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중국 전국 시대(기원전 475~221)에 활약했던 사상가. '열자(列子)'로 많이 일컬어진다, 자세한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전 400년경에 정(鄭)나라에 살았던 인물로 노자나 관윤의 제자이며 또는 장자의 선배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는 당시의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제자를 많이 두었으며,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임금과 제후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알렸다고 한다. 또 중국의 도가 사상의 기본을 세운 3대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도가 경전의 하나로 '충허지덕진경'이라고도 하는 《열자》의 지은이로 전해 오고 있다.
《열자》는 해학적인 문체를 사용하였고, 천서· 황제·주목왕·중니·탕문·방명·양주·설부의 8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열자는 중심 사상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여씨춘추》나 《열자》에서 짐작해 보면 이익과 손해, 그리고 얻음과 잃음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살아가는 '허심처세'의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노자의 무위·무지·무욕 사상과도 그 맥이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자나 장자의 사상 과는 다르게 인간의 미래가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열자는 실제로 생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장자가 상상력으로 창조한 인물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한다. 첫째로, 《장자》의 '소요유편'에 열자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는데 '열자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고 하여 마치 열자가 사람이 아니라 선인(仙人)인 것처럼 묘사해 놓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열자》에 실려 있는 글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열자가 쓴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쓴 것으로 밝혀졌고, 그래서 기원전 100년 무렵의 역사가인 사마천은 《사기 (史記)》의 '열전'에서 열자의 전기를 삭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唐)나라 때 열자는 장자나 문자와 더불어 도교 신앙에서는 신으로서 숭배되기 시작하여 '충허진인'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의 저서인 《열자》도 '충허진경' 또는 '충허지덕진경'으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