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양반집 사랑채.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랑채는 회재
이언적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 서원의 안쪽 계곡에 있는데, 그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서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인 네 귀퉁이에 모두 추녀를 단 단층 팔작 지붕집으로 평면은 서쪽에 정면 1칸·측면 2칸인 온돌방을 두고, 그 동쪽의 정면 3칸·측면 2칸에는 전부 우물 마루를 깔아 사랑 대청으로 했다. 대청의 마루 한가운데는 온돌방의 중앙 기둥처럼 네모난 기둥 이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원래는 이 곳도 서쪽의 온돌방처럼 벽체를 만들어 방으로 꾸몄었고,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청 앞면에는 문짝을 달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문설주가 남아 있다.
집터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기둥 머리를 얹고 소의 혀 모양을 한 장식품인 쇠서 받침을 내어 두었다. 기둥 위에 얹은 주두로 직접 대들보와 도리를 받쳤다. 그러나 주두에 꽂힌 첨차의 형태에는 여전히 주심포집 건축의 전통이 남아 있다. 대청의 연등 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들보와 그 위의 종량은 제법 형식을 갖추어 다듬어져 있으나, 둘 사이에 받친 대공은 양봉형의 간단한 만듦새이다. 대청과 양쪽 방의 경계에 배치된 대들보의 재료로는 인방보다 조금 굵은 재목을 사용하고, 그 아래로 기둥 머리를 얹은 네모 기둥으로 받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대공은 동자주로 대신하게 하고, 회벽을 쳐서 공간을 막았다.
온돌방에는 띠살 창호를 달았으나, 대청은 정면 3칸을 창호 없이 모두 터 두었고, 처마는 홑처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