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려의 초대 왕(재위 918~943년). 성은 왕(王), 이름은 건(建)이다.
금성 태수 융(隆)의 아들로
895년(진성 여왕 9년)에 아버지를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898년(효공왕 2년)에 정기 대감(精騎大監)이 되고, 900년에 광주, 충주 등을 쳐서 그 공으로 아찬 벼슬에 올랐다.
906년에 상주에서
견훤의 군대를 무찌르는 한편, 정벌한 지방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힘써 백성의 신망을 얻었고, 913년에 시중(지금의 국무 총리)이 되었다.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난폭한 행동을 하는 궁예가 민심을 잃자,
918년에
홍유,
배현경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국호를 ‘
고려’라 하였다. 이듬해 도읍을 송악(지금의 개성)으로 옮기고 융화, 북진, 숭불 정책을 건국 이념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다.
943년에 후세의 왕들이 나라 다스리는 귀감으로 삼도록 ‘
훈요 10조(訓要十條)’를 유훈으로 남겼다.
능은 경기도 개성에 있는 현릉이다.
주요 연표
■ 건국 이전
→ 8C 말 신라 중앙 귀족들의 권력 투쟁이 발생하며,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여 조정을 이탈
→ 879 용건(왕윤)과 위숙왕후 한씨 사이에서 출생
→ 896 궁예가 강원도 일대를 점령하자, 송악의 왕융은 궁예에게 귀부하고 왕건은 성주에 임명되어 궁예 조정이 들어감
→ 900 왕건은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 공략하여 성과를 거둠
→ 900 견훤이 후백제 건국
→ 901 궁예가 후고구려 건국
→ 광주·청주·당성 등의 군현을 공략하여 성과를 거둠
→ 903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후백제의 후방인 금성군(현 나주)을 공략하여 군사적 거점을 만듦
→ 913 왕건은 최고 관직인 시중의 자리에 오름
→ 918.6 궁예가 미륵불을 자처하며 폭정을 펼치자, 왕건과 지지 세력은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세움
■ 건국 이후
→ 918.8 후백제에서 고려에 축하 사신을 보냄
→ 919 송악 천도
→ 920 후백제가 신라를 공격하고 고려가 구원에 나서자, 후백제는 고려를 적대시함
→ 927 후백제의 공격으로 신라 서라벌이 함락되고, 왕건이 지원에 나서지만 대패함
→ 929.12 ~ 930.1 고창 전투
- 왕건은 고창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하여, 현지 호족의 도움을 받아 후백제에 대승을 거둠
- 이후, 경상도 북부·동해안 일대 호족들이 고려에 귀부함
→ 935 신라가 고려에 항복
→ 936 후백제의 권력 승계 문제로 견훤은 유패되어 고려에 투항하고, 후백제 공략을 요청
→ 936.6 왕건의 아들 왕무(2. 혜종)가 선봉으로 출병
→ 936.9 왕건은 본군을 이끌고 출병하여 일리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완산주를 점령하여 후삼국을 통일함
→ 943 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