개소리를 씨월거린 걸 가지구서.’
 
372
그는 하다하다 못해, 화풀이 받을 사람도 없는 역정을 내떨면서, 인제는 그따위 허황한 소리는 생각도 않는다고, 고개를 내흔들고 발을 쿵쿵 굴렀다.
 
373
그러나 그는 제정신 말짱해 가지고서 그 괴상한 전화의 최면에 본새 있게 걸려들고 말았다. 우선 여덟시쯤 되어서 가게를 드릴 적에, 마치 무엇한테 씌인 것처럼, 빈지문 고리 하나를 벗겨 놓았으니…….
 
374
가게를 드리고, 돈 궤짝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벽장에다가 넣고 자물쇠를 잠그고 대문을 잘 신칙하라고 김씨더러 이르고 한 뒤에, 내키지 않는 대로 작은집으로 갔다.
 
375
작은집에서는 은근한 젊은 계집들도 많이 모이고, 잔치도 걸어서, 이를테면 꽃밭에 들어앉은 맥이로되 도무지 흥도 나지 않고 술도 맛이 없고, 재앙이라고 전화로 들리던 쨍쨍하니 딱바라진 그 음성에만 정신이 쏠렸다.
 
376
열시도 못 되어 그는 조바심이 나서 자리를 일어섰다. 열한시라고 했지만, 차라리 미리서 가서 숨어 앉아 기다리자던 것이다.
 
377
작은집은 물론이고, 취한 계집들이 모두 붙잡는 것을 스래까지 갔다가 열두시에 도로 오마고, 그리고 문득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요새 미친개가 퍼져서 조심이 된다고 둘러대고는, 다듬이 방치 하나를 손에 쥐고 나섰다. 첫째 몸이 허전했고 겸하여 만약 거동이고 눈치고 수상한 놈이 어릿거리든지 하거든 우선 어깻죽지고 엉치고 한대 갈겨 놓고 볼 작정이던 것이다.
 
378
그는 혹시 누구한테 띌까 하여, 조심조심 큰집으로 내려와서 집 바깥을 휘익 한바퀴 둘러보았다. 대문은 잠겼고, 안에서도 아무 기척이 없고, 집 바깥으로도 별반 수상한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379
우선 안심을 하고는, 가게 앞으로 돌아나와서 고리를 벗겨 둔 빈지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섰다. 어둔 속에서 방금 무엇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 간이 콩만했다.
 
380
겨우 어둔 속에서 더듬더듬 기다시피 가겟방으로 들어가서 앉고 나니 어쩐지 한숨이 내쉬어졌다.
 
381
그리고는 시방 눈을 끄먹끄먹,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다.
 
 
382
탑삭부리 한참봉은 음풍이 도는 듯 텅 빈 가게의 캄캄 어둔 방에서, 더듬는 손에 방치가 잡히는 것이 조금 든든하기는 했으나 시방 자꾸만 더해 가는 불안과 공포와 초조한 마음은 그만 것으로는 가실 수가 없었다.
 
383
곤란한 것은 마음뿐이 아니다. 방이 추운 것은 아니지만, 그만해도 벌써 오십객인데 까는 요도 없이 맨구들 바닥에 가서 누워 있자니 뼈가 배기고 찬기운이 올라와서 견딜 수가 없다.
 
384
시계는 밉살머리스럽게도 칠 줄은 모르고서 또옥 뚜욱 뚜욱 따악, 한껏 늑장을 부린다.
 
385
눈을 암만 크게 떠야 보이는 것은 없고, 땅 속 같은 어둠뿐이다. 이런 때는 담배라도 한대 피웠으면 좋겠는데, 성냥을 그으면 불빛이 샐 테니 그도 못 한다.
 
386
먹고 싶은 담배도 맘대로 못 먹는 일을 생각하면 슬며시 부아가 난다.
 
387
‘이놈! 어쨌든지 도적놈이기만 해봐라, 이놈을…….’
 
388
담배 못 피운 화풀이까지 할 작정으로 별러 댄다.
 
389
그러나 떼어 놓고 도적이려니 해본 것이나 암만해도 도적놈은 아닌 것 같다. 가령 도적이 들기로 한다면 가게로 들 것이지 안방이 무슨 상관이며, 하기야 안방에도 마누라의 패물이야 돈냥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안방을 앉아서 지키랄 것이지, 생판 아무도 모르게 숨어 들어와설랑은 열한점에 안방문을 열어 젖히라니, 이건 바로 샛서방을 잡는 수작이란 말인가?
 
390
‘샛서방? 샛서방?’
 
391
‘원, 그게 어디 당한 소리라고!’
 
392
그는 비로소 아낙 김씨에게로 그러한 치의가 가는 것을, 그만 펄쩍 뛰면서 당치도 않다고 얼른 생각을 돌린다. 그는 그만큼 아낙을 믿어왔고, 따라서 그러한 의심이 나는 것만도 몸이 떨리게 무서웠다.
 
393
그러나 생각을 말자면서도 생각은 자꾸만 그리로 쏠린다. 늙은 남편, 첩살림, 젊은 아낙, 샛서방, 과연 어째 지금이야 생각해 냈는고 싶게 근리하다.
 
394
‘그래도 설마하니 원…….’
 
395
제일 근리한 짐작인데 그러나 제일 싫고 제일 상서롭지 않은 일이라서 부득부득 아니라고 하고 싶어 애를 쓴다.
 
396
‘설마야 우리 여편네가…….’
 
397
천하의 계집이 다 그러더라도 우리 여편네만은 없을 테라는 것이다.
 
398
‘옳아! 그자 말이 재앙이라고 하지를 않았나?’
 
399
재앙, 그렇다면 어떤 놈이 혹시 겁탈이라도 하려는 것을 알려 주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400
그러나 그것도 사리가 닿지 않는 것이, 그렇다면 조심을 하라든지 역시 안방을 지키라고 할지언정, 열한시에 아무도 몰래 방문을 열어젖히라니.
 
401
별안간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나오려고 한다.
 
402
그놈을 꾸욱 삼키고 있노라니까, 이번에는 아주 밉상으로 콧속이 짜릿하면서 재채기가 터져 올라온다. 이놈만은 영 참을 수가 없어,
 
403
“처.”
 
404
하고 겨우 조금만 내쏟는다. 아무래도 감기가 오는 모양이다.
 
405
가게 밖으로 마침 쿵쿵쿵 누군지 발자국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406
혹시 하고 귀를 바싹 기울인다. 그러나 발자국 소리는 그대로 콩나물고개로 사라진다. 그 끝에 문득, 이건 어느 몹쓸 놈이 정말로 장난을 한 것을 시방 내가 이렇게 병신 짓을 청승스럽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놈이 시방쯤은 허리를 잡고 웃고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고 혼자 있기도 점직한 것 같다.
 
407
그러나 그 끝에는 다시, 남의 우스개가 되어도 좋으니 제발 어떤 놈의 실없는 장난에 넘어간 것이었으면 하고 마음에 간절히 바라진다.
 
408
겨우겨우, 가게에서 낡은 괘종이 씨르륵 목 쉰 기침을 하더니 떼엥 뗑 늘어지게 열한 번을 친다.
 
409
우선 죽다가 살아난 것만큼이나 반가워 한숨이 몰려나온다.
 
410
그는 살금살금 가게 바닥으로 내려서서 신발은 신지 않고 우뚝 일어섰다. 가게 앞으로 사람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 아무 기척도 없다.
 
411
방치를 바른손에다 단단히 훑으려 쥐고서 발 앞부리로 가만가만 걸어 안으로 난 판자문께로 다가선다.
 
412
이놈이 소리가 나고라야 말리라고 걱정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밀어 본다.
 
413
아니나다를까, 처음에는 곧잘 말을 듣더니 필경 삐꺽 하면서 대답을 한다. 움칫 놀라 손을 움츠리고 귀를 기울인다. 한참 기다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다시 문틈을 비집기 시작한다.
 
414
그놈을 몸뚱이 하나 빠져나갈 만하게 열기까지에는 이마와 등에서 땀이 배어 올랐다.
 
415
그는 우선 고개만 문틈으로 들이밀고 휘휘 둘러본다. 안방이고 건넌방이고, 다 불은 켰어도 짝 소리도 없다. 마당도 어둡기는 하나 별다른 기척이 없다.
 
416
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또 한번 휘휘 둘러본다. 역시 아무 이상도 없다.
 
417
사풋사풋 안방 대뜰로 올라섰다. 희미한 속에서도 마누라의 하얀 고무신이 달랑 한 켤레 놓인 것이 보인다.
 
418
그는 마누라가 혼자서 외로이 꼬부라트리고 잠이 들어 있을 것을 문득 생각하고,
 
419
‘어허뿔싸! 이건 내가 정녕 도깨비한테 홀려 가지고 괜한 짓을…….’
 
420
아무래도 부질없고 쑥스런 짓인 것 같아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 버릴까 한다. 제일에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자고 있는 마누라한테 미안해 못 할 노릇이다.
 
421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기왕 이렇게까지 해놓고서 그냥 돌아서기는 싫었다. 그는 한 걸음 섬돌로 올라선다.
 
422
기왕 내친걸음이니 영영 속은 셈 대고 시키던 대로 다 해보아야 속이 후련하지, 그러잖고는 아예 꺼림칙할 것 같았다.
 
423
또 지금 나간댔자 잠그지 못하는 가게를 비워 놓고서 작은집으로 갈 수가 없으니 가겟방에 누워서 하룻밤 고생을 해야 하겠은즉, 그도 못 할 노릇이다.
 
424
그는 마침내 마루로 올라가서 윗미닫이의 문설주에 가만히 손끝을 댄다. 그 손이 바르르 떨렸으나 감각은 못 했다.
 
425
‘두말없이 그저 안방문을 열어 젖히십시오!’
 
426
이렇게 하던 말이 역력히 귀에 울리면서 머리끝이 쭈뼛한다. 그 서슬에 무심코 그는 방치를 든 바른손 손아귀에 불끈 힘을 준다. 이것은 제 자신이 의식지는 못했어도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적을 노리는 체세였었다.
 
427
가슴 두근거리는 것을 진정하느라고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고 나서, 마침내 드르륵 미닫이를 열어 젖혔다. 열어 젖히면서 불쑥 머리를 들이미는데, 아랫목으로는 당연한 의외의 광경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428
낭자하던 향락의 뒤끝을 수습지 않은 채, 고단한 대로 풋잠이 든 두 개의 반나체, 얼기설기 서로 얼크러진 두 포기씩의 다리와 다리, 팔과 팔…….
 
429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것을 보고, 알아내고, 분노가 치밀고 하기에 반초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430
움칫 멈춰 서던 것도 같은 순간이요,
 
431
“으응!”
 
432
떠는 듯, 황소 영각 같은 소리를 치면서, 손에 쥐었던 방치는 어느결에 머리 위로 번쩍 치들고 아랫목을 향하여 우레같이 달려든다. 그 덤벼드는 위세의 맹렬함이란 하릴없이 선불을 맞은 멧돼지다. 그게 그런데 숱한 수염이 하나 가득 곤두서고, 불길이 뻗쳐 나오는 두 눈은 휙 뒤집히고 한 얼굴이니, 이 앞에서야 우선 떨지 않고 배길 자 없을 것이다.
 
433
피곤한 끝에 가냘피 들었던 잠이 먼저 깬 것은 김씨다. 잠이 깨고 눈을 뜨는 그 순간 겁에 질리어 벌떡 일어나 앉았을 뿐이지, 그 이상은 더 아무 동작도 가질 여유가 없었다.
 
434
한 초쯤 늦게 일어난 것으로 해서 태수는 겨우 머리칼 한 오라기만한 여유를 얻기는 했다고 할 것이다.
 
435
산이라도 떠받을 무서운 힘과 분노의 덩치가 바윗더미 쏠리듯 달려들면서,
 
436
“이히년!”
 
437
사나운 노호와 동시에 벼락치듯,
 
438
“따악.”
 
439
골통을 내리갈긴다.
 
440
김씨의 골통이다.
 
441
“아이머닛!”
 
442
하는 소리도 미처 다 지르지 못하고,
 
443
“캑!”
 
444
하면서 그대로 폭 엎드러진다.
 
445
태수는 김씨보다 아랫목으로 누워 있었고, 또 일 초만 더디게 일어난 것으로 해서 탑삭부리 한참봉의 최초의 일격이 우선 김씨의 머리 위로 내리는 순간을 탈 수가 있었다.
 
446
“따악.”
 
447
방치가 김씨의 머리를 내리치는 순간, 태수는 나는 듯이 몸을 뛰쳐, 열린 윗미닫이로 돌진을 한다. 그것이 만일 트랙에서라면 최단거리의 세계기록을 깨트리고도 남을 초인적(超人的) 스타트라고 하겠다.
 
448
돌진을 하여 탑삭부리 한참봉의 팔 밑을 빠져 마루로 솟쳐 나가는 태수는,
 
449
“사람 살리우―”
 
450
하면서 짜내듯 외친다. 몇 시간 뒤에는 자살을 할 그가 진실로 사람 살리라고 외치던 것이다. 그는 미처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설사 생각했다 하더라도 역시 그와 같이 몸을 피할 것이요, 사람 살리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이 창피한 죽음을 벗어나 명예로운 자유의 자살을 하려는 의사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요, 오직 동물적 본능인 것이다.
 
451
우선 몸을 빼쳐서 나왔으나 이어 등뒤로부터 무거운,
 
452
“이히놈!”
 
453
소리가 뒤통수를 바투 덮어 누를 때, 태수는 방에서 솟쳐 나오는 여세로 하여, 몸을 바른편으로 돌려 마당으로 피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서 그냥 다급한 대로 건넌방 샛문을 향해 돌진을 계속한다. 미닫이의 가느다랗게 성긴 문설주가 몸뚱이로 떠받으면 만만히 뚫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건넌방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의 절박한 여망이던 것이다. 그러나, 건넌방 샛문을 옳게 떠받자면, 그래도 삼십도 가량은 바른편 쪽으로 몸을 더 틀었어야 할 것인데, 세찬 타성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건넌방 그 샛문의 왼편에 놓여 있는 육중한 뒤주 모서리를 번연히 제 눈으로 보면서도, 어찌하지를 못하고 앙가슴으로다가 우지끈 들이받았다.
 
454
들이받으면서,
 
455
“어이쿠!”
 
456
소리를 지르면서 상반신이 앞으로 와락 솟쳤다가는 이어 뒤로 쿵 마룻바닥에 주저앉는다.
 
457
이만만 했어도, 태수는 집에다가 사다 둔 ‘쥐 잡는 약’을 먹을 필요가 전연 없었을 터인데 뒤미처,
 
458
“이놈!”
 
459
하더니 방망이는 연달아 그를 짓바수기 시작한다.
 
460
“이놈!”
 
461
하고,
 
462
“따악.”
 
463
하면,
 
464
“어이쿠!”
 
465
하고,
 
466
“이놈!”
 
467
하고,
 
468
“퍼억.”
 
469
하면,
 
470
“아이쿠!”
 
471
하고, 그래서,
 
472
“이놈!”
 
473
“따악, 퍼억.”
 
474
“어이쿠!”
 
475
이 세 가지 소리가 수없이 되풀이를 한다.
 
476
건넌방에서는 식모와 계집아이가 문을 반만 열고 서서 겁에 질려 와들와들, 아이구머니 소리만 서로가람 외친다.
 
477
안방의 그 이부자리 위에서는, 앞으로 엎어진 김씨의 몸뚱이가 쭈욱 펴진 채 손끝 발끝만 가느다랗게 바르르 떤다. 치달아오르는 극도의 분노가 모질게 맺힌, 최초의 일격은 그놈 하나로 넉넉히, 배반한 아내의 골통을 바숴뜨리기에 족했던 것이다.
 
478
피는 흥건히 흘러, 즐거웠던 자리를 부질없이 싱싱하게 물들여 놓는다.
 
479
문경 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치로 다 나간다는 아리랑의 우상(偶像)은, 그러나 가끔가다 피의 사자(使者) 노릇도 하곤 한다.
 
480
아닌밤중에 여자들의 부르짖는 비명과 남자의 거친 노호 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481
처음이야 구경삼아 한두 사람이 모인 것이나, 이어서 셋 넷, 이렇게 여럿이 모이자 그들은 집안의 형세가 졸연치 못한 것을 알고는 단순한 구경꾼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지 못했다. 그들은 무언의 동맹을 맺었다. 잠긴 대문을 흔들었다. 마침내 소리를 쳤다.
 
482
대문이 요란히 흔들릴 때에야,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로소 정신이 들어 방치질을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금 정신이 나는 듯이, 발 아래에 나가동그라진 태수의 몸뚱이를 내려다본다.
 
483
태수는 모로 빗밋이 쓰러져서 꽁꽁 마디숨만 쉬고 있지, 몸뚱이며 사지는 꼼짝도 않는다. 얼굴로 유카다로 역시 피가 흥건히 흐르고 젖고 했다.
 
484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상하다는 듯이 한참이나 태수의 그 꼴을 들여다보다가 몸을 돌이켜 우르르 안방으로 들어간다.
 
485
안방에 엎으러진 김씨의 몸뚱이는 인제는 손끝 발끝을 가늘게 떨던 것도 그만이고, 아주 시체다.
 
486
탑삭부리 한참봉은 김씨의 시체 옆으로 가까이 가서, 이윽고 들여다보더니 차차로 눈을 흡뜬다.
 
487
그는 단지,
 
488
‘이렇게 되었나!’
 
489
하고 이상해하는 양이다.
 
490
당장 눈앞에 송장이 두 개나 나가동그라져 있고, 그리고 제 손으로다가 죽이기는 죽였으면서, 그러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아무리 해도 제 자신이 저지른 일인 성싶지가 않던 것이다.
 
491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피 묻은 방치를 힘없이 떨어뜨리면서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서 있다. 그리고 미구에 순사가 달려와서 고랑을 채울 때까지도 그렇게 서서 있었다.
 
492
한편 형보는…….
 
493
그처럼 전화로 탑삭부리 한참봉한테 고자질을 하고는, 시치미를 뚜욱 떼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노라니까 가슴은 좀 두근거려도, 오래 끌던 일이 아무려나 인제는 끝장이 나나 보다고 속이 후련했다.
 
494
그는 안방에서 태수와 초봉이가 재미나게 놀고 있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495
‘오냐, 마지막이니, 맘껏 놀아라.’
 
496
하고 싱그레니 웃었다.
 
497
아홉시가 되어 태수가 게다를 딸그락거리고 나가는 것을 그는,
 
498
‘이 녀석아, 그게 바로 지옥으로 난 길이다.’
 
499
하고 또 웃었다.
 
500
태수를 따라나갔던 초봉이가 대문을 잠그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형보는 어둔 속에서 혼자 싱글벙글 웃으면서, 저 혼자 속으로 주거니 받거니 야단이다.
 
501
‘인제는 네가 처억 내 것이란 말이지?’
 
502
‘아무렴, 그렇구말구.’
 
503
‘그러면…… 오늘로 아주 내 것이 될 테라?’
 
504
‘물론 오늘 저녁으로 조처를 대야지…… 그래서 인감증명을 내놓아야, 딴 놈이 손도 못 댄단 말이었다.’
 
505
미리서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제 말대로 이미 제 것이 되어 있는 초봉이를 바로 안방에다가 혼자 두어 두고서 그냥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506
그는 초봉이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 시간을 기다리자니 무던히 지리하기는 했어도, 그는 끄윽 참고 기다렸다.
 
507
아홉시가 지나고 다시 열시를 치는 소리가 들리자, 이만하면 초봉이가 잠도 들었으려니와 가령 태수가 오늘 밤에 무사해서 돌아온다더라도 한 시간은 여유가 있겠은즉, 꼬옥 좋을 때라고 생각했다.
 
508
‘불시로 돌아오면?…… 또 나중에 알고 지랄을 하면?’
 
509
‘이놈! 꿈쩍 마라, 이렇게 엄포를 해주지?…… 오늘 저녁에 무사히 돌아온대도, 내일 아니면 모레는 때갈 텐데.’
 
510
형보는, 태수가 설혹 잡혀가서 문초를 받더라도 소절수 심부름을 해준 형보 제 이름은 결단코 불지 않으려니 하고, 그의 처음 다짐한 말도 말이거니와 의리를 믿고서 의심을 않는다.
 
511
이런 것을 보면 그는 악독할지언정 둔한 편이지, 결코 영리하거나 치밀하진 못한 인물이다.
 
512
그래 아무튼 만사태평으로 유카다 앞을 여미면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선다. 조용하다.
 
513
“아즈머니 주무시우?”
 
514
막상 몰라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 본다.
 
515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는 살금살금 걸어서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간다. 귀를 기울여 본다. 고요한 방 안에서 확실히 잠든 숨소리가 사근사근 들려온다.
 
516
형보는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살그머니 미닫이를 열고서 우선 고개만 들이민다.
 
517
오십 와트의 전등을 연초록 덮개로 가린 은근한 불빛 아래, 흐트러진 타월 자리옷과 남색 제병 누비이불 위에다가 아낌없이 내던진 하얀 넓적다리며, 머리칼이 몇 낱 흐트러져 내린 평화로운 잠든 얼굴, 이것을 구경하는 것만도 형보한테는 우선 중값이 나가는 향락이다.
 
518
초봉이는 초저녁에 태수가 나간 뒤로 바로 잠이 들었었다. 그는 오래간만에 혼자 자리에 누워 보니, 사지가 마음대로 뻗어지고, 후텁지근하지 않고 한 것이 어떻게나 편한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마음놓고 편안히 잠이 들었던 것이다.
 
519
억척이요 얌전하다는 그의 모친 유씨는 딸을 학교에 보내는 승벽은 있어도, 딸더러 시집을 가서 남편 없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은 가르칠 줄을 몰랐었다.
 
520
형보는 이윽고 싱긋 웃고는 방으로 들어서서 미닫이를 뒤로 소리없이 닫는다. 초봉이가 깨서 앙탈을 하더라도 그것을 막이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는 조심조심 걸어 내려가서 전등 스위치를 잡는다.
 
521
그는 아까운 듯이 한번 더 초봉이의 잠든 맵시를 내려다보다가는 딸꼭 전등을 꺼버린다.
 
 

 
 
522
초봉이가 경풍이 나게 놀라 몸을 뒤틀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할 제는 억센 손바닥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바로 귓바퀴에서 재빠른 소리로 숨가쁘게,
 
523
“쉿! 떠들면 태수가 죽어…… 태수는 시방 싸전집에서, 그 집 여편네하구 자구 있으니깐…… 그리니깐 내가 나가서 한마디만 쑤시면 태수는 남편 한가한테 맞아죽는단 말이야. 태수를 죽이잖으려거든 괜히 꼼짝 말구 가만히 있어야 해!”
 
524
초봉이는 경황중이라 이 말을 조곤조곤 새겨서 그 진가를 분간할 겨를은 없으면서도, 그러나 거듭쳐 놀라운 것만은 사실이어서 다만 정신이 아찔했다. 하는 동안에 형세는 여전하고 조금도 유축이 없다.
 
525
대체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연 할 바를 알 수가 없다.
 
526
그는 다급한 나머지,
 
527
‘어머니는 이런 것도 아시련만!’
 
528
하는 생각이 언뜻 났으나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다.
 
529
아무리 용을 썼자 일은 그른 줄 알면서도 그는 몸을 뒤틀어 댄다. 그러나 종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530
소리는 어쩐지 지르기가 무섭기도 하려니와, 지르자 해도 입이 막혔다.
 
531
원 세상에 이럴 도리가 있을까 보냐고 안타깝다 못해 죽을 힘을 다 들여 가까스로 몸을 한번 비틀면서,
 
532
“으으응.”
 
533
소리를 쳤으나 미처 힘도 쓰다가 말고 고만 그대로 까무러쳐 버렸다.
 
534
초봉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침 열두시를 쳤다. 그는 아까 일이 꿈결같이 아득하여 도무지 정말인가 싶지 않았다.
 
535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하다 못해 혹시 정말로 꿈이나 아니었던가 하여 새삼스럽게 정신이 드는 것이지만, 그러나 아득할 따름이지 분명히 꿈은 아니요 어엿한 생시다. 생시여서 몸은 그렇듯 (허망한 게 곧잘 미덥지도 않은 순간의 소경사이었음에 불구하고 결과되어 나타난 사실은 너무도 똑똑하여) 절대로 무시해 버리거나 씻어 버리거나 하지를 못할 영원한 더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536
초봉이는, 어둠 속에서도 제 몸뚱이가 내려다보이는 것 같아 오싹 진저리를 친다. 더럽고 께림한 게 사뭇 구역이 나는 것 같았다.
 
537
그는 가마솥의 쩌얼쩔 끓는 물에다가 몸뚱이를 양잿물이라도 두어 가면서 푹푹 삶아 냈으면 한다. 아니 그것도 시원칠 않으니, 드는 칼로 어디를 싹싹 도려 냈으면 한다.
 
538
그러나 생각하면 가사 그 짓을 한다고 한들 엎지른 물이 도로 담아질 것이 아니요, 하니 속 후련할 것은 없을 노릇이다.
 
539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는고?’
 
540
조지듯 스스로 묻는 말에, 기다리고 있던 듯이 대번 서슴지 않고 나오는 것이,
 
541
‘죽어야지!’
 
542
하는 대답이다.
 
543
죽어야 하겠고, 죽어서 잊어버리기나 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음을 견뎌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544
이것은 한 개의 순수한 결벽이다. 이 결벽으로 하여 죽음을 뜻한 초봉이는, 죽어야 할 또 하나의 다른 이유를 깨닫고,
 
545
‘옳다! 죽어야 한다!’
 
546
하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다. 그제야 정조라는 것―---남의 아낙으로서 정조를 더럽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547
초봉이는 손으로 어둔 발치를 더듬더듬, 벗어 놓았던 옷을 걷어 입고 도사리고 앉아 한 팔로 턱을 괸다.
 
548
죽기로 (결심이 아니라, 죽어야 한다고) 하고 나니 비로소 뭇 생각과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549
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생김새부터 흉악한 저놈 장가놈한테 이 욕을 보다니, 그러고서 속절없이 죽다니, 당장 식칼이라도 들고 쫓아가서 구렁이같이 징그럽고 미운 저놈을 쑹덩쑹덩 썰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물끈물끈 치닫는다.
 
550
그렇지만 만약에 그랬다가는 내 부끄러운 것이 내가 죽은 뒤에라도 드러나고 말 테니, 또한 못 할 노릇이다. 속시원하게 원수풀이도 못 하다니 가슴을 캉캉 찧고 싶다.
 
551
대체 이이는 어떻게 된 셈인고? 장가놈이 말한 대로 한참봉네 집엘 가서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
 
552
설마 그럴라구? 장가놈이 괜히 꾸며 댄 허튼 소리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그따위 소리에 가뜩이나 기가 질려 가지고는 맘껏 항거라도 해대질 못했던고!
 
553
분한지고! 이 원한을 못 풀고 그대로 죽다니. 내가 소리 없이 이렇게 죽어 버리면 어머니 아버지며 동생들은 오죽 놀라고 설워하리.
 
554
어느결에 눈물이 맺혀 내리고 절로 울음이 솟아쳐 나오는데, 그럴 때에 마침 요란히 대문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555
초봉이는 울음을 꿀꺽 삼키면서 반사적으로 일어서기는 했으나, 대답을 하고 나올 염을 못 하고 그대로 선 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남편을 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556
그는 가슴이 맞방망이치듯 두근거리고, 어째서 진작 목을 매든지 찻길이나 선창으로 나가든지 하질 않고서 여태 충그리고 있었더란 말이냐고, 당장 목을 맬 밧줄이라도 찾는 듯이 방 안을 둘러본다.
 
557
그러자 연거푸 대문을 흔드는 사이사이에,
 
558
“여보오 여보, 문 좀 열어요!”
 
559
하면서 부르는 음성이며 말투가, 분명 태수가 아닌 것을 퍼뜩 깨달았다.
 
560
초봉이는 남편이 돌아온 게 아닌 것이 섬뻑 마음이 놓이더니, 그러나 이어 그와는 다르게 새로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다.
 
561
그러면 장가놈이 하던 소리가 빈말이 아니고 무슨 탈이 난 것인가, 이런 의심이 들면서 그는 더 지체할 경황이 없이 가만가만 대문간으로 밟아 나온다.
 
562
“누구세요?”
 
563
초봉이의 음성은 저도 알아보게 떨렸다.
 
564
“이게 고태수 집이래지요?”
 
565
대문 밖에서 되묻는 건 갈데없는 순사의 말씨다. 마침 철그럭 하는 칼소리까지 들린다.
 
566
인제는 장형보의 하던 소리와, 그리고 무슨 탈이 났다는 것은 더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돼서?
 
567
혹시 장가놈이 내가 까무러쳤던 사이에 나가서 뒤로 무슨 흉계를 꾸몄다면 모르지만, 그러나 나를 그래 놓고서 억하심정으로 그렇게까지 할 며리도 없는 게 아닌가?
 
568
또 몰라, 그놈의 짓이니…… 그렇지만 그 동안이 얼마나 된다고 어느 겨를에 나갔다가 들어오며…….
 
569
초봉이는 머릿속이 혼란한 채 밖에서 재촉하는 대로 대문을 열었다.
 
570
역시 시꺼먼 순사가 외등불 밑에 우뚝 섰다.
 
571
“고태수, 집에 왔소?”
 
572
“네, 저어…….”
 
573
“응…… 그러면 저어, 오늘 저녁에 개복동 한서방네 집에, 그 집 안집에, 에 또, 간 일 있소?”
 
574
“네에.”
 
575
“응, 응…….”
 
576
순사는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덱끄덱하더니,
 
577
“……그러면 저기 도립병원에 가보시우.”
 
578
“네에?”
 
579
초봉이가 소리를 짜내면서 대문 밖으로 쏟쳐 나가는데 순사는 벌써 돌아서서 가고 있고, 여태 순사 뒤에 가 가려 섰다가 조그맣게 나서는 게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의 계집아이다.
 
580
“오! 너!…… 그래서?”
 
581
초봉이는 숨차게 외치고, 계집아이도 초봉이 앞으로 와락 달려든다.
 
582
“저, 이 댁 서방님이…….”
 
583
계집아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내다가 힐끗 순사를 돌려본다. 순사는 돌려다보지도 않고 멀찍이 가고 있다.
 
584
“그래서?”
 
585
“이 댁 서방님이, 저어…….”
 
586
“으응, 그래서?”
 
587
“저어, 아주 돌아가시게…….”
 
588
“머어?”
 
589
초봉이는 정신이 아찔하여 몸이 휘둘리면서 쓰러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대문 문지방에 등을 지이고 선다. 그는 머릿속에 더운 물을 들어부은 것 같아 욱신거리기만 했지 잠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590
“아니, 웬일인가요?”
 
591
등뒤에서 게다 끄는 소리가 달그락거리더니 형보가 뛰어나온다. 그는 허둥지둥하기는 해도, 아까 안방에서 건너간 뒤에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대문간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를 대강 다 알아듣고도 물론 짐짓 의뭉을 피우던 것이다.
 
592
“……너 웬일이냐?”
 
593
형보는 초봉이가 넋을 잃고 섰는 것을 힐끔 돌려다보다가 계집아이 앞으로 다가선다.
 
594
“저어, 이 댁 서방님이 다아 돌아가시게 돼서, 저어 병원으로…….”
 
595
“머어? 어째?”
 
596
형보는 허겁스럽게 놀라는 체하는 것이나 속으로는, 일은 썩 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좋아 죽는다.
 
597
“……거 웬 소리냐?…… 대체 어떻게 된 일인데?”
 
598
“저어, 우리 댁 나리가…….”
 
599
“응, 느이 댁 나리가?”
 
600
“이 댁, 서방님을…….”
 
601
“그렇게…… 저어 뭣이냐, 돌아가시게 해놨단 말이지?”
 
602
“네에.”
 
603
“네에라께?…… 아니 글쎄…….”
 
604
“그리구 우리 아씨는 아주 그 자리서 돌아, 돌아가시구…….”
 
605
계집아이는 비죽비죽 울기 시작한다.
 
606
형보는 여편네 김씨까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뜻밖이었으나 역시 그럴듯하기는 했다.
 
607
초봉이는 어느 틈에 큰길로 두달음질을 치고 있다.
 
608
“그럼 너는 느이 집으루 가보아라. 이 댁 아씬 내가 모시구 병원으루 갈 테니…….”
 
609
형보는 계집아이더러 말을 이르고서, 초봉이를 따라가느라고 유카다 자락을 펄럭거린다.
 
610
초봉이는 제가 병원엘 간다기보다도 등뒤에서 딸그락거리고 따라오는 형보한테 쫓기어 반달음질을 치고 있다.
 
611
‘이놈아, 이 천하에 무도한 놈아! 네가 이놈 나를…… 그리고 내 남편을…….’
 
612
초봉이는 돌아서서 이렇게 저주를 하고, 그의 죄상을 낱낱이 헤어 가면서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그럴라치면 길가던 사람, 잠자던 사람 할 것 없이 숱한 사람이 모이고, 그 여러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형보를 죽도록 때려 주고 걷어차고 할 것이고…….
 
613
게다를 신었어도 사내의 걸음이라, 몇십 간 가지 못해서 형보는 초봉이와 나란히 섰다.
 
614
“자동차라도 얻어 탑시다?”
 
615
형보는 혹시 지나가는 자동차라도 없나 하고 앞뒤를 휘휘 둘러본다.
 
616
초봉이는 물론 들은 체도 않고 씽씽 가기만 한다.
 
617
“허, 그거 원!”
 
618
형보는 따라오면서 혼자말로 자탄하듯 두런거린다.
 
619
“……원 그럴 도리가 있더람!…… 그거 원 참!…… 그래, 어쩐지 전에두 보기에 위태하더라니!…… 글쎄, 결혼두 하구 했으면서 그런 위태한 짓을 할 게 무어람? 사람이 좀 당돌해서…… 당돌해서 필경 일을 저질렀어!”
 
620
실상 초봉이는 태수의 생명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애가 타기는 했어도, 일변 어찌 된 사맥인지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것은 아니다.
 
621
“그러나저러나 간에…….”
 
622
형보는 인제는 바로 대고 초봉이더러 이야기를 건넨다.
 
623
“……실상, 고군이 오래잖아서 아무래도 죽기는 죽을 사람이었으니깐요…….”
 
624
‘무어야?’
 
625
초봉이는 종시 못 들은 체하기는 해도 속으로는 대꾸를 않지 못한다.
 
626
“……은행 돈을 수우수천 원을 범포를 냈지요. 남의 소절수를 위조해 가지구설랑…….”
 
627
‘이 녀석이, 한단 소리가!’
 
628
“……그래 그것이 오래잖아 탄로가 날 테니깐, 그럴 날이면 창피하게 징역살이를 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린다구 그랬더라우. 오늘 아침에두 당신이 부엌에 내려간 새 나하구 그런 이얘길 한걸?…… 행화두 태수가 죽는닷 소리는 육장 들었습넨다. 행화두 실상은 태수가 상관하던 계집인데 것두 여태 모르구 있습디다그려……?”
 
629
‘무엇이 어째?’
 
630
“……저의 집이 재산가요, 과부의 외아들이요, 전문학교 출신이요, 그게 다아 당신허구 결혼할려구 꾸며 낸 야바우 속이라우, 야바우 속…… 보통학교만 겨우 마치구서 서울 ××은행 본점 급사루 들어갔다가 십 년 만에 행원이 된걸, 흥!”
 
631
‘아니, 무엇이 어째?’
 
632
“……그리구 즈이 집은, 집두 터두 없어서 즈이 어머닌 머 어디라던가, 남의 셋방을 얻어 가지구 산답니다. 그날 혼인날 말이오, 내려오지두 않은 걸 보지? 내려오기는커녕, 혼인한다는 기별두 않은걸!”
 
633
‘거짓말 마라, 이 녀석아!’
 
634
“……이 군산바닥엔 그 사람네 본집이 어덴지 아는 사람이라구는 하나두 없어요. 당신한테두 아마 가르쳐 주지 않었으리다…….”
 
635
‘이 녀석아, 누가 네한테 그따위 개소릴 듣쟀어?’
 
636
초봉이는 형보가 미운데다가 일이 안타까워서 그러는 것이지, 역시 형보의 말이 다 곧이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637
“……그러니 말이오, 다아 속내평이 그래서, 당신두 억울하게 속아 가지구, 말하자면 신세를 망친 셈이지요!”
 
638
‘무슨 상관이야?’
 
639
“……그러니깐, 그저 지나간 일일랑 다아 잊어버리구서, 맘을 가라앉히시우. 내가 있는 이상, 장차에 살아갈 걱정은 할라 말구…….”
 
640
‘아니, 이 녀석이 가만 두어 두니까, 점점…….’
 
641
초봉이는, 형보가 인제는 바로 제 계집이 다 된 양으로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 수작이 하도 어이가 없어, 대체 어떻게 생긴 낯바대기를 하고서 이러느냐고, 침이라도 태액 뱉어 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642
“……집두 기왕 얻어 논 거요, 살림두 그만큼 채린 것이니, 일부러 그걸 떠헤치구 다시 채릴려구 할 거야 무엇 있소?…… 되려 십상이지, 머…….”
 
643
“듣기 싫여!”
 
644
초봉이는 참다못해 발을 구르면서 한마디 외친다. 그 끝에 그는,
 
645
‘내가 네 간을 내먹자면 네 계집 노릇이라도 해야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차라리 안타깝다.’
 
646
고까지 부르짖고 싶었던 것이다.
 
647
형보는 좀더 사람이 영리했다면 지금 이 경황중에, 더구나 태수의 흠을 들추어내 가면서 초봉이를 달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648
이윽고 도립병원엘 당도하여 형보는 뒤에 처져서 순사가 묻는 대로 저 여자는 피해자 고태수의 아낙이요, 또 나는 한 집에서 지내는 그의 친구라고 온 뜻을 설명하고, 초봉이는 그대로 치료실 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았다.
 
649
방금 맞은편에 있는 진찰대 옆에서는 간호부가 흰 홑이불로 태수의 몸뚱이를 머리까지 덮어씌우고 있을 때다.
 
650
그 흰 홑이불이 바로 죽음 그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아, 초봉이는 머리끝이 쭈뼛하고 다리가 허든거렸다.
 
651
그는 무엇에 질리듯 더 들어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칫 멈춰 선다.
 
652
마침 의사가 귀에서 청진기를 떼어 들고 돌아서면서, 이편 쪽으로 걸상을 타고 앉은 경부보더러 나른하게,
 
653
“모, 다메데스(운명했습니다)!”
 
654
란 말을 한다.
 
655
그러다가 마침 들어서는 초봉이를 힐끔 건너다보더니, 이어 본 둥 만 둥 커다랗게 하품을 씹는다. 경부보는 직업에 익은 대로 초봉이의 위아래를 마슬러보다가,
 
656
“고테수노, 오카미상(아내)요?”
 
657
“네에.”
 
658
초봉이의 대답은 절로 떨리면서 목 안으로 까라진다.
 
659
“우응…….”
 
660
경부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턱으로 저편 침대께를 가리킨다.
 
661
초봉이는 머릿속이 무엇 두꺼운 헝겊으로 한 겹을 가린 것같이 멍하여 차근차근 사려를 갖는다든가 할 수가 없고, 경부보가 턱을 들어 가리키는 대로,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휘청휘청 진찰대 옆으로 다가간다.
 
662
간호부가 조용히 홑이불 자락을 걷고 얼굴만 보여 주면서, 삼가로이 목례를 한다. 직업도 직업이려니와 애틋한 어린 미망인에 대한 같은 여자로서의 동정과 조상이리라.
 
663
태수의 얼굴은, 왼편 이마가 으깨어지듯 터져 피가 번져 나왔고, 같은 왼편 광대뼈가 시퍼렇게 피멍이 져서 부풀어올랐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 자국만 얼굴에 남았지, 머리털이 있어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664
그러나 피 묻은 얼굴은 숭업게 뒤틀리고, 눈과 입을 반만 감고 벌린 채, 숨이 져서 있는 꼴은 첫눈에 소름이 쪽 끼쳤다.
 
665
초봉이는 반사적으로 외면을 하려다가 뒤에서 보는 사람들을 여겨 못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싼다. 그리고는 순간만에 접질리듯 무릎을 꿇고 진찰대 변두리에다가 고개를 파묻는다.
 
666
서러운 줄은 모르겠어도,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에 따라 어깨도 떨린다.
 
667
그렇게 눈물이 먼저 나오고 어깨가 떨리고 해서 절로 울어지고, 울어지니까 비로소 서러워 온다.
 
668
무슨 설움인지 모르고서 울고 있는 동안에, 그제야 이 설움 저 설움 설움이 솟아나고, 분한 일, 안타까운 일, 막막한 일이 모두 생각나고, 그래 끝이 없는 설움에 차차 더 섧게 운다.
 
669
그것은 제 설움이 하 망극하여 그렇겠지만, 그는 남편 태수를 슬퍼하는 정은 마음 어느 구석에고 돌지를 않았다. 보다도, 그는 그런 설움이야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670
형보가 이것저것 주변을 부렸다. 자동차부에 전화를 걸어, 집 근처까지는 가지 못하는 자동차로 우선 둔뱀이의 정주사네를 데리러 보낸 것도 그것이다.
 
671
그리한 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복도를 우당퉁탕, 정주사네 내외가 달려들었다.
 
672
초봉이는 그때까지도 진찰대 변두리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673
정주사네 내외는 첨에는 사위 태수가 죽었다는 단지 그것만을 알았고, 그래서 웬 영문인지를 몰라 어릿어릿했다.
 
674
형보가 시원시원하게 내달아서, 제가 들은 대로 사실 경위 이야기를 해주고는, 연달아 아까 초봉이를 좇아 병원으로 오면서 하던 태수의 근지와 소절수 사건을 까집어 내기를 잊지 않았다.
 
675
정주사네 내외는 당장 눈앞에 태수가 송장이 되어 자빠졌다는 것 외에는 모두가 반신반의스러웠다. 아니 도리어 미더운 편으로 기울기는 하나, 이 혼인을 정할 때 장사 밑천에 홀리어 사위의 인물의 흐린 점이 있는 것도 모른 체하고 ‘관주’를 주어 버린 자기네의 마음의 죄책을 다만 얼마 동안만이라도 회피하기 위하여, 우정 형보의 씨월거리는 소리를 곧이듣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676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래도 좋고 ‘날아가 버린 장사 밑천’ 그것이 속절없어 태수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진 듯 아뜩했다.
 
677
“허! 흉악한 일이로군!”
 
678
정주사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이렇게 탄식을 한다. 그것은 사위가 죽은 데 대한, 따라서 딸의 신세를 생각하는 장인이요, 아버지의 상심(傷心)이 노상 아닌 것도 아니나 ‘날아가 버린 장사 밑천’이 더 안타까워,
 
679
“허! 허망한 일이로군!”
 
680
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었다.
【원문】10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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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류(濁流)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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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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