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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 ~ 1494] 조선의 제9대 왕(재위 1469~1494). 이름은 혈(娎)이고, 시호는 강정(康靖)이다. (-> 연산군)
세조의 손자로 예종를 계승하여 13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세조의 비인 정희대비가 정사를 대신 보살폈다.( 수렴청정) 20세가 되어 몸소 정사를 맡아 보게 되었는데, 왕위에 있는 동안 세종과 세조가 이룩한 업적을 기반으로 하여 빛나는 문화 정책을 펴 나갔다. 그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였다.
1474년에 《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1492년에 다시 《경국대전》을 보완하여 만든 《 대전속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노사신 등에게 《여지승람》을, 서거정 등에게 《 동국통감》을 비롯하여 《 동문선》 《 악학궤범》 등 많은 서적들을 펴내게 하였다.
또한 홍문관, 독서당 등을 설치하고, 문신들 가운데서 재주가 뛰어난 이들을 뽑아 특별히 말미를 주어 글을 읽게 하는 제도를 두었다.
한편 국방에도 힘을 기울여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과 압록강 유역의 야인을 몰아 내고 변방의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능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선릉(宣陵)이다.
시조
있으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無端)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닯고야 가는 뜻을 일러라.
성종 25년 1월에 70세가 된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고향 선산으로 돌아가려는 장령 유호인(兪好仁)을 합천군수로 삼아 전송하면서 왕이 지은 작품이다. 신하를 아끼고 사랑하는 왕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3정승
• 홍윤성 (영의정), 윤자운 (좌의정), 김국광 (우의정)
• 윤자운 (영의정), 김국광 (좌의정), 한백륜 (우의정)
• 신숙주 (영의정), 최항 (좌의정), 성봉조 (우의정)
• 신숙주 (영의정), 한명회 (좌의정), 김질 (우의정)
• 신숙주 (영의정), 한명회 (좌의정), 윤사흔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한명회 (좌의정), 윤사흔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조석문 (좌의정), 윤사흔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조석문 (좌의정), 윤자운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심회 (좌의정), 윤자운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심회 (좌의정), 김국광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심회 (좌의정), 윤필상 (우의정)
• 정창손 (영의정), 윤필상 (좌의정), 홍응 (우의정)
• 윤필상 (영의정), 홍응 (좌의정), 이극배 (우의정)
• 윤필상 (영의정), 홍응 (좌의정), 노사신 (우의정)
• 윤필상 (영의정), 노사신 (좌의정), 허종 (우의정)
• 윤필상 (영의정), 노사신 (좌의정), 윤호 (우의정)
• 이극배 (영의정), 노사신 (좌의정), 신승선 (우의정)
■ 즉위 이전
→ 1457 출생, 아버지 의경세자 사망 이후 궁에서 성장
→ 1467 한명회(훈구파의 핵심)의 딸과 혼인
→ 1469 예종 승하
■ 즉위 이후
→ 1469 13세에 즉위하여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함
→ 1470 (직전법 →) 관수관급제 시행 - 직전세를 관에서 거두어 관원들에게 나눠줌
→ 1475 아버지를 덕종으로 추존하여 신위를 종묘에 안치
→ 1476 20세가 되어 친정 실시
→ 1476 윤기견의 딸을 왕비로 맞아 세자 융(연산군)을 출생
→ 1478 장서를 보관하던 홍문관을 학술 연구 기관으로 승격 (세조 대 폐지된 집현전과 같은 기능)
→ 1479 왕비인 윤씨를 폐함 - 갑자사화(1504)의 발단
→ 1479, 1491 여진 정벌
→ 1485 (갑오대전 →) 경국대전(을사대전) 반포
→ 1494 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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