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 ~ 1990] 여류 시인· 예술원 원로 회원.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이다. 호는 영운(嶺雲)이고 함경 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함흥에서 보내고, 1931년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하였다. 졸업하던 해에 시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을」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에는 「추억」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1933년에 소설가인 춘원 이광수(1892~1950)가 서문을 쓰고 여성 운동가요 교육자인 김활란(1899~1970)이 발문을 쓴 첫 시집 《빛나는 지역》을 펴내었다.
1935년에는 경성 제국 대학 영문과 선과(選科)를 수료하였다. 그 후 월간지 《삼천리》, 중앙 방송국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다.
1937년에는 장편 산문집 《
렌의 애가》를 펴냈다. 《렌의 애가》는 1936년 《여성 (女性)》지 4월호부터 연재되었고, 1937년 일월 서방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시집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초판본에는 분명히 산문집으로 되어 있다. 4·6판, 40면 내외였으나, 광복 후의 재판본에는 내용이 추가되어 346면이 되었고, 1978년까지 53판을 간행했으며, 1954년도에는 가장 인기가 높았던 베스트 셀러로서 약 5만 부나 팔렸다.
내용은 중년 남성 '시몬'에게 바치는 청순한 '렌'의 애가인데, 작자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시몬'은 예수의 제자인 '시몬 베드로'에서 따온 것이며, 진리 탐구자로서의 용감성과 예수를 배반하는 베드로와 같은 비겁성, 또 사랑에 수줍고 지도자적인 위치에 놓여야 했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 나라 남성상을 상징하고 있다.
1940년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시 「조선의 딸」 「이 생명을」을 발표하여 경기도 경찰서에 구류되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지원병들에게」를, 1942년에는 대동아 전쟁의 승리를 강조한 「동방의 여인들」을 발표하였다. 8·15 광복 전까지는 주로 일제의 침략 전쟁 을 칭송하는 작품을 썼는데, 이는 1940년대 이후 전쟁이 확산되고 전국이 비상 체제로 들어간 때문이었다.
8·15 광복 후에는 문단과 정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1947년 작품집 《옥비녀》를 펴내었고 1949년 월간 문예지 《
문예》를 발간하는 한편, 《문예》지에 「달맞이」 「유혹」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문예》지는 순수 문예지로서, 출발부터 순수 문학을 옹호하였고 민족 문학의 확립을 지향하였다. 통권 21호를 발행하는 동안 시 부문에서 이동주(李東柱)· 송욱(宋稶)·전봉건(全鳳健)·이형기(李炯基)·박재삼(朴在森), 소설 부문에서 강신재(康信哉)·장용학(張龍鶴)·최일남(崔一男)·손창섭(孫昌涉) 등 추천을 통하여 많은 신인들을 배출하였다.
모윤숙은 또 1948년과 1949년 유엔 총회에 우리 나라 대표로 참석하여 대한 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데에도 공헌하였다. 1950년에는 대한 여자 청년 단장을 지냈다.
1953년에는 수필집 《내가 본 세상》을 펴내었다. 1954년 한국 펜클럽 부회장으로 활약하였고, 1955년 서울 대학교 문리 대학 강사를 지내는 한편,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의 최고 위원 등에 취임하였다. 또 1957년에는 대한 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8년 국제 연합 과학 문화 기구(UNESCO) 총회와 아시아 여성 단체 연합 총회 에서 우리 나라 대표로 활약하였다. 1960년 한국 펜클럽 위원장을 지냈고, 이 해에 작품집 《포도원》을 펴냈다. 1962년 여성 단체 협의회 이사가 되었다.
1968년에는 한·인(印) 협회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사상계》지에 「이 지평선에서」를 발표하였다.
1969년 여류 문인 협회장에 선임되었으며, 이 해에 작품집 《회상의 창가에서》를 펴내었다. 1970년에는 국제 펜클럽 서울 대회 준비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에서는 민주 공화당 전국구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73년에는 한국 현대 시인 협회의 회장에 선임되었으며, 이 해에 작품집 《호반의 목소리》가 간행되었다.
1974년 통일원 고문에 위촉되었다. 이 해에 《모윤숙 전집》이 도서 출판 서문당에서 간행되었다. 1977년 펜클럽 한국 본부 회장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1980년에는 문학 진흥 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국민 훈장 2 등급인 모란장, 대한 민국 예술원에서 주는 대한 민국 예술상 및 3·1 문화상 예술 부문상 등을 받았으며, 1991년 금관 문화 훈장(1급)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