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군 마장리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인 야철 주거지를 말한다.
마장리에서는 적어도 5개의 움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살펴보면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으로 땅을 얕게 파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집 안에서 난방 및 음식을 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화덕 자리인 노지가 나왔다.
이 유적지에서는 민무늬 토기와 김해식 토기, 석기, 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마장리 유적지의 유물들은 토기, 석기, 철기 등이 공존하고 있어서 기원전 12세기경부터 역사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서부 지방 주민 의 삶의 실상을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이 토기 안에서 탄화된 상당량의 밭벼 씨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벼를 재배하여 주식으로 사용하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된다. 이로 미루어 당시는 경제 생활에서 본격적으로 농경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철을 제련할 때 나오는 쇠 찌꺼기와 흙으로 만든 시루가 나왔다. 이러한 유물은 당시 사람들이 철기를 직접 제작하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이러한 자료를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변한이 철기를 만들어서 주위의 나라에 수출하였다."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목탄을 미국 미시간 대학에 의뢰해 우리 나라 최초로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하였으며, 그 결과 서기 200년이라는 연대가 나왔다. 이로써 마장리 유적은 기원 전후 중국의 발달된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반도 남쪽의 문화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변화하고 있던 삼국 시대 전기의 모습을 보여 주는 유적임이 드러났다.
이 유적은 6·25 전쟁 때 이 곳에 진지를 쌓던 미군 매코드가 발견하고는, 본국으로 돌아가 보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