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과 김창진은 모두 아버지에게 소리를 배웠으나 뒤에 선생이 달라서 그랬던지 소리를 다르게 했다. 김창룡은 산골 장작 패는 식으로 소리를 하였고 김창진은 이쁜 각시 바느질하는 것 같이 소리를 했다고 한다.
김창진은 김창룡보다 7~8세 연하인데 중고제와 서편제를 섞어서 소리했고 아편을 했기 때문에 김창룡이 서울에 발을 못붙이게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에 낙향하여 너더리(판교)에 정착했다. 이 때가 194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김창진은 판교에서
박동진에게 판소리
심청가를 전수하게 된다. 이후 아편으로 시름을 달래던 김창진은 너더리에서 불우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