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3 ~ 1628]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수초(守初), 호는 정곡(鼎谷).
정철(鄭澈)의 일당으로 몰려 탄핵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교로 복직 후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하였다.
임진왜란시 왕가(王駕)를 모시고 서행하였으며, 다시 사신을 쫓아 명나라에 들어갔다가 홀로 병부상서 석성(石星)을 만나 보고, 철병(撤兵)의 불가함을 논하여 명제(明帝)로부터 상을 받은 바 있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조존성은 1610년 9월 동래에 부임하여
동래 향교의 대성전을 중수하고, 1611년 11월 사직하였다고 한다.
1613년(광해군 5) 광해군(光海君)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金氏)의 추존을 반대하다가 파직되었으며,
1623년 인조반정 후 복관되어 형조와 호조의 참판, 오위 부총관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호조 판서로서 소현 세자(昭顯世子)를 모시고 전주로 피난하였다가 서울로 돌아와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