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 250?] 인도의 대승 불교학자. 산스크리트어로는 나가르주나(Nāgārjuna)이다.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활약한, 남인도
안드라 왕국 사타바하나 왕조 출신의 승려이다. 용수는
대승불교를 성립시킨 『
반야경』의 공(空) 사상을 선양하고 이론화한 『
중론(中論)』을 저술하여, 최초의 대승 아비달마 논사라고 평가받는다.
구마라집이 전하는 전기에 따르면, 용수는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나 바라문 교학을 공부하였다. 천성적으로 재능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학식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학문에서는 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역시 재능이 뛰어난 세 친구와 함께 세속적인 즐거움을 탐닉하였다. 그들은 은신술을 배워 왕궁에 드나들며 100일 사이에 왕궁의 여인을 모두 임신시켰다. 이에 놀란 왕이 그들을 추적해 친구 세 명을 모두 살해하였다. 이때 용수는 탐욕이 고통의 원인임을 깨닫고 출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출가 동기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출가 동기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것이다.
출가 후 소승의 불교경론을 모두 섭렵하고 다시 만심(慢心)에 빠지자, 용이 그를 용궁으로 인도하여 심오한 대승 경전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 용수(龍樹)는 이 일화에서 유래한다. 그 후 용수는 남인도에서 장수가 되어 왕을 교화하는 등의 행적을 보였다. 이러한 전기 내용은 설화적 성격이 강하여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로부터 용수가 남인도 출신이며 당시 왕과 교류하였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용수의 저작 가운데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과 『친우서간(親友書簡)』으로도 뒷받침된다.
용수에게는 『중론』을 비롯한 수많은 저작이 있다고 전하지만, 모두 그의 저작이라고 확인된 것은 아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현재 대체로 그의 저작으로 인정되는 문헌은 『중론』 외에 『공칠십론』, 『회쟁론』, 『바이달리야론』, 『육십송여리론』, 『사찬』, 『보행왕정론』, 『연기심송』, 『경집론』, 『보리심찬』, 『친우서간』, 『보리자량론』 등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대지도론』과 『십주비바사론』 등도 그의 저작으로 전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를 부정한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많은 종파가 용수를 시조로 삼아 그를 ‘8종의 조사’, ‘제2의 부처님’ 등으로 숭상한다.
【인용】한국불교문화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