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1 ~ 1492] 조선
성종 때의 성리학자. 호는 점필재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45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형조 판서,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몸가짐이 단정하였으며, 고려 말의 유학자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아서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 내어, 이른바
영남 학파를 이룩하였다.
성종의 신임을 받아 그의 제자들을 벼슬자리에 많이 앉힘으로써 전부터 있던 세력인
훈구파와 대립이 심하였다.
결국 이 대립은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고, 그의 시신은 목이 잘리는 형을 받았다. 죄가 풀린 뒤 숙종 때 영의정 벼슬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