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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일기 (華城日記) ◈
해설   본문  
1795년 (정조 19년)
이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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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일기(華成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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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 왕능 행차, 때는 1795년 음력 2월 9일(정조 19년, 을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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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9년, 을묘년 (1795년 음력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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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대궐 밖 화성(華城=수원)으로 떠나시니, 이 해는 혜경궁 홍씨의 환갑(還甲)이라 온 나라에 경사(慶事)가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여 무궁한 세월동안 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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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군 배봉산(拜峰山)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 현륭원에 이장한 후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처음으로 함께 가시는 길이라 일가(一家)는 팔촌(八寸), 친척(親戚)은 오촌(五寸)까지 다 오라하여 진찬(進饌)을 베푸실 것이며, 진찬 시 벼슬 없는 선비인 우리들도 참례(參禮)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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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청(宣惠廳)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한강에 넓이 약 8~10m로 임시 배다리를 놓아 그 위에 널판을 깔고 벽이 화려한 난간을 세우고 난간밖에는 용과 뱀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진중(陣中)에서 오방위(五方位)를 표시하는 큰 기(大旗幟)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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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혜청(宣惠廳) : 이조 때 대동미(大同米), 대동목(大同木)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 선조 41년에 시작하여 고종 31년에 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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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앞에서 말을 내리자. 경비하는 군사가 나와 묻고 하인의 증명서를 확인 한 후 건너게 하였으며 여럿이 건너가니 사방의 깃발과 병기(兵器)가 찬란하고 푸른 물결이 틈틈이 보이니 경치가 기이(奇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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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읍내 주막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화성(華成) 북문인 장안문(長安門)에 들었다. 장안문(長安門)은 밖에 옹성(甕城)을 쌓고 홍예(虹霓)를 곱돌로 틀고 그 안에 성문이 있는데 이층 문루가 반공중에 솟았는지라 문루의 크기는 숭례문(崇禮門)과 같으나 어렴풋하여 알 수 없었고 홍예는 더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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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예(虹霓) : 문 얼굴의 무지개 같이 반원형이 되게 만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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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들어서니, 왕이 나아가는 길 좌우로 많은 백성들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한양 벼슬아치들의 집이 많고, 높은 벼슬아치들의 붉은 칠한 대문이 화려하여 한양과 다름이 없고 종루(鐘樓) 사거리의 상가와 좌판, 서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양 종루 모습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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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 이희갑(李羲甲)이 금위낭청(禁衛郎廳)을 모시고 계셔서 금위영의 임시숙소 심부름꾼을 데리고 남문(南門) 안 장교(將校)의 집에 임시 숙소를 정하니 안집이 두 칸 방에 마루도 넓어 견딜 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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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갑(李羲甲) :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 손 본 < 화성일기>의 저자 이희평 (李羲平)의 맏형, 혜경궁 홍씨의 외조부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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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위낭청(禁衛郎廳) : 조선후기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중앙에 설치되었던 군영(軍營), 금위영의 주장(主將)을 모시는 관원, 즉 비변랑(備邊郞), 이조 때 국내외의 군무의 기밀을 맡아보던 비변사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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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할머니는 나이가 87세에 하얀 수염이 두어 치씩 나 희한(稀罕) 하였다. 양식과 반찬을 넉넉히 가져왔으므로 주인에게 밥을 시켜 먹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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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왕의 행차는 시흥에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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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큰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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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왕이 움직이시어 과천 사근마을에서 점심을 드시고 화성에 일찍 드신다는 명령이 전달되자, 벼슬아치들(百官)이 비를 무릅쓰고 북문 밖에 나가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비는 시작도 끝도 없이 내렸지만 길 좌우로 화성 마병(馬兵)이 모두 유의(油衣)에 말을 타고 마주보면서 두 줄로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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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의(油衣) : 비를 막기 위한 기름 먹인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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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먼저 오시는데, 황금 갑옷을 입으셨고 화성 유수(留守) 조심태(趙心泰)로 하여 입군(入軍), 절차(節次) 군례(軍禮)를 받으시니 위엄이 반듯하고 군대의 행렬이 분명하여 한때 장관(壯觀) 이었다. 다만 비를 맡은 신(神)이 방해를 하여 모두 유의(油衣)을 입어 애달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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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왕을 맞이한 후 전모(氈帽)를 쓴 내의녀, 기생, 등이 쌍쌍이 앞에 서고 그 뒤에 내인, 상궁, 등이 쌍쌍이 서서 혜경궁 홍씨가 오시는데, 가교(駕轎) 사면에 주렴(珠簾)을 드리우시고 위에 기름먹인 차일(遮日)로 비를 막았다. 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혜경궁 홍씨를 맞이한 후 뒤 따라 임시 거처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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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모(氈帽) : 조선시대 여성들이 나들이 때 쓰던 쓰개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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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교(駕轎) : 왕과 왕비의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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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렴(珠簾) : 사면에 구슬을 꿰어 꾸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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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일(遮日) : 햇빛 가리는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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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일일 비 개고 날씨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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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공자의 신위에 참배 하시고 낙남헌(樂南軒)으로 나오셔서 문무과(文武科) 알성(謁聖) 과거시험을 실시 하니, 화성, 광주(廣州), 과천, 시흥, 사읍(四邑) 선비만 볼 수 있었다. 당일 신선의 음악이 펼쳐지며 쌍개(雙蓋)무동(舞童)이 인도하여 문무 장원에게 급제 증서를 주었지만 우리는 사읍(四邑)에 호적(戶籍)이 없어 과거도 못 보고 남을 구경만 하니 애달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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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으로부터 종루(鐘樓)로 나가 거닐며 보니, 시내(市內) 사람 사는 집들의 번화함이 비할 데 없고 길 위 큰 개천을 잘 정돈하여 가지런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한양 광통교(廣通橋)와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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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 땅이 세류원(細流院) 주막집 터 인데, 구 수원(水原) 에 사도세자 능을 모신 후에 이리로 읍내를 옮겼는데, 땅이 물기가 없어 흙이 마르고 깨끗하며 산천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예전부터 관부(官府)가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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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터 위 터를 잡아 놓고 남, 북문 문루(門樓)와 앞 성은 쌓고 남아 있는 것은 아직 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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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은 지었으니 팔달산이 주봉(主峰)이라. 밖 삼문(정문, 동협문東夾門, 서협문) 문루가 신풍루(新豊樓)인 것은 중국 고대 서한(西漢) 고제(高帝)의 신풍래궁(新豊來宮)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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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풍래궁(新豊來宮) : 중국 한나라 고제가 새로 도성을 만들어 이 새 도성의 문루에 새(新)자를 덧붙였고, 풍(豊) 고을의 백성이 모두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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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을 향하여 가보니 북성(北城) 옆에 수문(水門)을 내었는데, 수문이 칠간(七間)이니 오간수문(五間水文門)보다 이간(二間)이 더 있고 문 위에 작은 루(樓)를 지어 현판이 화홍문(華虹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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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樓) 길을 따라 용두각(龍頭角)으로 올라가니 용두각은 앞에 활 쏘는 정자가 있으며, 왕이 노시는 곳이라 지어진 모습이 사면이 끊어져 있어 중국식 집 모양 같고 아교에 갠 금벽단환(金碧團環)이 휘황찬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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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벽단환(金碧團環) : 금박 가루를 바른 둥근 열쇠고리 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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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거처로 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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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구름 없이 맑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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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남문을 지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로 가시니. 남문 이름은 팔달문(八達門)이요, 사도세자의 묘소는 이십리(二十理)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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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관광하러 나가 오랫동안 여기저기 머뭇거려가며 두루 구경을 하고나자, 선발대를 앞세우고 왕이 돌아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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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군복을 입고 계셨는데 군복에는 금으로 용이 그려져 있었고 금빛이 밝게 비쳐 빛나니 햇빛에 찬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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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혜경궁 홍씨 가교(駕轎) 뒤에 바로 서서 오시니, 사방에서 굿 보는 성안의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축하하면서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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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행궁에 돌아오셔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 후 갑옷과 투구를 쓰신 채 서장대(西將臺)에 오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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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는 팔달산 제일봉에 지었으며 이층 누각으로 넓고 끝없는 모양 같이 공중에 어렴풋하게 솟아 있어, 아래서 올려다보면 하얀 구름이 허리를 둘렀는데. 단청이 밝게 비쳐 빛나니 진실로 신선(神仙)의 누대(樓臺)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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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먼저 올라 잠깐 보니 모양은 남한산성 서장대와 같고, 시원스럽게 넓고 환하게 전망이 트여 있는 것은 남한산성 서장대 보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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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단(壇)을 쌓고 단위에 흰 색칠을 한 담장을 둘러놓았는데 왕이 올라앉는 자리라 하였다. 루(樓) 사면에 차일(遮日)과 설포장(設布帳)을 치고 파수병을 두어 함부로 아무나 출입을 못하게 경계하는 문이 있어 올라가 보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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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포장(設布帳) : 집 밖에 치는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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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서장대에 올라 자리 잡으신 후, 영의정 이하 문무백관, 한양을 지키는 각 군영의 장수로부터 갑옷과 투구를 쓰신 채 군례(軍禮)를 받으시고, 수라(水喇)를 드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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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서산에 햇빛이 감추고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 한쪽에 어둠이 깔리자, 선전관(宣傳官)이 밤 행군 시 깃대에 매달던 등에 불 켬을 웃어른에게 여쭈어서 그 의견을 기다린 후 각 영문(營門)이 일시에 등에 불을 켜 매달고, 나팔을 불고, 징을 치니, 성터 위로 군병이 일시에 열을 지어 늘어서고, 조두(刁斗)소리 내며 순찰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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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두(刁斗) : 옛날에, 군에서 냄비와 징의 겸용으로 쓰던 기구. 낮에는 취사할 때, 밤 에는 진지의 경계를 위하여 두드리는 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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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쏴 소리를 내고, 천야성(天鵺聲) 불고, 청룡기(靑龍旗)에 청룡등(靑龍燈)을 내어 세우니, 동문에서 응대하는 총을 쏴 내는 소리에 여러 사람이 일제히 큰소리를 지르고, 또 총을 쏴 소리를 내고, 천야성(天鵺聲) 불고, 주작기(朱雀旗)와 주작등(朱雀燈)을 내어 두르니. 남문에서 응대하는 총을 쏴 소리를 내고, 여러 사람이 일제히 큰소리를 지르고, 천야성(天鵺聲) 불고, 백호기(白虎旗)와 백호등(白虎燈)을 내어 두르니, 서문에서 응대하는 총을 쏴 내는 소리에 여러 사람이 일제히 큰소리를 지르고, 또 총을 쏴 소리를 내고, 천야성(天鵺聲) 불고, 현무기(玄武旗)와 현무등(玄武燈)을 내어 두르니 북문에서 응대하는 총을 쏴 내는 소리에 여러 사람이 일제히 큰소리를 질렀다.
 
51
※ 천야성(天鵺聲) : 임금이 대궐을 나설 때 부는 대평소(大平簫), 날라리, / 변사(變事) 가 있을 때에 군사를 모으는 데 부는 나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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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臺) 위에서 신기전(神機箭)을 쏴대니, 사문(四門)과 사면(四面) 성터 위로 일시에 삼두화(三頭火)가 켜지고, 전후좌우 신기전이 공중에 높이 솟아올라 하늘을 찌를 듯 하며, 불빛이 밝게 빛나며 찬란하여 성안이 불빛으로 붉어지고 그 때 달빛이 희미하여 불빛이 더 밝게 빛나더라, 하여 사면이 다 불 경치라, 구경하는 사람이 길을 메우고 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구경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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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두화(三頭火) : 세 꼬챙이로 된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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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에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다 구경하니, 그런 장관(壯觀)이 또 다시 어이 있으리오.
 
55
삼경 후 끝을 내고 행궁(行宮)으로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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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거처로 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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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구름 없이 맑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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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날씨 화창하고 청명하여 정말 좋은 날에 좋은 때 이다.
 
59
왕께서 새벽밥을 드시는 것을 끝내셨다,
 
60
예조 감(監) 관원이 전하되 모두다 군영(軍營) 문 앞으로 모이라 하여, 명령을 들은 다음, 길을 빙 돌아서 외삼문(外三門) 신풍루(新豊樓) 앞에 모여 차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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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監) : 종친부 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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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안에 둘러섰더니 왕께서 편전 앞문으로 걸어 나오셨다.
 
63
여러 기생이 누런 비단 관복(官服)에 화관(花冠)을 쓰고 각각 의식에 쓰는 물건을 들었고 또 한 쌍은 알자(謁者), 찬의(贊儀)가 앞에서 예법에 맞도록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가 안내 해 드렸는데 몸을 굽혀 절하고 오르시게 하였다.
 
64
※ 알자(謁者) : 알현을 청하는 이를 안내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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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의(贊儀) : 국가의식을 담당하는 통례원(通禮院) 정5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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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여 엎드려 백관이 왕을 맞이한 후에 왕의 뒤를 따라 차례로 내삼문(內三門) 안 잔치마당 다리로 올라 성큼성큼 흔들거리며 들어가니 사면(四面)이 꽃밭 이었다.
 
67
외빈(外賓)중 유생(儒生)은 무반(武班) 쪽으로 갔는데 장헌세자의 서녀 사위 광은부위(光恩副尉) 김기성(金箕性)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68
앉을 자리를 정하여 고개를 숙여 엎드려 꿇어앉은 후 눈을 들어 보니 장락당(長樂當) 앞뜰에 잔치마당 판을 한 길 남짓이 쌓고 그 위에 차일(遮日)을 치고 사면(四面)으로 설포장(設布帳)을 둘렀는데 방문을 열어 검은 발이 드리워져 있고, 혜경궁 홍씨가 앉자 계시고 마루에 왕이 자리하고 계시었다.
 
69
마루 앞에 큰 준(罇)이 놓여있고 등걸에 홍도화(紅桃花) 삼색(三色) 복숭아꽃으로 조화(造花)를 꾸며 꽂고 차일(遮日)대에다 꽃을 묶었으니 신선의 향기가 옷에 배이고 봄볕이 찬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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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罇) : 청룡이 그려진 긴 타원형 사기병 모양의 제향(祭享)때에 술을 담는 구리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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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걸 : 줄기를 잘라낸 나무의 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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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오십 명이 모두 다 누런 비단 관복(官服)에 수를 놓은 초록빛 곁막이요, 남색치마 앞에 진홍(眞紅) 앞치마를 두르고, 관복 앞쪽에 “강구연월(康衢煙月)과 태평만세(泰平萬歲)” 수(繡)를, 허리에 두른 진홍(眞紅)색 넓은 띠에는 수복(壽福) 수(繡)가 놓여 있었으며 화관(花冠)을 썼는데 비단 조각으로 만든 오색 조화(造花)로 얽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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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막 : 여자가 입던 예복의 한가지로 연두색 바탕에 자주 빛으로 겨드랑이 , 깃, 고름, 끝동을 단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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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구연월(康衢煙月) : 태평한 세월( 강구는 사방으로 통하는 큰 길거리)
75
※ 태평만세(泰平萬歲) : 길이기이 몸과 마음 집안이 평안함
 
 
76
악공(樂工) 다섯 그룹 모두가 붉은 관복에 사모(紗帽)를 썼는데 사모 위에다 한 떨기 조화(造花)를 꽂고, 아이 악공은 여러 가지 색깔의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꽃을 모자처럼 하여 쓰고, 어린 기생은 붉은 비단 관복에 진홍 치마를 입고 있었다.
 
77
인의(引儀), 알자(謁者). 찬의(贊儀)의 일 모두를 기생이 대신하고 의식에 쓰이는 기구 모두를 기생이 들었다.
 
78
※ 인의(引儀) : 통례원(通禮院) 종6품
 
 
79
여집사(女執事)가 인의(여기서는 기생이 대신 함)를 인도하여 둘이 마주 서서 국궁 배 흥 평신(鞠躬,拜,興,平身) 하고 동서(東西)로 같이 소리치니 반공중(半空中)에서 나는 듯하였다.
 
80
※ 국궁 배 흥 평신(鞠躬,拜,興,平身) :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혀 절을 하고 일어나시오
 
 
81
그 소리 따라 네 번 절을 하고나자 고두,산호(叩頭,山呼)를 외쳐 그 소리가 맑고 아름다워 기이 했으며, 일시에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나타내고 천세(千歲)를 부르자 중삼문(中三門) 밖에 또 인의(引儀), 알자(謁者)가 서서 고두, 산호(叩頭,山呼)를 부르매 왕을 호위하는 백관과 문무 중신, 군병이 일시에 천세를 외치자 그 소리 우레 같아서 산악이 움직이는 듯하였다.
 
82
※ 고두 산호(叩頭,山呼) :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나타내고 임금에게 경축하는 뜻으로 만세
 
 
83
내삼문 설포장(設布帳) 속은 왕과 왕세자의 사위와 공주의 남편만 들고, 정리청(整理廳) 당상(堂上), 낭청(郎廳)은 모두 군복을 입고 참례(參禮) 하고, 중삼문 안은 외조(外朝) 백관이 참례 하였다.
 
84
※ 낭청(郎廳) : 실록청, 도감(都監) 등의 임시 기구에서 실무를 맡아보던 당하관 벼슬,
 
 
85
왕이 금으로 된 꽃을 꽂으시고, 꽃을 하나씩 나눠 주셔서 각각 절을 하고 받아 갓 위에 꽂았는데, 예비로 꽂을 채비를 하고 온 이는 꽂고 그렇지 아니한 이는 갓 위를 뚫고 꽂았다.
 
86
우리는 품에 꽂고 그 외 수행 군병(軍兵)과 화성 교리(敎理), 군병과 백관, 외빈, 종인(從人), 마부까지 다 꽃을 꽂으니 아름다운 빛깔이 찬란하여 눈이 황홀 하였다.
 
87
왕 행차무리가 지나가니 왕이 지나가신 길에서 향기가 몸에 배이고 은금(銀金)나비가 퍼뜩 거려 천연 나비가 모이는 듯하였다.
 
88
전악(典樂)이 박(拍)을 치자 신선의 음악소리가 맑고 낭랑하여, 눈, 귀가 어지럽고 황홀 하였다. 위를 쳐다보니 오색구름 깊은 곳에 신선이 지니는 옥으로 만든 패물들이 떠 있는 것 같아 감히 쳐다볼 수 없었으며, 이윽고 부상(扶桑)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용 비늘에 햇빛이 쏘이니 일요용린(日曜龍鱗) 식경운(識景雲) 이란 말이 옳더라.
 
89
※ 전악(典樂)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장악원(掌樂院) 정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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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扶桑) : 옛날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한 상상의 신성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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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용린(日曜龍鱗) 식경운(識景雲) : 용 비늘에 비추는 해, 하늘의 상서로운 구름 을 알겠다.
 
 
92
상이 들어오자 모든 상은 그릇마다 꽃을 꽂았고 음식은 팔진미(八珍味)가 모두 갖추어 있어 아주 맛있을 것이다. 상을 다 받자, 두 쌍 기생이 오색 한삼(汗衫)을 드리우고 예쁜 얼굴의 눈썹을 나직이 하고, 환한 얼굴에 옥 같은 손으로 유리잔을 들어 차례로 술잔을 돌리니 일어나 절하고 받았으나 술을 못 먹어도 사양 할 길이 없어 두 손으로 받아 입에 대니 맑은 향기가 달고 맛이 있었다.
 
93
대풍류(大風流)가 시작되자 가까이에서 모두 다 감탄의 입이 벌어졌고. 다른 나라 풍류(風流)음악과 다름이 없었다. 거의 비슷하게 연화대(蓮花臺) 학춤에서 연꽃을 학(鶴)이 쪼으니 점점 떨어지고 그 꽃 속에서 아이가 연잎을 쓰고 안개 옷을 입고나와 생황(笙簧)을 부니, 이 춤은 본디 있었으나 생황 부는 것은 처음 이었다.
 
94
아침 밥 때 빗살 사이에 낀 때를 빼는 솔질을 하러 나왔다가 고쳐 다시 들어가 꽃밭 속으로 다니니, 아무리 봄바람에 꽃과 버들이 한들거려도 이런 아담하고 훌륭하게 멋진 경치에 꽃 자욱한 것이 이 밖에 또 어이 있으리오. 종일 듣고 보는 것이 아주 뛰어나서 비길 데가 없고 신기하고 기묘하며 이상하지 아닌 것이 없더라.
 
95
매 때마다 기생이 쌍쌍이 춤을 추자 안(內)으로부터 백설(白雪) 같은 품질 좋은 명주 비단을 내어, 어깨에 걸어주니(상품으로 주니) 저희들도 더 재능을 드러내어 자랑 하더라.
 
96
순배(巡杯)가 일곱 번 돌자, 왕이 직접 지은 글로 칠언율시(七言律詩)를 내리셔서 이 시로 시운을 써서 시를 지으라 하셨는데, 왕이 지으신 글은
 
 
97
불록양양아명신(弗錄穰穰迓命新)하니
98
봉생난취주청춘(鳳笙鸞吹駐靑春)을
99
지부관화등삼축(地府觀華登三祝)이요
100
세계유홍제육순(歲屆流虹躋六旬)을
101
내외빈잉방수회(內外賓仍放樹會)요.
102
동서반시승화인(東西班是勝花人)을
103
매년지원여금일(每年只願如今日)이라
104
장락당중주기순(長樂堂中酒幾巡)고
 
105
많은 복록이 많고 넉넉하여 천명을 받기를 새로이 하였으니
106
봉피리와 난 부는 것이 청춘에 빛을 머물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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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히 계온 관우화 하시는데 같으니 세 가지 비는 것이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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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유홍 하는데 미쳤으니 육순에 올라 계시더라
109
내외의 손들은 꽃다운 나무 모두임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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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의 반열은 인하여 꽃 꽂은 사람일러라.
111
매양 해에 원하나니 오늘 같은지라.
112
장락당 가운데 술은 몇 번이나 돌았는고,
 
 
113
소신이 이 시를 거두었으니 이 글에 답하여
 
 
114
천권오동경록신(天眷吾東景錄新)하니
115
방가대경취금춘(邦家大慶聚今春)을
116
수강연설호천세(壽彊宴設呼千歲)요
117
장락연개송육순(長樂筵開頌六旬)을
118
성례흔첨천상악(盛禮欣添天上樂)이라
119
채화편삽전전인(菜花遍揷殿前人)을
120
미신차일강령축(微臣此日康寧祝)은
121
현조선도결기순(玄鳥仙挑結幾巡)고
 
122
하늘이 우리 동방을 권우하사 경록이 새로웠으니
123
나라집 큰 경사가 올봄에 다 모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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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선에서 잔치를 베푸시니 천세를 불렀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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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궁에서 자리를 열었으니 육순을 송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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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예는 기뻐 천상의 풍류를 보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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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 꽃을 두루 대궐 안 사람이 꽂았더라.
128
미신의 오늘날 강령에 비는 것은
129
현조의 반도가 몇 번이나 열렸는고
 
 
130
이라 지어 바쳤다.
 
131
글을 지으라주신 간지를 들고 앉아 아무리 생각한들 귀와 눈이 현란하여 무슨 마음이 있으리오, 간신히 지어, 몹시 급하고 가쁜 모양으로 써 바치니 글과 글씨가 다 맞지 않아 부끄러웠으나 갑작스러운 동안 그나마 다행 이었다.
 
132
계속하여 순배는 돌아오고 왕이 명령 하시는데「 오늘은 취하도록 먹어 시경(詩經) 주해서(註解書)에 “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 하는 뜻과 같이 하라 」하시니 잔을 받아 입에 댄들 어찌 다 먹으리오.
 
133
이윽고 왕이 소차(小次)에 나오셔서 홍포(紅袍)를 벗으시고 군복으로 들어오시는데 여집사가 공작부채, 붉은색 햇빛가리개 우산, 일월봉황부채를 들고 앞에서 인도 하고 여인이 경사가 있을 때 왕에게 올리는 송덕(頌德)의 글을 읽으니 그 소리 부드럽고 온화하며 조용하고 품위가 있어 듣기 좋았다.
 
134
※ 소차(小次) : 거동 때 왕이 잠깐 쉬기 위하여 막을 쳐놓은 곳
 
 
135
종일토록 보고 먹은 후 저녁에 또 열구자탕(悅口子湯) 한 그릇씩 돌려 먹은 후에 서산에 해 떨어지고 하늘에 황혼이 지는지라, 또 몸을 움직여 나와 밥을 먹으려 한들 어찌 배가 불러 더 먹을 수 있겠는가. 하인들에게 나눠 준 후 또 왕의 분부를 받들어 들어가니. 사면에 홍사(紅絲) 촉롱(燭籠)을 걸고, 집 서까래 끝과 차일 대마다 다 촉롱을 걸고, 사람들 앞에 유기로 만든 촛대에 값비싼 초를 꽂았으니. 불빛의 영롱함이 대낮 같아 낮보다 더 휘황 영롱 찬란하기가 더하니, 내 몸이 선인의 잔치에 참례 한 듯 구천(九天) 신선의 집에 오른 듯 황홀하여 모르겠더라.
 
136
※ 열구자탕(悅口子湯) : 신선로에 여러 가지 어육과 채소를 색색이 넣고 그 위에 각종 과실을 넣어서 끓인 음식
137
※ 촉롱(燭籠) : 종이나 얇은 비단, 또는 무명베를 발라서 장방형으로 만든 촛불을 켜 드는 아름다운 색깔로 꾸민 바구니
 
 
138
밤에 또 풍악(風樂)하고 순배 돌리고는 농어회를 먹었는데 한쪽에 두셋씩 앉고 각 접시 하였더니 맛이 기이 하였다.
 
139
기름종이를 내주어 음식을 다 싸고 끝내고 나올 적에 또 상(賞)으로 많이 내려주시니 받아들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나오니 금동 물시계의 각(刻)을 나타내는 구리로 만든 침이 사경(四更)을 알려주고 먼 동네 닭 우는 소리가 들리었다.
 
140
※ 사경(四更) : 새벽 두시 전후 밤 시간
 
 
141
임시거처로 와 잤다.
 
 
142
2월 14일, 구름 없이 맑은 하늘
 
143
낙남헌(落南軒) 앞에 왕이 자리 잡으시고 앉아 백성들에게 쌀을 주시고 노인잔치를 하신다 하여 밖에서 보니, 꼭대기에 비둘기를 새겨 넣은 지팡이에 누런 비단 수건을 메고 질 좋은 백색 비단 한 필(匹)씩을 주시니 기뻐 고함치는 소리가 물 흐르는 것 같더라.
 
144
꽉 찬 성(成)안 백성들 중 굿 보는 사람들과 백관(百官), 군병(軍兵)까지 뉘 아니 마음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정성을 칭찬하고 빌지 않으리오.
 
145
용두각(龍頭閣)에 오르셔서 활을 쏘신 후 환궁(還宮) 하시고, 저녁에 매화꽃이 떨어지는 것 같은 매화포 불꽃놀이를 하시는데 신기전(神機箭)이 일시에 하늘에 올라가니 몇 천, 백인지 하늘에 별이 떨어지는 것 같고 사면(四面)에 줄불이 왕래하여 이 불이 여러 군데로 가 불 붙이니 불이 일어나고 다른 불이 여기에 와 불 붙이니, 또 불이 일어나 불꽃 터지는 소리에 산악이 무너지는 듯 진동하니 그런 장관(壯觀)이 또 다시 어디 있으리오. 군마들이 다 놀라 뛰어 나가더라.
 
 
146
십오일 구름 없이 맑은 하늘
 
147
이날 경성으로 환궁 하실 때, 뒤에 따라 가며 보니 북문(北門)에서 오리(五里) 정도에 화성 유수(留守)가 진을 치고 왕의 행차를 배웅 하였다, 그 날은 하늘이 구름 없이 맑아 군복이 선명(鮮明) 하여 화성에 오실 때 보다 더 나은 듯하였다.
 
148
용주사(龍珠寺) 총섭(總攝)이 깃발과 승군을 거느리고 또 배웅을 하니, 중이 군복을 입고 아이들과 병방(兵房) 기수(旗手)들이 자연스러워 군영(軍營)의 기수나 다름이 없었다.
 
149
※용주사(龍珠寺) : 정조(14년,1790년)가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모시고 능을 지키기 위해 수원 근교에 세운 절
150
※ 총섭(總攝) : 승군을 통솔하는 승직의 하나
 
 
151
시흥까지 따라온 후에 남계(南溪)에 있는 조상님 산소(山所)로 가기위해 왕 행차와 다 떨어져 나와 우리들만 모여서 가면서, 내일이 청명(淸明) 한식(寒食)이라, 아무쪼록 빨리 가려 했다.
 
152
삼십리(三十里) 가서 주막집에 멈추자 하고, 해 지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가다가 서산(西山)에 해 떨어지고 동산(東山)에 달이 뜨는지라. 사람이 전혀 없는 산길로 갔다,
 
153
한 굽이돌자 말이 코를 불고 뛰어 내달아서 괴이하여 돌아보니, 등잔(燈盞)만한 불이 번득이는데, 큰 범이 옆에 엎드려 소리 지르니, 어두워 크기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소리에 말과 사람이 다 놀라는지라. 뒤에 오는 하인이 땀을 흘리고, 앞으로와 말을 몰고 싶어 하기에 마부를 불러 「 말을 천천히 몰아 가축(家畜)들로 하여금 무서워하며 주저하는 버릇을 보이지 말라 」하고 겉으로 겁이 없는 체했으나 속이야 어이 편 하리오, 우연히 그렇게 되어 십리(十里) 정도 오니, 그 소리와 불이 아니 보이고,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들려 반갑기 그지없었다.
 
154
말을 몰아 추령고개 주막집에 들어서자 다 놀라 물어보는데,「 어디서 오는 길이요 이 어두운데 그 험한 고개를 넘어 무사히 오시니... 석양(夕陽) 후면 범이 사람이나 가축들에게 해(害)를 끼쳐 사람이 다니지 않는데 평안히 오셨으니 거룩하신 행차입니다 」하니 우스웠다.
 
155
대체 그런 줄 모르고 길을 나서 꼼짝없이 궁지에 빠져 앞으로도 뒤로도 갈 데가 없어 그리로 왔으나, 두 번은 못 올 길이니 후인(後人)들은 허물을 뉘우치고 경계 하여야 할 것이다.
 
156
방에 들어와 자니, 번성하고 화려하며 멋있고 풍치 있었던 어제 일이 눈과 귀에 아름답게 들리고, 영광스럽고 훌륭하게 보이니, 어제는 그리 좋더니 오늘은 이리 고난을 겪으며 위험한 데를 지나왔으니, 사람 사는 세상일이 번번이 이러하다. 형제(兄弟) 웃고 말 하였다.
 
 
157
2월 16일, 구름 없이 맑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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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 떠나 우현(牛峴)고개를 넘어 판교(板橋), 남계(南溪), 조상님 산소(山所)를 가니 다 못 올 줄로 알고 있었다.
 
159
밥을 재촉하여 먹고 산소(山所)에 가 차례를 지내고 사방의 친척을 찾아 다 만나보고 9촌 아저씨 집 영춘각(迎春閣)에서 잤다.
 
160
세월이 지나간 오래 전 옛 집을 보니 다 파괴되고 오래전에 손수 심었던 나무가 아름드리 큰 나무가 되었으니, 인생이 느껴지고 옛일이 몹시 슬프게 느껴져 마음 속 생각이 진정 되지 아니하였다.
 
 
161
2월 17일
 
162
아침밥을 먹은 후에 떠나 새원(新院)마을에 와 점심을 먹고 서빙고쪽 강을 건너 오후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163
차마 내키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몹시 성가시게 굴어, 한 번에 난잡하게 써 초고(草稿)하니 말이 되는지 마는지 거칠며 빡빡하고 잡스러운 것 같으니 어림쳐서 헤아려보고 흉보지 마십시오.
 
 
164
한산후인(韓山後人) 이희평(李羲平) 지음
【원문】화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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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평(李羲平)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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