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베리아와 남러시아를 영토로 한 몽고 제국 4 한국(汗國) 가운데 하나(1243~1502년).
칭기즈칸의 장자
주치는 이르티슈강 이서의 스텝을 영지로 받았으나 주치의 사후 그의 차남
바투는 몽골 서정군의 총수가 되어 러시아 및 동유럽 각지를 석권함과 동시에 남러시아를 확실히 장악하여 킵차크 한국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신 수도 사라이가 이룩된 볼가강의 하류지방은 유라시아의 스텝을 경유하는 실크로드와 북방으로부터의 모피로가 교차되는 요충을 점하여 오랫동안 투르크계 하자르족이 활약하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몽골군이 출현했을 때에는 같은 투르크계 킵차크족이 북쪽의 불가르, 서쪽의 슬라브 및 동로마, 동남의 이슬람권과의 사이의 중계무역에 의하여 번영하였다. 또 몽골의 지배자가 급속히 투르크화, 이슬람화한 현상도 같은 사실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나라는 그 중계적 입장을 더욱 강화하였으며 제3대의 베르케 칸이 건설한 신 사라이는 구 사라이와 함께 국제시장으로서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나 제9대 우즈베크 칸의 최성기 이후 14세기 말부터 티무르군에게 유린되는 등 퇴색이 짙어져서 국토는
카잔 ·
크림 ·
아스트라한의 3한국으로 분열되고 그들이 대립 ·항쟁하는 가운데 멸망하였다.
원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서 무역을 활발히 전개하며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나, 국내에 내분이 일어나 혼란이 계속되다가 러시아의
이반 3세에게 멸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