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고원의 중앙에 성립된 고대왕국으로, 617년 송첸캄포에서 842년 랑다르마에 이르기까지 2백여년간 지속된 티베트 지역 역사상 국력이 가장 강했던 왕조였다. 당나라는 이 시기 티베트에서 존속한 왕조를 ‘토번’이라고 불렀고, 이 명칭이 14세기 중순까지 티베트의 통칭으로 사용되었다.
토번의 역대 왕들은 성씨를 가지지 않았으며, 왕가와 왕족도 호칭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왕조의 명칭을 토번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나라 때까지 중국 문헌에서는 티베트의 전역을 일컫는 말로 또는 그 지배 세력을 일컫는 말로 언급됐다. 명나라 때 쓰인, 원사(元史) 선정원(宣政院)의 조항에도 토번의 영역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명나라 때 서장기(西蔵記)에서도 서장이 토번의 서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617년 송첸캄포에 의한 통일 이후, 북동쪽으로는 토욕혼·위구르, 남동쪽으로는 남조, 북방에서는 서역의 동서통상로 패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했다. 641년 당나라 조정에서는 문성공주를 평화사절로 시집보내기도 하였지만, 당나라와는 화친과 전쟁을 반복하였다. 안사의 난 이후에는 국력이 약해진 당나라를 물리치고 서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여 하서·농우지구와 실크로드의 대부분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763년에는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침공하여 그곳을 함락시키고 잠시나마 점령하기도 하였다. 791년 치송데첸이 불교를 국교로 하고, 이윽고 불교 지도자가 국정을 실시하여, 대장경이 번역됐다. 822년에는 당나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국경을 확정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 국내에서 불교를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나고, 또 왕위계승 문제로 분열되어 멸망하였다.
6세기 후반 티베트는
송첸 감포의 지도 아래 강력한 나라를 이루고 당과 대립하였다.
이 때부터 이 왕조의 멸망 시기인 9세기 중엽까지를 중국에서 토번이라 하였다.
이들은
토욕혼을 둘러싸고 당과 싸워 8세기 후반에는 당으로부터 서역의 지배권을 뺏었다.
불교의 영향으로 당과 화평 조약을 맺고 불교적 이상 국가의 실현을 시도하다가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