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 ~ 1555]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한지(漢之)·시회(時晦), 호는 낙봉(駱峰)·기재(企齋)이다.
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5살에 공부를 시작하여 27살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수찬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사간원 헌납, 홍문관 교리 등을 역임했다.
35살에
조광조 등과 함께 신진사류로서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도승지 등이 되었으나
기묘사화에 연좌되어 삭직되었다. 15년 동안 여주에 물러나 두문불출하였다.
55살에 대사성으로 복직되어 형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형조,이조판서가 되고, 노성숙유(老成宿儒)로 오래 문형(文衡)을 맡았다.
을사사화에
소윤(小尹)에 속하여 공을 세우고 영성부원군(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67살에 좌찬성이 되고 70살에 궤장을 받고 문형을 사퇴하였다.
성품이 순후하고 학문이 해박하며 문장에 능하였다. 시조 한 수가 전한다.
심여장강(心如長江) 유수청(流水淸)이요 신사부운(身似浮雲) 무시비(無是非)라.
이 몸이 한가하니 따르나니 백구(白鷗)로다.
어즈버 세상명리설(世上名利說)이 귀에 올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