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8~1384 고려 말기의 학자. 호는 척약재(--若齋)이다. 공민왕 때 16세로 진사에 합격한 뒤 다시 문과에 급제하여 민부의랑겸 성균직강이 되었다. 그 후 정몽주· 이숭인 등과 불교를 배척하고 정주학( 유학)을 일으키는 데 힘썼다. 친명파로서 1375년(우왕 1년)에 원나라에서 온 사신의 영접을 반대하여 죽주에 유배되었다가 1381년에 풀려나, 이듬해 대사성·판전교시사가 되었다. 명나라와의 국교 가 어렵게 되자, 1384년 행례사로 명나라에 가던 중 랴오둥에서 붙잡혀 유배되어 가다가 여주에서 병으로 죽었다. 저서에 《척약재집》 《선수집》 등이 있다.