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여일(黃汝一, 1556∼1622)이 무술년(1598) 10월 21일부터 기해년(1599) 4월 21일까지 6개월간 명나라에 다녀온 일을 기록한 것이다.
중국 사신 정응태(丁應泰)가 주문(奏文)의 내용을 문제 삼자 이를 변무하기 위해서 진주사(陳奏使)인 우의정 이항복과 부사(副使)인 공조 참판 이정구와 함께 서장관(書狀官)의 자격으로 연경에 가게 되었다. 그 해 10월 21일 도성을 출발하여 요동을 거쳐 이듬해(1599년) 1월 23일 황성(皇城)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1월 24일부터 2월 8일까지 연경에 머물면서 명나라에서 문제 삼는 주문의 내용을 황제에게 해명하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앞부분에는 문제의 주문(奏文)이 실려져 있다. 6개월간의 여정 속에서 이항복ㆍ이정구 등과 주고받은 시들, 그리고 명나라의 대외사정 등을 언급하고 있어 당시 중국과의 관계를 살피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