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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 ~ 1672]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호는 동춘당(同春堂)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이이, 김장생의 문인이며, 효종과 함께 북벌 계획을 적극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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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인물 > 한국
[1606 ~ 1672]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호는 동춘당(同春堂)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이이, 김장생의 문인이며, 효종과 함께 북벌 계획을 적극 추진하였다.
1649년에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사헌부 집의에 임명되어 당시 정치를 어지럽히던 재상 김자점을 규탄하여 벼슬에서 몰아냈다. 1659년에는 병조 판서가 되어 송시열 등과 함께 노론파의 주요 인물이 되었으나, 효종이 죽자 상복을 입는 문제로 윤휴 등 남인파와 싸우다가 벼슬에서 물러났다.
학문적으로 송시열과 같은 경향의 성리학자로서 예학에 밝았고, 이이의 학설을 찬성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
송시열, 송규렴과 함께 ‘3송’으로 불리었으며, 죽은 뒤 영의정의 벼슬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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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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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원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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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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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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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창건되었으며,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1574~1656)의 문하에서 동춘당 송준길(宋浚吉,1606~1672),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비롯하여 이유태, 유계, 윤원거, 윤문거, 윤선거 등 수많은 명유(名儒)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의 사림과 예학의 산실이자 본거지로서 17세기 동안 충청도 서인계의 으뜸 서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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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등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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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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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창건되었으며,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1574~1656)의 문하에서 동춘당 송준길(宋浚吉,1606~1672),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비롯하여 이유태, 유계, 윤원거, 윤문거, 윤선거 등 수많은 명유(名儒)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의 사림과 예학의 산실이자 본거지로서 17세기 동안 충청도 서인계의 으뜸 서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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