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
|
|
기관/단체 :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내용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40호. 31본산제도(本山制度)가 실시되던 일제강점기에는 21개 군의 절을 관장했던 본산 중 하나이다.
수행처로서의 좋은 조건을 갖춘 지리적 여건뿐 아니라 조선시대 구국(救國)의 선봉장이었던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입적처(入寂處)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절은 968년(광종 19)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었다.
그러나 이름난 고승으로부터 화엄교관(華嚴敎觀)을 전해받고 1028년(현종 19) 연주산에 들어가 살았던 탐밀(探密)과 그의 제자 굉확(宏廓)이 모여드는 학승(學僧)들을 수용할 절을 짓기 위해, 기존의 보현사 동남쪽 100여 보 되는 장소에 243칸의 정사(精舍)를 이룩함에 따라 보현사는 묘향산을 대표하는 절이 되었다.
절을 크게 일으킨 탐밀과 굉확이 죽은 뒤에도 제자들이 절을 계속 증축하였으며, 1067년(문종 21)에 문종은 땅과 밭을 하사하였다. 1160년(의종 14) 10월 12일 왕은 이 절에 행차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30근의 은병(銀甁) 10개를 만들게 하였는데, 각각에 다섯 가지 향(香)과 다섯 가지 약을 담아서 불전(佛前)에 바쳤다.
『조선불교통사』에 의하면 보현사는 그 뒤 다섯 번의 중창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1096년(숙종 1)에는 달보(達寶)가 재창하였고,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懶翁)이 3창하였으며, 1449년(세종 31)에는 해정(海正)이 4창하였다.
1634년(인조 12) 화재로 건물들이 불타자 명조(明照)와 각성(覺性)이 중창하였으며, 1761년(영조 37) 9월에 다시 실화(失火)하여 절이 모두 불타버리자 4년 동안에 걸쳐 남파(南坡)·향악(香岳) 등이 여섯번째로 중창하였다.
『조선불교통사』의 기록 외에도 1216년(고종 3) 9월에 여진족이 묘향사에 들어와서 이 절을 불태워버림에 따라 중창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1218년 거란의 적병을 토벌했던 김양경(金良鏡)의 시에 잘 나타나고 있다. 당시 보현사는 한창 중수중이었는데 그 규모는 300여 칸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또 1818년(순조 18) 이 절에 머물고 있던 한월(漢月)에 의하여 개금불사(改金佛事)가 이루어졌다. 당시 이곳에 있던 석가여래상과 양대보살상(兩大菩薩像)·십육나한상(十六羅漢像)의 채색이 모두 퇴색되어, 미타존상(彌陀尊像)과 대웅전의 석가여래상·양대보살상을 개금(改金)하고 십육나한상에는 개채(改彩)하였다.
1912년 12월 23일 보현사는 ‘선교양종대본산묘향산보현사(禪敎兩宗大本山妙香山普賢寺)’라는 공식 절 이름 아래 30본산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1912년 당시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冥府殿)·심검당(尋劒堂)·수월당(水月堂)·명월당(明月堂)·진상전(眞常殿)·동림헌(東林軒)·만수각(萬壽閣)·관음전·대장전(大藏殿)·영산전(靈山殿)·극락전·사리각(舍利閣)·수충사(酬忠祠)·팔도십육종도규정문(八道十六宗都糾正門, 酬忠祠門)·팔만대장경보존고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수충사는 임진왜란 때의 호국승장 휴정(休靜)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사당이다. 유물로는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7호로 지정된 묘향산 보현사 구층탑과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 144호로 지정된 묘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탑이 있다. 또 유적 중 석가여래사리부도비(釋迦如來舍利浮屠碑)에는 사리봉안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 자장(慈藏)에 의하여 통도사(通度寺)에 봉안되었던 석가여래사리가 1592년 왜병의 침입으로 인하여 해를 입게 되자 사명당(四溟堂)이 금강산으로 사리를 봉안해왔다. 이에 휴정은 금강산이 바다 가까이에 있어 적국과 가깝다는 이유를 들어 그 중 1함(函)은 묘향산에 봉안하고 1함은 통도사로 되돌려 보냈다.
그 까닭은 적이 노리는 것이 사리보다는 금은보화에 있고 또 자장의 뜻이 본래 통도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불사리(佛舍利)는 통도사와 보현사에 분안(分安)되었다. 이 비문은 서산대사가 지은 뒤 손수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임진왜란 때 전국 사찰에 격문(檄文)을 보내어 의승(義僧)의 궐기를 독려했던 초대 승군대장 휴정의 사리부도와, 묘향산을 중심으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보현사에서 입적한 원준(圓俊)의 석종(石鐘), 서산대사의 법을 이어받은 언기(彦機)의 석종과 비문, 풍담대사비(楓潭大師碑)·영암대사석종비(靈巖大師石鐘碑)·월저대사비(月渚大師碑) 등이 있다.
보현사의 말사는 일제강점기에 총 112개가 있었다. 이 중 산내말사(山內末寺)는 안심사(安心寺)·내원암(內院庵)·보윤암(普潤庵)·화장암(華藏庵)·법왕대(法王臺)· 상원암(上院庵)·축성전(祝聖殿)·불영대(佛影臺)·내보현암(內普賢庵)·불지암(佛智庵)·보발암(寶鉢庵)·금강굴(金剛窟)·삼성대(三聖臺)·설령대(雪靈臺)·하비로암(下毘盧庵)·보월사(寶月寺)·남정암(南靜庵)·계조암(繼祖庵)·일출암(日出庵)·백운암(白雲庵)·신흥암(新興庵)·은봉암(隱峯庵) 등 24개 사암(寺庵)이 있었다.
보현사의 산외말사(山外末寺)의 수반지(首班地)는 양화사(陽和寺, 泰川郡)이며, 양화사의 산내말사는 상운암(上雲庵)·화장암(華藏庵)·원적암(圓寂庵)·내원암(內院庵)·축성전(祝聖殿) 등이다.
【인용】
|
|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
|
|
◈ 참조 원문/전문
|
|
|
|
◈ 조회순
|
|
2024.08.24
|
|
|
【문화】
안심사(安心寺)에서 하루 저녁을 지새우고 날이 새는 날 상원암(上院庵), 법왕대(法王臺)를 오르려 하니 이 작은 몸을 둘 데가 없다. 춥지 않은 초여름이라 노숙이 오히려 마음 편할 듯하여 승방 뜰 앞에 여장을 풀었다. 앞산 탁기봉(卓旗峰)의 신선한 푸른빛이 푸르다 못해 검었는데 상원암(上院庵)으로 오르는 길을 살펴보니 험한 石徑(석경)이 명주실같이 이어져 있다.
|
|
|
|
2024.08.31
|
|
|
【문화】
창성읍(昌城邑)에서 동쪽으로 뚫린 강변도로를 따라서 삭주(朔州)로 향한다. 삭주군(朔州郡)은 중앙부에 계반령(界畔嶺, 577m) 높은 봉릉(峰陵)이 소의 등같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중심으로 강남산맥(江南山脈)이 동서(東西)로 뻗어 났고 북쪽으로 흐르는 압록강(鴨綠江)과 남쪽으로 흐르는 대령강(大寧江)을 굽어보면서 전무봉(氈舞峰, 997m)이 높이 하늘가에 떠 있고, 서쪽으로는 천마산(天摩山, 1,169m)이 의주(義州)와 구성(龜城)을 경계하고 있다.
|
|
|
|
2024.08.25
|
|
|
【문화】
천태동(天台洞) 깊은 골을 지나 지친 몸을 하루 저녁 쉬게 하였으나, 온 몸이 마치 매 맞은 것같이 뻑적지근하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오늘은 중비로암(中毘盧庵)으로 향해서 가려고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억수로 내린다. 『이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디로 가느냐? 』는 친절한 말을 들으며 추녀 밑 축대에 섰다. 금년은 이상 기온이 계속되는데에다가 비가 또 계속 내려서 을씨년스러운 여수(旅愁)를 달랠 길이 없다.
|
|
|
|
2024.08.17
|
|
|
【문화】
날이 저물어 영변(寧邊)으로 들어가 객사를 찾았다. 호젓이 객창(客窓)에 누우니 약산동대(藥山東臺)에서 진달래꽃 향기에 혹했던 지난 날의 그리움에 가슴이 설레인다. 다정해지는 춘심이 병이 되어 잠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니 훈훈한 꽃 바람이 몸을 스치고, 멀리서 접동새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
|
|
|
|
2024.08.17
|
|
|
【문화】
오늘은 기필코 묘향산(妙香山, 1,909m)으로 가서 보현사(普賢寺)를 찾으리라 마음에 다짐하고 여장을 차린다. 개천(价川)에서 오는 기차 편으로 북신현역(北薪峴驛)에 내리니, 5월의 신록이 온 천지를 푸르게 물들였는데 싱그러운 바람이 몰려와 나의 몸을 날려 단숨에 묘향(妙香)으로 달리게 한다.
|
|
|
|
2024.08.13
|
|
|
【문화】
얼어붙은 청천강(淸川江)을 굽어보면서 강 건너편에 자리 잡은 평안북도(平安北道)로 발을 들여놓으려고 한다. 안주(安州) 땅 바로 건너는 박천(博川)이다. 그리로 먼저 갈까 하였으나, 머리에 선뜻 떠오르는 것이 영변(寧邊) · 향산(香山)에 있는 보현사(普賢寺)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넋도 얼어붙은 청천강(淸川江). 어제 저녁에 내린 눈으로 하늘과 땅이 흰색으로 변했는데, 대지는 죽은 듯이 고요하다.
|
|
|
◈ 최근등록순
|
|
2024.08.31
|
|
|
【문화】
창성읍(昌城邑)에서 동쪽으로 뚫린 강변도로를 따라서 삭주(朔州)로 향한다. 삭주군(朔州郡)은 중앙부에 계반령(界畔嶺, 577m) 높은 봉릉(峰陵)이 소의 등같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중심으로 강남산맥(江南山脈)이 동서(東西)로 뻗어 났고 북쪽으로 흐르는 압록강(鴨綠江)과 남쪽으로 흐르는 대령강(大寧江)을 굽어보면서 전무봉(氈舞峰, 997m)이 높이 하늘가에 떠 있고, 서쪽으로는 천마산(天摩山, 1,169m)이 의주(義州)와 구성(龜城)을 경계하고 있다.
|
|
|
|
2024.08.25
|
|
|
【문화】
천태동(天台洞) 깊은 골을 지나 지친 몸을 하루 저녁 쉬게 하였으나, 온 몸이 마치 매 맞은 것같이 뻑적지근하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오늘은 중비로암(中毘盧庵)으로 향해서 가려고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억수로 내린다. 『이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디로 가느냐? 』는 친절한 말을 들으며 추녀 밑 축대에 섰다. 금년은 이상 기온이 계속되는데에다가 비가 또 계속 내려서 을씨년스러운 여수(旅愁)를 달랠 길이 없다.
|
|
|
|
2024.08.24
|
|
|
【문화】
안심사(安心寺)에서 하루 저녁을 지새우고 날이 새는 날 상원암(上院庵), 법왕대(法王臺)를 오르려 하니 이 작은 몸을 둘 데가 없다. 춥지 않은 초여름이라 노숙이 오히려 마음 편할 듯하여 승방 뜰 앞에 여장을 풀었다. 앞산 탁기봉(卓旗峰)의 신선한 푸른빛이 푸르다 못해 검었는데 상원암(上院庵)으로 오르는 길을 살펴보니 험한 石徑(석경)이 명주실같이 이어져 있다.
|
|
|
|
2024.08.17
|
|
|
【문화】
오늘은 기필코 묘향산(妙香山, 1,909m)으로 가서 보현사(普賢寺)를 찾으리라 마음에 다짐하고 여장을 차린다. 개천(价川)에서 오는 기차 편으로 북신현역(北薪峴驛)에 내리니, 5월의 신록이 온 천지를 푸르게 물들였는데 싱그러운 바람이 몰려와 나의 몸을 날려 단숨에 묘향(妙香)으로 달리게 한다.
|
|
|
|
2024.08.17
|
|
|
【문화】
날이 저물어 영변(寧邊)으로 들어가 객사를 찾았다. 호젓이 객창(客窓)에 누우니 약산동대(藥山東臺)에서 진달래꽃 향기에 혹했던 지난 날의 그리움에 가슴이 설레인다. 다정해지는 춘심이 병이 되어 잠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니 훈훈한 꽃 바람이 몸을 스치고, 멀리서 접동새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
|
|
|
|
2024.08.13
|
|
|
【문화】
얼어붙은 청천강(淸川江)을 굽어보면서 강 건너편에 자리 잡은 평안북도(平安北道)로 발을 들여놓으려고 한다. 안주(安州) 땅 바로 건너는 박천(博川)이다. 그리로 먼저 갈까 하였으나, 머리에 선뜻 떠오르는 것이 영변(寧邊) · 향산(香山)에 있는 보현사(普賢寺)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넋도 얼어붙은 청천강(淸川江). 어제 저녁에 내린 눈으로 하늘과 땅이 흰색으로 변했는데, 대지는 죽은 듯이 고요하다.
|
|
|
[광고] |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
|
▣ 카달로그 작업
▣ 참조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