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 때
희명이 지은 향가. 사뇌가의 변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으로, '천수관음가' '도천수대비가' ' 천수대비가' '맹아득안가'라고도 불린다.
이 작품은 《삼국유사》 권3 '분황사천수대비맹아득안조'에 향찰로 표기되어 실려 있다.
「도천수관음가」가 지어진 배경은, 경덕왕 때 경주 한기리에 살던 희명이란 여자의 아들이 태어난 지 5년 만에 갑자기 눈이 멀어져 볼 수 없게 되자 희명이 분황사 좌전에 있는 천수대비의 벽화 앞에서 이 노래를 지어 아이에게 부르게 하자 눈을 떴다고 하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형식은 전체 노래가 10구절로 나누어지므로, 흔히 10구체 향가로 인정되고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두 무릎을 낮추며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비는 말씀 두노라
즈믄 손에 즈믄 눈을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두 눈 감은 나니 하나를 숨겨 주소서 매달리누나
아아, 나라고 알으실진댄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향찰로 표기된 내용의 해독이 해석자에 따라 다소 틀리기는 하지만 대체로 천수 천안(천 개의 손과 그 손바닥마다 박혀 있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관음 앞에 합장하고 앉아 "두 눈이 없는 내게 눈을 주신다면 그 자비로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는 기원의 노래라는 데에는 일치한다.
원전의 '영아작가'라는 대목을 놓고 학자에 따라서는 노래의 작가를 희명의 아들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 노래를 향찬으로 본다면 향찬의 전통적인 창법에 따라 불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노래는 명령법이나 강제의 요소에 의존하는 주술가와는 달리 종교적 신앙심으로써 신격을 환기하고 나아가 초월적인 신격에 의하여 자신이 구제되기를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 서정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향가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창작되어 향찰로 표기된 정형 시가를 가리키며, 현재 전해지는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로 모두 25수이다.
향가를 지은 작가들은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중심이 되는 작가층은 화랑과 승려 계층이라 할 수 있다. 「도천수관음가」의 경우 작가가 희명이라 되어 있는데, '희명(希明)'은 눈 먼 자식이 눈을 뜰 수 있게 기도하는, 곧 '밝음을 기원'한 노래와 관련되어 지어진 이름으로 실존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로도 해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예는 「안민가」의 작가로 알려진 충담사의 경우로, 충담사는 경덕왕에게 「안민가」를 지어 바친 작가로 되어 있지만 실은 이 향가의 내용이 왕으로 하여금 올바른 왕도를 펴서 백성들을 복되게 하여 달라는 '충성의 노래'로 그 의미와 관련해 작가의 이름을 충담이라고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작가의 이름이 설화상의 가공적 이름이 된 이유는 실제 향가 작가의 이름이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진 채 전승되어 오다가 그 배경 설화 에 맞추어 후대에 다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향가의 형식 면을 살펴보면 《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 의 경우 일정하게 분절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분절 양상이 문학적인 형식 분절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아마도 음악적 형식에 의한 분절로 향가가 노래로 불려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향가의 문학적 형식은 4구체·8구체·10구체 등 세 가지로 나누는데, 「도천수관음가」는 10구체에 속한다. 대체로 이들 형식 가운데 4구체가 가장 오래된 것이고, 10구체가 최종 완성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즉, 향가 는 처음 4구체 민요 형식으로 시작한 서정시였는데, 점차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노래함에 따라 보다 길어지는 경향을 보여 4구체·6구체·8구체·10구체까지 나아가다가 결국 10구체 형식으로 완결되었다는 것이다. 10구체 형식은 작품 전체를 다시 3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1장과 제2장은 각 4행으로, 제3장은 2행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제1장만으로는 4구체와 같은 형식이고, 제2장까지만 보면 8구체와 같은 형식이며, 제3장은 낙구· 격구·후구라고 부르는데, 그 첫머리에 '아으' 또는 그 밖의 감탄사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향가의 성격은 주술적인 면과 불교적인 면으로 파악되는데, 그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적 배경도 이 두 차원에서 해석 되고 있다.
「도천수관음가」의 경우는 관음불에게 현세적 소망을 기구하는 불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나쁜 역신을 몰아내고 선한 것을 불러들이려는 청원 주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청원이나 명령, 혹은 직접적인 호소를 통하여 기원자 자신의 소원을 담기 때문에 칭명이나 탄원을 기본으로 하는 자기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며, 이 작품에서 보이는 내용은 신라 시대 기도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향가의 미 의식은 '그 뜻하는 바가 매우 높고, 그 구절들이 깨끗하고도 아름답다'라고 밝히고 있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의 기록처럼 숭고하고 원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적으로 향가는 주술 신앙·밀교 신앙 · 미타 신앙· 미륵 신앙·관음 및 정토 신앙을 바탕으로 현실의 구체적인 재난이나 한계, 불만과 고뇌 등을 극복함으로써 숭고미를 드러내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천수관음가」의 경우는 불교의 제신앙을 바탕으로 '불교적 숭고'를 구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향가가 지닌 미는 숭고미가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