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39년(
1763년)에
김인겸이 지은
가사. 국문본. 총 7,158행 3,500여구에 달하는 장편기행가사이다. 지은이가 통신사 조엄을 수행하여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일본 의 문물 제도와 인정, 풍속, 경치 등 보고 경험한 것을 쓴 기행 가사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별로 손색 없는 기행문으로서, 우리 가사 문학에서 가장 긴 가사로 알려져 있다.
홍순학의 《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는 장편 기행 가사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진다.
구성
제 1권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영천,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제 2권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 축전주, 남도를 거쳐 적간관에 도착하여 머묾.
제 3권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 교토, 오다와라, 시나카와를 거쳐 에도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제 4권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2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함.
작품의 배경이 되는 통신 활동
기간 : 1763년(영조 39) 8월 3일부터 이듬해 7월 8일에 돌아오기까지 11개월(일본에 머물렀던 기간은 11개월이고, 나머지는 왕복 기간이다.)
여행 목적 : 일본 관백 원가중이 퇴휴하고 그 아들인 원가치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자 일본 측에서 구호를 또는 수교하자는 요청이 왔으므로,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여 영조 39년 게미 8월에 통신사를 차출하였다. 일본의 관백인 토쿠가와 이에시게가 죽자 그의 아들 토쿠가와 이에하루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것임.
여행한 곳 : 대마도 - 오오사카 - 에도
기타 : 일종의 문화사절단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문화국으로 일본의 야만적이고, 비문화적인 면을 멸시하는 경향이 농후하여 통신사들은 가는 곳마다 김인겸이 귀국하여 영조에 복명한 것을 보면, 왜인에게 지어준 것이 몇천 수가 된다고 하였으니, 그 때의 외교는 작시(作詩)외교라고 할 만 것이었다. 고종 13년에는 수신사로 이름을 바꾸어 김기수가 갔었고, 다음 해에는 김홍집이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